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우리 역사가 자신들보다 짧게 보이려 조작했다. 상고사와 단군사를 절반으로 줄이고 자신들의 역사 1000년을 조작했다. 그 결과 마치 일본이 고대부터 조선을 통치한 것과 같이 왜곡됐고 이를 일본국민과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 민족에 전파하려 했다.
필자는 한·중·일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얼마나 가히 황당한 발언들을 숱하게 접했다. 과연 이들이 한국인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이 역시 무지에서 출발했다. 일본 그리고 중국의 조작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이를 바탕으로 연구했기 때문이라 이해하지만 보다 제대로 연구하길 바라는 마음은 감출 길이 없다.
학문에는 왕도가 없다고 하나 역사는 진실만이 역사다. 반도식민사관자들은 우리고대역사의 자료가 왜 없어졌는지부터 바로 연구하고 우리역사왜곡의 원흉 중 한사람인 이마니시(今西龍)가 던져준 ‘역사는 과학적으로 검증한다’는 말을 신주(神主)같이 믿어선 안된다. 우리 역사를 망가트리는 길이다.
오늘은 반도식민사관이 얼마나 우리민족과 국가의 정신, 민족의 기상(氣象)을 망가트리고 있는지 또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지금 반도식민사관자들이 가르치고 있는 대부분이 일본이 조작하고 왜곡한 역사는 진실이 아니기에 서다.
그런 위서로 가르치고 있는 것은 국가민족을 망가트리고 있음을 알았으면 한다. 이제는 매국매족(賣國賣族)의 짓을 이제 그만 둬야 함을 말하게 된다. 필자는 지금까지 수백의 칼럼을 통해 이를 부분적이나마 지적했지만 중국과 일본의 사서(史書)는 거의가 진실이 아닌 거짓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상고 고대사를 없애는데 혈안(血眼)이 되고 있는 그들을 돕고 있는 역적 같은 일에 동조 하고 있음이다.
오늘은 우리가 대륙의 주인이었고 중국의 역사와 일본의 역사의 태반이 우리역사를 도용하고 있음을 알고 말하라 사서와 유물이 이를 말해주고 있기에 이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한중일의 역사는 과연 어디까지 진실인가
세계의 최고역사의 기록을 불사르고 없어진 우리역사의 사서들은 중국과 일본에 의해서 다 없앴다. 중국은 백제와 고구려를 침략하면서 백제의 비사성이 사고(史庫)를 3개월간을 불 태웠고 고구려는 4개월 불태운 것은 우리역사가 얼마나 장구한 빛나는 역사였음을 말해준다.
일본은 총독부가 발표만도 22만 수천 권이고 그 후 사대부집에 관리를 보내 빌려본다는 조건으로 십여 만권을 다 없애거나 일본 궁내성 도서관에 가져갔고 대마도서고(書庫)에 있던 우리사서도 다 거둬갔다. 우리에게는 일본이 변조한 삼국유사와 삼국유사만을 남기고 다 없앴다.
중국의 사서(史書)는 사마천이 쓴 [사서(史書)], 후한서(後漢書), 위지(魏志)가 대표적인 중국의 3대 사서(史書)다. 한서(漢書)는 서기전 202~서기8년의 역사를 1세기 후반 반고(班固)가 편집한 ‘후한서’는 후한(後漢-서기25~220)의 역사를 5세기 초, 범엽(范曄)가 쓴 것이다.
위지(魏志)는 위(魏220~265)의 역사를 3세기말 진수(陳壽)가 편집한 책인 것이다. ‘사서(史書)’ ‘후한서(後漢書)’는 토씨하나 틀리지 않은 책으로 얼마나 중국역사가 기록할 것이 없었으면 두 책의 토씨하나 틀리지 않았겠는가! 그들의 여사는 기록할 것이 없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일본역사를 제대로 알려면 위서(僞書)가 아닌 진서(眞書)를 보고 말을 해야 한다. 최태영 선생은 고대사를 연구하시며 중국과 일본에 노구를 이끌고 직접 답사하고 많은 사실을 일구어 내었다. 그 사실을 저서에서 글로 전하고 있다.
그 중에는 많은 진서(眞書)도 많으나 지면상 일본 황실에 관한 사실의 문서를 보고 온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것은 일본 야마나시현(山梨縣) 후지시(富士市)에 사는 미야시타 가문(宮下家門)의 보물인 미야시타문서(宮下文書)가 그것이다.
