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로왕 “가야가 곧 중국”…중원의 주역 동이족

입력 2018-01-20 16:5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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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중국은 동북공정을 하며 중국전토에 걸쳐서 선사시대와 고대의 유지(遺址) 유물(遺物)발굴이 많이 진행 됐다. 그러나 그 유지(遺址)·유물(遺物)은 공개도 하지 않고 몇 년이 가도 공표도 않음을 본다.
 
발굴과정도 공개하지 않는다. 왜인가. 이는 거의가 우리 유지유물이기 때문이다. 선사와 고대사의 분야에서는 이 많은 자료에 의해서 우리의 기성지식은 다 무가치가 되는데도 이를 숨기고 이를 공유하지 않은 것은 인류역사 자산을 매장하는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중국의 사학자는 [통사(通史)]와 [단사(斷史)]가 전혀 질(質)을 달리하는 저작(著作)이기 때문에 [단사(斷史)]를 [통사(通史)]와를 연결만으로는 [통사(通史)]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중국사를 하기위해서는 중국을 넘어서 아시아전체 더 나아가 인류사 일반의 입장으로부터 조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동시에 중국사와 아시아사를 연구해야 하는데 그리 하지 않고 있다.
 
중국사를 말함에는 중국의 영역(領域)이나 중국의 정치적인 판도(版圖)는 시대에 의해서 그 영역이이 달라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사를 연구하다보면 중국역사의 그 중심은 황하(黃河) 양자(揚子江), 주강(珠江)의 3대강을 포함하는 지방이 대단히 중요함을 알 수 있다.
 
또한 고원지대에 사는 몽골, 요동(遼東), 터키, 티베트 등 동아시아의 전 지역까지 무대로 남(南)은 히말라야산맥, 서(西)는 파밀고원 북(北)은 알타이산맥에 의해 둘러싼 지역과 황해, 동지나해, 남지나해에 이르는 일대의 영역이 청조(淸朝) 이후 중국의 영역(領域)이 되고 있다.
 
그런데 현 중국의 총 면적은 959만㎢로 러시아, 캐나다에 이어 세계 3대 영역(領域)의 나라가 돼 있다. 인구는 14억이 넘으며 이곳에서 4300년간 그 역사가 명멸(明滅)하며 살아온 곳이 중국이나 상고시대와 고대는 우리 한민족이 주 무대가 돼온 영역(領域)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국은 이지역의 선사시대와 유사이래의 역사는 지금의 영토를 앞세워 자기들의 역사라고 하며 역사를 제멋대로 조작하고 변조하며 고대부터 우리나라를 속국으로 왜곡하고 있다. 오늘은 계속해서 이 영역의 역사가 우리한민족의 역사임은 물론 우리가 고대부터 중국을 정벌, 정복하고 지배하며 중국한족을 지도하고 통치했음을 숨김없는 사실을 살펴보고자 한다.
 
황하 양자강하류 평원에 꽃피운 동이문화(東夷文化)
 
상고사가 없는 중국은 우리역사를 가져다가 상고사를 매우고 있는데 중국은 서기전221년 진 제국(秦帝國)이 성립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내외적으로 내란(內亂)과 이민족(異民族)의 침략에 의해서 오래 분열상태에 빠져있었고 중국의 통일은 진제국(秦帝國)에 의한 것이 처음이다.
 
그 이전의 상고시대는 환국(桓國)과 배달국(倍達國)이, 고대에는 고조선(古朝鮮) 예맥(銳麥=濊貊), 부여(夫餘), 고구리(高句麗), 신라(新羅), 백제(百濟), 가야(伽倻)가 이 대륙을 주로 정벌하고 지배하고 나라를 세우고 이민족(異民族)들을 지배한 주인이었음을 지울 수 없다.
 
당시 대륙의 역사는 진(秦)이 통일이전까지 비교적 장기간에 걸쳐서 분열이 계속됐다. 그때의 분열은 크게 보면 다음의 3회이다. 첫째가 오호(五胡) 16국의 거의 300년 간 계속됐다.
 
