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증하면 더 믿을 수 없는 중·일의 사서(史書)

입력 2018-02-25 20:26:40

원문 링크

▲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중국의 사서들 중 서기전202~서기8년의 역사를 1세기 후반 반고(班固)가 편집한 한서(漢書)와 5세기 초 서기 25~220년의 역사를 범엽(范曄)이 썼다는 후한서(後漢書)의 사료적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실제 많이들 인용하는 서적이나 그 진위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사학자들도 제일 많이 인용한 사서가 삼국지권30이다. 이 사서는 위지(魏志), 촉지(蜀志), 오지(吳志)를 하나로 엮어 나온 것이 삼국지이다. 그리고 위(魏)나라역사를 위지(魏志),또는 위서(魏書)라는 두 가지 명칭이 사용하고 있다. 이 책에 동이가 처음 수록하기 때문이다.
 
위의사서(史書)들이 부여(夫餘) 고구리, 동옥저, 예(濊), 왜(倭)에 대해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원 전 후의 우리나라역사와 왜(倭)의 역사는 대륙인데 한반도와 일본열도에 넣고 있다.
 
한서지리지(漢書地理志)나 후한서 동이전(後漢書 東夷傳)과 위지왜인 전(魏志倭人 傳)을 다루며 너무 많이 왜곡돼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런 왜곡을 그대로 인용해 대륙에 있었던 왜(倭)도 일본열도 구주(九州)북쪽에 있었다고 조작하나 모두 거짓으로 허구의 역사일 뿐이다.
 
히미코(卑彌呼)가 세웠다는 이도국(伊都國=사마대국·邪馬臺國)도 대륙에 있었고 우리나라 72개국 제후국 중 하나였다. 이를 숨기기 위해 그들은 지금의 대만(臺灣)을 본거지로 한 왜(倭)를 일본열도에 가져오기 위해 위(魏)와 진(晋)에 입공(入貢)을 했다고 하며 일본열도를 내세우나 당시 일본열도에 히미코(卑彌呼)가 세운나라는 없었다. 대만 남월을 본거지로 대륙에 있었다.
 
필자도 중국과 일본 문헌만을 보고 역사연구를 하면서 이미 말한 칼럼에서 히미코(卑彌呼)가 세웠다는 이도국(伊都國=사마대국(邪馬臺國)이 일본 남단 구주북쪽에 있다 했는데 아니었다. 대륙에 있었던 왜(倭)를 송(宋)나라 때 일본열도(日本列島)로 간 것 같이 말하나 당시 일본열도에 왜(倭)는 없었다. 삼한(三韓)도 이도국(伊都國=사마대국(邪馬臺國)도 모두 대륙에 있었다.
 
대만(臺灣)과 남월지역(南越地域)을 본거지로 한 왜(倭)를 일본열도에 있었다고 하는 것은 나당연합국(羅唐聯合國)에 의해 패망하고 그 유민(流民)이 일본열도(日本列島)에 간 후의 일이다.
 
송(宋)나라는 당(唐)나라가 패망하고 송(宋)나라가 만든 우적도(禹迹圖)는 왜의 본거지인 대만(臺灣;夷洲)의 지도에서도 대만(臺灣)을 지웠고 명나라는 1404년 일본을 왜(倭)로 한다고 했다. 또한 일본이라는 국호는 당나라 때인 서기671년에 국명(國名)을 일본(日本)으로 바꿨다.
 
오늘은 서기전 1세기 히미코(卑彌呼)가 후쿠오카(福岡)에 구주(九州)의 30여 부족을 통일하고 이도국(伊都國=사마대국(邪馬臺國)도 일본열도에 없었다는 것 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히미코(卑彌呼) 이도국(伊都國=사마대국(邪馬臺國)도 일본열도에 없었다
 
일본의 처음나라라는 이도국(伊都國=사마대국(邪馬臺國)을 히미코(卑彌呼)가 후쿠오카(福岡) 구주(九州)의 30여 부족(部族)을 통일하고 세웠다고 역사를 조작해 왔다. 그러나 당시 히미코(卑彌呼)가 세운 이도국(伊都國=사마대국(邪馬臺國)은 일본열도에 없었고 대륙에 있었다.
 
