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아베 극우정권은 임나일본부가 한반도에 있었다며 역사교과서를 가지고 또 다시 들고 일어섰다. 우리 역사를 뒤집고자 함인데 이는 철저히 잘못 짚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가야와 임나에 대해서는 오래전 이미 다뤘고 일본이 한 때 허구의 임나일본부의 실체도 대륙과 일본 열도 어디에도 없음을 밝힌 바 있다. 분명히 말하지만 일본이 말하는 임나일본부는 우리나라는 물론 대륙어디에도 없는 유령의 역사다. 어디에도 없었다. 다만, 가야의 식민지 ‘임나’가 일본에 세워졌을 뿐이다.
역사연구 분야에서 일본의 허구성·기만성·사기성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임나일본부는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하면서 꾸며낸 일고의 가치가 없는 왜곡사(歪曲史)다. 귀를 기울일 필요조차 없는 사안이다. 하지만 일본이 또 다시 임나일본부를 운운하니 오늘 재차 그 진위를 가려보고자 한다.
가야(伽倻) 혹은 가라(加羅)는 신라보다 약 100년 늦은 서기42년 낙동강 중하류에 고조선의 제후국인 한(韓)의 지배를 받던 변한지역에 세원진 6개의 부족국가들이다. 이 6개 부족국가 중 김해지방에 위치한 금관가야(金官伽倻)가 맹주 국이 돼 안으로 결속을 굳게 했다.
그들은 김해 구지봉(龜旨峰)에 나타난 김수로왕(金首露王)을 시조(始祖)로 받들었다. 당시 가야는 쇠와 농산물이 풍부한 가야국은 자주 와서 교역을 하던 일본(왜)에 진출, 그곳에 분국(分國)인 임나(任那)를 만들었다. 임나는 가야를 위해 왜 땅에 세운 식민지인 것이다.
가야는 건국되기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일본에 건너가서 일본문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활발한 문화전수를 행해 일본에 가야라는 지명이 수없이 생기게 된 사유도 여기에 있다. 당시 왜의 문화수준은 원시시대나 다름 없었고 중앙집권화 된 통치행정능력이 없었다.
가야가 일본에 분국(分國)으로 세운 임나(任那)
일본의 고대사를 간략히 서술하자면 석기시대 어느 시기부터 일본섬에 인류가 거주하기 시작했다고 추정된다. 서기 2·3세기가 되면서 분립한 부족들의 소 부족국가가 점차 통합돼 통일국가의 형성되는 기운(氣運)이 일어났다.
이 때에 조선무녀(朝鮮巫女)히미고(卑彌呼)여왕 2대가 통치한 이도국(伊都國=邪馬臺國)이 구주(九州)에 있었다. 이 이도국(伊都國)이 30의 소 부족국가를 통합했다 하나 통일을 이룩하지 못했기에 국가라 보기에는 미흡하다.
때문에 일본은 혼란에 빠지고 있었다. 이 때 신라가 웅습(熊襲)을 앞잡이로 일본을 정복하고 소위 진구황후(神功皇后)의 신화가 나왔다. 이 신화는 신라 백제에 진공해 고구려와 대치했다는 허구의 신화이다. 왜곡한다. 참으로 가관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390년 일본에서 태어난 진구황후의 아들 가야인 오진(應神 통치363~394)이 나라를 세워 왜(倭)라하고 비로소 뚜렷한 실존인물인 왜왕 1대가 됐다. 이가 단군의 73대손이다. 이 기록은 지금 일본 궁내성(宮內省) 도서관에 있는 [상기(上記)]에 잘 나와 있다.
여기서 일본의 역사를 살펴보면, 5세기에 고구려가 일본을 정벌하니 일본이 저항치 못하고 송(宋)에 구원을 청했다. 5세기말 6세기 초에 야마토(大和)정부를 중심으로 부족연합이 형성되고 6세기말 7세기 초에 호족(豪族)이 분립해 자기의 세력을 부식(扶植)했다.
호족 중 대표는 한국계 소가씨(蘇我氏)였다. 이 소가씨(蘇我馬子)가 스슝(崇峻588~591)왕을 592년 살해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후 소가씨(蘇我氏)도 반대 정적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이로 인해 스이코(推古 592~628)가 왕으로 등극하고 세이독그 다이시(聖德太子)가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정치를 대행하고 대화개신(大化改新)을 시도했다. 이 때에 고구려가 고승(高僧) 혜자법사(惠慈法師)를 일본에 보내어 대화개신을 지도 한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때까지도 천황의 권위가 서지 못하고 7세기 후반부에 이르러 비로소 천황의 권위가 확립됐다. 7세기 이전은 왕 또는 대왕이라 칭하고 7세기 이후 일본은 가야(伽倻)가 통치하며 전해준 우리의 천황제도를 받아들여 천황으로 칭하게 된다.
