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의 주역 한민족 유물(遺物)로도 입증된다

입력 2018-02-10 19:51:24

원문 링크

▲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고대국가와 고대문명의 탄생은 유구(悠久)한 1만여년에 걸쳐서 대륙에 전개된 우리의 역사를 모르고서 세계사(世界史)를 논(論) 할 수 없다. 광대한 아시아대륙에서 수많은 왕조(王朝)의 흥망(興亡)과 많은 민족의 걸어온 고대역사(古代歷史)의 그 중심에는 언제나 우리민족이 있었다.
 
그리고 역사는 어떠한 경우에도 그 근본으로부터 쓰지 않으면 아니 된다. 단지 역사관이 변화만이 동기가 돼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역사를 논함에 있어서는 지금 대륙에 대규모의 고고학(考古學) 발굴(發掘)에 의해서 선사시대와 고대의 유지(遺址)와 유물(遺物)은 이를 말해준다.
 
대륙의 역사는 환국과 배달국 고조선이 중심으로 전개됐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선사와 고대사의 분야에서는 이 많은 자료에 의해서 지난 지식은 전혀 무가치가 되는 것이다.
 
역사는 조작(造作)하고 왜곡한다고 역사가 되는 것이 아니고 왜곡역사를 연결만한다고 통사(通史)가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역사도 아세아대륙역사(亞細亞大陸歷史)와 5대문명이 주역이 누구였는가를 제대로 보고 인류사(人類史) 일반의 입장에서 보고 전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역사는 중국과 일본의 왜곡구조의 특질을 제대로 알고 그 유래에 따라서 이해하는 일이 요구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이 심어준 자학사학교육(自虐史學敎育)은 이제 접어야 한다. 오늘은 중국과 일본이 다 없애버린 사료(史料)에도 그나마 이삭을 주운 것만으로도 우리고대국가들이 대륙에서 타민족과 그들을 지배한 역사사실을 고증을 통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와 왜(倭)도 대륙국 이었다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 역사는 고구려(高句麗)의 계보(系譜)도 고주몽(高朱蒙)이 고구려의 시조(始祖)라 했으나 고주몽(高朱蒙)이전에 북부여(北(夫餘)의 5명의 왕이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1대가 해모수(解慕水), 2대 모수리(慕漱離), 3대 고해사(高奚斯), 4대 고우루(高于婁):고두막한(高豆莫汗), 5대 고무서(高無胥):소해모수(小解慕水)인데 고주몽은 6대가 된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고구려는 서기전 239년 ~ 서기 668년으로 907년간 존속한 나라라는 것이다.
 
또한 고구려의 평양(平壤) 및 장안성(長安城)은 한반도가 아니고 대륙의 하북성(河北省)에 있고. 모두 태행산맥(太行山脈) 동쪽에 있었다. 한반도 있었다는 것은 다 왜곡(歪曲)된 것이다. (위 지명은 唐書 卷, 二百二十 列傳, 史記 卷二 本紀 및 後漢書 八十五 參照, 引用)
 
또한 황해를 내해(內海)로 알던 광개토태왕(廣開土太王)이 다스렸다는 역성(力城)은 서화(西華)동쪽 이고 요(遼)의 동쪽이기도 하다. 또한 광개토태왕(廣開土太王)과 김유신(金庾信)의 활동무대역시 한반도가 아니고 대륙이었고 김유신의 주로 활동지역도 대륙의 대산(大山)이었다.
 
이것은 중국과 우리나라 재야학자들 간에서도 명명백백(明明白白)하게 밝혀지고 있고 우리 고대사를 연구해온 세계역사학자는 다 아는 상식이 되고 있다. 반도식민사학(半島植民史學)을 하는 자만이 중국과 일본의 왜곡한 것만을 알고 있기에 모르고 있을 뿐이다.
 
또한 백제의 한성(漢城)도 한반도가 아니라 대륙 황하유역(黃河流域)에 있었다. 원래 황하(黃河)의 명칭도 황하(黃河)는 한수(漢水), 진스(晉水), 면수(沔水)등으로 불렀다. 그리l고 서화(西華)동쪽 백제의 태진(態津=비성(肥城)이 엄연히 반도가 아닌 대륙에 있었음도 밝혀지고 있다.
 
