⑧일본의 날조된 역사를 본다-한국은 일본왕조의 실크로드

입력 2012-10-13 15:28:43

원문 링크

 ▲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역사의 진실을 외면하는 학노(學奴)
 
작가인 로버트 하인라인은 “역사를 무시하는 세대는 과거도 미래도 없다”고 했다. 고대사연구에 평생을 바친 최태영 선생은 전후 일본의 새로운 학파인 상가야(上伽倻) 연구자들을 알게 되고 나서 한국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귀중한 고대사 자료 ‘미야시타 문서’(宮下文書-신황기·神皇紀)를 접했다. 일본 야마나시 현(山梨縣) 후지시(富士市) 후지산(富士山) 아래 산기슭 대밭 지하 금고 안에 미야시다(宮下) 가문의 보물인 ‘미야시타 문서’를 직접 확인하고 귀국한 최태영 선생은 이 답사 보고를 학계에 하고자 했다. 그러나 연구를 하지 않아 왔던 국내 국사학계는 오히려 당황하면서 ‘한국인이 일본을 세웠다는 역사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일본의 왜곡한 한국역사가 전부인양 거기에 안주해온 자들이기에 사실 받아들이는 것은 무리였다. 일본에서는 태평양전쟁 중 거세진 일본군국주의의 발호로 핍박 받기 전에도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 같은 일본 왕실 권력사와는 다른 고대사 자료가 연구되면서 많은 자료가 제시되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무런 연구조차 않은 것은 물론 자신들이 아는 것 외에는 도무지 받아들이지 않았다. 양심의 틈새가 없는 참으로 한심한 학자들이었다.
 
더욱 기가찬 일은 김영삼 정부가 역사를 바로 세운다고 큰 소리를 칠 당시 국무총리 두 사람은 열 명도 안 되는 단군 연구학자들과 사사건건 맞섰던 일이 있다. 최태영 선생은 이 사건을 회고하며 기가 막힌 심정을 ‘인간 단군을 찾아서’에서 언급하고 있다. 또 1997년에는 고시(考試)에서 국사과목조차 빠져버렸다. 이 같이 우리나라 역사 복원은 멀어져가고 앞장서서 뭘 할 것처럼 큰 소리 치던 학자들은 벙어리가 돼 정부에서 주는 요직에 만족 할 뿐이라고 선생은 질책을 했다. 역사를 너무 모르는 사람들이 사학계를 잡고 다수결이란 명목으로 정책을 휘둘러 왔다. 나아가 우리 역사를 아는 사람은 아주 소수다. 우리 역사를 바로 찾고 세워야만 나라가 변할 수 있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울 수 있는데도 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무기력한 학자무리에 최 선생은 한탄했다. 일본에서는 자국역사가 아닌데도 우리 역사를 깊이 연구하며 발표하고 책자까지 발간하는데, 우리네 학자라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잠만 자고 있는 형세다. 이는 국가장래를 위해서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본왕조는 한국인이 세웠고 일본역사의 상반은 한국역사라는 책들
 
일본의 학자는 일본의 뿌리가 한국인데서 우리역사를 깊이 연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유민들이 가지고 간 자료가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것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미야시타 문서’(宮下文書-신황기·神皇紀) 외에도 ‘고사기’와 ‘일본서기’와는 다른 ‘수진전’(秀眞傳), ‘상기’(上記), ‘다케우치(竹內)문서’(富士高天原朝史), ‘北陸飛彈朝史’와 ‘구카미(九鬼)문서’(出雲高天原朝史) 등이 그것이다. 이 문서들은 널리 공개가 되지 않던 비서들이며 흠결된 부분이 있어서 여럿을 종합해 읽어야 대체를 알 수 있다. 이 비서(秘書=비밀스런 서책)들에서도 알 수 있는 것은 ‘일본역사의 상반은 한국역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일본의 학자로는 미와 구니 미쓰(三輪邦光), 아고 기요히코(吾鄕淸彦), 가시마 노보루(鹿島昇), 요시다 하치로(吉田八郞), 마쓰모토 젠노쓰게(松本善之助) 등이 있다. 이들 학자들은 이들 문서를 두루 연구했다. 그 내용은 ‘일본왕조의 발생이 일본열도에서 자생한 것이 아니고 대륙인 한국에서 건너갔다’에 관한 것이었다. 즉, 단군이래의 한국이 일본왕조의 발상지이고 실크로드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를 상가야 왕조사(上伽倻王朝史)라고 지칭한다. 아울러 한국의 고대사와 일본 역사의 접점을 찾는 중요자료로 환단고기(桓檀古記)가 덧붙여지고 있다.
 
최태영 선생은 젊은 시절 중국대륙에 가서 고적을 듣고 보아 고대 한국의 주된 활약무대가 지금의 중국대륙이라는 것은 확인했지만 일본왕조의 발상지가 한국이요 한국이 그들의 실크로드라는 것은 일본에 가서 한국사 연구자료를 찾아다니면서 얻은 지식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연찮게 이들의 연구를 접해 권력사에 불과한 ‘고사기’(古事記) 및 ‘일본서기’(日本書紀)와는 다른 여러 가지 역사서가 일본 땅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수진전’(秀眞傳)처럼 고대문자(가림토)로 기록된 역사서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수진전’이란 ‘진짜 우수한 전기’라는 뜻의 책이다. 그런데 이 역사서의 발상이 단군조선이고 또한 한·일 두 나라의 역사가 연접돼 있기 때문에 적어도 ‘환단고기’(桓檀古記), ‘미야시타 문서’(宮下文書)-신황기·神皇紀), ‘상기’(上記), ‘다케우치 분쇼’(竹內文書), ‘수진전’(秀眞傳) 같은 다섯 가지의 비서와 30종의 고대 일본문자를 우리도 알 필요가 있다. 이 비서(秘書)들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미야시타 문서’는 일본 학자들조차 이 문고를 직접 본 경우가 드물다. 그래서 최태영 선생은 이병창 박사의 주선이 없었다면 이런 문서가 있는지조차 몰랐을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 국내 사학자들은 최 선생이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꾸며냈다고 몰아 세웠다. 이에 최 선생은 1921년 ‘미야시타 문서’의 저자인 미와 요시히로(三輪義熙) 선생은 타계했으므로 1980년 ‘신황기’(神皇紀) 복간을 한 그의 아들 미와구니 미쓰(三輪邦光) 선생을 초청해 ‘미야시타 문서’ 탐사보고회를 갖고자 했다. 그러나 국내 식민사관 학노(學奴)들의 방해를 받아 무산됐다. 그래서 1999년 2월 들어서야 한국 학술원 통신지를 통해 간략하게 첫 공식 보고를 했다고 그동안의 안타까웠던 일을 최 선생은 회고했다. 도둑맞은 우리 역사의 정립을 위해 애쓰는 고령의 노학자를 돕지는 못할망정 자기들의 신분을 지키기 위해 소중한 역사자료도 팽개치는 이들이 한국국민이며 과연 한국의 사학자인가 묻고 싶다. 분명한 것은 일본의 왕조는 한국인이 세웠고 일본의 상반 역사는 한국 역사라는 것이다. (다음에 계속)
이을형 필진페이지 +
후원하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0
좋아요
0
감동이에요
0
화나요
0
슬퍼요
0
댓글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