두 번째가 다음이 남북조시대(서기304~589)의 285년과 세 번째가 5대 시대(907~960)53년 즉, 당(唐)이 멸망하고 고려가건국하고 발해가 멸망하고 고려가 신라를 흡수하고 송(宋-북송(北宋)이 일어난 남송시대(1127~1279)의 152년이다. 이때의 역사를 학자는 ‘분열시대’라 하고 있다.
 
이 분열시대는 490년으로서 각 왕조말의 일시적인 내란기(內亂期)를 더해도 학자에 따라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중국통일시대는 3분의1에도 미치지 못한다. 중국은 어찌해서 이렇게 긴 기간 동안 정치적으로 통일을 하지 못했던 것인가.
 
그 이유는 몇 가지로 짚어 볼 수 있다. 첫째가 중국은 지리적인 영향을 들 수 있다. 황하와 양자강의 하류의 평원지역에 있는 중국의 주요 요충지가 되고 있다. 인구의 대부분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곳에 집중하고 있어서이다.
 
이 평원지역(平原地域)에 있는 하북성(河北省), 하남성(河南省), 산동성(山東省), 강소성(江蘇省), 절강성(浙江省), 안휘성(安徽省)의 6성(省)의 인구가 총 인구의 5분의2를 점(占)하고 있다.
 
이곳은 험한 산이 없어서 대 평원에 몇 개의 지방적인 정권이 활거(割據)하는 것은 거의 없고 설령 지방정권이 섰다고 해도 오래 지속할 가능성은 없었다. 이 평원은 전국 중에도 농업뿐만 아니라 상공업이 발달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를 지배한 정권이 전 중국을 지배 할 수 있었다.
 
둘째의 원인은 이 국토에 사는 민족이 중국전민족의 대다수가 살기 좋은 이곳에서 살고 있는 이들은 황색피부(黃色皮膚)에 검은 머리를 한 몽골인종의 같은 동일족(同一族)에 속하고 있다.
 
이들은 티베트족, 묘족(苗族), 여진족, 몽골족 등이 주로 북부와 서북부의 고원지대(高原地帶)에 살고 있는 동이족(東夷族)으로 전국 전 면적의 50%~60%에 달하는 넓은 지역에 살았다.
 
이들은 고원의 유목민이었으나 중국대륙을 정벌하고 지배한 주로 예맥 등 묘족 티베트족 거란족 선비족 만주족과 몽골족이라 일컬어지는 기마민족으로 중원(中原)을 점령하고 정복왕조를 세웠다. 이들은 한족(漢族)을 압도하는 활동으로 정벌하고 정복하며 지배한 것을 알 수 있다.
 
셋째로 동일의 언어(言語)와 동일의 문자(文字)사용이 미치는 민족통합작용(民族統合作用)을 둘 수 있다. 중국한족의 일상생활언어(言語)는 예부터 많은 방언이 말해져서 제2차 대전 후 북경방언을 기본으로 해서 표준어가 됐으나 무수의 방언은 지금도 민족에 따라 쓰고 있다.
 
중국은 우리가 만들어준 한자로 쓰여 진 문장어(文章語), 소위 한문(漢文)이 오늘의 말을 하는 것은 한문의 덕이다. 그들은 각기 다른 방언이 있었으나 한문(漢文)이라는 동일어(同一語)의 고전어(古典語)를 읽고 쓰는데서 중국문화의 순일성(純一性)을 주어졌고 나아가 중앙집권적인 정치형태, 소위 군현제(郡縣制), 율령제국가(律令制國家)에 의한 통일에 유리한 작용을 했다.
 
넷째로 들 수 있는 것은 중국의 지리적 위치가 유라시아대륙의 극동에 치우쳐 있는 고립성(孤立性)때문에 강대한 선진국에 의해서 정치적 문화적으로 압도되는 위기가 적었던 것을 둘 수 있다. 중국이 뭐라고 해도 대륙의 문화를 꽃 피운 것은 우리 동이족(東夷族)에 의해서이다.
 
중국은 삼황(三皇)을 자기민족 선조로 엮었다.
 
우리는 이웃인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을 중국(中國)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명칭을 쓴 것은 우리가 먼저다. 가야(伽倻의 김수로왕(金首露王)은 가야(伽倻)를 중국(中國)이라 했었다. 지금의 중국(中國)이라는 호칭(呼稱)은 지나(支那)라고 하는데서 시작 한 것이다.
 