이 백제는 삼국사(三國史 466)에 밝혀진 바와 같이 고구려와 같이 강대국(强大國)으로 오(吳) 월(越) 유(幽) 연(燕), 제(齊), 노(魯)를 백만 대군으로 그들을 제압하고 해양대국으로도 이름을 떨친 나라이었다. 아시아의 대국(大國)인 고구리(高句麗)와 백제(百濟)는 대륙의 강국이었다.
 
왜(倭)역시 서기전 50~서기 670년 까지는 일본열도가 아닌 양자강 이남에 있었다. 일본열도의 역사는 이를 숨기고 있으나 사기(史記 卷30)과 삼국지(三國志, 集解30) 위서(魏書 東夷43 47~48)에 나와 있는 기록을 숨기는 것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통치를 받았기 때문이라 본다.
 
후한서(後漢書, 八十五)에는 왜(倭=衛)가 한(韓)의 일부로 동북회계(東北會稽), 동남(臺灣) 서북담이(憺耳-광서성(廣西省), 서남주애(西南朱崖) 해남도(海南島) 사이에 있다고 기록 돼 있다.
 
이외에도 왜(倭=衛)가 양자강(揚子江) 이남(以南)에 있었다는 기록은 북사(北史 卷七十四 列傳), 남사(南史, 卷七十九 列傳)과 송서(宋書 卷九十七 列傳), 구당서(舊唐書, 二百九十九上 列傳)등 많은 문헌이 이를 입증해 주고 있다.
 
왜(倭=衛)가 양자강 이남에 있음을 밝힌 지도(地圖)도 송(宋)나라가 간행(刊行)한 우적도(禹迹圖)에 명백히 왜(倭=衛)가 일본열도가 아니라 대만(臺灣=夷洲)과 남월(南越)지경임을 밝혀주고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도 한반도(韓半島)기록은 없다.
 
    
일연(一然) [삼국사]와 [남제서(南齊書)] 무시(無視)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쓴 일연(一然)은 우리나라역사를 제대로 연구하지 않아 [삼국사(三國史) 권(卷)46]과 [남제서(南齊書) 권(卷)58]의 고구려 백제가 오(吳) 월(越) 유(幽) 연(燕), 제(齊), 노(魯)를 백만 대군으로 이들 나라를 다물(多勿)해 통치했음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삼국사(三國史) 권(卷)46]에 고구리(高句麗) 백제(百濟)가 남(南)으로 오월(吳越) 북(北)으로 유(幽) 연(燕), 제(齊), 노(魯)를 다물(多勿)해 통치(統治)했음 입증하고 있음에도 이를 모른다는 것은 역사연구를 제대로 하지 않았거나 역사왜곡을 기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어쩌면 우리역사를 한반도에 국한(局限)시키려고 한 것이 아닌가! 의문이 가는 점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역사서가 아닌 남제서(南齊書)도 대륙이었음을 입증(立證)하고 있는 것이다.
 
[삼국사(三國史)권(卷)46]과 [남제서(南齊書)권(卷)58] 역사를 제대로 연구해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이에 관한 연구는 이미 우리역사연구회 재야(在野)학자들에 의해서도 밝혀지고 있다.
 
[삼국사(三國史) 권(卷)46]과 [남제서(南齊書) 권(卷)58]의 기록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에 동조하는 반도식민사관자들의 이를 연구해서 과연 우리가 오(吳), 월(越), 유(幽), 연(燕), 제(齊), 노(魯)를 고구려 백제가 다물(多勿)했는지를 확인하면 풀릴 문제다.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역사는 반도(半島)가 아니다 대륙의 주인이 우리임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우리들 누구나가 알아야 할 것은 지명(地名)은 변경할 수 있으나 제후국(諸侯國)의 국명(國名)이나 그 위치(位置)가 지나(支)那)에서 한반도(韓半島)로 이동(移動)할 수가 없는 것이다.
 
백제가 패망할 때의 기록은 [삼국사] [삼국유사] [신구당서(新舊唐書)]가 모두 동일함으로 오(吳), 월(越), 유(幽), 연(燕), 제(齊), 노(魯)가 한반도에 있었는지! 아닌지 알아보면 과연 우리나라가 반도에서 생성하고 소멸 했는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진정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고려(高麗)와 조선조(朝鮮朝)때의 모화관(慕華觀)인 중국관(中國觀)을 근본부터 바꿔야 한다. 우리나라의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럴 수가 없는 것이다.
 
