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 날조…후세가 지키지 못한 위대한 역사

입력 2017-10-15 01: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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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우리역사에 열등감을 갖은 중국·일본은 우리역사를 폄하하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이어 왔다. 그들의 역사책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들은 이를 위해 전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학자들은 중국의 고전을 많이 인용하고 있는데 그 인용은 그 책의 나온 배경을 알고 제대로 인용해야 한다. 중국이 내세우는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서(史書)도 믿을 수 없는 책으로 우리 고대사를 교묘하게 엮은 것이라는 것이 일본사학자 아고기요히코(吾鄕淸彦)는 말한다.
 
중국제1의 역사서라는 사서(史書)는 우리고대사를 거꾸로 교묘하게 짜 맞춘 것으로 그 내용이 허구라는 것이다. 이 사서에는 우리고조선의 단군의 기록도 없고 의도적으로 지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대부터 중국은 우리역사를 지우려고 애써 온 것을 잘 알 수 있다.
 
제나라에 사료가 없는 중국은 우리나라의 서책(書冊)을 노리고 고구려 제11대 동천왕18년 위(魏)나라 관구검이 쳐들어와서 일시 수도 환도성이 함락되고 임금이 잠시 피난간 적이 있었다. 이때도 고구려의 서책을 노리고 쳐들어왔던 것이다. 그때 저들은 많은 책을 싣고 물러갔다.
 
이때 고구려에 침입한 것은 책을 얻기 위해서의 전쟁이었기에 그들이 노린 책을 잔뜩 가지고 간 것이었다. 그리고 훔쳐간 책을 저본(底本)으로 해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를 펴내고 거기에 처음으로 ‘동이전(東夷傳)’이 들어가게 됐다.
 
그리고 범엽(范曄)은 진수(陳壽)보다 백여 년 후에 태어나 남북조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 진수(陳壽)의 삼국지를 바탕으로 동이열전(東夷列傳)을 지어서 후한서(後漢書)에 다시 옮겼기 때문에 진수(陳壽)가 위의 책의 효시(嚆矢)가 된다.
 
그런데 동이전(東夷傳), 후한서(後漢書)의 동이열전(東夷列傳)을 한중일 학자들이 많이 인용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역사를 그르치게 하는 원흉이다. 중일은 사료가 없는 나라이기에 고대부터 우리사서를 도둑질해서 역사서를 펴내고 있기 때문에 그 사서들은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중국과 일본의 사서들은 흠처 간 우리사서를 기조로 해서 역사를 쓴 것이어서 그들의 역사서의 대부분이 허구로 꾸며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자들 중에는 그 위서(僞書)를 인용해 다시허구의 논리를 펴는 것을 보노라면 마음아픔을 금 할 수가 없다.
 
필자역시 이런 책을 인용하는 때가 많은데 너무 조심스럽고 그 책이 나온 배경을 알고 나면 그 사서(史書)가 거의 믿을 것이 못되는 것임에서 다시 고쳐 쓰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중국이 내세운 사서(史書), 삼국지(三國志), 한서(漢書) 위지(魏志)등이 중국이 내세운 고전(古典)이나 허구투성의 책이다. 오늘은 중국과 일본의 서책(書冊)이 우리역사를 도둑질해서 나온 위서(僞書)이기에 그 인용은 신중을 기해야하기에 이에 관해 그 실체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 유민, 일본을 장악했다
 
일본은 역사서가 나오기 전의 모습은 중국역사서등에 아주 몇 자의 기술이 나올 정도로 보잘 것이 없다.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이 ‘한서지리지(漢書地理志)’로서 겨우 20자(字) 정도라 한다.
 
‘한서지리지(漢書地理志)’는 서기 전1세기경 한(漢)나라가 만든 역사서(歷史書)이다. 이 역사서에 처음으로 일본이 등장한다. 한서지리지에는 많은 소국으로 나눠져 있었다고 하고 있다.
 
일본의 주장하는 내용은 당시 중국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즉 ‘낙랑부근의 바다 저쪽에 왜인이 있다. 왜인은 때때로 한나라에 와서 황제에게 알현(謁見)을 바랐다’는 것이다.
 
기원 전 1세기경에 몇 개의 부족으로 나눠져 있던 상황을 기록하고 있고 또 후한시대의 역사서에는 중국의 황제 광무제(光武帝)가 주었다는 금인(金印)에 관한 기술이 있는데 일본 후쿠오카겡(福岡縣)의 지가도(志賀島)로부터 실물이 출토해 기술내용이 증명됐다고 하고 있으나 믿을 것이 못되는 것이다.
 
일본이 소국가로 처음 나온 기록은 위지왜인전(魏志倭人傳)으로 사마대국(邪馬臺國)을 말할 경우 반드시 말할 정도로 등장하는 사료(史料)이다. 이 위지왜인전(魏志倭人傳)도 정식명칭이 아니다. 바로 말한다면 삼국지(三國志)속의 위서동이전(魏書東夷傳)의 왜인조(倭人條)를 말한다.
 