중국(中國)이라 자칭(自稱)하는 중국이란, 주변의 이적(夷狄)에 대립하는 개념이고 중국(中國)이란? 문자 그대로 우수한 문화(文化), 문명(文明)을 꽃피운 중앙(中央)의 나라라는 의미이다. 즉 중화(中華)란! 중국인(中國人)이 자국(自國)을 부를 때에 쓰는 미칭(美稱)인 것이다.
 
지나(支那)라는 것은 주로 외국인이 중국을 부를 때 사용하는 것으로서 그 유래는 진시황(秦始皇)의 건국한 진(秦)에 있다. 이 국명(國名)이 주변 제국(諸國)으로부터 구주(歐洲)에 전해져서 지금도 중국이라 부르지 않고 진(秦) 어원으로 하는 호칭을 쓰고 있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중국인들은 자국의 문화가 도덕(道德)도 재능(才能)도 다른 나라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우수한 성인(聖人)이 황제(皇帝)가 돼서 유용(有用)한 기술을 발명해 미개의 인간과 사회를 교화(敎化)해 인간의 물질적 정신적인 생활을 창조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이가 바로 삼황오제(三皇五帝)라는 것인 양 말하는데 이는 다 우리의 실재선조(先祖)로 전설도 중국의 조상도 아니다. 우리의 황제와 우리의 제왕(帝王)을 그들이 전설로 말하는 것뿐이다.
 
상고시대는 인간의 수는 적고 야수(野獸)가 많아 호랑이와 독사와 용(龍)과 같은 괴물이 들끓고 있었다는 전설의 시대이기도 하다. 때문에 전설이 많이 나오는데 중국은 삼황오제(三皇五帝)를 전설(傳說)로 포장해 중국사에 가져다가 자기들의 조상이라 전설화(傳說化)하고 있다.
 
한편 이때의 인간은 먹는 것으로는 주로 패류(貝類)였다. 이를 날로 먹기 때문에 때때로 위장을 상하게 해 위 병자(胃病者)가 끊이지 않았다. 이에 한사람의 성인(聖人)이 나타났는데 부싯돌을 쳐서 불을 일으키는 기술을 발명해 날 것을 익혀서 먹는 것을 주민들에게 가르쳤다.
 
또한 그들의 전하는 전설은 한 성인이 괴물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큰 수목위에 집을 지울 것을 생각하게 됐다. 주민들은 이 사람을 유0씨(有0氏)라고 부르고 왕으로 추대(推戴) 했다.
 
여기서 위병(胃病)은 낳았고 그 은혜를 높이기 위해 그를 수인씨(燧人氏)라 부르며 그를 왕위에 앉게 했다. 또 어느 설에 의하면 다른 성인(聖人)은 천체상의 성좌(星座)나 지상의 산하의 형세(形勢), 조수(鳥獸)의 털의 문양(紋樣)에 다라서 현재의 역(易)의 복(卜)의 기본인 팔괘(八卦)를 써서 신(神)의 의지를 읽어서 미래를 예지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포희씨(包犧氏)라고 불러져 왕으로 세워졌다. 또 다른 성인은 나무를 깎아서 밭을 일궈서 농업을 할 수 있는 것을 발명했기 때문에 신농(神農)이라는 이름의 왕이 됐다고 말해진다. 이와 같이 고대의 성인(聖人)은 많이 있으나 그 중에서 특히 이 세분을 뽑아서 이를 삼황(三皇)이라 부르고 중국역사상(中國歷史上) 최초로 황제의 위(位)에 올랐다고 생각하고들 있다.
 
중국의 전통적인 역사는 천지창조로부터 시작하지 않고 불쑥 삼황(三皇)이 다스리는 세계국가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따라서 이 성인들의 가르침은 인간이 아니었다. 복희(伏羲)도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정기(精氣)로 낳았다는 천제(天帝)의 아들로 태어 낳은 성인이었다 말하고 있다.
 
이는 인간이 아니라 천재의 족적(足跡)으로서 전설에 의하면 복희(伏羲)는 머리는 인간이나 몸은 비늘이 나와 있는 용(龍)과 같고 그 황후의 여와(女渦)는 인면사신(人面蛇身)이 돼있다.
 
