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고조선(古朝鮮) 단군(檀君)에 대해 아는 이들은 드물다. 이는 참으로 비극적인 일이다. 최태영 선생은 2000년 필자와의 대화에서 단군은 서기전 2333년 지금의 중국 땅 요동(遼東)에 고조선(古朝鮮)을 개국(開國)하고 2096년간 47대에 걸쳐 통치해온 임금이라 말씀하셨다.
중국과 일본은 자기들의 역사를 내세우기 위해 멋대로 한국사를 조작하고 재구성했다. 사마천은 중국역사서 사서(史書)를 쓰면서 고조선역사를 거꾸로 뒤집어 중국사로 뒤 바꾸며 고조선을 지웠고 김부식 ‘삼국사기’도 신라를 부각위해 단군을 지웠다.
그러나 역사책과 달리 지리책만큼은 변조(變造) 할 새가 없었다. 중국의 세계지리지인 ‘산해경(山海經)’에는 고조선 이야기가 나온다. “(고)조선인들이 한문을 쓰게 된 뒤 나라 이름을 ‘아사달’에서 조선(朝鮮)이라하고 했다”고 표현했다.
조선의 음(音)이 조선(潮仙)과 같다는 설명이 나온다. 여기서 조선이란 단순히 그 음을 차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오늘은 고조선 단군은 2096년을 지탱해온 우리조상으로 실재(實在)한 자랑스러운 단군의 출생내력을 자세히 밝히고자 한다.
단군왕검(檀君王儉) 실재(實在)했다
대야발(大野勃)이 지운 ‘단기고사(檀奇古史)에는 단군의 가계(家系)는 환웅(桓雄)의 아들로 이가 제1세 단제(檀帝)이시니 이가 단군왕검(檀君)王儉)으로 환웅(桓雄)의 자(子)요 환인(桓因)의 손(孫)이라 했다. 우리는 단군왕검(檀君王儉)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
여기서 왕검(王儉)이란? 임금이라는 말의 이두(吏讀)를 가리키는 한문(漢文)식 명칭이다. 고조선은 환국(桓國)이 3301년간, 배달국(倍達國) 1565년간 통치한 후에 단군조선을 건국을 한다. 고조선의 임금이던 단군은 광활한 대륙과 요동 땅을 통치했던 우리조상들로 실재의 인물이다.
일제(日帝)는 조선을 침탈하면서 일본보다 유구하고 우월한 역사를 가진 조선인들에게 그 옛날 고조선이라는 강대하고 광활한 영토에 군림한 사실을 어떻게 해서든지 잊어버리도록 했다. 역사를 유리하게 조작하며 일본 황통사(皇統史)의 반도식민사관을 조선인들에게 그대로 교육시키며 단군조상들의 뿌리가 잘려나가게 함으로서 한국인들이 역사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하게 했다.
그래야만 식민통치가 수월함에서인데 일본은 환인(桓因)천왕이 다스린3301년의 환국(桓國)과 1565년간 환웅(桓雄)다스린 배달국(倍達國)은 물론 고조선 2096년간 통치한 역사와 단군왕검(王儉)도 모두 실재가 아닌 신화(神話)라는 사상을 퍼트리느라 엄청난 애곡과 날조를 했다.
우리고대사왜곡의 앞잡이 이마니시 류(今西 龍)의 부류들이 “한국사는 신라 때부터 시작이라”는 당치도 않은 설을 ‘실증주의사학’이라고 호도하며 우리역사를 못 믿을 것으로 돌려 버렸다.
우리상고사와 고대사는 다 신화(神話)라고 퍼트리느라 환국으로 기재된 삼국유사도 불태우거나 변조하고 일본이 일찍 한국을 지배했다는 거짓말을 사실처럼 날조해 역사교육을 시켰다. 이는 반도식민사관자들에 의해 지금도 같다.