한편 일본의 킨메이기(欽明紀 536~571)에 임나(任那)는 신라와 경(境)을 접했다하고 또한 전기(前記)한 가락국기(駕洛國記)에는 임나는 낙동강과 지리산(智異山) 중간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일본은 일본문화사에 일본부(日本府)라는 말을 웅략천황기(雄略天皇紀)에 보이는데 이 명칭이 어느 때에 지어 졌는지 또한 과연 일본이 공연히 이와 같은 명칭을 사용 했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日本文化史 第一編 上古-奈良時代 第八章 朝鮮半島との關係 參照).
어떤 이는 임나는 대마도(對馬島)라고 하는 자도 있으나 이도 전혀 아니다. 이노우에 히데오(井上秀雄)씨는 “임나일본부의 명칭은 일본서기에 있어서 신라 백제계의 사료에만 있고 일본 측의 사료에는 일본부의 명칭이 없다”고 했다. (井上秀雄 朝鮮史入門 92面).
일본이 우리민족을 통치한 정치기관이라면 이는 일본역사에 크게 자랑할 대 사건이다. 특히 역사를 위조해 일본을 자랑하는 일본사가가 대서특필했을 것이다. 왜 기록 없는 것인가!
일본이 말하던 임나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일본부의 명칭이 신라 백제계의 사료에만 있고 일본 측에 없는 것을 보면 임나일본부는 우리민족을 통치한 정치기관이 아니며 존재하지도 않았다. 또한 다른데 일본이 우리를 통치했다는 기록도 없다.
일본역사에 있어서 임나문제의 기원은 일본이 조작한 가공의 일본서기(日本書紀)에서다. 즉, 스진덴노(崇神天皇-서기318?) 65년 추(秋)7월에 임나가 소나갈질지(蘇那曷叱智)를 보내어 조공했다는 조문(條文)인데 이 시대는 씨족시대로서 소부락을 이루고 사는 때이다.
더구나 일본은 미개한 그대로인 원시상태로 사는 때로 일본국내도 통일통치도 못하는 때이다. 이런 일본이 임나일본부를 세워 선진국 가야를 통치했다는 것은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분명한 사실은 임나(任那)는 우리 가야가 일본에 가서 세운 분국(分國)이고 가야의 식민지였다. 지금 일본에 가야와 관계되는 인명 지명이 400이 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가야 임나의 일본 통치, 숨길 수 없다
당시 미개한 일본으로는 멀리 해외에 진출해 이민족(異)民族)을 통치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더구나 일본보다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넘볼 수 없는 철제기무기가 발달한 대륙의 선진국 가야, 임나를 일본이 무력으로 지배할 수 없는 상태였다.
분명한 것은 일본 아베신조(安倍晋三)총리가 말하는 임나일본부는 우리민족을 통치한 정치기관이 아니다. 통치할 능력이나 여건도 아니었다. 그 당시 임나일본부가 있었다면 이는 우리민족이 일본을 통치한 정치기관이라 봐야 한다.
특히 가야의 분국인 일본에 임나를 식민지로 통치한 가야는 일본보다 먼저 서기42년 건국하고 대륙의 앞선 문물을 갖추고 일본을 식민지로 통치한 선진국이었다.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 동경대 교수가 말하는 기마민족(騎馬民族)이 바로 가야족인 것이다.
가야는 원시생활을 하는 당시 일본을 가르치고 경제적으로 일본을 후원했다. 그러므로 신라가 가야를 신라에 합병시키고 임나를 정복하니 일본은 역대 천황이 가야를 회복하려고 전력을 다해 신라와 싸웠다. 이를 봐도 일본은 주종관계가 어디인가!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가야 임나를 일본서기에 임나일본부라는 명칭이 웅략기(雄略紀)와 킨메이기(欽明紀)에 보인다고 해서 역사왜곡은 가관이다. 원래 일본서기(日本書紀)가 히에다노아례(稗田阿禮)라 하는 한 개인이 구전(口傳)을 안만려(安萬呂)가 받아 쓴 ‘일본서기’는 역사라 할 수 없는 한 개의 전설로 역사라 할 수 없을 만큼 너무 왜곡이 심하다.
일본은 해중원도(海中遠島)에 동떨어진 대륙문화와 접촉하지 못하고 문화가 발달치 못해 신화를 믿는 신국(神國)에 타락됐다. 그도 그럴 것이 바다가운데 있어 타민족의 침략을 받지 아니하고 성장함으로 자존(自尊)과 오만한 속성이 육성됐다.
신화(神話)와 오만한 속성이 합작해 일본을 중심으로 한 신화적 역사로 위조하고 명치유신시대에 독일이 위대한 역사를 위조해 국민의 용기를 북돋는 것을 흉내 내어 일본도 의도적으로 위대한 일본역사로 위조한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일본인 자신도 제대로 일본사서(史書)를 연구한 자는 일본의 역사를 다 믿지 않고 불신한다. 이러함에도 아베신죠(安倍晋三)총리가 이런 위조사를 앞세워 다시 명치시대로 돌아가는 역사교재는 결국 일본의 수치가 돼 이 일을 저질은 자에게 돌아갈 것이다.