이 반인반수(半人半獸)의 모습으로서 천신(天神)의 아들로서 지상에 나온 삼황(三皇)이 미개의 세상에 나타나서 인간의 생활기술을 발명했다는 기사도 실은 역사의 사실을 쓴 것이 아니라 고대의 전설에 따른 것이 중국의 역사의 왜곡에 하는 상투적인 수법인 것 같다.
 
이 시대에는 인간의 이성(理性)의 힘으로서 야만인(野蠻人)으로부터 문명이 됐다 하는 계몽주의적(啓蒙主義的)인 진보적 역사관(歷史觀)이 유행했기 때문이기도 하나 무엇보다도 우리의 상고사(上古史)를 전설화(傳說化)함으로 자기들의 역사로 위장(僞裝)시켜 쓰고 있다.
 
중국오제(五帝)의 신화와 중국민족의 형성
 
중국은 삼황(三皇)으로 복희(伏羲氏), 신농씨(神農氏), 여와씨(女渦氏)의 삼황(三皇)에 이어 오제(五帝) 즉, 황제(黃帝), 정욱(정頊), 곡(嚳), 요(堯), 순(舜)이라는 다섯의 성인(聖人)의 왕(王)이 계속해서 천하(天下)의 왕이 됐다고 하나 이 오제(五帝)도 우리선조(先祖)로 동이족이다.
 
오제(五帝)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면 첫째로 들 수 있는 것이 황제(黃帝)인데 이 황제는 염제(炎帝)와 싸워 이겼기 때문에 황위(皇位)에 이르렀다 하는데 그 슬하에 25의 자식이 있었다.
 
이 중 14자식이 각기 다른 성(姓)을 가진 부족(部族)의 시조(始祖)가 됐다고 하고 있다. 황제(黃帝)는 황제(皇帝)로 하늘의 상제(上帝)가 지상에 내려 왔음에서 후에 그 자손이 몇 개의 부족으로 나눠져서 중국에 각지에 살고 여러 나라를 세웠다는 것이 전설의 원래의 의미이다.
 
이는 중국한족(漢族)도 황제(黃帝)의 후손이라면 우리민족과 공통의 조선(祖先)을 가진 것이다. 중국인은 황제(黃帝)를 민족공동체의 조선(祖先)으로 믿고 황제의 아들이라고 자칭(自稱)했다.
 
그러나 이것은 중국이 삼황오제를 조작한 것으로 중국인은 우리와 같은 동족(同族)이 아니다. 그런데 황제(黃帝), 전욱(전頊), 제곡(帝嚳), 제요(帝堯), 제순(帝舜)은 중국인의 선조로 모셨다.
 
그리고 특히 요(堯)와 순(舜)에 대해서는 추켜세웠다. 중국학문의 기초를 둔 공자(孔子)가 편집 한 [상서(尙書)]의 경전(經典)은 이 두 제(帝) 즉 제요(帝堯), 제순(帝舜)을 추앙하게 꾸미었다.
 
여기서 공자는 중국의 가장 전통의 역사는 성인황제(聖人皇帝)인 요(堯)와 순(舜)의 어세(御世)로부터 시작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 요순(堯舜)도 고조선의 제후국(諸侯國)일 뿐이다.
 
공자는 어떻게 해서든지 중국을 높이려 했다. 그러나 환국시대부터 고대에 걸쳐서 중국대륙을 지배해 환국 배달국 후에도 고조선의 대제국과 예맥, 부여, 고구리, 백제, 신라가 지배했다.
 
중국의 사학자 임혜상(林惠祥)은 ‘중국민족사’ 상권 제5장에 이르기를 “한족(漢族)이 중국에 들어오기 이전에 중국의 중부와 남부는 본래부터 배달 동이(東夷)겨레인 구려, 즉 묘족이 살고 있었는데 한족(漢族)이 이주(移住)해 들어온 뒤부터 점차적으로 서로 접촉 했다‘고 했다.
 
