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가장 중요한 모적은 우리들의 현재의 입장에서부터 미래를 바로보고 나아가기 위해서 과거를 제대로 아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역사는 중국과 일본의 조작 왜곡에 그대로 추종하는 우리나라 식민사관자들에 의해 우리역사가 뒤집혀 져 있어서 말이 아니다.
이로 인해 우리들의 가치관은 다대수 국민 거의가 물질적 욕구와 출세욕으로 노예적인 근성이 만연돼 거시적이지 못하고 국가공동체 의식이나 연대의식은 찾아 볼 수 없고 나만 돈 벌고 출세하면 그만이다. 라는 풍조가 만연 돼 국가장래를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됐다.
한편 역사를 배우는 경우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현재의 입장에서부터 미래를 제대로 보기위해서는 현재에 투영(投影)된 과거를 아는 것이 매우중요한데 지금 우리나라역사의 교육은 열등의식·패배의식을 조장하는 ‘식민사관’의 교재로 역사를 잘못 가르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러한 것을 바로 하기 위해서는 현재 자신의 입장이나 문제의식이 명확히 하는 것이 요구되고 있다. 그것도 우리역사에 관한 정확한 지식의 습득과 역사사상(歷史事象) 상호간(相互間)의 관련성을 체계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필요한데 우리는 아랑곳없이 너무 거리가 있다.
다시말해 기본적 사항이나 중요한 사항을 언제나 연관성과 발전과정을 통해서 역사적인 관계를 고려하고 합리적으로 그것도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고증을 통해서 이해하고 가는 것이 중요한데 오로지 조선총독부의 조선사편수회의 왜곡역사만을 가르치고 있는 것은 문제다.
그런데 중국인은 일방적으로 인류의 종주국이라 자처하며 타민족을 신복으로 간주하는 전통이 있다. 이런 중국인들마저도 우리역사가 대륙에 있었음을 지울 수 없어 기록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식민사학을 하는 자들은 이를 모르고 있는 것인지 거짓역사를 가르치고 있음은 비극이다.
우리나라 학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미시적(微視的)연구만 있고 거시적이지 못하다는 평을 들은 적이 있다. ‘전공에 갇힌 한국 학자들 큰 흐름 못 봐’라는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역사 연구하는 학자 중에는 몇 분을 제외하고는 틀 린 말이 아닌 듯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우리역사가 어찌해서 반도 안에 가둬두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필자가 17년간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지내오면서 이해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우리역사는 대륙의 역사이지 한반도 역사가 아니다. 지금 한반도도 두 조각이나 있으나 반드시 다물(多勿)할 때가 오리라 본다.
오늘은 우리민족이 대륙의 주인임은 물론 중국사서에서조차 우리민족 영역(領域)이 대륙과 반도(半島)까지 우리영토이고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 왜(倭)가 대륙에 있었음을 밝히려 한다.
경주 동 신라는 고구려 제후국으로 503년 독립했다
우리역사는 1만년이 넘는 역사다. 이 1만년 가운데 거의가 우리민족은 아시아 대륙을 지배하며 살아온 것이 입증되고 있다. 중국의 양심적인 학자들도 고대 우리나라영역이 80%가 우리 민족의 영역이고 여기에 나라를 세우고 지배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할 것은 고구려(高句麗) 신라(新羅) 백제(百濟) 가야(伽倻)가 한반도에는 없었고 대륙에 있었다. 한반도에는 낙랑국(樂浪國)과 고구려의 속국(屬國)이나 다름없는 동신라(東新羅=干新羅)가 있었을 뿐이다. 이 동신라는 왕이 아닌 칸(干)이 다스린 나라이었다.
칸(干)은 고구려의 지방 지도자(指導者)이고 당시 한반도는 고구려가 지배하고 있었다. 이 칸 신라(干新羅)는 지증왕(智證王) 때인 503년에 독립국가가 돼서 936년 까지 지속한 것이 신라다. 그 이전의 신라는 즉, 동 신라(東新羅=干新羅)라는 칸(干)이 다스린 신라다.
즉 삼국시대에 한반도에는 고구려 칸(干)의 땅이었다가 서기503년 신라가 독립(獨立)해 신라라 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광개토태왕비와 진흥왕비가 입증하고 있다.
지금 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는 거의가 다 왜곡(歪曲)돼서 이런 사실을 부인하려고하나 당서(唐書, 卷 二百二十)과 신라(新羅) 지증왕(智證王) 순수비(巡狩碑)등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뒤집혀진 역사만을 배우고 익혀 온 우리나라 국민들은 아직도 이런 역사왜곡의 횡포를 그냥 보고만 있으니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를 그냥 볼 수만 없는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나라의 영토는 대륙의 80%를 차지하고 중국대륙 뿐만 아니라 유라시아 까지도 지배 했다.