필자역시 중국과 일본, 우리나라 역사서를 보며 왜(倭)의 역사를 살피다 보니 이 사실을 모르고 왜가 일본열도에 있고 히미코(卑彌呼)가 이도국(伊都國=사마대국(邪馬臺國)을 세웠다고 했다. 그러나 일본열도에 그런 나라는 없었다. 그런 나라는 대륙에 있었다.
 
 
왜(倭)는 서기전 50~서기 670년까지는 일본열도(日本列島)가 아닌 양자강(揚子江)유역(流域)에 있었다. 그리고 조선무녀(朝鮮巫女)인 히미코(卑彌呼)도 일본열도에 없고 대륙남부에 있었다.
 
바로 대만(臺灣)과 남월지역이다. 남월(南越)은 구천세가(句踐世家) 전에는 왜(倭)이다. 왜(倭)는 1400년대 까지 왜구(倭寇)이었다. 이것을 송(宋)나라 때 일본열도(日本列島)로 갔다 놨다. 이후 송(宋)나라가 만든 우족도(禹跡圖)에서 대륙의 (倭)는 지워져 지도에서 왜를 볼 수 없다.
 
우리가 대륙을 지배 할 당시만 해도 대만은 이주(夷洲)이었고 우리민족의 고구리(高句麗), 백제(百濟), 신라(新羅), 가라(加羅;伽倻)의 지배를 받아온 히미코(卑彌呼)의 이도국(伊都國=사마대국(邪馬臺國)은 왜(倭)였고, 구노국(狗奴國)은 왜노(倭奴)이였다.
 
대만사람에게 대만역사를 물어보면 모른다고 한다. 필자만큼도 모르는 것을 보고 의아했는데 대만은 1600년 이전의 역사는 숨겼기에 모른다고 한다. 이(夷)를 태(台)로 바꾸고 구태(仇台)를 구이(九夷)로 바뀌었다.
 
이것은 1760년 조선 영조(英祖)때 발간 된 삼국사(三國史 列傳46)과 남제서(南齊書 卷58)이 입증하고 있다. 고구려 백제가 강성할 때, 강병(强兵) 백만으로 오월유연재로(吳越幽燕齊魯)를 정벌하고 지배한 것을 입증하고 있다.
 
이 지역은 오(吳)나라가 강소성 남부이고, 월(越)은 양자강 이남이며 유(幽)는 하북성 북부이다. 연(燕)은 산서성북부이고, 제(齊)는 산동성 북부이며, 노(魯)는 산동성 남부로 나타난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중국의 사서(史書)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서 오대사(五代史)까지, 지나18사(支那18史)의 동이전(東夷傳)은 남제서(南齊書 卷58)를 제외하고는 중국은 일본과 함께 의도적으로 우리역사를 왜곡하고 있음을 제대로 알고 대처를 해야 한다.
 
위와 같이 중국은 모든 사서가 다 왜곡되고 있다. 그리고 옥락(沃樂:만주조선(滿鮮)은 단한 줄도 기록하지 않았다. 여기서 보듯 중국이 얼마나 역사왜곡을 하고 있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지나18사(支那18史)는 사기(史記)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 삼국지(三國志), 진서(晉書), 송서(宋書), 남제서(南齊書), 위서(魏書), 양서(梁書), 북제서(北齊書), 진서(陳書), 수서(隨書), 주서(周書), 북사(北史), 남사(南史),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 구오대사(舊五代史)를 말한다.
 
위의 사서(史書)들은 우리역사를 제대로 쓰기보다는 거의 왜곡(歪曲)이 돼있음으로 유연재로오월(幽燕齊魯吳越)과 만선(滿鮮)에 각각 대입(代入)해서 검증(檢證)하고 재현(再現)해야 한다.
 