당시 중국대륙의 80%가 우리 배달제국(倍達帝國)의 영역이고 중국은 20%에 불과 했다고 하고 있다. 즉 환국은 대륙과 유라시아를 아우르는 동서가2만 리요, 남북이5만 리로 고대 인구가 1억8천만의 대국이었고 이후 배달국에 이어졌다.
 
또한 배달국 역시 당시중국대륙의 80%지배한 대국이었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의 중국대륙의 지배자로 우리 역사무대가 한반도(韓半島)가 아닌 대륙(大陸)인 것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중국의 저명한 사학자인 서량지(徐亮之)박사는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에서 “은(殷)과 주(周)나라 이전 은주(殷周)시대까지도 동이(東夷) 즉 배달민족(倍達民族)의 분포를 알 수 있다.”
 
“현재 중국의 산동성, 하북성, 발해연안(渤海沿岸)과 하남성의 동남부지역과 강소성의 서부와 북부지역, 안휘성의 중북부지역과 호북성의 동부 및 요동반도와 조선반도를 포괄한 실로 광대한 지역이고 그 중심지는 산동반도(山東半島)였다”고 말했다. 공자가 쓴 서전이 문제이다.
 
사학자들은 요전(堯典), 순전(舜典)을 기타, 다른 고전(古典)과 비교해서 보면 미개한 상태의 당시 중국사회에 있어서 중국이 내세울 것은 전무한 상황으로 의문점이 많음을 지적한다.
 
공자(孔子)는 요순(堯舜)은 덕망(德望)에 의해서 중국전토를 통치한 높은 인격을 가진 제왕(帝王)이라 내세우나 요전(堯典), 순전(舜典)을 여러 고전과 비교해보면 중국부족의 조신(祖神)을 중국은 신계도(神系圖)에 넣어서 삼황의 혈통화(血統化)하고 있는데 이는 다 허구(虛構)이다.
 
고대당시의 강대한 제국(帝國)은 배달국에 이어 홍익인간을 이념으로 제후국을 다스린 선진국 고조선(古朝鮮)이 유일하다. 중국은 이 당시의 상황을 거의 현재의 중국본부에 상당하는 광대한 지역에 걸쳐서 통일정치(統一政治)를 한 것같이 느끼게끔 쓰고 있으나 모두허구일 뿐이다.
 
공자의 요전(堯典) 우공편(禹公篇)의 날조
당시 고조선대제국은 모든 체제를 갖춘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행정적으로나 천문 역학 등 선진제국(先進帝國)으로 당시 모든 부족국인 백수십의국가를 제후국화(諸侯國化)해서 통치했다.
 
중국은 신화(神話)로부터 인간역사에의 변형(變形)이 아주 고도의 형식으로 되게 하는 왕조국가(王朝國家)의 역사기록과 같이 외관(外觀)을 보이고 있는 요전(堯典)도 정독하면 씨족사회(氏族社會)의 미개사회(未開社會)인 것과 미개상태(未開狀態)를 반영(反映)한 기사를 볼 수 있다.
 
공자가 살았던 2500년 전의 중국은 문화라 할 만한 것이 전혀 없고, 모든 문화의 뿌리가 동이족에서 나온 것뿐이었다. 그런데 공자는 이해 할 수 없는 날조의 기록을 하고 있음을 본다.
 
중국에 있어서 요전(堯典)은 성인황제(聖人皇帝)의 이상적정치(理想的政治)를 나타내는 성전(聖典)으로서 지금도 중요한 의의(意義)를 갖는 책이라며 우공편(禹公篇)을 대단히 중요시 한다.
 
순(舜)임금으로부터 치수를 명받은 신하 우(禹)가 크게 성공해 천하를 9주(州)로 나눠서 공
납제(貢納制)를 한 것을 쓰여 지고 있다. 이것은 현재의 통일정치를 한 것 같이 느끼게 한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면 그렇지 아님을 알 수 있다. 공자는 우공(禹公)이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지리적 지식에 맞추어 지리지(地理誌)의 전형(典型)으로서 지리학(地理學)의 기본(基本)이 됐다고 말하며 5400Km 넘는 황하와 6300Km나 되는 양자강과 한수(漢水) 회수(淮水)의 급물살 속에서도 어려운 토목공사를 했다고 하고 있으나 현대중장비로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공자는 당시 홍수에 의해서 황폐한 대륙의 토지를 인간이 거주 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든 우공(禹公)의 공적은 위대했기 때문에 그를 따르는 주민이 왕으로 세워서 하왕(夏王)이라는 세습적 왕조(王朝)가 성립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서전(書典)기록도 허구임을 말해준다.
 
