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일본지배…아사달 향한 배례 근거다

입력 2017-11-18 16:5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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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최근 필자는 인류가 하나의 문자사용을 권장하기 위해 연구하는 김세환 한글확장연구회 회장과 중국·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특히 그들 선조의 신위를 위해 제사 시 배례의 방향이 어디로 향했는지에 집중했다.
 
중국과 일본이 선조에 대한 제사 배례(拜禮)방향이 다 같이 ‘아사달’을 향해 배례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중국 은(殷)나라의 제사나 일본의 조상을 모셨다는 이세궁(伊勢宮) 제사의 배례 방향은 우리선조들의 나라를 일으킨 아사달을 향했다.
 
중국에서나 일본에서 하는 제사와 일반 시민의 배례방향과 똑같이 우리 고대제국이 있었던 아사달 쪽으로 제상(祭床)을 차리고 배례(拜禮)를 하는 것은 그들의 선조가 우리조상임을 숨길 수 없다는 방증이 아닐까.
 
최태영 선생은 중국을 답사하며 직접 눈으로 이를 확인한 바를 말로 전했다. 중국과 일본역사는 이미 살펴본 대로 위조에서 위조로 끝나고 있음을 보는데 크나큰 위조는 중·일이 우리민족의 지배를 받은 것을 거꾸로 조작하는데 놀랍고 그 조작은 상상이상이다.
 
일본의 역사기술(歷史)記述)은 승리는 과장(誇張)하고 패배는 고쳐서 개서(改書)하고 망명은 서술(敍述)하지 않는 수법이 역사를 작성하는 기본 원칙임을 다 알고 있지만 그들은 고대부터 당(唐)나라의 지시에 따르고 신라에 아부해 우리 상가야(上伽倻)역사를 말소했다.
 
그리고 허구의 일본사작성에 착수해 거짓 역사는 지금도 살아서 이어지고 있다. 지난 일제(日帝)시대 총독부발표의 22만수천권의 분서(焚書)와 추가분서에도 불구하고 상가야역사도 일본의 양심적인 학자들의 연구에 힘입어 그 진상을 해명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일본은 우리상고사와 고대사의 사서(史書)들을 다 없앴으나 왜인의 뿌리라든가 이도국(伊都國·邪馬·臺國)문제 등 일본고대사가 다 기재돼 있는 [단군세기(檀君世紀)], [번한세가(番韓世家)], [환단고기(桓檀古記)]등에 의해 불사조처럼 소생하고 있다. 오늘은 중·일의 가증스러운 위조에서 먼저 일본의 왜곡에 대해 잠시 살펴보고자 한다.
 
일본의 초기국가 역사조작은 가관(可觀)이다
 
일본에 왜국(倭國)을 세운 것은 우리민족이 가서 건국한 것이다. 일본의 첫 왕이 바로 오진(應神)이다. 이 오진은 일본 궁내성(宮內省)에 보관된 상기(上記)의 기록에 “일본에 건너온 한 단군 자손의 73대손이 일본 신무왕(神武王)이 됐다”는 기록이 있다.
 
신무왕(神武王)은 그들의 기년(紀年)으로는 서기363~394년때 사람이다. 일본의 첫째 왕인 진무덴노(神武天皇)다. 신무왕(神武王)이 곧 진무덴노(神武天皇)임에도 일본은 역사조작을 위해 이들을 두 왕으로 왜곡했다. 신무왕을 15대 오진덴노(神武天皇)라고 조작했는데 조작의 첫 단추인 셈이다.
 
일본의 양심적인 학자도 이 사실이 잘못됐음을 말하고 있다. 진무덴노(神武天皇) 연대도 100년이나 더 늘리어 서기전660~585년에 있었던 것으로 둔갑시켜 14의 유령(幽靈)천황을 만들어 놓고 있다 이들은 다 허구(虛構)로 즉 제1대에서 14대까지는 거짓 왕들로서 유령이다.
 
그 허구의 왕들은 아래와 같다. 1대 진무((神武天皇), 2대 스이제이(綏靖), 3대 안네이 (安寧), 4대 이토쿠(의덕(懿德), 5대 코우쇼우(孝昭), 6대 코우안(孝安), 7대 코우레이(孝靈), 8대 코우(孝元), 9대 카이카(開化), 10대,스진(崇神), 11대 스이닌(垂仁), 12대 케이코우(景行), 13대 세이무(성무(成務), 14대 츄우아이(仲哀)-진구우(神功皇后)의 신화나 섭정이 다 허구이다.
 
