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고쳐놓은 김유신의 전장 ‘중원→한반도’

입력 2018-02-18 17:4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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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1978년 필자가 10여 년간 유학하고 일본에서 귀국하기 전 당시 국사편찬위원장이시던 최영희(崔泳禧)선생님이 일본에서만나 독도자료를 수집해 드리고 귀국한 후에도 자주만나 뵈오며 우리나라 역사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그 때의 대화 중 말을 오늘도 잊지 않고 있다. 필자가 “우리나라 역사가 이해 할 수없는 부분이 많다”고 했더니 선생은 우리역사는 “일본사람들에 의해 우리역사의 레일(rail)을 깔았기 때문에 맞지 않은 것이 많다”고 하셨다. 때문에 “우리나라역사는 민족사관(民族史觀)에 입각해 역사를 새로 정립(鼎立)해야 한다”고 하셨다.
 
지금 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 중 우리역사가 한반도에만 있었던 같이 말하는 것은 모두 거짓말이다. 중국사서에도 우리의 영역은 서화(西華) 항성項城) 동쪽에서 반도까지 하나의 민족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는 숨길 수없는 것이다. 반도에는 고구려 제후국인 칸(干)신라가 있었다.
 
그런데 대륙의 역사를 연구하지 않은 반도식민사학을 하는 사람들은 이를 부정하려고 한다. 이들은 무엇 때문에 어찌해서 이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중국과 일본의 거짓된 역사를 연구하면 할수록 그 사실이 드러나고 있는데도 없는 역사가 있다고 하고 있다.
 
이들은 장안(長安) 낙양(洛陽) 중심의 한족기록(漢族記錄)인 중국25사 동이(中國25史 東夷)기록을 숨기고 왜곡(歪曲)한 역사만을 신봉(信奉)하는 것은 정상(正常)이 아니다. 도대체 이들은 어느 나라 국민이고 누구를 위한 역사를 왜곡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중국 사서(史書)를 봐도 신구당서(新舊唐書)의 기록은 의자왕시대의 지명(地名)으로 항성(項城), 덕안(德安), 황산(黃山), 백마(白馬), 사비(泗沘), 제성(諸城), 동명(東明), 대산(大山), 박성(博城), 주류성(周留城) 등이 있는데 대륙 서화(西華)와 몽성(蒙城)의 남쪽에 항성(項城), 덕안(德安)이 있고, 그 나머지는 북 쪽에 있다고 했다.
 
이 지명들은 다 대륙에 있는 지명들이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삼국시대의 명장인 김유신(金庾信)장군의 전쟁터도 한반도가 아닌 바로 대륙 이곳에 있다. 위의 지명(地名)이 있는 서화(西華)동쪽의 동이전(東夷傳)에 신라(新羅), 백제(百濟), 왜倭=衛), 가라(加羅)도 한반도가 아닌 대륙에 있었음이 다 밝혀지고 있다.
 
반도식민사학(半島植民史學)을 하는 사람들이 제아무리 부정(否定)해도 중국25사(史)동이(東夷) 기록 등에서 동이국(東夷國)은 서화(西華)의 동쪽 요(遼)의 동쪽에 있는 국가의 기록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역사를 조선총독부가 ‘조선사편수회’를 만들어 계획적으로 조작 왜곡한 허구의 역사를 아직도 맹위(猛威)를 떨치고 있는 것은 정신 나간 사람들의 짓이다. 오늘은 중국사서에 기록된 조선은 반도가 아닌 대륙 서화(西華)를 중심으로 한 기록임을 분명히 밝히려고 한다.
 
국내지명으로 우리역사 규명 하지 못한다
 
우리의 역사는 대륙에서 시작하고 광활한 대륙을 지배했는데도 우리역사를 반도에 가두어 놓으려는 식민사관자는 이해 할 수 없는 짓들을 언제 까지 하려는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한 예로 지금까지 우리는 반도의 신라만을 배워 왔기 때문에 대륙과 반도에 왕이 다스리는 신라와 칸(干)이 거느린 두 개의 신라가 있었다고 하면 잘못된 역사만을 배워온 우리국민들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이는 이해 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事實)이다.
 
그리고 국민들은 압록강 두만강북쪽에 살면 무조건 여진족으로 보고 남쪽에 살면 조선족 또는 한민족이라는 사고는 이것이 반도사관(半島史觀)이다. 고구려(高句麗)와 발해(渤海)역사는 우리역사로 하면서도 만주에 살면 여진족이라고 하는 이들은 역사를 바로알고 말을 해야 한다.
 
