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가야의 무대…황하·양자강 우리영토였다

입력 2017-12-16 17:2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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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광복 후 두세대가 지났다. 3대의 세대도 절반이 지나는 중이다. 어느새 73년이다. 손자의 시대가 도래 했지만 우리의 역사는 여전히 참담한 반도식민사관 그대로다.
 
재출발(再出發)을 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지경이다. 재출발이란 것은 과거의 역사와 미래의 역사와의 사이에서 감행돼지는 자기비약(飛躍)을 뜻한다. 니체가 말한바와 같이 “역사를 바로 짓는 힘”이 바로 그 재출발(再出發)에서 나오는 것이다.
 
재출발(再出發)을 하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구제불능의 상태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새 역사를 창조하기위한 자기반성, 자기수정, 자기혁명, 자기비약을 감행해야 한다. 광복73년의 경험에서 잘잘못을 가려내고 새 역사의 방향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광복이후에도 식민사관역사와 바른 역사와의 교차로(交叉路)에 서 있다. 이미 동서 문화의 급속한 교류가 소용돌이 친지 오래고 제4차 산업사회에서 살고 있으나 우리는 사상적 정신적 변화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말이 아니다. 즉 가치관의 변질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일제의 잔재가 다 씻지도 못한 상황에서 사회혼돈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우리들의 공사(公私)생활이 질과 양적(質量的)으로 자체변화가 요하는데도 그 변화가 없는 상황이다. 특히 민족정기를 되찾기 위해서도 바른 역사를 찾아야 하는데도 여전히 그 변화를 찾지 못하고 있다.
 
오늘은 우리나라의 역사무대가 한반도가 아닌 지금의 중국대륙이었음과 인류의 이주역사(移住歷史)와 우리선조(先祖)들의 얼마나 위대했는지에 대해 피상적이나마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나라역사 무대는 한반도 아닌 대륙이었다
 
고대 우리 역사의 무대는 한반도가 아닌 지금의 중국 대륙이었다. 중국과 일본은 우리역사를 한반도 내로 묶어두려고 가진 역사왜곡과 조작을 일삼고 있으나 우리는 대륙의 주인공이었다.
 
4국의 역사도 중국의 태행산맥(泰行山脈) 동쪽일대 광활한 평야지대이었다. 중국은 그 서쪽의 산악지대에 있었다. 우리가 살았던 곳은 오늘의 북경(北京)지역과 황하강(黃河江) 양자강(楊子江)유역과 산동반도(山東半島)를 중심한 기름진 동부지역이었다.
 
환국(桓國)은 물론 배달국역시 대륙이 활동무대다. 이 시대 헌원(軒轅)과 배달국의 제14대자오지천황(慈烏支天黃)인 치우(蚩尤)천황과의 싸움도 기름진 동부를 탐낸 화하족(華夏族)과의 싸움이었다. 여기서 보듯 우리의 강역은 대륙이지 한반도가 아니었다.
 
우리가 익히 잘 아는 고구려(高句麗)·신라(新羅)·백제(百濟)·가야(伽倻)역시 한반도가 아니라 대륙이 무대였다. 이 나라들은 지금의 중국대륙 동부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반도식민사관자들에 의해서 이영역이 한반도로 왜곡돼 있어서 잘못됐다.
 
고구리는 그 강역서쪽은 오늘의 몽골 접경지역이고, 북으로는 시베리아의 흥안령(興安嶺) 이남과 한반도를 포함한 대제국이었고, 백제와 신라는 중국동부 지금의 하북성(하(河北省), 하남성(河南省), 산동성(山東省) 안휘성(安徽省), 감소성(甘蕭省)에 위치한 것으로 고증된다.
 
삼국사기에도 한사군(漢四郡)은 태행산맥 접경지역의 대방(帶方), 낙랑(樂浪), 광양(廣陽), 석문(石門)등 하북성(河北省) 일부 군(郡)에 불과하고 왜(倭)도 신라(新羅)밑의 양자강(楊子江)이남(以南)인 남월(南越)지역에 있었다. 이에 관한 기록들은 후한서, 송서, 남사(南史)기록도 같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도 북평(北平), 어양(陽),. 상곡(上谷), 태원(太原), 창해(滄海), 서안평(西安平), 밀운(密雲), 항성(項城), 독산(獨山), 석문(石門), 평원(平原), 황산(黃山), 동명(東明), 숭산(崇山), 하수(河水), 래주(萊州), 제성(諸城)등 이 곳이 조선족의 땅이라 기록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마천(司馬遷)의 사서(史書)에도 같은 사실을 명백히 기록 되고 있다. 이것이 요동(遼東)지역이다. 백제의 수도 한성(漢城)에는 하수(河水), 아차성(阿且城), 숭산(崇山), 등과 벽돌로 만든 성터, 제단(祭壇)이 하북성(河北省) 황하유역에 존재함은 이를 입증해 준다.
 