중국의 역사학자 임혜상(林惠祥)이 그의 저서 [중국민족사(中國民族史)]에서 말한 “주(周)나라 성왕(成王)때인 서기전 12세기에도 중국(中國 : 지나(支那)의 영토가 가장 좁았었다.”는 것은 사실로 중국도 다 아는 사실인대도 유독 반도식민사관자에게만 왜 모르는지 알 수가 없다.
학자는 국가와 민족에게 지울 수 없는 죄악을 저지르는 일들을 해서는 아니 된다. 지금의 21세기에서는 거짓이 통하지 않는 국제사회다. 세계석학들도 인정하는 사실을 숨길 수 없다.
우리는 상고시대(上古時代)부터 고대(古代)의 우리영역(領域)은 대륙과 한반도(韓半島)까지가 우리 영역(領域)으로 돼 있고, 광개토태왕비(廣開土太王碑) 말고도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서(史書)’등도 서화(西華)에서 반도까지가 동이(東夷)의 영역(領域)이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 지역에서 발굴되는 빗살무늬토기와 흑도(黑陶)까지도 일치하고 있는 것은 이를 말해주는 것이다. 환국과 배달국 시대에는 오늘과 같은 기록이 없어 구전(口傳)으로 전해져왔다.
그러나 한자가 발명되면서 배달국과 구리(九黎)시대는 기록이 많지 않았으나 문자의 발명은 역사시대를 열어 광개토태왕시대에는 사서(史書)와 비문(碑文)이 있기 때문 잘 밝혀지고 있다.
삼국사기에 서신라(西新羅), 동신라(東新羅) 기록들
서(西)신라와 동(東)신라에 관한기록은 당영호징신라국기(唐令狐澄新羅國記)와 거칠부국사(居柒夫國史)에서 볼 수 있다. 즉, 신라본기(新羅本紀)에서 당영호징신라국기(唐令狐澄新羅國記)에 기록은 진흥왕(眞興王) 37년과 진덕왕 8년과 경덕왕(景德王) 14년 3번이나 기록 돼 있다.
즉, 거칠부국사(居柒夫國史)에서는 진흥왕(眞興王) 96년 한번만 기록 돼 있는데 분명히 신라(新羅)가 대륙의 서신라(西新羅)와 반도의 동신라(東新羅)=칸(干)신라가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신라(新羅)가 대륙과 반도에 있었다는 것은 나침반(羅針盤)과 순수비(巡狩碑)에서도 이를 볼 수 있다. 대륙의 서신라(西新羅) 문무왕(文武王) 9년에 자석(磁石)을 당(唐)에 보낸 기록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대륙 신라 문무왕(文武王) 12년 래주 사마(萊州司馬)와 침(針)을 보냈다는 기록이다. 이 침(針)은 신라(新羅)의 침반(針盤)이며 이것을 줄여서 나온 말이 나침반(羅針盤)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서신라(西新羅) 문명사(文明史)는 쇠(鐵) 노포(弩砲), 나전칠기(螺鈿漆器), 신라면(新羅綿=비단)을 말하는 것이다. 중국의 비단이라는 것은 신라면(綿)에서 유래 하는 것이다.
우리민족은 당시에도 모든 면에서 당(唐)보다 앞서 있었다. 서신라는 앞선 문물을 당 뿐만 아니라 대륙에서 동으로 흘러온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들은 다 서신라(西新羅)의 문화유산이다.
순수비(巡狩碑)는 창녕, 북한산, 황초령 마운령에 있다. 이것은 바로 반도신라인 동신라(東新羅)=칸(干) 신라의 기록이다. 이 동서(東西)를 하나로 보는 반도식민학의 말은 잘못 된 것이다.
동서신라는 통치자 칭호(稱號)에서도 판가름된다.
통치자의 칭호는 왕신라(王新羅)=서신라(西新羅)와 칸신라(干新羅)=동신라(東新羅)에서서도 신라가 대륙과 한반도에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신라본기(新羅本紀) 지중 마립한(麻立干)서중에서 신라 왕 중에 거서한(居西干)이라는 이가 한분, 차차웅(次次雄)이라 일컫는 이가 한분, 이사금(尼師今)이라 일컫는 이가 열여섯, 마립한(麻立干)이라 일컫는 이가 넷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제왕연대력(帝王年代歷)에는 다 어느 왕이라 일컫고 거서한(居西干)등은 말하지 않았다. 이는 최치원이 고구려 사람으로 신라에 관심이 없음으로 사료 된다.
그러나 좌전(左傳)과 한서(漢書)와 초어(楚語)의 누어토(누於兎) 흉노어(匈奴語)의 탱리고도(撑리孤塗)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곧 신라만 하더라도 대륙의 서신라와 반도에 동신라가 있었다. 이 동신라는 아래와 같이 칸(干)에서 왕이 됐다고 하고 있다.