우리역사는 환국(桓國)에서나 신시배달국(神市倍達國) 때나 고조선 때나 이후의 우리가 세운 나라들은 대륙과 떠나서 역사를 말할 수 없다. 삼국시대에도 우리는 대륙에 있었고 강성(强盛) 할 때는 강한 군대 배만을 보유하고 남으로 오월(吳越)을 정벌하고 북으로 유연제로(幽,燕,齊,魯)를 정복해 장안(長安)중심 국가들이 두려운 나라로 등장한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 한다.
 
또한 반도식민사관자들은 역사를 한반도내에 갔다 놓으려하는데 이는 가당치가 않다. 우리역사는 환국에서 배달국 예맥, 부여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 낙랑국 발해 고려, 조선, 대한민국은 물론, 사실은 왜(倭), 언(元), 금(遼), 청(淸), 금(金)도 우리나라 역사로 포함해야 할 일이었다.
 
반도식민관자들은 대륙의 우리역사를 반도 안에 갔다 놓고 우리 동족이라 할지라도 압록강 북쪽에 살면 여진족(女眞族)이라는 구분은 역사무지다. [삼국사(三國史 卷46]이나 [남제서(南齊書 卷58]의 지역을 한반도에서는 찾을 수 없다. 이 지명은 다 대륙에 있기 때문이다.
 
[삼국사(三國史 46]이나 [남제서(南齊書)58]의 기록은 고구려 백제가 유연제로오월(幽燕齊魯吳越)을 평정했다.(高句麗百濟全盛之時强兵百萬南侵吳越北撓幽燕齊魯爲中國巨蠹)고 기록 하고 있다. 이런 기록의 국명이나 지명이 한반도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국명과 지명은 반도에서는 찾아 볼 수가 없다. 그것은 이 오월유연재로(吳越幽燕齊魯)가 대륙에 있었기 에서다.
 
중국 신구당서(新舊唐書)의 기록도 의자왕시대의 지명(地名)으로 항성(項城), 덕안(德安), 황산(黃山), 백마(白馬), 사비(泗沘), 제성(諸城), 동명(東明), 대산(大山), 박성(博城), 주류성(周留城)등이 있는데 서화(西華)와 몽성(蒙城)의 남쪽에 항성(項城), 덕안(德安)들도 다 대륙의 지명이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반도가 아닌 대륙이었기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또한 고구려초기(高句麗初期) 한(漢)나라와의 서기49년 전투지역도 북평(北平) 어양(魚陽) 상곡(上谷) 태원(太原)이며 고구려 말기 서기654년 당(唐)나라와 전투를 한 곳도 용도 신선, 고대인성 은산(銀山)이 같은 지역인 하북성(河北省), 산서성(山西省) 북부에만 있었다.
 
백제도 반도가 아니고 대륙에 있었다.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 때의 지명도 한반도가 아닌 대륙이었다. 백제본기(百濟本紀)는 그 지명이 항성(項城), 동성, 잠산, 독산, 평원, 침현, 백마강(白馬江), 황산(黃山), 대산(大山), 동명, 덕안(德安), 주류성 제성(諸城)은 다 대륙에 있었다.
 
인구와 유적, 물품, 명절, 기상으로 본 우리영역은 대륙이었다.
 
반도사관의 사람들은 말도 아니 되는 황해 동쪽에 백제 신라 고구려가 있는데 한강북쪽에 고구려가 있고, 경기(京畿), 전라(全羅), 충청도(忠淸道)에 백제(百濟)가 있고 경상도(慶尙道)에 신라(新羅)가 있다고 하며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이는 우리역사의 무지가 하늘에 닿은 격이다.
 
고구려 초기의 고구려와 한(漢)과의 전투는 아예 가르치지도 않고 당(唐)과의 전투도 만주(滿洲)와 조선지역에서 이루어졌다고 하며 백제역시 의자왕의 백제가 반도(半島)의 공주(公州) 부여(夫餘)에서 패망했다고 가르친다. 참으로 못 말리는 사람들로 한심한 사람들이다.
 
당시의 상황을 보면 백제를 패망시킨 당(唐)나라 군대가 1차에는 13만이 침입했고 2차에는 40만 명이 침입했는데 당시 대륙의 백제인구는 76만호였다. 그런데 한반도의 인구는 명(明)나라초기까지도 6만호가 아니 되는데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하고 있다.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백제(百濟)가 있었던 당시 산동성(山東省)인구만도 77만호로, 백제 호수(戶數)에 가깝다면 의자왕이 다스린 백제는 제(齊)나라와 (魯)나라가 있는 지역(地域)이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도 대륙의 역사주역이 맥의 조상과 후예의 활동무대가 대륙이지 한반도가 아니다. 3천 년 전의 예맥은 고대부터 대륙을 1천 년간 정벌하고 정복해 대륙을 지배해온 역사를 중국과 일본의 반도식민사관자들은 다 숨기는데 우리가 대륙의 주인이었다.
 
