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학자들의 서책과 연구발표를 접할 때면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움 또한 큰 것이 사실이다. 역사고증이 서적을 중점적으로 다뤄지고 있어서다. 사서의 검증과 고증을 위해서 서물(書物)의 전거(典據)도 중요하나 이에 못지않게 유적이나 유물의 발굴과 수복(修復)·보존과 다른 연구자를 위해서 측량과 기록연구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그 유적 유물이 어느 시대인 것인지와 어떠한 목적으로 어떻게 쓰여 진 것인가 등 다각도로 연구도 제대로 되고 있는 가를 고찰을 하고 말을 해야 한다. 우리는 서적 전거(典據)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함에도 여기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본다.
상고시대에는 문자가 없기에서 이시대의 역사는 주로 인류의 궤적(軌跡)과 유적, 유물로부터 추측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때문에 유적유물이 말하는 메시지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하겠다. 이는 고대사 접근이 제대로 되지 않은 시대이기에 유적과 유물은 그 시대역사를 그 유적에서 역사가 드러나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하고 이를 중시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의 상고사와 고대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유적과 고적(古跡)은 무엇이며 유적과 유물이 발견되면 중국과 같이 숨길 것 없이 이에 관심과 연구도 충실하게 제대로 연구도 했으면 한다. 또한 유적의 연대는 어떻게 해서 측정 할 것이며 최첨단기술은 어디까지 진실로 볼 것인가와 유적 유물의 수복(修復)작업은 외국과 비교해서 어떻게 하고 있는가에 관심도 모아져야 한다.
종래 유적은 발굴조사가 끝난 후 그 보존을 최우선으로 해서 다시 묻는 경우가 많았으나 지금은 유구(遺構)의 보존과학이 비약적으로 향상해 현재에서는 유적을 복원해서 공개할 움직임은 어느 나라에서도 활발하다. 우리도 잘하고 있다고 보나 더욱 분발이 요구되고 있다. 필자도 작년 인류 5대문명의 처음 발상지인 유적지로서 주목을 끈 요하문명의 그 곳에서 우리선조들이 일으킨 유적지를 답사하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참으로 흥분을 감출길이 없었다.
그런데 이 유적의 역사적 위치를 우리상고시대의 유적임에도 중국은 자기들 것이라 하고 있었다. 기가 찰 노릇이다. 그런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발굴 작업은 우리에게 숨겨 했으나 유적의 보존과 정비는 잘해줘서 고마운 마음 또한 있었다. 이 유적 유물들은 우리의 것이기에 서다.
유적 발굴 작업을 공개 하지 않았던 것을 공개함과 함께 공원화(公園化)라는 방식을 채용해서 중국이 거대한 유적과 유물을 제대로 우리 배달국시대의 유적을 보존, 정비한 점에 감사했다. 오늘은 중국과 일본은 상고사가 없음에서 우리유적 유물을 내세우며 자기들 것이라 하나 고대사가 상반은 똑같이 우리의 고대역사인데 고증을 위해 유적 유물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은 어디 까지 인가!
중국과 일본의 역사기록은 처음부터 거짓임을 알 수 있다. 필자가 60년대 유학 시는 일본어를 공부하며 먼저 일본역사부터 봤다. 그런데 그들 중학교교제에 신라 백제가 일본을 개화시키고 있음에도 마치 신라 백제가 일본의 속국인양 버젓이 가르치고 있었다.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일본은 우리유민이 가서 일본을 깨우치고 그 주인공들이 우리유민인데도 그 사실을 숨기고 역사를 거꾸로 조작하고 왜곡한 것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기억이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이는 너무 기가차고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그 의도가 어디에 있든 일본의 고대사상반은 우리역사요 상고사도 없어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데도 그들은 열등의식을 갖지 않도록 국민에게 허구(虛構)의 역사를 조작하고 가르치며 긍지와 정신적 목표를 설정하고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중국의 사서(史書)와 일본의 위서(僞書)들을 내세워 전거(典據)하며 학자연하는 역사를 하는 자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역사를 제대로 연구하고 말을 했으면 하는 것이다. 중국은 상고사 없는 것은 일본과 같으나 그들은 역사를 왜곡하고 조작하기 위해서 우리역사의 흔적을 지우려고 고대지도며 역사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을 제대로 알고 말을 했으면 한다.
이러지 않으면 중국과 일본의 술수(術數)에 넘어가기 쉽다. 이들의 역사왜곡을 끝이게 하기위해서는 고고학도 유물 유적을 제대로 연구해야 함을 통감한다. 고고학은 역사학의 하나이다. 인류의 과거에 문화흔적이 있는 유적이나 유구(遺構)와 유물 등 물질적 자료를 독자적으로 분류분석 등을 행해 명백히 해가는 과거의 인류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인데 우리는 이를 소홀히 하며 중국과 일본의 위서(僞書) 위주의 연구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은 반성 할 점이라 본다.