반도식민사관의 뇌 속에 있는 중국 이미지는 거의가 ‘사기(史記)’ ‘삼국지’ ‘십팔사 략(十八史 略)’ 등 고대의 역사서(歷史書)와 ‘논어(論語)’를 비롯해서 ‘사서오경(四書五經)’에 젖어 있음인데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인공지능의 21세기의 오늘을 제대로 조명할 일이다.
 
[삼국사(三國史) 권(卷)46]과 [남제서(南齊書) 권(卷)58]의 기록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대륙이다. 백제도 한반도남쪽 서남부에 있지 않았다. 백제도 처음부터 황하유역(黃河流域)에 있었다.
 
우리나라가 대륙에 있음을 입증하는 사서(史書)
 
우리고대국가가 대륙에 있었다는 기록은 [삼국사(三國史)]와 [남제서(南齊書)]외에도 중국의 사서(史書)인 ‘한서(漢書)’ ‘위서북사(魏書北史)’ ‘신구당서(新舊唐書)’ ‘당서(唐書)’ ‘후한서(後漢書)’등에도 이를 뒷받침하는 기록들을 볼 수 있다.
 
즉 대륙의 하남성, 하북성, 강서성, 안휘성(安徽省), 산서성, 등의 서화(西華), 덕안(德安), 항성(項城), 숭산(崇山), 석성(石城), 석문(石門), 태원(太原), 용도(甬道), 은산(銀山)등의 많은 지명에 우리나라가 지배(支配)한 지역(地域)들이며 이곳에 유적과 유물이 있음도 확인할 수 있다.
 
중국25사(史), 동이(東夷)나 삼국유사(三國遺事)기록은 서화(西華) 즉, 덕안(德安), 항성(項城), 진성(晋城), 고평(高平), 태원(太原), 은산(銀山)의 동쪽 인 강회(江淮)지역에만 광복신라(光復新羅)와 백제(百濟)가 있음도 밝히고 있다.
 
또한 삼국사기에는 서화(西華)동쪽의 대륙의 왕의신라(王新羅)와 반도에 칸신라(干新羅)가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또한 [당영호징국기(唐令狐澄新羅國記) 신라국기(新羅國記)]와 [거칠부 국사(居柒夫 國史)]의 기록(記錄)을 남겨서 두 개의 신라(新羅)가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한편 [삼국유사]나 [중국25사(史) 동이(東夷)]기록에서는 요(遼)의 동쪽(동명(東明), 서화(西華), 항성(項城), 덕안(德安) 동쪽)에 백제 수도 한성(漢城)과 웅진(熊津)이 있다고만 기록하고 있다.
 
[삼국사기]는 한성(漢城)에 대한 고고학적 기록과 주위 지명을 남겼다. 즉 한수(漢水)와 하수(河水)의 황하(黃河), 숭산(崇山)과 연와(煉瓦)로 쌓은 성터와 (河水)의 제방(堤防)이 있어 황하(黃河)에 백재 한성(漢城)이 있음을 분명히 했고, 웅진(熊津)은 대산(大山=태산(太山=泰山) 의 서 쪽에 있음을 분명하게 기록 하고 있다.
 
또한 [중국25사(史) 동이(東夷)]에서 고구려수도가 요(遼)의 동쪽에 있으며 별도한성(別途漢城)이 있다고 했는데 평양성벽각자에서 평양이 고구려 한성(漢城)이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은 진(晋)때의 삼국지나 송(宋)때의 후한서(後漢書)에는 부여, 고구려 동옥저(東沃沮), 읍루(挹婁), 예(濊), 한(韓), 왜(倭)의 위치배열(位置配列)도 기록돼 있으며 위치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명도 있음을 본다.
 
대륙 동이계(東夷系) 국가위치는 과연 어디인가
 
진(晋)과 송(宋)때 삼국지(三國志)와 후한서(後漢書)에 배열된 것을 보면 제일 북쪽에 부여가 있고 그 남쪽에 고구리(高句麗)가 있고 고구리 남족에 예(濊)가 있고 그 남쪽에 한(韓)이 있고 한(韓)의 남쪽에 왜(倭)있으며 夫餘의 서쪽에 선비(鮮卑)가 있고 그 동쪽에는 읍루(挹婁)가 있고, 고구려의 동족에는 옥저(沃沮)가 있고 예(濊)의 동쪽에는 낙랑군(樂浪郡)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중국과 일본은 11세기 이전 신라 백제 왜(倭)가 반도 쪽에 있다고 왜곡하고 있으며 5세기 이전의 신라 백제 왜도 반도 쪽에 있다고 하고 있으나 이는 다 거짓으로 진실이 아니다.
 