또한 백제가 13만 나당연합군에 망한 후 당(唐)이 설치한 웅진(熊津), 마한(馬韓), 동명(東明), 금연(金漣), 덕안(德安)등 당(唐)의 오도독부(五都督府)도 하남성(河南省), 안휘성(安徽省)에 있었고 황산(黃山)벌판의 싸움터도 중국의 황산(黃山)이지 한반도가 아니다.
 
고구리, 신라, 백제, 가야의 영역이 중국대륙이다
 
당군(唐軍)과 백제가 고구리(高句麗)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한 김춘추(金春秋)와 장군 김유신(金庾信)을 역사시간에 많이 들었다. 그러나 김유신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국내기록에서는 찾기 힘들다. 김유신 장군에 관한 행적을 살펴보면 그 활동무대가 한반도가 아닌 대륙이었다.
 
김유신(金庾信)장군은 당나라의 소정방(蘇定方)의 당군(唐軍)을 백제영역에서 몰아 낸 기록은 중국의 석문(石門), 제성(諸城) 17개성(城)에서 당군(唐軍)을 몰아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오도독부(五都督府)가 대륙에 세워진 것에서도 충분히 입증이 되고 타계한 곳도 대륙의 곡구다.
 
이것은 고대 고구리, 신라, 백제, 가야(伽倻)가 한반도에 있지 않고 대륙에 있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한반도에는 낙랑국(樂浪國(서기전195~서기32)과, 대륙과 연결된 고구리(高句麗)와 중국에 있는 신라(新羅)가 있는 것과 한반도에 동신라(東新羅)가 있는 것을 모르고 배제한데서 잘못 된 것이다.
 
반도식민사관자들이 거론하는 한족(漢族)의 낙랑군(서기전108~~서시300)도 대륙에 있었다. 고구리도 한반도의 고구리(서기전 239~서기668)와 대륙의 고구리(서기전108~서기14)가 있었다.
 
백제도 중국에 있는 백제(서기전18~서기660)와 한반도의 백제총독부(總督府)가 있었다. 이를 혼동해서는 아니 된다. 중국대륙의 신라(서기전150~9세기)와 한반도의 신라(서기503~935)가 두 곳에 공존하고 있었다. 이를 모르는 반도식민사관자들의 역사무지로 혼란이 일고 있다.
 
한국우리민족사연구회의 오재성선생의 주장은 초기 낙랑국(樂浪國)에서 발전한 동신라(東新羅)가 고구리의 칸(干)의 통치 국이었다가, 지증왕(智證王) 때부터 속국(屬國)에서 벗어나 독립국가를 형성했다. 따라서 기존의 신라왕계(王系)도 전면 재편성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필자는 지난달 25일 박완서 우리역사연구원장의 알선으로 우리역사를 논하는 자리에 참석해 박완서 원장의 단기고사(檀奇古史>와. 오재성선생의 <삼국사를 다시 읽다.>와, 윤진영 선생의<0道輿治)강의를 듣는 기회를 가졌는데 모두 우리선조의 영역이 대륙이고 우리가 주역임을 여실히 말해주고 있었다. 위의 논거도 이분들의 연구회에서 나온 것을 요약한 것이다.
 
필자는 매주 월요일 종로3가에 있는 ‘한배달’빌딩에서 ‘고대사연구’와 매 토요일마다 이수역 14번 출구에 있는 ‘우리역사연구회’의 ‘고대사 연구’에 참여해 역사연구를 하고 있다. 이 두 곳의 역사연구는 중국과 일본의 왜곡된 역사가 아니고 사실에 근거한 역사연구를 하고 있다.
 
두 곳에서의 역사연구는 우리역사가 뒤엎어진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역사연구가들이 우리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충정(衷情)에서 진지하게 연구하고 있음에서 필자도 동참(同參)하게 됐다.
 
역사 뒤엎고 애국심실종 일제잔재 청산시급
 
우리나라 역사가 뒤엎어 놓고 가치관의 변질을 한 것은 일제다. 그런데 일제가 되돌아간 이 시점에서도 그들의 농간에 놀아나는 반도식민사관의 이들을 보노라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것은 너무나 엄청난 일제가 우리가치관변질을 시킨 오늘 우리의 자화상이기에서다.
 
우리가 필히 알아야할 것은 힘의 원천은 다른 것 아닌 조국이고, 거기서 힘이 나오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나라라도 나라가 있으면 살고 나라가 없으면 죽는다는 것을 일제(日帝)시대에 너무나도 뼈저리게 경험해본 우리들이지만 아직도 우리는 바로가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이다.
 