고고학은 종합과학이다. 즉 고고학이란 것은 장구한 세월의 간토(間土) 속에 잠자고 있었던 인류의 활동 궤적(軌跡)을 탐구하고 이를 탐출(探出)하는 학문이다. 예컨대 돌이 출토했다고 하자. 거기에 어떠한 인위적인 가공(加工)이 흔적이 인정된다든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두어진 경우는 예외다.
인류역사 속에서 어떻게 그 위치를 메기느냐 등 그 간에 있어서 어떻게 됐는지 다각도로 검토해서 답을 나오게 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데 우리는 이런 점이 부족하지 않나 생각된다. 유적 유물이 말하려는 아주 미미한 멧세지도 떨어트리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 고고학의 진골정(眞骨頂)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의도적으로 유물을 둔 경우를 제외하고는 설령 그것이 매우 귀한광물(鑛物)일지라도 고고학의 학문대상(學問對象)은 될 수 없는 것이다.
유적 유물은 어떤 경우 인가.
한편 유적 외에 발굴조사에 의해서 나온 다종다양한 발견물이 있다. 즉 토기(土器) 석기(石器)에 끝이지 않고 인골(人骨)이 출토하는 경우도 있고 동물의 뼈 고기의 뼈, 패류(貝類)나 식물 목편(木片)등 그 시대의 사람들이 먹은 것 몸에 장식한 것 생활과 관계있는 모든 것이 나올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것은 유물로서 환경이 오랜 세월의 잠에서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또 한편 토기편(土器片)이나 목편(木片)에 문자가 쓰여 져 있으면 고문서학(古文書學)이 필요하게 된다. 인골(人骨)이 출토하면 인류학자(人類學者)의 도움을 요청할 경우도 있을 것이다.
또 석기(石器)가 출토하면 그 산지(産地)를 특정하기 위해서 지질학이나 암석학(岩石學)의 지식이 필요 할 때가 있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여러 가지 데이터나 지식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서 비로소 출토한 석기를 특정 한다든가 그 성과에 의해서 역사를 바로 하고 수정이 가능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역사를 연구한다며 서책중심의 것만이 옳다고 하며 고집스레 말을 하는 연구가를 가끔 본다. 이런 점은 너나할 것 없이 반성하고 자중할일이다. 이는 아집(我執)일 뿐이다. 더구나 반도식민사관자들은 판에 박은 책에서 얻은 것을 거의 내세우는데 그 전거(典據)한 책들은 휴지에 불과한 위서(僞書)뿐이다. 이는 정신이 나간 일로 일고의 가치가 없는 것 들이다.
우리 역사는 광복 73년이 되도록 제자리걸음인 것은 역사를 병들게 망가트리는 반도식민사관 속물들에 의해 우리역사가 말이 아니다. 중국이 지도를 동북방향으로 여러 차례 옮기고 지명도 위치도 바꿔 옮긴 것들을 모르고 이를 옮긴 것을 모른다는 것은 학자가 아니다.
역사 바로 가르쳐야 나라가 바로 선다.
광복 후 지금까지도 우리가 배우고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역사는 일본이 왜곡하고 변조한 반도식민역사를 그대로 가르치고 상고사와 고대사는 신화로 돌린 것을 우리역사라 하고 있다. 이는 1만년의 우리역사를 사장(死藏)시키는 일이요 선조들에 대한 있을 수 없는 죄악이요 용서 받을 수 없는 만행(蠻行)이다. 이러한 추태에 대해 외국의 학자들은 조소하고 있다.
독의 실ㅈ철학자 하이데거는 “세계역사상 가장 완전무결한 평화정치를 2000년이 넘게 장구한 세월동안 아시아 대륙을 통치한 고조선이 있었음을 나는 압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러시아의 세계적인 사학자 유엠 푸틴은 “동북아에서 단군조선을 제외하면 아시아 역사는 이해 할 수가 없다. 그만큼 단군조선은 아시아 고대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런데 한국은 어찌해서 그처럼 중요한 고대사를 부인하는지 이해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이어서 “일본이나 중국은 없는 역사도 만들어 내는데 당신들 한국인은 어째서 있는 역사도 없다고 그러는지...도대체 알 수 없는 나라다” 고조선은 2096년이나 존재했음에도 우리는 그 역사를 한 페이지 안에 배우고 있고 환국과 배달국은 아예 가르치지도 않은 해괴한 나라이다.
중국 일본이 왜곡한 허구역사 버려야
중국과 일본은 고대부터 우리역사를 왜곡해 왔다. 사마천의 ‘사서(史書)’도 우리 고조선의 역사를 거꾸로 짜 맞추어 꾸민 것을 일본 사학자 아고 기요히코(吾鄕淸彦)는 제대로 밝히고 있는데도 아직도 역적과 같은 반도식민사관자들은 우리가 대륙을 지배한 민족이요 주인이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인지 숨기고 있는 것인지 참으로 못 말리는 족속들이다.