반도의 인구는 이성계(李成桂) 태조가 조선을 세울 때만 해도 37만 1천여 명에 불과 했다. 역사를 바로 연구하고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제 조상(祖上)을 욕되게 하는 것은 패륜에 가깝다.
 
유물 유적도 다 대륙에 있고 대륙의 백제가 패망 후 그 유민들과 반도에 있었던 백제인(百濟人)이 반도에 세운 백제는 대륙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패망한 후다. 중국25사(中國25史)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등장하는 유물(遺物) 유적(遺跡)도 우리역사가 대륙이었음이 입증 된다.
 
동평에 있는 치우총(蚩尤塚) 곡부에 소호능, 몽성(蒙城)에 있는 기자총(箕子塚), 북망산에 있는 의자왕묘, 부여 융묘비 흑지상지묘비가 중국대륙의 유연제로(幽燕齊魯)가 있던 곳에 있다.
 
한편 당시 신라는 나전칠기(螺鈿漆器), 자석과 침(針) 나침반(羅針盤) 등이 대륙신라에서 생산되고 양잠(養蠶), 면(綿)생산지역이 고려이전부터 대륙의 신라 백제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다.
 
명절도 9월9일과 8월15일은 당나라와 일본에는 없는 신라고유의 명절(名節)이다. 중국에서는 당(唐)나라 이전에 만들어 졌다는 기록은 찾아보지 못한다. 또한 기상변화에 따른 홍수도 신라는 5월 이전에 홍수(洪水)기록이 많은데 한반도에서는 5월에 홍수(洪水)는 찾아 볼 수 없다.
 
또 신라는 11월에서 2월 사이에 신라수도에서 유행병이 많았다고 했다. 그런데 농경시대 한반도에는 추운겨울이기에 유행병이 유행할 수없는 혹한(酷寒)의 계절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식도 반도식민사관자들은 일식현상의 실현여부에만 관심이 있어서 그 지역을 모르고 있다. 7세기이전 삼국 일식집중관측지(觀測地)는 한반도가 아니라 현 중국인 것 다 입증되고 있다.
 
왜곡역사를 가르치는 우(愚)를 더 이상 범해서는 아니 된다. 중국의 사서(史書)에서도 분명히 이 일식(日蝕)도 대륙임을 말하고 있고, 중국25사 동이전(東夷傳)에 동이(東夷) 위치배열도(位置配列圖)를 만들었는데 그 곳은 바로대륙의 유연제노(幽燕齊魯)지역과 일치함은 이를 말한다.
 
 
낙랑군, 낙랑국, 왕(王)신라와 칸(干)신라 다르다
 
반도식민사관자들은 낙랑군과 낙랑국(樂浪國)도 제대로 분간 못하고 있다. 지금도 낙랑국을 낙랑군으로 풀이하는가 하면, 대륙에 있는 왕(王)이 다스리는 왕 신라(王 新羅)와 반도(半島)에 고구려가 지배하의 제후(諸侯)의 ‘칸 신라(干 新羅)’의 구분도 못하는 반도식민사관자들이다.
 
이것은 마립칸(麻立干)에서 왕으로 변경한 고구려의 제후국인 동 신라(東新羅)와 왕(王)으로 기록한 대륙의 서 신라(西新羅)가 반도에만 있는 것으로 아는 것은 연구부족(硏究不足)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지장법사가 신라에 돌아왔을 때 선덕여왕(善德女王)의 신라와 정신대왕(淨神大王)의 신라가 있었다. 비공통의 신라는 한반도에서 길림(吉林) 광령(滿洲)까지 차지했다.
 
그런데 반도식민사관의 사람들은 아직도 고구려, 백제, 신라가 대륙에 있었음을 모르고 황해 동쪽에 신라가 있고 한반도에서 유연제로오월(幽燕齊魯吳越)로 진출한 신라방(新羅坊)이 있었다고 왜곡한 거짓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은 신라가 반도남단(南端)에 신라가 있고 삼국을 통일도 한반도 원산(元山)이남을 통일했다고 하며 ‘공주(公州)가 웅진(熊津)’이고 ‘부여(夫餘)가 사비성(泗泌城)’이라 가르친다. 분명한 것은 웅진(熊津)과 사비성(泗泌城)은 지나대륙(支那大陸)에 있었다. 이를 반도에 있었다함은 역사를 연구하지 않은 족속들의 행태다.
 