1890년 경 미야시타 문서(宮下文書)는 일본의 비서(秘書)중의 하나인 미야시타 가문(宮下家門)에 소장 된 두루마리로 된 미야시타 문서(宮下文書)를 보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 문서는 백제가 멸망하게 되자 백제후손이 그들의 조상 역사를 기록 한 문서이다.
미야시타 문서(宮下文書)는 진서(眞書)로 일본역사를 말한다.
최태영 선생이 이 문서를 보게 된 경위를 보면 지금은 고인이 되신 영문학자이신 김주현 박사의 친구로 동경대학에 연구실을 갖고 계시던 이병창 박사를 통해 일본의 비서(秘書)중의 하나인 미야시타 가문에 소장 된 두루마리로 된 미야시타(宮下文書)를 보게 된 이야기다.
미야시타 문서(宮下文書)는 미야시타 가문(宮下家門)의 보물로 미야시타 집안에서는 대대로 “이 기록을 보는 자는 눈이 먼다.”는 말로 공개를 절대 금기시 하면서 외양간 지하금고에 대대로 숨겨 두었다가 1200년 만에 최근에 나무함을 짜고 보존해온 귀중한 역사기록문서이다.
이 미야시타 문서(宮下文書)는 일본궁궐 황실(皇室)에서도 알 수 없었던 문서인데 1921년 신황기(神皇紀)라는 책으로 출판해서 필자도 이 책을 보며 이 책이야 말로 진서(眞書)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문서는 내용이 신적(神的)인 것은 없고 매우 합리적이며 대륙(조선)의 일과 일본열도의 일을 구분해서 천황이 된 사실을 서술(敍述)하고 있다. 즉 백제인이 일본에 와서 일본인을 깨우쳐 문화를 전하고 이어서 천황이 됐다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쓰여 있다.
이 책을 보면 지금 일본이 천황가(天皇家)역사를 1천년이나 늘려 왜곡한 것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신황기(神皇紀)]에는 몇 대에서 몇 대까지가 백제 인이 즉위한 일왕(日王)인지 분명히 쓰고 있다.
이 책을 연구한 미와 요시히로(三輪義凞)연구자는 공증인 사무소를 하고 있던 분으로 이 문서를 접하고 경천동지(驚天動地)하는 느낌을 갖고 직업도 팽개치고 30년간을 연구해서 1921년 [신황기(神皇紀-天皇家 7千年の 歷史)]라는 책으로 초판이 발간된 후의 이야기다.
이 책을 보는 당시 신문들은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日本書紀)‘를 뒤집는 진짜 역사서(歷史書)가 나왔다고 대서특필을 했다. 일제시기에는 이 책을 군부가 위서(僞書)몰았다가 1980년 다시 재출판 됐다.
이 책으로 인해 상가야 왕조(上伽倻 王朝)의 존재를 앎은 물론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日本書紀)‘는 진정한 사서(史書)라고 할 수 없는 허구(虛構)일 뿐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 책이 나온 후 일본의 양심적인 학자들은 일본역사의 허구적인 거짓역사를 말하지 않는다. 너무나 일본역사가 신화적으로 포장한 것과는 달리 그 내용이 그다지 신적인 것이 없고 매우 합리적이며 대륙(한국)의 일과 일본열도의 일을 구분해 사실그대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보면 백제인이 일본에 와서 일본인들을 깨우쳐 문화를 전하고이어서 천황이 됐다는 내용이다. 일본이 허구의 천황을 내세운 것과는 달리 몇 대부터 몇 대까지 백제 인이 즉위한 일왕인지 아닌지 시대가 분명히 거짓 없이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 반도식민사관학자들같이 왜곡된 한중일(韓中日)의 왜곡서적만 보고 말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이 책이 나옴으로서 일본학계는 진서(眞書)와 위서(僞書)의 학자로 나뉘어 양심적 학자들은 일본역사가 잘 못 됐음을 말하게 되는 올바른 역사를 말하는 자가 늘고 있다.
상고사가 없고 고대사가 거짓투성인 일본은 이 사마대국이 중국 위(魏)나라에 239년에 조공을 해서 명제(明帝)로부터 친위왜왕(親魏倭王)의 칭호를 받았다고 위지왜인전(魏志倭人傳)에 나와 있다고 일본은 내세우나 국가체제라고는 볼 수 없는 미약한 집단에 불과 했다.