그런데 일본은 이 오진 전1~2세기에 원시부족국가인 이도국(伊都國)=야마다이(邪馬臺國)국이 일본후쿠오카 북 구주(北九州)에 있다고 말하는데 중앙집권체제가 안된 원시부족국가수준이다.
 
가야(伽倻)가 서기전부터 일본에 진출해 일본을 정벌하고 지배 했는데 3세기가 되면서 분립하고 있던 소 부족들이 점차 통일국가의 기운이 일어나 3세기 규슈(九州)에 위의 이도국(伊都國)이 있었다는데 일본에서는 야마다이국(邪馬臺國)이라고 부른다.
 
이 야마다이국(邪馬臺國)은 가야인들이 배를 타고 가서 건설한 것으로서 약30의 부족이 북구주(北九州)에 있었는데 한국무녀(韓國巫女) 히미고(卑弥呼)가 이 부족들을 통일했다. 이 이도국(伊都國)=사마대국(邪馬臺國)은 여왕2대가 통치한 뒤 없어 진 부족국가이다.
 
일본에서는 이 여왕을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御神)로 생각하기도 한다. 이 여왕 히미고(卑弥呼)는 독신으로 결혼도 하지 않은 여인으로 일본어도 모르고 백성을 만나지도 않았으며 그 동생이 정치를 대리했다고 한다. 히미고(卑弥呼)는 주술(呪術)의 장(長)으로서 알려져 있다.
 
이것은 이시기의 왕의 권력이 종교적인 권위와 강하게 결부(結付)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곳의 이도국(伊都國=사마대국·邪馬臺國)은 국가의 체제를 갖추지 않은 원시여왕 국이었다.
 
한편 일본의 생활과 문화를 높여준 우리선조의 공로도 깎아내리는 일본이 스모도 일본씨름이라 하나 스모도 가야의 ‘노미스쿠네’가 전해준 선비족의 씨름을 일본스모로 둔갑시키고 있다.
 
또한 왕인(王仁)박사가 712년 도일(渡日)할 때 천자문, 논어5권, 차, 생화, 벚꽃 바둑, 칼, 검술, 예술, 공예, 가구, 옷, 종(鐘)등을 가지고가서 그들을 깨우쳤다. 일본은 신무왕(神武王)시대에 왕인(王仁)박사가 논어(論語), 천자문(千字文)을 헌상(獻上)했다고 날조(捏造)하고 있다.
 
신무왕(神武王)은 4세기의 사람이다. 일본의 기년(紀年)은 서기270년~310년으로 쓰고 있고 와세다 대학 미스노 유(水野 祐)교수는 서기363~~394년으로 보고 있다. 최태영 선생은 390년에 일본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일본의 연대는 들즉 날즉이라 믿을 수 없다. 앞뒤가 안 맞는다.
 
우리 유민(流民)이 일본 지배한 것, 숨길 수 없다.
 
우리역사는 매국노 같은 반도식민사관자들에 의해 일본이 왜곡한 역사를 가르치는 식민사관 무리 때문 말이 아니다. 최태영선생은 생전에“신채호,정인보, 손진태, 안재홍, 최동, 장도빈 같은 분이 살아있다면 오늘의 이 지경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고 말씀 하시며 역사 연구했다.
 
고구리는 5~6세기에 일본을 정벌하니 일본이 저항치 못해 송(宋)나라에 구원을 청했다. 그런데 일본은 이 당시 강력한 고구리, 백제, 신라를 정벌 했다고 역사를 조작하고 있다. 그래서 일본은 있지도 않은 신공(神功)황후의 신화가 나왔는데 이 주장은 다 허구일 뿐이다.
 
분명한 것은 당시 일본은 우리나라를 칠 상황도 수준도 아니었다. 일본은 5세기 말~ 6세기 초에 야마토(大和)정권을 중심으로 부족연합이 형성되고 6세기 말~7세기 초에 호족(豪族)이 분립해 자기세력을 부식(扶植)했다. 호족(豪族)대표도, 한국계인 소아씨(蘇我氏)이다.
 