역사를 제대로 연구했다면 고대 우리나라 천측(天測)이 대륙에서 관측(觀測)한 결과가 반도가 아닌 대륙에 있었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또한 오월유연제로(吳越幽燕齊魯)를 고구려 백제가 정벌하고 정복해 지배한 사실이 중국25사(中國25史) 동이전(東夷傳)등에 우리 동이(東夷)의 위치배열을 보면 명백하게 입증해 준다.
 
또 백제의 수도위치(首都位置)를 볼 때, 중국에서 호령한 백제의 수도를 한반도에 갔다 넣으려는 반도식민사관은 공주(公州), 부여(夫餘)의 유적(遺跡)에도 불구하고 백제의 수도(首都) 한성(漢城)과 웅진(熊津) 사비(泗泌)지역은 대륙에 있다. 반도내의 것은 조작이고 왜곡된 것이다.
 
이 한성(漢城) 웅진(熊津) 사비(泗泌)가 중국에 있었음은 백제 개로왕(蓋鹵王)이 수도 한성의 개발한 곳이 한반도가 아니었다. 유물과 웅진(熊津) 사비(泗泌)의 지명을 변경했다고 역사가 달라지는 것 아니다. 백제는 오월유연제로(吳越幽燕齊魯)지역에 있었기 때문이다. (以上은 吳在城), [九犂系史‘우리역사] P 56~59’.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P 36~42 參照, 引用).
 
한반도의 백제는 대륙의 백제(百濟)가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에 의해 패망(敗亡)한 후 반도에 살던 백제인과 대륙 백제유민(流民)들이 와서 세운 것으로 동신라(東新羅)가 고구려의 칸(干)의 제후국(諸侯國)에서 독립(獨立)하기 이전의 백제(百濟)를 건국한 역사를 모르는 소치다.
 
필자도 2년 전 중국을 답사하며 중국의 역사왜곡의 현장을 보며 중국과 일본이 아무리 역사를 조작하고 왜곡해도 공주(公州)가 웅진(熊津)이고 부여(夫餘)가 사비성(泗泌城)이 될 수는 없다.
 
이는 모두 다 허구의 거짓말일 뿐이다. 분명한 것은 삼국사기(三國史記), 환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閨怨史話), 삼국유사(三國遺事), 중국25사동이전(中國25史東夷傳)에 동이위치배열도(東夷位置配列圖)의 사비성(泗泌城)은 삼국사(三國史)46권과 남제서(南齊書)권58기록인 대륙의 유연제로(幽燕齊魯) 지역(地域)과 일치하는 것은 우리역사가 대륙역사임을 입증해주는 것이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再考證 韓國思想의 新發見’.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국가형성의 사회사’.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智勝, ’우리上古史‘-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吳在成,‘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조선상고사에 한반도 상고사가 없다.’ ‘高句麗史(고구리사)’, ‘九犂系史‘우리역사’ ‘(右犂)의 歷史는? 리(犂:東夷)歷史 쇠集’. ‘校勘 十八史 우리역사(東夷傳)’.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황순종,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사람과 북방주민들’. 반재원, ‘鴻史桓殷’. 대야발 원저 ‘단기고사’. ‘단군과 교웅-단군의 호적등본’. 권진규 ‘조선사’.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윤기,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南帝 ‘命理속의 哲學’.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二十一世紀出版社集團, ‘山海經’. 大連出版社, ‘行走 大黑山’.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石井進外, ‘詳說日本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 ‘大王から天皇へ’. 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の成立’. 上井久義, ‘日本古代の親族と祭祀’. Georges Duby : L'HISTOIRE CONTINUE, 松村剛 譯 ‘歷史は續く’. 坂本泰良,‘明治維新から現代へ’. 劉泳,海燕,‘赤蜂博物館’. ‘各國別 [世界史の整理] 三省堂發行’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 世界史史料集’,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石井進, 笠原一男, 兒玉幸多, 笹山晴生, ‘詳說日本史’. 稻垣泰彦, 川村二郞, 村井益男, 甘粕 健 共著 ‘日本史’. 西東社出版部編 ‘日本の古墳, 古代遺跡’ .西島定生 護雅夫, 木村常三郞, 猿谷 要 編著, ‘世界歷史の基礎知識’.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貝塚茂樹, ‘中國の歷史’上.中,下. 吉川幸次郞, ‘漢の武帝’.외 다수(多數)의 서책(書冊)을 참조(參照)하고, 본문(本文)을 인용(引用)했음을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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