즉, 첫째는 거서한(居西干)→ 이사금(尼師今)→ 마립한(麻立干) → 왕(王)으로 칭(稱)했다. 이 당시 고구려의 지방통치자(地方統治者)에 한(干-칸)이 있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동 신라는 고구려의 한(干-칸)이었다. 즉, 고구려의 한 지방을 통치하는 한(干-칸)이었던 것이다.
둘째는 모두 왕(王)이라 칭한 신라(新羅)가 있다. 양원왕 때 환도성(丸都城) 한(干-칸)의 나전칠기(羅傳漆器)가 나전칠기(螺鈿漆器)로 신라가 전한 칠기(漆器)를 달리기록 하고 있는 것이다.
504년의 고구려 본기(本紀)와 위서(魏書)에 의하면 자기제품(磁器製品)은 섭라(涉羅)에서 생산 되는데 [섭라(涉羅)는 백제에 병합됐다]고 했다. 그런데 중국은 지명을 제멋대로 바꿔놓는다.
백제의 의자왕은 대륙에 있었음에도 마치 한반도에 있는 것인 양 대륙에 있는 모든 지명(地名)을 반도(半島)로 옮겨 놓고 있다. 예컨대 부여(夫餘)가 내지성(奈智城)인데도 대륙에 있는 사비성(泗泌城)으로 둔갑시키고 있다. 충남 부여시, 부여박물관에 있는 사댁지적비(砂宅智積碑)는 부여가 사비성(泗泌城)이 아닌 내지성(奈智城)임을 밝히고 있다.
삼국사를 쓴 김부식(金富軾)시대에도 반도에는 알 수 없는 지명이 아차산(阿且山), 왜산(倭山). 도야성(刀耶城), 왕골령(王骨嶺)등 대륙에 있어야 할 지명 수백 개가 반도에 옮겨 놓고 있다고 하고 있다. 吳在成,‘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47면-김부식시대 알 수 없었던 지면 참조,)
신라(新羅志)에 삼국유명미상지분(三國有名未詳地分)이라고 4백에 가까운 수자를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신라(新羅志)에 기록된 삼국유명미상지분(三國有名未詳地分)은 대륙역사를 한반도로 왜곡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대만(臺灣)도 670년까지는 왜(倭)의 이주(夷洲)로 있다가 이후 대륙의 대변혁 때문에 왜(倭)의 일부였던 섬의 명칭은 대왜(臺倭-대와:Taiwan)로 불렀다. 지금도 국명(國名)은 중화민국(中華民國)이고 섬 이름은 타이완(Taiwan)으로 부르고 있다.
위에서 본바와 같이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伽倻)와 왜(倭)가 한반도가 아닌 대륙의 역사이며 신라역시 대륙에 왕의 신라인 서신라(西新羅)와 반도에 고구려의 제후국의 칸(干)이 지배한 동신라(東新羅)가 있었던 것이다. (吳在成,‘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42면~47면, 참조 인용).
이를 중국과 일본의 의도적으로 西新羅)와 칸신라(干新羅)=동신라(東新羅)가 하나만 있는 것 같이 조작해 한반도 안에 신라를 내세우나 신라는 대륙과 반도 있었다. 이를 숨길 수 없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再考證 韓國思想의 新發見’.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국가형성의 사회사’.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智勝, ’우리上古史‘-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吳在成,‘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조선상고사에 한반도 상고사가 없다.’ ‘高句麗史(고구리사)’, ‘우리(右犂)의 歷史는? 리(犂:東夷)歷史 쇠集’ ‘校勘 十八史 우리역사(東夷傳)’.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황순종,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사람과 북방주민들’. 반재원, ‘鴻史桓殷’. 대야발 원저 ‘단기고사’. ‘단군과 교웅-단군의 호적등본’. 권진규 ‘조선사’.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윤기,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南帝 ‘命理속의 哲學’.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二十一世紀出版社集團, ‘山海經’. 大連出版社, ‘行走 大黑山’.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石井進外, ‘詳說日本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 ‘大王から天皇へ’. 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の成立’. 上井久義, ‘日本古代の親族と祭祀’. Georges Duby : L'HISTOIRE CONTINUE, 松村剛 譯 ‘歷史は續く’. 坂本泰良,‘明治維新から現代へ’. 劉泳,海燕,‘赤蜂博物館’. ‘各國別 [世界史の整理] 三省堂發行’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 世界史史料集’,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石井進, 笠原一男, 兒玉幸多, 笹山晴生, ‘詳說日本史’. 稻垣泰彦, 川村二郞, 村井益男, 甘粕 健 共著 ‘日本史’. 西東社出版部編 ‘日本の古墳, 古代遺跡’ .西島定生 護雅夫, 木村常三郞, 猿谷 要 編著, ‘世界歷史の基礎知識’.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貝塚茂樹, ‘中國の歷史’上.中,下. 吉川幸次郞, ‘漢の武帝’.외 다수(多數)의 서책(書冊)을 참조(參照)하고, 본문(本文)을 인용(引用)했음을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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