이것은 자신이 이해관계로 조국과 조상을 팔아먹는 행위다. 이는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사회는 일제가 가치관을 변질시키는 역사를 그대로 가르치고 있는데 이는 용납할 수없는 일이다. 이로 인해 우리의 가치관은 일제시대 그대로다.
 
국가장래를 생각하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의 안일과 이해관계로 국가도 자손의 장래를 생각하지 않은 거짓역사를 가르치며 이 나라의 바른 역사를 왜곡하며 민족정기를 잃게 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명(明)나라 군사(軍士) 시문용(施文容)이란 사람은 구원병으로 왔다가 병을 얻어 종전(終戰)후에도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경북성주(星州)법산방(法山坊)이란 마을에 살았다.
 
그런데 임진난(壬辰亂)이 끝 난지 20년이 된 뒤 자기조국인 명(明)이 청나라의 침입으로 위태롭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 절강(浙江)지도를 그려놓고 그 지도 앞에서 몇 번이고 분향하며 절하는 것이었다.
 
나라를 걱정하고 부모를 걱정하고 그 곳에 있는 처자식을 걱정 하면서 정성을 다해 복을 비는 것이었다. 얼마나 아름답고 눈물겹고 고귀한 심정입니까? 우리는 지금 민족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다른 민족들과 겨루기에 온갖 힘과 지혜다 기울이고 가야 하는데 왜 이런가!
 
정치(政治)이전에 경제(經濟) 경제이전에 사상(思想)과 정신무장을 먼저 갖추어야하는데 반도식민사관은 우리정신을 좀먹으며 국가와 민족을 병들게 하고 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식민사관을 견지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인지도 알 수가 없다.
 
우리가 931회나 이웃인 나라의 침략을 받으면서도 능히 국토를 방어하고 국통(國統)과 민생을 보전 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하나, 민족정기라는 최후의 요새가 문어지지 않았던 때문이었다.
 
우리민족의 역사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라 피로서 쓴 것이었다. 바로 그것이 우리들의 무기이었다. 그것으로서 모든 악과 불의를 무찌를 수 있는 것이다. 자유(自由)와 평화(平和)의 높은 이상(理想)과 정의(正義)를 위해서는 생명도 버릴 수 있는 우리민족의 전통이요 기질이다.
 
정치는 정치로, 경제는 경제로, 군사는 군사로, 맞서는 것 같이 사상은 사상으로, 대결하고 정신은 정신으로, 투쟁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것에 대처를 못하고 있다.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데 이 무지가 문제를 낳고 있는데 그 주범이 반도식민사관이다.
 
사상(思想)과 정신(精神)은 모든 물질문명을 이끌어가는 원동력(原動力)이다. 지금우리사회의 혼란도 식민사관병폐와 무관치 않다. 역사가바로서야 국가도 바로서고 민족정기도 바로 선다.
 
우리는 대한민국국민으로서의 자격을 갖추어야 하고 신념과 민족자존심을 가져야함에도 이를 상실케 하는 주범이 되고 있다. 우리가 어디로 가던 지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전통은 바로 알 때 자랑스러운 국민의 품위와 기상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필수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再考證 韓國思想의 新發見’.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국가형성의 사회사’.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智勝, ’우리上古史‘-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황순종,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사람과 북방주민들’. 반재원, ‘鴻史桓殷’. 대야발 원저 ‘단기고사’ 권진규 ‘조선사’. 오재성, ‘조선상고사에 한반도 상고사가 없다.’ ‘高句麗史(고구리사)’, ‘우리(右犂)의 歷史는? 犂(리:東夷)歷史 쇠集’ ‘校勘 十八史 우리역사(東夷傳)’.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윤기,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南帝 ‘命理속의 哲學’.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二十一世紀出版社集團, ‘山海經’. 大連出版社, ‘行走 大黑山’.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石井進外, ‘詳說日本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 ‘大王から天皇へ’. 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の成立’. 上井久義, ‘日本古代の親族と祭祀’. Georges Duby : L'HISTOIRE CONTINUE, 松村剛 譯 ‘歷史は續く’. 坂本泰良,‘明治維新から現代へ’. 劉泳,海燕,‘赤蜂博物館’. ‘各國別 [世界史の整理] 三省堂發行’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 世界史史料集’,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石井進, 笠原一男, 兒玉幸多, 笹山晴生, ‘詳說日本史’. 稻垣泰彦, 川村二郞, 村井益男, 甘粕 健 共著 ‘日本史’. 西東社出版部編 ‘日本の古墳, 古代遺跡’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西島定生 護雅夫, 木村常三郞, 猿谷 要 編著, ‘世界歷史の基礎知識’.외 다수의 서책(書冊)을 참조하고, 본문을인용했음을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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