여기에서는 3세기경 당시 일본의 상황을 기록 하고 있다. 즉 여왕(女王) 히미고(卑弥呼)가 무속적(巫俗的)인 존재였다는 것과 여러 부족이 그 산하에서 따르고 있다고 기술 하고 중국으로부터 사마대국(邪馬臺國=이도국(伊都國)까지의 위치 등이 쓰여 있다.
 
이 사마대국(邪馬臺國)=이도국(伊都國)도 기원전 1세기 가야인(伽倻人)들이 배를 타고 일본에 가서 건설한 나라다. 규수(九州) 후쿠오카(福岡)에 당시 한국무녀(韓國巫女) 히미고(卑弥呼)가 구주(九州)의 30여 부족을 통일하고 위(魏)나라에 239년에 조공을 해서 명제(明帝)로부터 친위왜왕(親魏倭王)의 칭호를 받았다고 위지왜인전(魏志倭人傳)에 나와 있다.
 
당시 일본은 없었던 셈이다. 이 사마대국(邪馬臺國)=이도국(伊都國)이라 알려진 일본의 최초의 나라라고 보고 있는데 이 소국가도 일본인이 세운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유민이 세운 것이다.
 
조선의 강대한 제국 숨기고 신화로 둔갑시킨 中日
 
19세기 일본은 한국을 침략하면서 그 옛날 우리가 강대하고 광활 한 독립국가가 있었다는 사실은 어떻게 해서든지 잊도록 해야만 조선통치가 수월하다는 데서 우리의 상고역사와 고대역사를 모두 실재가 아닌 신화(神話)라는 사상을 퍼트렸다는 사실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그들은 우리조선이 유구한 역사기록을 말살하기 위해 우리나라역사서를 다 없애기 위해 여기에 전력을 쏟았다. 문자가 생긴 이후 기록은 전부 없앤다. 당은 백제와 고구려를 침입하고 성을 점령하자마자 사고(史庫)부터 불살아 모든 사서를 남김없이 다 불태웠다.
 
중국은 관구검처럼 전쟁을 통해서 서책을 훔치기도 했지만 책을 가져가지 못하면 불태워 서책(書冊)을 없앴다. 필자가 작년 다녀온 사비성(泗泌城)의 사고(史庫)가 그렇게 사라졌다.
 
당나라 고종은 백제와 고구려의 성을 점령하면 사고(史庫)부터 불태워라 침략군사령관인 설인귀(薛仁貴)에게 ‘입성하거든 먼저 사고(史庫)를 없애라’는 밀명(密命)을 그대로 이행했다.
 
그래서 사비성(泗泌城) 사고(史庫)가 3개월이나 불탔다. 10년 후 고구려도 당 고종의 특명을 그대로 이행 했는데 4개월이나 불탔다. 백제와 고구려의 사고의 책이 7개월이나 불탄 것이다.
 
이당시의 책은 비단에 쓴 것이 더 많고 가죽오리로 묶은 죽간(竹簡)과 목간(木簡)이 주종을 이룬 것으로서 알마나 많은 사료(史料)를 없앤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우리역사를 없애는데 그 목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을 지승(智勝)스님은 그의 저서 [우리 上古史 기행] 97~98면에서 이 사실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
 
일제(日帝)도 우리사료 다 없앴다
 
이 미 밝힌바와 같이 일제(日帝)는 우리 사서(史書) 22만권을 소각하고 다시 사대부(士大夫)들에게 책을 빌려달라고 하며 거두 들여서 10만권 이상을 다 거둬30만권이나 불살아 없앴다.
 
일제는 거둬들인 사서(史書)에서 우리의 사서들은 다 불태우고 [삼국유사(三國遺事)]와 [삼국사기(三國史記)]만 남기고 이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도 가져다가 다시 변조하고 일본이 일찍부터 조선을 지배했다는 거짓말을 사실처럼 날조해 왜곡시켰다.
 
그리해 실재(實在)하지도 않은 반도역사를 ‘기자조선(箕子朝鮮)’이 한반도에 세웠다느니 이마니시 류(今西 龍)같은 우리역사왜곡의 앞잡이는 “한국사는 신라부터 시작이라”는 당치도 않은 설을 ‘실증주의사학’이라고 호도 했다.
 
아울러 총독부에서는 고등경찰에도 역사말살을 위한 지침을 내린다. 그 내용은 천인공노(天人共怒)할 내용이었다. 즉 ‘조선인들의 자신의 역사와 전통을 알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다.
 
