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재판서 드러난 한국의 명치법체계 답습

입력 2017-10-03 20:4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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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우리나라는 조국광복이 된지 73년이 지나면서도 형사법도 일제(日帝)시대의 규문주의(糾問主義)로 부터 아직도 개혁되지 않은 것은 형사소송에 있어서 전후 인권의 국제적 보호를 외면하는 소치이다. 이는 하루 속히 개혁이 돼야 함에도 그대로 있다.
 
이미 우리에게 많은 고통을 줬던 일본은 패전되자마자 1946년 인권의 침해를 받고 있는 형사법의 잘못 된 명치헌법체제의 치죄법(治罪法)을 고친지 71년이 지났는데 우리는 그대로 아직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는 입법부와 위정자의 태만에서임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법이 얼마나 낡고 시대에 뒤진 버려야 할 법임을 깨닫지 못하고들 있다 지금 진행 중인 이재용 구형을 보며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이 얼마나 뒤지고 있고 인권을 침해하고 있음에도 그대로 보고만 있는 것은 참으로 한심하고 안타까운 일이기에 붓을 들게 된다.
 
이것은 학계의 연구부족과 입법부의 태만함과 법조계의 법집행과도 무관치 않음에서 하루속히 형사법의 개혁과 법 집행과정의 잘못을 시정하여 개혁이 시급함에도 일제(日帝)시대의 버려야 치죄법을 답습하고 있음에 문제를 제기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형사재판은 무엇 때문에 있는 것인가! 이는 국가적 제도 및 구조와 기능을 관통(貫通)해서 규정하는 목적 내지 이념은 어떠한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한 가장 소박한 답은 형사절차는 범죄를 범한 자를 처벌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라는 것이 답이다.
 
이 답은 우리 국민의 일상적 체험에 합치하는 상식적인 것이며 한편 타당한 것인 양 보인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이 답은 법인의 처벌을 위해서 왜 형사재판을 중심으로 하는 형사절차라는 것이 필요한 것인가의 점에 관해서 해명의 실마리를 용의하고 있지 않고 있다.
 
형사절차가 단지 범인을 처벌해야 한다는 기능(처벌기능)을 할 뿐만 아니라 범인이 아닌 자를 처벌해서는 아니 되는 사람을 형벌로부터 보호한다는 기능(불 처벌기능)을 커버하고 있지 못 하고 있다.
 
또한 이 답(答)은 형사절차에 있어서 근대 이후 피의자, 피고인의 묵비권을 시작으로 하는 방어권이 기본적 인권으로서 매우 중요시돼 피의자 피고인을 절차의 주체로 하는 당사자주의 적 절차구조가 취해야 한다는 형사절차의 특수성을 커버 할 수 없다.
 
형사절차의 목적, 이념을 범인처벌로서 파악하는 것은 일면적(一面的)으로는 불충분한 것을 알 수 있다. 더욱이 개괄적(槪括的)으로 말한다면 근대 이전 절대주의시대에 있어서는 형사절차는 형벌권의 확정, 실현을 목적으로 해서 범인필벌(必罰)의 이념 하에 범인처벌의 기능을 잘 수행하는 규문적(糾問的)인 절차구조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전후 이런 규문주의적(糾問主義的)시대는 지났다. 우리는 너무 법적추이를 모르기에 이에 대한 고찰을 생각하게 된다. 오늘은 이에 관한 역사적 흐름을 고찰해서 생각해보겠다.
 
규문주의 적(糾問主義的)역사시대는 지났다
 
근대이후에 있어서도 유럽대륙을 중심으로 이러한 생각은 매우 뿌리 깊게 유지해 왔다고 해도 좋다. 역사적으로 보면 원래 규문절차(糾問節次)는 로마제정기(帝政期)인 중세에 그 맹아(萌芽)가 보여 지나 5세기말 세워진 프랑크왕국에 의해서 왕권의 강화에 따라 [프랑크규문절차(糾問節次)라 불러지는 절차가 발달 했다.
 