이것은 다 허구이다. 환국과 배달국, 고조선과 단군은 엄연히 실재했다. 이에 대해서는 일본의 역사학자 구사카 히로시(日下 寬), 쓰보이 구에조(坪井九馬三)가 일본어로 번역해 1902년 도쿄대학과 9916년 경성조선연구회에서 원문과 함께 출판한 ‘교정 삼국유사’는 고조선의 기록 중 환국을 정확히 기록해놓은 ‘삼국유사’ 정본의 증거자료이다.
환국(桓國)과 배달국(倍達國)이 단군이전 4866년 전에 환국이 53대 3301년 간 존속한 나라이었고 이어서 배달국이 1565년간 엄연히 존속했다. 이는 지금부터 6883년 전의 일이다. 환국은 1만 년 전에 실재로 건재한 많은 후국(侯國)을 거느린 대제국이었다.
고조선(古朝鮮)은 배달국(倍達國)에서 환웅(桓雄)이 데리고 온 무리가 3000명의 무리는 거의군대(軍隊)였다. 여기에는 3정승(政丞)이라 할 수 있는 우사(雨師), 운사(雲師), 풍백(風伯),과 뇌공(雷公) 등 행정적 직임(職任)을 맡은 사람들도 따로 있었다.
그 당시 환웅(桓雄)이 거느린 이 군대는 소규모군대가 아니다. 이명우 운룡도서관 이사장은 고조선시대의 인구가 약800만으로 추정한다고 하셨다. 4300년 전 3000명은 대단한 이동이었다. (참고로 한사군당시 낙랑의 인구가 40만6789명이었다고 한다. 이성계 장군이 세운 조선도 태조 2년의 조사 결과 30만1300명이었다. 3.1독립운동당시에야 우리인구도 1700만이었다.)
단군 왕검은 언제 어디서 탄생 했는가
우리가 고조선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단군의 실재한 출생을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사람들은 단군에 관한 내력을 모름으로 단군이 전설 속에 있는 양 일본이 교활하게 왜곡된 전설의 왕으로 알고 있는 우리국민이 아직도 있음을 본다.
그러나 단군은 고조선 개국이전부터 실재한 인물이다. 단군은 서기전 2370년 음력5월2일 인시(寅時) 아버지 환웅(桓雄)과 어머니 교웅(蟲+喬)熊)간에 지금의 중국 연길시(延吉市) 하천평(下天坪)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역사학자들도조차 이런 사실을 모르는 것은 연구 부족이다.
그래서 단군과 연결지우는 웅녀도 곰녀가 되고 괌녀 즉 '신성한 여인’ ‘위대한 여인’이라는 뜻이지 곰이 아니라는 것이 일반인도 지금은 알게 되리만큼 웅녀(熊女)가 곰녀가 되고 곰녀가 순박한 ‘곰례’가 되기도 한다.
단군의 어머니는 웅녀나 곰녀도 아니다. ‘홍사환은(鴻史桓殷)’에는 “열유의 딸 교웅(蟲+喬熊)이 단군이 모후라고 기록 돼 있다. 이 ‘교웅’을 웅녀熊女)로 둔갑시킨 것이다. 이는 환국을 환인(桓因)으로 고치고 관성을 개성으로 변조한 소행과 똑 같은 수법이다.
‘홍사환은(鴻史桓殷)’에는 비서갑(斐西岬) 하백의 딸 ‘태원이라고 분명하게 기록 돼 있다. 이러한 기록은 ‘홍사환은(鴻史桓殷)’에나오는 기록도 단군왕검(檀君王儉)의 탄신일은 서기전 2370년(신묘년(辛卯年) 음력5월2일 인시(寅時)임이 확인됐다. 또한 등극일은 왕검의 38세인 무진년(서기전 2333년)이다.
그런데 일제는 말도 아니 되는 웅여(熊女)가 어머니로 돼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전부 일제가 조작한 허구의 꾸며진 말일 뿐이다. 여기서 단군왕검의 인적 사항은 단군왕검의 고향이 지금의 중국 연길시 이고 탄신일은 서기전2370년 음력5월2일이며 그 부모는 환웅과 교옹 이라는 것이다.