왜(倭)도 대륙에 있었고 일본국명(日本國名)은 671년부터다
 
우리나라라에서는 중국의 사서(史書)와 일본의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를 금과옥조(金科玉條)로 많이 인용하는 사학자들을 보는데 이 사서(史書)들은 모두 조작(造作)되고 왜곡(歪曲)의 정형적인 위서(僞書)임을 제대로 알고 인용(引用)하는데 좀 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일본은 우리 삼국사(三國史)권(卷46)과 남제서(南齊書) 권(卷58)의 기록으로 볼 때 이 왜(倭)는 지금의 일본열도가 아니라 대륙남부의 지금의 대만(臺灣)과 남월(南越)지역임을 알 수 있다. 지금 대만(臺灣)과 대륙의 남월(南越)을 지역으로 한 지역이 왜(倭)인 것이다.
 
우리역사가 한반도가 아닌 대륙임을 제대로 알고 역사를 논해야 한다는 것이다. 백제는 처음부터 황하유역(黃河流域)에 있었고 5세기 이전 신라(新羅), 백제(百濟), 왜(倭), 가라(加羅=伽倻)도 대륙의 서화(西華)의 동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역사에서 보는바와 같이 백제는 언제나 고구려의 뒤를 따라 붙어 있었다. 대륙에서의 위치를 [삼국지(三國志), 후한서(後漢書)], 동이전(東夷傳)에 나온 다섯 나라의 위치배열을 보면 대륙 제일 위 북쪽에 고구려, 내려오면서 백제, 신라, 가라(伽倻), 왜(倭)로 나타나고 있다.
 
왜(倭;와)는 삼국지 후한서에 의해 오월(吳越)의 남쪽에 있었다. 즉, 왜(倭=와)의 위치는 서북으로 남월(南越), 동북으로 지금의 주산군도(舟山群島)=단주(澶洲), 서남으로 주애(朱崖), 동남으로 이주(夷洲)에 있었다. 이들은 월왕(越王) 구천(句踐)의 후예로 알려지고 있다.
 
좀 더 부언(附言)하면 왜(倭)는 한사군의 진번군(眞番郡)동쪽에 있었다. 번조선과 한(韓)의 일부인데 한(韓)의 히미코(卑彌呼)의 이도국(伊都國=(邪馬臺國)과 구노국(狗奴國)이 중심국이다.
 
여기서 왜(倭)는 태(台);회계동야현(會計東冶縣)인데 여기서 삼국지에는 야(冶), 후한서에는 치(治)로 하고 있으며, 남월(南越)은 왜(倭)의 담이(擔耳)와 주애(朱崖-지금의 중국 해남도(中國海南道)로 양서(梁書)와 북사(北史) 기록에도 나와 있다. 왜(倭=와)는 왜구(倭寇)로 악명이 높다.
 
한편 히미코(卑彌呼)가 후쿠오카(福岡)에 북구주(北九州)의 30여 부족을 통일하고 이도국(伊都國=사마대국(邪馬臺國)을 일본열도에 세웠다는 것은 허구이다. 히미코(卑彌呼)가 세운나라는 우리민족의 세운 72제후국중의 하나로 부족 국가로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의 지배를 받았다.
 
왜(倭)의 처음왕은 지금 궁내성도서관(宮內省圖書館)에 소장되고 있는 [상기(上記)]의 기록대로 단군의 73대 손(孫)인 오진(應神-서기363~394)이 첫 번째 왕으로 일본의 학자들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지금 일본의 황통사(皇統史)는 1대에서 14대대는 다 조작된 것으로 믿을 수 없다.
 
최태영 선선생은 오진(應神)의 태어난 해도 390년이라 하고 있다. 일본의 역사는 종잡을 수가 없다.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교수이던 미쓰노 유(水野 祐)교수는 일본의 천황가의 역사는 978년이 조작이라고 말 하고 있을 정도인데 우리 사학계는 예나 지금도 연구는 뒷전이다.
 
한편 일본(日本)이라는 국명(國名)을 쓰기 시작한 것도 대륙의 강자(强者)로 오월유연제로(吳越幽然齋盧)를 정벌하고 군림한 백제와 고구려가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에 의해 멸망한 후 당시 의자왕의 아들 부여풍장(扶餘豊璋)이 사이메이(齊明)의 뒤를 이어 덴지(天智) 일왕(日王)이 되고 671년 당(唐)의 승인을 얻어 일본(日本)이라는 국호(國號)를 갖게 된다.
 