그 후 13세기경부터 규문절차(糾問節次)는 교회법에 있어서 이상한 발달을 거쳐 이단자 금압(異端者禁壓)을 위해 치열한 종교재판의 절차적 지주(支柱)가 될 뿐만 아니라 이태리, 독일, 프랑스를 위시해서 유럽 전토에서 세속국가의 형사절차로서 채용됐다.
 
그 전형적인 것이 1532년 가로리나 법전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거기에 따르면 직권에 의한 절치개시가 인정돼 비공개, 서면절차의 심리가 인정되고 자백이 2명의 목격증인이 없으면 유죄로 볼 수 없다는 소위 법정증거주의가 취해져 자백을 위한 고문이 허용 됐다.
 
이러한 규문절차(糾問節次)는 절대 왕정을 주축으로 하는 국가 권력의 신장(伸長), 강대 화(强大化)에 따른 형벌권의 강화와 형사절차의 일정의 합리화라는 점에서 일정의 역사적 의의를 갖는 것이었으나 그 비인도적성격은 몬테스큐 등의 근대계몽사상 가들에게 격렬한 비판됐다.
 
그래서 1789년 프랑스 인권선언은 그 중에서 ‘죄형법정주의’를 취할 것을 명백히 함과 동시에 그 누구도 법률의 규정에 의하지 않으면 소추(訴追), 체포, 구금을 할 수 없다고 했다.(제7조).
 
또 ‘모든 사람은 범죄자로 선고될 때 까지는 무죄로 추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체포가 불가결(不可缺)이라 판정 돼도 그 신병(身柄)을 확실히 하기 위해 필요가 없는 모든 강제 처분은 법률에 의해 준엄하게 억압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제9조)’고 선언 했다.
 
이러한 계몽사상은 형사절차 법정주의와 무죄추정의 원칙과를 근대 형사절차에 있어서 대 원칙으로서 조정(措定)했으며 이 원칙에 서서 피의자, 피고인을 절차의 객체(규문糾問)의 대상(對象)으로 할 뿐 아니라 절차상의 제 권리를 절치상의 권리를 갖는 주체(당사자)로서 설정하는 근대적 자유주의적인 당사자주의 적 형사절차의 구축이 시도(試圖) 됐다.
 
예컨대 프랑스에서는 ‘인권선언’ 직후에 제정된 1791년9월의 법(데그레)는 위의 원칙이 비교적 좋게 관철되고 있는 영국의형사절차를 모방하면서 피해자 및 공중(公衆)에 의한 소추주의(訴追主義), 공개주의, 구두변론주의 자유심증주의, 배심제, 등을 채용했다.
프랑스 혁명정신 후퇴한 법 개정해서 선진국 됬다.
 
한편 이러한 자유주의적 , 당사자주의 적 형사정책개혁의 움직임은 프랑스 형명의 반동적 혼란에 수반해서 후퇴한 규문절차(糾問節次)에 역행하는 경향을 보여 검찰제도의 설립이나 예심제도의 부활이 행해졌다.
 
그래서 이 위의 입장에 서서 1808년에 프랑스 ‘치죄법(治罪法)’이 제정 됐다. 이 법에 의해서 확립된 프랑스의 형사절차는 공판단계에 있어서는 공개, 구두(口頭)의 당사자주의(탄핵주의) 형식을 취해 무죄의 추정원칙도 일단은 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에 앞서서 원칙수사 및 예심의 단계(공판 전 단계)에 있어서는 비밀, 서면, 규문의 절차가 취해져서 무죄추정원칙은 사실상 무시되고 있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예심을 중심으로 하는 규문주의적(糾問主義的)공판절차 속에 점하는 비중과 중요성은 결정적이라 말해도 좋을 정도였다.
 