이 소아씨(蘇我氏)가 스슝천황(崇峻天皇588~592)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스이코천황(推古天皇(女)593~628)이 등극하고 세이도쿠 다이시(聖德太子)가 혼란수습하기위해 정치를 대행하며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를 만들려는 대화개신(大化改新)을 시도 했다고 한다.
 
이 때에 고구리가 혜자법사(惠慈法師)를 일본에 보내어 대화개신을 지도했다. 일본은 이 때 까지도 천황의 권위가 서지 못하고 7세기 후반부에 이르러 비로소 천황의 권위가 확립했다.
7세기기 이전은 대왕(大王)이라 칭하고 7세기부터 우리의 천황제(天皇制)를 쓰기 시작했다.
 
일본이 말하는 신공후(神功后)정벌 설도 거꾸로 꾸민 것이다. 시전비궁장(詩傳비宮章)과 같은 기원사(祈願辭)이다. 비궁장은 노(魯)나라가 중국을 호령한 예맥(銳麥=濊貊)을 정복했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는 예맥(銳麥=濊貊)이 노(魯)나라를 정복했다. 거꾸로 역사를 꾸민 것이다.
 
이것은 3000년 전 중국을 1000년간 이나 지배해한 예맥이 노(魯)나라를 정벌하는데 강한 예맥(銳麥)을 막아내기를 바라는 소원이 노나라가 신(神)에게 바라는 염원에서 기원사(祈願辭)를 지은 적이 있었다.
 
일본이 신라의 정벌을 저항치 못해 신사(神社)와 불각(佛閣)에 기도 할 때에 조화(造化)로서 신라의 정벌을 막아내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노(魯)나라가 한 것과 같은 기원사(祈願辭)를 지어 읊은 것이다. 역사를 위조하고 조작 변조하는 일본은 참으로 못 말리는 한심한 족속이다.
 
일본이 말하는 신공후(神功后) 정벌 설도 신라가 일본을 크게 정벌하고 일본이 인력으로 신라의 정벌을 막아내지 못한 고심을 폭로하는 것이다. 이같이 고대신라가 강성(强盛)해 이를 막아내기 위해 일본은 국가보위를 위해 신라의 화랑도(花郞道)를 받아들이게 된 배경이었다.
 
일본은 순수해야 할 종교도 역사왜곡에 동조
 
일본은 소위 왜색종교(倭色宗敎)의 문화정책을 편지도 오래다. 이는 한국에 진출한 일본이 안으로 고대일본이 한국을 지배했다는 군국주의시대의 역사교육의 재판(再版)으로 국민의 침략적 사기를 북돋고 밖으로 왜색종교를 퍼트려서 우리민족의 민족정신을 좀먹게 하는 것을 우리는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만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을 책하기 전에 민족적 자아(自我)가 있어야 하는데 이게 없는 우리사회다. 고대부터 우리 우리민족이 일본을 지도하고 지배한 역사를 제대로 바로 세워 국민을 가르침으로 민족적 자주성과 자존심을 북돋아 위대한 역사의 주인이었음을 다시 바로 깨워야 한다.
 
위대한 한국의 역사와 사상을 다시 찾고 역사와 국민사상의 중핵을 이르는 민족정신의 확립으로 민족정신을 좀먹는 왜색종교의 흉계(凶計)도 일축(一蹴) 하고 역사를 바로 새워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한심하게도 일본이 심어놓은 반도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심한 상황이 계속이다. 일본은 한국에 대해 종교를 통해서도 반국가 반한 적 일을 하고 있다.
 
문화, 무력, 양면으로 일본을 가르치고 지배했다.
 
일본의 역사왜곡은 상상을 초월한다. 일본서기(日本書紀) 스이코(推古天皇)26년 추(秋)8월조(條)에 고구려가‘공방물(貢方物)’하고 수양제(隋煬帝)의 30만 대군을 격파한 사실을 말했다.
 
‘공방물(貢方物)’은 하국(下國)이 상국(上國)에 토산물을 헌납하고 조공(朝貢)한다는 뜻이다.
 
이 동양의 패자(覇者)인 고구리가 수양제(隋煬帝)의 30만 대군도 격파한 나라인데 소국인 일본에 조공했다 함은 가소로운 일이다. 단한 번도 일본을 상국(上國)으로 대우한 적이 없다.
 