일본은 일본사, 제대로 알고 행세해야
일본사는 상고사가 없고 고대사는 빈약함에서 우리역사를 폄하하며 역사왜곡을 감행해 지난 일제강점기에 우리역사자료를 수십만 권을 다 없애고 일본역사는 고무줄 같이 왜곡되게 늘리어 일본역사가 2600년이나 된 것 같이 조작했다. 이는 일본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은 아랑곳없이1천년을 늘려 조작된 역사로 국민에게 호도하나 일본역사는 1600여년 밖에 아니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한국사가 1만년 이상인 것도 알고 말을 해야 한다.
일본의 역사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천황가의 역사도 1대~14대는 천황이 아니다. 일본의 제1대 천황은 390년 일본에서 태어난 진구황후의 아들 가야인 오진(應神 363~394)이 재임한 뚜렷한 실존인물로 일본천황 제1대가 된다. 그리고 그 선조는 우리단군의 73대손이기도 하다.
위와 같이 일본역사는 처음부터가 아주 잘못돼 있다. 그리고 일본인의 85%가 한국계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극우성향의 일본인들은 선조들의 유민의 된 한을 우리에게 뒤집어씌우나 따지고 보면 같은 조상을 가진 같은 뿌리의 한민족의 자손들이다.
한일역사에서 보듯 한국은 언제나 일본을 은혜와 위엄으로 도와줬다. 일본은 한국에서 유민이 된 한을 가지고 적대시 하는 것은 잘못이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같은 조상의 자손이다.
일본인들은 자기 조상이 모신 미에겡(三重縣) 미에시(三重市)에 있는 이세궁(伊勢宮)의 신위 36위가 다 한국에서 건너간 유민(流民)임을 분명히 알고 말해야 한다. 이세궁은 7년에 한번 씩 공개하는데 공개할 때마다 700만 명이상 참배하는데 그 신위 전부가 한국서 간 유민이다.
또한 나가노현(長野縣)의 센고지(善光寺)에 모시고 있는 위패(位牌)역시 백제 무왕(武王)의 위패가 아니던가! 그 뿐인가 일본전국에 600여개의 큰 사찰의 위패역시 모두 한국에서 건너간 유민이 아니던가! 이것을 무엇으로 설명 할 것인가! 일본인의 본 고향이 바로 한국이다.
일본은 순리에 맞게 제대로 고증하고 역사정립을
이러한 한국을 좁은 소견으로 폄하하며 역사 왜곡은 선조에 대한 모욕이요 죄악이다. 오늘날 일본의 역사는 1655년인데 비해 한국은 1만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환국53대3301년이고 배달국 37대1565년, 단군조선 47대 2096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본은 상고사가 없고 고대사역시 부실함에서 우리역사를 흠치고 왜곡하나 제대로 바로 알고 역사를 논했으면 한다. 일제는 우리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우리의 고사(古史), 전기(傳記), 열전(列傳), 충의록(忠義錄)등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가 발표한 것만도 22만수천권에 달한다.
그리고 자기들 구미에 맞게 제멋대로 우리역사를 왜곡하고 있는데 일본이 우리역사를 훼방하는 것은 천인공노할 언어도단의 수치임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일본 역사는 달라지지 않는다. 1655년의 역사밖에 안 되는 일본이다. 망령도 유분수이지 한심한 짓을 다시 하고 있다.
우리는 상고사와 고대사는 물론 고구려 신라백제 가야 등이 서기전에 일본이 나오기 전에 건국한나라다. 고구려가(서기전 37년), 백제(서기전 18년), 신라(서기전 57년), 가야(서기42년)에 건국했다.
일본은 이보다도 늦게 서기363년 그것도 우리 유민에 의해 건국하고 유민들이 돌봐 줬으나 은혜를 원수로 갚는 행위는 그만 둬야한다. 우리는 일본에 나라를 세워주고 문물을 전해주며 일본을 알뜰하게 보살펴준 어머니 같은 나라이다.
일본에 문명의 길을 열어주고 보살펴준 어버이 같은 가야를 일본이 임나일본부로 둔갑시켜 가야의 식민지인 임나를 다시 왜곡해 학교교재에 재 등재한 것은 수치임을 알아야 한다. 실체가 없는 임나일본부는 허구임은 세계가 다 알고 있다. 일본의 우리에게 저질은 만행도 용납할 수 없는데 다시 잘못을 저지르고 있어서 우리는 옛 망령을 보는 듯 실망스럽다.
지난날 일제는 상고역사와 고대역사서의 인멸을 위해 일본이 만든 조선사35권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 남기고 다 불 살았으나 우리역사는 지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
‘거짓역사를 교재에 싣는다고 역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진실만이 역사다.’ 라는 말을 되짚어주고 싶다. ‘대인은 의(義)를 말해야지 소인같이 이(利)를 말하는 무책임한 말과 행동은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라고 일본의 아베총리에게 외람되나 고언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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