이 때 중국인들은 노략질을 일삼던 왜국(倭國)이 국명(國名)을 일본(日本)이라고 하는데 대해 “난쟁이 같은 것들이 나라 이름을 일본으로 하겠단다”고 말하고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삼국사(三國史)와 남제서(南齊書)의 지명변화(地名變化)
 
 
고대 대륙의 모든 지명을 다 다루지는 못하나 중국은 고대지명도 변조(變造)하고 계속 동으로 이동하고 대륙에 있었던 지명을 한반도로 옮기거나 없앴다. 그나마 삼국사(三國史 卷46)와 남제서(南齊書 卷58)에 나타난 동이(東夷)의 지명(地名)은 지금까지 변조하거나 그대로 남은 것도 많다.
 
삼국사(三國史) 권(卷46)과 남제서(南齊書) 권(卷58)에 있었던 지명을 몇 개만을 봐도 하북성의 용도(甬道)는 용도(龍道)로, 부평(阜平)은 북평(北平)으로, 신락(新樂)은 낙랑(樂浪)으로, 부성(阜城)은 부산으로 찬황(贊皇)은 서안평(西安平)으로 창(滄)은 신해(新海;창해(滄海)로 바뀐다.
 
산서성의 로성(潞城;노성(鹵城)으로 산동성의 대산(大山)은 태산(太山)으로, 비성(肥城)은 파웅진(破熊津)으로 박산(薄山)은 박성(薄城)으로, 안휘성(安徽省)의 지주(池州)는 귀지(貴地: 궤지(潰池)로, 강서성의 무주(撫州)는 무주(武州)로 월성령(越城嶺)은 남월(南越)등으로 바뀌었다.
 
남송(南宋) 때 만든 우적도(禹跡圖);우역도(禹域圖)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대만(臺灣;夷洲)이 빠졌고 장성(長城)북쪽 지명도 없앴다. 양자강중심의 지도이고 동북지역의 지명이 복원 불가능케 했다. 하수(下水=한수(漢水)가 황하(黃河)로 정착하고 있다. 이는 동이역사 왜곡이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再考證 韓國思想의 新發見’.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국가형성의 사회사’.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智勝, ’우리上古史‘-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吳在成,‘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조선상고사에 한반도 상고사가 없다.’ ‘高句麗史(고구리사)’, ‘九犂系史‘우리역사’ ‘(右犂)의 歷史는? 리(犂:東夷)歷史 쇠集’. ‘校勘 十八史 우리역사(東夷傳)’.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황순종,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사람과 북방주민들’. 반재원, ‘鴻史桓殷’. 대야발 원저 ‘단기고사’. ‘단군과 교웅-단군의 호적등본’. 권진규 ‘조선사’.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윤기,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南帝 ‘命理속의 哲學’.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二十一世紀出版社集團, ‘山海經’. 大連出版社, ‘行走 大黑山’.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石井進外, ‘詳說日本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 ‘大王から天皇へ’. 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の成立’. 上井久義, ‘日本古代の親族と祭祀’. Georges Duby : L'HISTOIRE CONTINUE, 松村剛 譯 ‘歷史は續く’. 坂本泰良,‘明治維新から現代へ’. 劉泳,海燕,‘赤蜂博物館’. ‘各國別 [世界史の整理] 三省堂發行’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 世界史史料集’,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石井進, 笠原一男, 兒玉幸多, 笹山晴生, ‘詳說日本史’. 稻垣泰彦, 川村二郞, 村井益男, 甘粕 健 共著 ‘日本史’. 西東社出版部編 ‘日本の古墳, 古代遺跡’ .西島定生 護雅夫, 木村常三郞, 猿谷 要 編著, ‘世界歷史の基礎知識’.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貝塚茂樹, ‘中國の歷史’上.中,下. 吉川幸次郞, ‘漢の武帝’.외 다수(多數)의 서책(書冊)을 참조(參照)하고, 본문(本文)을 인용(引用)했음을밝힙니다.
 
이을형 필진페이지 +
후원하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0
좋아요
0
감동이에요
0
화나요
0
슬퍼요
0
댓글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