이 시대에 일본은 없었다. 일본의 나라다운 나라는 단군의 73대손인 일본에서 태어난 오진(應神)이 나라를 세워 왜(倭)라 하고 비로소 중앙집권적인 뚜렷한 실존인물인 왜왕 1대가 된다.
일본이라는 국명(國名)을 쓰기 시작한 것도 백제멸망 후의 일로 백제 의자왕의 아들 부여풍장(扶餘豊璋)이 사이메이(齊明)의 뒤를 이어 덴지(天智) 일왕이 되고나서 671년 당(唐)의 승인을 얻어 일본(日本)이라는 국호(國號)를 갖게 됐다는 것은 이미 다뤘다. 그 이전 일본은 없었다.
중국의 사서자체도 거의가 위서(僞書)다
중국의 사서(史書)는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서(史書)], 후한서(後漢書), 위지(魏志)가 대표적인 중국의 3대 사서(史書)다. 한서(漢書)는 전한(前漢)서기전 202~서기8년의 역사를 1세기 후반 반고(班固)가 편집한 것이다.
‘후한서’는 후한(後漢-서기25~220)의 역사를 5세기 초, 범엽(范曄)이 쓴 것이다. 그런데 사마천의 쓴 [사서(史書)]도 사서라 할 수 없을 만큼 거의 그 내용들이 거짓의 위서(僞書)이다.
때문에 일본의 아고기요히코(吾鄕淸彦)같은 학자는 사서(史書)는 조선의 고대사(단군조선)를 교묘히 꾸미고 짜 맞춘 위서라고 했다. 이 사서(史書)에 우리의 단군조선의 47대의 왕의실존역사를 철저히 감추고 외면해 그 실체를 볼 수가 없다.
후한서(後漢書)서 역시 위서로 사서(史書)를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옮겨 써서 위서임은 역사를 연구하는 자이면 다 알 고 있다. 이러한 일고의 가치가 없는 책들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은 역사 무지를 고백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얼마나 중국역사가 기록할 것이 없었으면 두 책이 토씨하나 틀리지 않았겠는가! 그들의 여사는 기록할 것이 없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때문에 역사 강의를 하며 양심에 가책을 받은 북경경화학교 역사교사인 위안 텅페이(袁騰飛)가 “중국역사는 5%도 안 된다”는 말은 옳은 말이다.
또한 위지(魏志)는 위(魏220~265)의 역사를 3세기말 진수(陳壽)가 편집한 책이다. 중국도 상고사가 없고 고대사가 보잘 것 없어서 고대부터 조작왜곡역사를 일삼고 있는데 겨우46년의 위(魏)나라가 중국역사3대사서(史書)가 될 수 없다. 거짓조작역사는 역사로 볼 수 없는 것이다.
‘사서(史書)’, 후한서(後漢書)는 토씨하나 틀리지 않은 책으로 얼마나 중국역사가 기록할 것이 없었으면 두 책이 토씨하나 틀리지 않았겠는가! 그들의 여사는 기록할 것이 없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중국은 역시 상고사가 없고 고대사가 보잘 것 없어서 조작 왜곡역사를 일삼고 있으나 거짓의 조작한 왜곡된 역사는 역사로 볼 수없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은 역사왜곡을 위해서 지도를 옮겨 그리고 지명을 고치며 동북으로 이동하고 있다. 따라서 중일의 역사는 믿을 것이 못된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再考證 韓國思想의 新發見’.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국가형성의 사회사‘.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智勝, ’우리上古史‘-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황순종,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사람과 북방주민들’. 홍윤기,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南帝 ‘命理속의 哲學’.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二十一世紀出版社集團, ‘山海經’. 大連出版社, ‘行走 大黑山’.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石井進外, ‘詳說日本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 ‘大王から天皇へ’. 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の成立’. 上井久義, ‘日本古代の親族と祭祀’. Georges Duby : L'HISTOIRE CONTINUE, 松村剛 譯 ‘歷史は續く’. 坂本泰良,‘明治維新から現代へ’. 劉泳,海燕,‘赤蜂博物館’. ‘各國別 [世界史の整理] 三省堂發行’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 世界史史料集’,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石井進, 笠原一男, 兒玉幸多, 笹山晴生, ‘詳說日本史’. 稻垣泰彦, 川村二郞, 村井益男, 甘粕 健 共著 ‘日本史’. 西東社出版部編 ‘日本の古墳, 古代遺跡’.외 다수의 서책(書冊)을 참조하고, 본문을 그대로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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