단군왕검의 왕후 이름은 ‘비서갑(斐西岬)’이며, 하백(河伯)의 딸 태원(太源)으로 기록 돼 있다. 고향이 연길시(延吉市)로 나와 있다. 또 단군 왕검과 황후 태원(太源) 슬하에 부루(扶婁), 부소, 부우 부여, 네 아들이 있었다고 했다.
단군왕검의 고향은 하청평(下天坪)이었다.
연길에는 상천평(上天坪)과 하천평(下天坪)이라는 곳이 있는데 현지인들의 말에 의하면 백두산 동쪽에 해가 일찍 뜨는 곳이 상천평(上天坪)이고 백두산 밑 서쪽이 하천평(下天坪)이라 한다.
훈민정음연구소장 반재원의 ‘홍사환은(鴻史桓殷)’ 주에는“왕검의 아버지인 환웅재위 48년에 천평산성(天坪山城)을 쌓았고 환웅재위68년에는 정평(定坪)에 두성을 쌓았다하는 기록이 있다. 또 ‘삼성기전’에는 상편에는 “환웅이 자정(子井)과 여정(女井)을 만들고 청구에 정전제(井田制)를 실시했다”고 했다. ‘단기고사’에는 “천평(天坪)의 위치는 길림의 동쪽에 있다”고 했다.
‘홍사환은(鴻史桓殷)’에는 “태자 검을 위해 (도문)을 만들고 축하행사를 거행한 곳으로 그 곳을 ‘국자가(國子街)’라고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것은 국자가(國子街)는 왕검 단군의 고향임이 틀림없다. 지금도 연길시 중앙로에는 왕자가 낳은 국자가(國子街-거리)가 있다.
여기서 국자가(國子街)라는 것은 4300여 년 전에 왕자 즉 국자(國子)인 왕검과 관련된 거리라는 데서 국자가(國子街)로 불러지고 있다고 본다. 즉 왕자가 낳은 고향의 거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일제 때 발행 된 ‘간도(間島)’라는 연변유적도(延邊遺跡圖)에 기록된 국자가(國子街)를 ‘국자가(局子街)’로 바꿨다. 이것은 왕검(王儉) 단군(檀君) 탄생을 숨기려는 의도임이 틀림없다.
‘삼성기 상편’에도“왕검이 성장해 비서갑(斐西岬) 하백의 딸을 아내로 맞아 네 아들을 두었다라고 했다. 여기의 하백은 송화강(松花江)지역을 다스리는 우두머리를 일컫는다. 즉 지방수령을 하백이라고 하는 것이다.
백은 ‘맏도비’ 우두머리라는 뜻이다. 이를 잘못 해석해 하백을 모두 물의 신(神)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예컨대 지방수령을 방백이라 하고 도지사를 도백이라 하듯 당시 하백은 송화강 지역을 관장해 다스리는 조선조의 관찰사와 같은 지위의 자리라는 뜻이다.
왕검(王儉) 단군(檀君)의 어머니 이름이 교웅(蟲+喬)熊)이고 단군(檀君)의 아내 이름이 비서갑(斐西岬)이며 하백(河伯)의 딸 태원(太源)으로 기록돼있다. 그리고 고향은 연길(延吉市)로 나와 있다.
박혁거세 김수로왕도 알에서 나오지 않았다.
또한 ‘홍사환은(鴻史桓殷)’ 책에는 단군왕검(檀君王儉)의 가족관계와 신라시조(新羅始祖) 박혁거세(朴赫居世)와 가야(伽倻)의 시조(始祖) 김수로(金首露) 왕등의 가족내력(家族來歷)도 실려 있다.