1910년 한국을 합방한 일본은 조선총독부를 설치 후 1913년 민족의 천제단(天祭壇-원구단)을 해체하고 1922년에는 조선총독부 산하에 ‘조선사편수회’를 두고 우리의 상고사 및 고대역사의 왜곡과 사료의 말살을 감행(敢行)해 우리역사는 뒤집혀있는 상태 그대로다.
이 같이 일제가 조선을 침탈하면서 자기들보다도 유구하고 우월한 역사를 말살하며 일본역사는 1000년이나 늘려놓으며 모든 사료를 다 없이해버린 일본과 중국은 교활하게 역사를 조작 변조해 민족혼을 흩어드리게 하고 있는데 천벌을 받아 마땅한 일이다.
한국인에게 가치관과 위계질서를 문어트리고 열등의식과 패배의식을 심으며 용기를 잃게 함으로 우리가치관을 변질시켰다. 아울러 국가공동체의식과 민족의 연대의식도 없게 해 돈 벌고 출세하면 된다는 가치관에서 권력주변을 배회하게하며 오늘까지 말이 아니게 황폐화 시켰다.
이 왜곡은 일본 군부도 전면에 나서서 감행했다. 광개토태왕의 비문훼손과 조작은 물론 명성황후의 시해도 일본의 낭인(浪人)이 한 것이라고 해 왔으나 명성황후를 시해한 장본인도 낭인이 아닌 태평양전쟁사령부인 일본 대본영(大本營)의 군부가 나서서 한 것도 판명 됐다.
일본은 광개토태왕비의 변조에서 보듯 군부(軍部), 신직(神職)이 개입된 역사까지도 학자들이 나서서 ‘일본서기’와 ‘고사기’도 진정한 역사가 아님을 말하고 일본의 고대사가 진실이 아님을 밝히고 있는데 우리나라 식민사관자들은 아직도 일제의 조작한 역사의 주구가 돼 있다.
제나라의 역사진실의 역사도 연구하지 않으면서 일본이 조작한 역사를 답습만하고 있으니 한심한일이요 부끄러운 일임은 물론 이는 매국노와 같은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일본학자들까지도 일본이 우리역사를 왜곡한 것을 양심적으로 고백하고 반성 하고 있는데도 우리는 그대로이다.
일본학자는 일본 황통사연대도 거짓된 기록이나 일본이 오늘에 선진국이 된 것은 일본국민에게 교육을 통해 자부심과 용기를 갖게 하고 역사를 오늘의 일본은 이 역사를 위조한 공적이라고 실토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엄연히 실재한 역사까지 일본이 왜곡한 역사를 가르치는 한심한 우를 범하고들 있다.
이는 너무나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우리도 자랑스러운 우리의 상고사와 고대사들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일제 조선총독부가 ‘조선사편수회’를 만들어 우리국민의 패배의식과 열등감을 조장하는 거짓된 역사를 가르치는 역적행위는 이제 그만 끝이어야 한다.
우리가 얼마나 자랑스럽고 위대한 역사를 가진 민족인가! 그 실재한 역사를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식민사관을 심고 역사를 조작한 조선사편수회의 35권은 위조사로 버려야 할 책이다.
우리나라는 상고시대부터 환국과 배달국 단군고조선뿐만 아니라 3천 년 전에 예맥이 또 이후 강력한 부여왕국 등의 고대사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상고시대부터 중국 대륙과 만주와 한반도에 먼저 선주(先住)해서 살았고 대륙의 주인이었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은 수치이다.
또한 중국과 일본이 왜곡한 역사만을 가르치는 현실은 정상이 아니요 정신병자나 할 짓이다. 오늘도 귀에 생생한 것은 “역사를 잊어버리는 자는 실패한다.”는 미국의 철학자 산타야( Santaya)의 한 말을 잊을 수가 없다. 반도식민사학을 하는 자의 매국행위를 용납되지 않는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再考證 韓國思想의 新發見’.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국가형성의 사회사‘.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智勝, ’우리上古史‘-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황순종,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사람과 북방주민들’. 홍윤기,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南帝 ‘命理속의 哲學’.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二十一世紀出版社集團, ‘山海經’. 大連出版社, ‘行走 大黑山’.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石井進外, ‘詳說日本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 ‘大王から天皇へ’. 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の成立’. 上井久義, ‘日本古代の親族と祭祀’. Georges Duby : L'HISTOIRE CONTINUE, 松村剛 譯 ‘歷史は續く’. 坂本泰良,‘明治維新から現代へ’. 劉泳,海燕,‘赤蜂博物館’. ‘各國別 [世界史の整理] 三省堂發行’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 世界史史料集’,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石井進, 笠原一男, 兒玉幸多, 笹山晴生, ‘詳說日本史’. 稻垣泰彦, 川村二郞, 村井益男, 甘粕 健 共著 ‘日本史’. 西東社出版部編 ‘日本の古墳, 古代遺跡’.외 다수의 서책(書冊)을 참조하고, 본문을 그대로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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