중국민족을 구성하는 제민족의 갖고 있는 신화, 전설을 현실의 역사화한 이런 고전(古典)은 중국철학의 원천으로서 후세의 유교(儒敎)에 큰 영향을 주고 있기에 그 의미에서 중요시하나 이를 그대로 역사에 나타내면 믿을 수 없는 오류(誤謬)에 빠지기에 주의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고전의 핵(核)이 되고 있는 신화(神話), 전설(傳說)의 연구는 최근장족(長足)의 진보를 했으나 신화학자(神話學者)들의 입장에 의한 해석은 틀리기 때문에 아직 따라야 할 통설은 없다.
 
이러한 전설이 아니라 확실한 역사기록을 알려고 해도 기록된 것은 일반적으로 그 민족의 기원(起源)으로부터 아주 뒤에야 사실이 밝혀지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아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원시적인민족의 옆에 더 오랜 문명국(文明國)이 있어서 그간에 교섭이 있었다면 그 문명국의 역사에 그 원시민족의 상태가 쓰이는 경우는 있다. 그런데 상고사(上古史)가 없는 중국에서 난무하는 이러한 전설을 역사라고 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기에 이를 역사라 할 수 없다.
 
중국은 동북공정 후 고구리(高句麗)에 관한 논문만도 400이 넘는 논문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몇 만(萬)의 논문이 나와도 이는 논문이라 할 수 없고 역사사실이라 할 수도 없는 것들이다.
 
역사는 사실에 입각해서 거짓 없이 제대로 쓰여 진 역사만이 역사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의 고대국가에 관한 역사나 중국민족에 관해서도 일괄적(一括的)으로 말 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쓰여 진 중국역사가 믿을 수없는 것이기에 고고학자의 지상의 발굴과 지금 중국민족 체형에 관해서 인류학자의 연구 지하에서 발굴되고 있는 고대인의 골격과 문화유물 등을 참고로 문자에 쓰여 지지 않은 중국의 최고(最古)시대를 재구성하는 길 밖에 방법은 없는 것 같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再考證 韓國思想의 新發見’.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국가형성의 사회사’.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智勝, ’우리上古史‘-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황순종,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사람과 북방주민들’. 반재원, ‘鴻史桓殷’. 대야발 원저 ‘단기고사’. ‘단군과 교웅-단군의 호적등본’. 권진규 ‘조선사’. 오재성, ‘조선상고사에 한반도 상고사가 없다.’ ‘高句麗史(고구리사)’, ‘우리(右犂)의 歷史는? 리(犂:東夷)歷史 쇠集’ ‘校勘 十八史 우리역사(東夷傳)’.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윤기,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南帝 ‘命理속의 哲學’.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二十一世紀出版社集團, ‘山海經’. 大連出版社, ‘行走 大黑山’.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石井進外, ‘詳說日本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 ‘大王から天皇へ’. 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の成立’. 上井久義, ‘日本古代の親族と祭祀’. Georges Duby : L'HISTOIRE CONTINUE, 松村剛 譯 ‘歷史は續く’. 坂本泰良,‘明治維新から現代へ’. 劉泳,海燕,‘赤蜂博物館’. ‘各國別 [世界史の整理] 三省堂發行’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 世界史史料集’,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石井進, 笠原一男, 兒玉幸多, 笹山晴生, ‘詳說日本史’. 稻垣泰彦, 川村二郞, 村井益男, 甘粕 健 共著 ‘日本史’. 西東社出版部編 ‘日本の古墳, 古代遺跡’ .西島定生 護雅夫, 木村常三郞, 猿谷 要 編著, ‘世界歷史の基礎知識’.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貝塚茂樹, ‘中國の歷史’上.中,下. 吉川幸次郞, ‘漢の武帝’.외 다수(多數)의 서책(書冊)을 참조(參照)하고, 본문(本文)을 인용(引用)했음을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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