즉, 박혁거세(朴赫居世)의 아버지는 박원달(朴元達)이며 어머니는 ‘파소’로 해모수의 외손자로 기록돼 있다. 김수로(金首露)왕의 아버지는 ‘이비아지’ 라고 기록 돼 있다. 신라의 박혁거세나 가야의 김수로왕이 전설속의 신화가 아니라 실재한 왕들이다. 이를 일제는 다 전설로 위장(僞裝)했다.
그리고 2000여 년 전 연변과 훈춘은 동부여(東夫餘)의 서울이었으며 이후 천년 후에는 동북삼성(東北三省)과 연해주를 아우르는 대제국발해국(大帝渤海國)동경성이 됐다. 또한 훈춘은 박혁거세의 모후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들의 일화(逸話)를 보면 “해모스의 딸 ‘파소’가 훈춘에서 태백선주 박원달과 사귀다가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잉태하자 몰래 배에 태워 보냈는데 해류(海流)를 따라 영일만에 닿았고 양산에 이르자 산기가 있어 나정 숲을 지나다가 급히 아이를 낳았는데 이가 박혁거세이다”라는 것이다.
또한 ‘홍사환은(鴻史桓殷)’에는 “김수로왕도 그의 아버지가 마한(馬韓)의 9세(世) 여왕의 아들 ‘이비가지’이며 본명은 문(文)이다”라고 기록 돼 있다. 김수로왕이 알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기록은 이 책을 엮은 300년 전의 최면길(崔勉吉)이 쓴 ‘홍사환은(鴻史桓殷)’과 이를 주해한 반재원 훈민정음연구소소장 ‘주해 홍사환은(鴻史桓殷)’에 나오는 귀중한 기록이다. (이상은 반재원 ‘주해 홍사환은(鴻史桓殷)’의 서책과 그의 요약한 문건들을 인용했음을 밝힌다.)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고조선의 단군, 신라의 박혁거세, 가야의 김수로왕이 전설속의 인물이 아니라 실재로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일제가 신화로 돌린 것이 얼마나 황당한 것인가! 를 말해준다. 단군신화는 본래 없는 것이다. 단군탄생은 명확히 그 시간까지 밝히고 있지 않은가!
일본의 가시마 노보루(鹿島 昇)는 태평양전쟁당시 일본사를 옹호하던 학자였다. 그도 ‘환단고기’를 접하고 단군탄생 시간까지 밝힌 것보고 “일본의 황통사는 거짓역사라는 것을 실토했다.
그런데 자신과 자기조상의 영혼까지도 팔아먹는 반도식민사관의 학노들은 아직도 일본의 달콤한 꿀물을 마시며 자신과 국가를 썩어가게 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이를 뿌리치지 못함은 선조의 영혼을 팔아먹는 만고의 역적행위며 비극이다. 이들은 역사진실을 외면하고 있다. 한심하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再考證 韓國思想의 新發見’.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국가형성의 사회사‘.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智勝, ’우리上古史‘-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황순종,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사람과 북방주민들’. 반재원, ‘鴻史桓殷’. 대야발 원저 ‘단기고사’ 권진규 ‘조선사’.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윤기,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南帝 ‘命理속의 哲學’.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二十一世紀出版社集團, ‘山海經’. 大連出版社, ‘行走 大黑山’.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石井進外, ‘詳說日本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 ‘大王から天皇へ’. 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の成立’. 上井久義, ‘日本古代の親族と祭祀’. Georges Duby : L'HISTOIRE CONTINUE, 松村剛 譯 ‘歷史は續く’. 坂本泰良,‘明治維新から現代へ’. 劉泳,海燕,‘赤蜂博物館’. ‘各國別 ‘世界史の整理’ 三省堂發行’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 世界史史料集’,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石井進, 笠原一男, 兒玉幸多, 笹山晴生, ‘詳說日本史’. 稻垣泰彦, 川村二郞, 村井益男, 甘粕 健 共著 ‘日本史’. 西東社出版部編 ‘日本の古墳, 古代遺跡’ .貝塚茂樹, ‘中國の歷史’.외 다수의 서책(書冊)을 참조하고, 본문을 그대로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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