또한 1874년10월에 일본나라현(奈良縣) 이시가미신궁(石上神宮)에서 백제의 칠지도(七支刀)가 공개됐다. 이것도 백제가 ‘칠지도’를 헌납했다고 왜곡하나 이 칼은 백제 고이왕(古爾王)이 후국인 일본 왕에게 하사(下賜)한 것이다. 이에 관한 해석의 관건(關鍵)은 후왕(侯王)두자이다.
 
후왕(侯王)은 연호를 사용하지 못하며 제왕은 연호를 사용한다. 백제왕은 태화(泰和)라는 연호를 사용했다. 그리고 백제의 제왕이 죽음을 붕(崩)이라했다. 후왕 죽음은 훙(薨)이라한다.
 
백제가 태화(泰和)라는 연호를 사용하고 당당한 제왕(帝王)으로서 후국(侯國)인 일본을 지배한 것이다. 백제왕이 일본 왕을 후왕(侯王)이라 칭한 것은 백제왕이 제왕(帝王)으로서 일본 왕을 지배한 것을 실증하는 것이다. 이것도 일본은 백제왕이 헌상했다는 것은 개가 웃을 일이다.
 
분명한 것은 백제(百濟) 신라(新羅) 가야(伽倻)가 문화 무력 양면으로 일본을 가르치고 지배했다. 우리가 일본에 지배당한 적이 없다. 일본 덴지왕조(天智王朝)는 백제의 병법(兵法), 산성기술(山城技術)을 배웠다고 말 하고 있다. (日本と 朝鮮の2000年 神話時代~近世 114~5面).
 
고리=(고려)도 일본을 제압했다. 일본사에 고리11대 문왕(文王)시대에 일본승(日本僧)이 문왕(文王)의 수(壽)를 축원한 일이 있다. 또 고리사 공양왕(恭讓王)3년10월조(條)에 [일본 승려(僧侶) 현교(玄敎) 도본(道本)등 40여인(餘人)을 보내어 공물을 바치고 표문(表文)을 올리고 신(臣)을 칭해 속국(屬國)되기를 자청했다고 했다. 일본역사는 터무니없는 위조사(僞造史)이다.
 
이같이 일본의 승려가 고려에 와서 속국(屬國)을 자청한 사실은 고려가 일본을 지도 지배한 것을 실증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일본은 조선으로부터 도입된 문물과 사상이 일본의 정치 경제 문화에 미친 작용은 일본인이 상상이상으로 크다고 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그리고 역사를 제대로 연구한 자라면 한국을 포함해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日本書紀)]가 일본 열도의 진짜 사서라고 믿는 사학자(史學者)나 고고학자(考古學者)는 없다는 사실이다.여기에 같은 민족이면서 국가를 망가트리는 반도식민사관자들의 역겨운 논리는 더 큰문제다. 우리는 일본을 고대부터 근세까지도 지도하고 지배(支配)한 사실을 여실히 말해 주고 있다.
 
(이상은 최태영 [인간 단군을 찾아서] 239~256面. 崔仁, [韓國學講義]83~99面.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 답사기-(中原紀行). 智勝, [우리上古史] 97~108面, 및 기타 아래의 서책(書冊)을 參照하고 引用했음을 밝힙니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再考證 韓國思想의 新發見’.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국가형성의 사회사‘.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智勝, ’우리上古史‘-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황순종,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사람과 북방주민들’. 홍윤기,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南帝 ‘命理속의 哲學’.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二十一世紀出版社集團, ‘山海經’. 大連出版社, ‘行走 大黑山’.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石井進外, ‘詳說日本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 ‘大王から天皇へ’. 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の成立’. 上井久義, ‘日本古代の親族と祭祀’. Georges Duby : L'HISTOIRE CONTINUE, 松村剛 譯 ‘歷史は續く’. 坂本泰良,‘明治維新から現代へ’. 劉泳,海燕,‘赤蜂博物館’. ‘各國別 [世界史の整理] 三省堂發行’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 世界史史料集’,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石井進, 笠原一男, 兒玉幸多, 笹山晴生, ‘詳說日本史’. 稻垣泰彦, 川村二郞, 村井益男, 甘粕 健 共著 ‘日本史’. 西東社出版部編 ‘日本の古墳, 古代遺跡’.외 다수의 서책(書冊)을 참조하고, 본문을 그대로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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