왜냐 하면 수사의 결과와 스스로 행한 심문의 결과에 기(基)해서 예심판사가 작성한 예심조서는 공판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증거가 됐다. 따라서 공판 전 절차(예심)의존성이 매우 강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해서 프랑스 ‘치죄법’ 하에서는 형사절차는 규문적인 공판 전(예심)절차와 탄핵적인 공판 절차로부터 성립하고 있어서 그 의미에서 반규문적 반 탄핵적이라고 평해도 좋은 것이었으나 그것뿐만 아니라 공판절차의 있어서도 일단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기해서 피고인의 방어권을 상당히 인정하는 당사자주의 적인 절차구조가 취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공판법원은 실체적 실현 발견과 범인 필벌에 향해서 절차 면에서도 추행(追行)면에서도 실체면(實體面)에서도 당사자의 주장에 구속 되지 않은 자유재량권(自由裁量權)을 상당히 넓게 주어지고 있었다.
 
그 의미에서 공판 절차도 규문 적 직권주의 적 성격이 상당히 강한 것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절충적인 성격과 절차구조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프랑스 치죄법의 형사절차는 진보적인 것에서 자유주의적 성격이 강한 것이었기 때문에 개혁된 형사절차로서 유럽 전토에 보급해 각국이 동종(同種)의 유럽대륙형 형사절차의 모태가 됐다.
 
이것을 일본이 1880년(明治)13년)에 제정된 ‘치죄법(治罪法)’도 프랑스 치죄 법을 모델로 만들어 진 것이다. 그 후 1890년(明治23년)에 구구(舊舊) 형사소송법이 제정되고 1922년(大正11년)에 구(舊) 형사소송법이 각각 제정됐다.
 
그 후 프랑스 치죄법의 영향을, 또 후의 독일형사소송법의 영향을 각기 강하게 받았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기본적으로는 개혁된 형사절차의 성격을 기본적 구조를 가진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식민치하의 치죄법을 아직도 전수돼서 집행 하고 있는 실정이다.
개혁된 형사절차의 목적, 기능상황 한국은 외면
 
선진구의 개혁된 형사절차는 무죄의 추정을 시작으로 하는 피의자, 피고인의 형사절차상의 인권의 원칙화(原則化)와 영미류(英美流)의 당사자주의적 절차 구조의 도입과에 의해 규문절차의 자유주의적 개혁을 실현하려는 움직임과 규문적절차 실현을 유지해서 온존(溫存)하려고 하는 움직임과의 타협의 결과로서 형성된 것이다.
 
이것은 인권보장적 탄핵적요소와 범인 필벌적 규문적요소와의 대립이라는 모순적 계기를 낳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모순적 계기를 낳는 형사절차를 그 어느 것을 우위성에 있어서 통일해서 파악 할 것인가가 이론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19세기 중엽 독일에 있어서 형사절차의 자유주의화, 탄핵주의화를 지향하는 학설 과 이에 대해 형사적 절차의 규문적본질을 주장해 형사절차의 목적, 이념, 기능을 형벌권의 실현, 범인필벌, 범인처벌에 요구되는 것이 주장 됐다.
 
그러나 독일제국의 국가주의우위, 자유주의 열위(劣位)의 일반적 상황의 속에서 후자가 19세기 말부터 20세기에 걸쳐서 형사 사법론(司法論)의 중심적 조류(潮流)를 형성했다.
 
그 뿐만 아니라 이러한 생각은 바이말기에 있어서도 제2차 대전 후에 있어서도 깊은 영향을 주어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개혁된 형사절차’에 내재하는 모순적 계기를 국가권력 측으로부터 일면(一面)으로 파악하고 있는 점으로서 대체로 비판을 면 할 수 없다.
 
그것은 특히 형사절차상의 인권이 강조돼 사법의 인권보장기능이 강조되는 시대와 나라에 있어서는 그대로 유지할 수없는 것은 당연 한 것이다. 이 점은 우리나라에서는 지금도 검토의 대상도 되지 않고 일제의 방식대로만 가고 있음은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은 명치헌법체제하의 30년대에 형사법교수(小野淸一郞)는 검토하고 있었다. 즉 범인처벌의 원칙으로부터 국가소추주의, 직권주의, 자유심증주의, 구두주의, 기소편의주의가 요구되고 있음을 역설하고 있었다.
 