여기서 좀 더 이를 다루지 않을 수 없어서 밝히는 것은 당시 대륙의 동이(東夷)의 각국 위치(位置)를 보면 제일 남쪽이 회계(會稽), 담이(擔耳=(南越), 이주(夷洲=臺灣)의 왜(倭)가 있었다.
 
그리고 대륙의 한(韓)에서는 비단과 목화를 사용했고 예(濊)는 산서성(山西省)의 연(燕), 산동성(山東省)의 제(齊)사이에 창해지역(滄海地域)에 있으며 고구리(高句麗)는 북평(北平), 어양(漁陽), 상곡(上谷), 태원(太原) 가까이에 있으며 옥저(沃沮)는 해주(海州)에 있다고 했다.
 
이것은 동이 각국이 서화(西華)의 동쪽에서 요하(遼河)의 해주에 있다고 했는데 이것은 동이각국(東夷各國)이 서화(西華)의 동쪽에서 요하(遼河)의 서쪽 까지 대륙에 기록 돼 있지, 반도에 국가가 있다는 기록은 없다. 단지 {고구려 별도한성(高句麗別都漢城(현 平壤)} 자칭 武康王(현 益山)의 기록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원(元)나라 때 쓴 요사(遼史)의 일부에 滿洲와 반도의 신라(동신라(新羅)=干新羅)를 기록했을 뿐, 9세기 이전에는 서화(西華)의 동쪽에서 요하(遼河)까지만 기록 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중국(中國25史) 동이(東夷)기록에는 왜(倭=衛)도 광개토태왕(廣開土太王) 이전부터 양자강 이남에 있었다. 이를 반도내(半島內)에 넣고 있는 현재우리역사는 다 왜곡(歪曲)된 것이다.
 
이 당시 인물로서 삼국지의 소강(小康), 사기(史記)의 비미호(卑彌呼), 노자(老子), 후한서(後漢書)의 서복(徐福)은 모두 후한서(後漢書) 이전(以前)에 기록(記錄) 돼 있는 인물(人物)들이다. 우리는 역사의 이 사실들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너무나 황당한 우리나라 역사왜곡에 더 이상 매달려서는 국가의 장래가 앞날을 기대 할 수 없는 경지로 추락 할 뿐이기에 온 국민은 제대로 알고 우리나라 역사를 바로 세우는데 정부와 학계는 물론 온 국민도 힘을 모아야 할 때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吳在成,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P49~54. ‘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조선상고사에 한반도 상고사가 없다.’ ‘高句麗史(고구리사)’, ‘우리(右犂)의 歷史는? 리(犂:東夷)歷史 쇠集’ ‘校勘 十八史 우리역사(東夷傳)’. 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再考證 韓國思想의 新發見’.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국가형성의 사회사’.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智勝, ’우리上古史‘-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황순종,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사람과 북방주민들’. 반재원, ‘鴻史桓殷’. 대야발 원저 ‘단기고사’. ‘단군과 교웅-단군의 호적등본’. 권진규 ‘조선사’.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윤기,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南帝 ‘命理속의 哲學’.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二十一世紀出版社集團, ‘山海經’. 大連出版社, ‘行走 大黑山’.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石井進外, ‘詳說日本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 ‘大王から天皇へ’. 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の成立’. 上井久義, ‘日本古代の親族と祭祀’. Georges Duby : L'HISTOIRE CONTINUE, 松村剛 譯 ‘歷史は續く’. 坂本泰良,‘明治維新から現代へ’. 劉泳,海燕,‘赤蜂博物館’. ‘各國別 [世界史の整理] 三省堂發行’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 世界史史料集’,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石井進, 笠原一男, 兒玉幸多, 笹山晴生, ‘詳說日本史’. 稻垣泰彦, 川村二郞, 村井益男, 甘粕 健 共著 ‘日本史’. 西東社出版部編 ‘日本の古墳, 古代遺跡’ .西島定生 護雅夫, 木村常三郞, 猿谷 要 編著, ‘世界歷史の基礎知識’.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貝塚茂樹, ‘中國の歷史’上.中,下. 吉川幸次郞, ‘漢の武帝’.외 다수(多數)의 서책(書冊)을 참조(參照)하고, 본문(本文)을 인용(引用)했음을 밝힙니다.
 
이을형 필진페이지 +
후원하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0
좋아요
0
감동이에요
0
화나요
0
슬퍼요
0
댓글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