조선민족의 혼과 조선민족의 문화를 상실하게 하라, 그들의 조상과 선인(鮮人)들의 무능과 악행을 들추어내되 그것을 과장해 조선인 후손들에게 가르쳐라. 조선인 청소년들의 부모 조상들을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해 그것이 기풍이 되게 하라.‘
 
‘그렇게 함으로서 조선인청소년들이 자국의 모든 인물과 사적에 대해 부정적인 지식을 갖게 하고, 반드시 실망과 허무감에 빠지게 하라. 그럴 때 일본의 사적(史蹟) 일본의 문화, 일본의 위대한 인물들을 소개하면 동화의 효과가 지대할 것이다.
 
이것이 제국일본이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만드는 요결인 것이다.‘ 이런 역사를 반도식민사관의 학노(學奴)들은 지금도 가르치고 있다. 국가와 민족에게 용서받을 수 없는 대죄를 짓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기술 제대로 알고 말해야
 
중국과 일본의 역사기술(歷史記述)은 우리의 상상(想像)을 초월한다. 공자(孔子)는 중국에 영향을 주는 책을 저술했다. 예기(禮記), 춘추(春秋), 주역(周易), 서경(書經), 시경(詩經),등이 있다.
 
그런데 공자는 동이족이면서 노나라에 태어났다는데서 그는 그답지 않게 치욕의 저술수법의 위중국휘치(爲中國諱恥)의 수법을 창안한 한다. 즉, 중국이 타민족에게 패배한 사실을 삭제하고 도리어 승리로 위조하는 것이었다.
 
후대 중국사는 공자의 수법을 본받아 위조를 기본으로 중국인 중심의 역사기술을 정립했는데 그것이 바로 휘치필법(諱恥筆法)이다. 다시 말해서 한족(漢族)과 중원나라의 수치스러운 역사는 숨긴다는 (爲漢中國諱恥)고 한족(漢族)과 중원의 나라는 높이고 외국은 깎아내린다(矜炒而陋夷狄)는 것이다.
 
또 한편 한족(漢族)에 관한 국내사는 과대(誇大)하게 쓰고 다른 민족의 역사는 작게 쓴다(祥內略外)는 원칙하에 그들은 우리한민족(韓民族)의 역사를 철저하게 깎아내렸고 또 다 지웠다.
 
그리고 중국은 나아가 엄연히 있는 역사를 아예 뭉개거나 축소하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역사를 자기들 것으로 도둑질까지 하는 대담한 행위를 해 왔다. 그래서 중국역사의 주역들은 거의 한민족(韓民族)이었지만 중국의 한족(漢族)은 그것을 자기들 조상으로 다 바꿨다.
 
중국은 32회나 답사한 김세환 선생은 중국을 두루 답사하며 [고조선역사 유적지 답사기]에 중국의 삼황오제가 다 우리 한민족(韓民族)이라 웃지 못 할 상황을 그 저서에 사진으로 남겼다.
 
탁록 지구에 삼조당(三祖堂)이라는 거대한 사당(祠堂)을 지어놓고 염제(炎帝)와 황제(黃帝)가 화하족(華夏族)의 원수(怨讐)로 여겨오던 배달국의 14대 자오지천황(慈烏支天黃)인 치우제(蚩尤帝)까지 화하족의 삼조(三祖)라고 하고 있다. 참으로 못 말리는 치졸한 짓을 하고 있었다.
 
일본 역시 역사가 짧고 고대역사가 빈약하기 그지없는 나라이기에 일본역사를 기술하는 방법 또한 도둑질과 변조행위를 일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본의 고서(古書)라는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日本書紀)는 허구 투성임을 알 수 있다.
 
이미 봐 온 바대로 일본 역사기술 원칙도 승리는 과장(誇張)하고 패배는 고쳐서 개서(改書)하고 망명(亡命)은 서술(敍述)하지 않는다는 기본원칙으로 삼아 허장성세(虛張聲勢)를 벌여 왔다. 이러한 수법은 중국과 일본이 행해왔고 지금도 끝이지 않고 역사조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再考證 韓國思想의 新發見’.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국가형성의 사회사‘.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智勝, ’우리上古史‘-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황순종,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사람과 북방주민들’. 홍윤기,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南帝 ‘命理속의 哲學’.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二十一世紀出版社集團, ‘山海經’. 大連出版社, ‘行走 大黑山’.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石井進外, ‘詳說日本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 ‘大王から天皇へ’. 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の成立’. 上井久義, ‘日本古代の親族と祭祀’. Georges Duby : L'HISTOIRE CONTINUE, 松村剛 譯 ‘歷史は續く’. 坂本泰良,‘明治維新から現代へ’. 劉泳,海燕,‘赤蜂博物館’. ‘各國別 [世界史の整理] 三省堂發行’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 世界史史料集’,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石井進, 笠原一男, 兒玉幸多, 笹山晴生, ‘詳說日本史’. 稻垣泰彦, 川村二郞, 村井益男, 甘粕 健 共著 ‘日本史’. 西東社出版部編 ‘日本の古墳, 古代遺跡’.외 다수의 서책(書冊)을 참조하고, 본문을 그대로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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