또 한편 개인적 목적보호의 목적으로부터 소송절차, 불고불리(不告不理)의 원칙, 변론주의, 당사자대등주의, 구두주의, 공개주의, 강제처분제한 등이 요구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경합해서 모순되는 두 개의 목적을 조화해야 할 [정의의 원리]를 말하고 있었다. 그 원리는 국권주의와 개인주의와는 영원히 상항(相抗)하는 두 개의 계기이며 그 하나를 가지고서 절대정의를 위한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형사소송법 강의]有斐閣 1933년 全訂 第三版
 
요는 구체적인 사회 및 문화상태에 따라 그 좋은 점을 얻을 것이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국권주의와 개인주의와를 초극(超克)하는 문화공동태(文化共同態)를 이상으로 해서 그것도 현실 사회적 지반(地盤)에 따른 정의를 지향할 것을 말하고 있었다.
 
제2차 대전 후의 변화 없는 한국법 제정 서둘러야
 
제2차 대전 후, 반 파시즘(Fascism)의 인권사상과 민주주의 사상이 세계적으로 강조 강화 돼 그 일환(一環)으로서 형사절차상의 인권의 중요성이 새롭게 인식되고 강조됐다.
 
이러한 세계적 풍조를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은 ‘세계 인권선언’이며 그 속에서 고문의 금지, 자의적인 체포의 금지 독립해 공평한 법원에 의한 공정 공개 심리의 보장, 무죄추정의 원칙, 변호권의 보장 등의 잘 말해주고 있다.
 
이리해 세계는 인권의 국제적 보호가 잘 되고 있다. 3국 동맹을 맺고 전쟁으로 달려간 독일은 나치스(Nazis)적 형사정책 폐기와 일본의 형사법을 4천여조문을 전후 개정했다.
 
파시즘(Fascism)의 이태리 역시 제2차 세계대전 후 법제의 변화가 180도로 바꿔 인권을 존중하는 법제로 바꿔서 인권을 우선에 두고 현행형소법의 제정해 새 출발을 하고 있다.
 
그 결과 헌법들은 적정절차, 영장주의, 피구금자의 변호권, 구금이유 개시. 고문의 금지, 신속 공개재판 증인심문 권, 국선변호인선임권, 묵비권, 자백법칙(不任意自白排除), 보강법칙(자백만을 유죄로 해서는 아니 됨), 이중(二重)의 위험 등 형사절차상의 인권을 두텁게 보장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따라서 형사소송법은 이러한 규정을 받아, 위의 변화된 내용을 더해서 새로 예심의 폐지와 피의자에 변호선임권을 부여해 영장주의를 강화하고 기소장 하나주의와 소인제도(訴因制度)를 도입해 전문법칙(傳聞法則), 보강법칙 등에 관해서 상세한 규정을 두어서 증거법을 정비해 필요적 변호의 법위를 확장하는 등 형사절차의 당사자주의 적 구조를 강화하고 있다.
 
이에 반해서 우리는 일제의 명치헌법체제의 법인 치죄법(治罪法)을 그대로 운영하며 피의자의 인권의 침해 등 세계의 변화와는 달리 아무런 조치를 하고 있지 않고 있다.
 
우리도 이제는 제외선진국의 헌법에서 보장된 형사절차상의 인권을 절차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당연히 필요한 규정, 예컨대 압류의 필요성에 관한 사법적 억제, 피의자 보석, 피의자의 국선 변호인 선임권, 증거개시, 불기소의 억제, 위법수집증거의 배제 등 불 완전한 법제를 현대 법에 맞게 새로 제정이 요구 되고 있다. 위정자의 분발을 기대해 진다.
 
전후 세계는 반성과 그에 합당한 법제를 제정해 국민을 보호 하고 있음을 본다. 우리나라는 정권만 잡으면 자기의 잘못은 덮고 상대를 벌 하려는 것은 문제이다. 지금은 내손이 더러우면 상대의 손이 더럽다고 말 할 수 없는 Clean hand의 원리도 음미할 때라 사료 된다. (이상은 이을형 ‘인권의 국제적 보호’ 논문과 다수 형사법을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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