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역사가 대륙사(大陸史)라는 것은 이집트박물관이 소장한 한 지도(地圖)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05년 TV서 ‘해신(海神) 장보고(張保皐)’를 방송 때도 이집트 박물관에 대륙의 서신라(西新羅)와 반도에 칸(干)이 다스린 동신라(東新羅)가 대륙과 한반도에 있었다는 사실을 말했다.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와, 왜(倭)도 대륙에 있었다. 신라(新羅)는 서신라(西新羅)와 고구려왕이 임명한 칸(干=왕)이 다스린 동신라(東新羅)가 한반도에 있었다. 즉 신라도 두개가 있었다. 일본은 역사를 구성하면서 처음부터 현재의 일본으로 역사를 다 옮겨서 말하고 있으나 아니다.
일본의 전신인 대륙의 왜(倭)가 송나라 때 일본으로 간 것을 숨길 수 없다. 왜(倭)는 처음부터 대륙에 있었고 이 왜가 현재의 일본으로 옮겨간 것은 송나라 때 일본열도로 가져갔다. 백제도 대륙에 있었다는 것은 삼국사(三國史권46)와 남제서(南齊書) 권58과 삼국유사, 중국25사 동이전(東夷傳)에도 한반도에는 백제총독부(百濟總督府)가 있었음을 공통적으로 기록돼진 내용에서도 이를 밝히고 있다. (三國志 集解 卷30 및 魏書 38卷 東夷, 百濟武寧王誌石).
서기32년~503년 이전 한반도는 고구려의 칸지(干地)로 칸(干)이 다스린 땅이었다. 이 칸(干)은 고구려의 지배를 받는 칸(干·東新羅)신라가 있었다. 이 칸(干·東新羅)신라가 503년 독립신라가 됐고 그 왕이 지증왕(智證王)이 칸(干·東新羅)에서 왕의 신라로 독립된 것으로 돼 있다.
환국시대와 배달국 시대와 옛 조선(단군조선)과 삼국시대도 우리민족은 모두 대륙의 서화(西華)와 항성(項城)동쪽에서 이민족(異民族)을 정벌 정복하고 지배한 것은 그 누구도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는 우리사서와 중국사서, 구당서, 남사(南史)등에서도 명기(明記) 돼 있다.
고대 우리가 대륙과 일본열도의 왜도 지배하고 그들에게 위엄(威嚴)과 은혜(恩惠)를 베푼 것을 그들은 우리에게 한(恨)을 품고 있음은 예나 지금이나 매 한가지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반도식민사관의 사람들은 중국과 일본의 조작(造作)하고 왜곡(歪曲)한 역사(歷史)만 가지고 우리역사를 뒤엎으려 하는 것은 절대로 용납(容納할 수도, 그대로 둘 수도 없는 일이다.
오늘은 3·1운동99주년을 맞아 역사와 민족정기와 우리가치관을 변질시키는 반도식민사관이 우리정신상황을 너무나 황폐화(荒廢化)시키고 있음에서 이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인간존엄 포용력 결여(缺如)한 중국과 일본의 역사만행
우리는 중, 일이 우리에게 자행(恣行)하는 행태(행(行)態)를 잘 모르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행태들을 먼저 잘 알아야 하고 이에 대처(對處)해야하는데 우리는 그러하지 못하고 있다.
대만(臺灣)의 평론가이며 사가(史家)인 백양(白楊)은 중국의 4300년 역사문화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중국사는 정말로 박해(迫害)의 역사이며 중국문화(中國文化)는 인간에 대한 존엄(尊嚴)과 포용력(包容力)이 전혀 결여(缺如)하고 있다”고 분석(分析)했다.
중국은 4300년의 역사에서 왕조(王朝)가 교체할 때 마다 수많은 사람을 살육했다. 왜 그랬는지 또 어찌 올바른 역사기록(歷史記錄)을 생략하고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지양했는지 의문이다. 고대(古代)부터 역사왜곡으로 자기들을 미화(美化)하고 역사조작(歷史造作)하는 나라다.
그들은 마이너스적인 측면을 다룬 서물(書物)은 매우 적기 때문에 이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그들은 자기들은 무엇을 해도 좋으나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식학도 무조건 뿌(不)라 하며 결코 허용(許容)하지 않은 성벽(性癖)을 갖고 있음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또한 그들은 공자(孔子)가 춘추(春秋)를 저술하면서 위중국휘치(爲中國諱恥) 수법(手法)을 창안(創案)해 타민족에게 패배한 사실을 삭제하고 도리어 승리로 위조하는 것이 습관화 돼 있다.
일본역시 1600 여 년 간의 역사도 중국의 수법을 본받아 위조를 기본으로 자기들 중심의 역사기술을 정립했는데 그들의 역사기법도 철저히 잘못은 꺼리고, 피하고 기피하며. 숨기는 필법(筆法)임은 역사를 제대로 연구하는 자라면 다 알 수 있는 것으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필자도 역사를 연구하며 그들 역사기록을 살펴보면 중일(中日)이 수치스러운 역사는 철저히 숨겼고, 없는 역사는 있는 것같이 조작하고 우리역사를 깎아 없앴다. 이는 그들의 행태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에 관한 역사는 과대(誇大)하게 쓰고 우리역사는 작게 쓰는(祥內略外) 원칙하에 우리역사를 철저하게 깎아내렸을 뿐만 아니라 엄연히 있는 역사를 아예 축소하거나 없앴다.
이에 끝이지 않고 우리역사를 자기들 것으로 도둑질까지 하는 대담한 만행을 예사로 하는 것이 중일의 수법이다. 참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조작과 왜곡을 예사로 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더구나 중일역사의 주역(主役)들은 거의가 우리민족인데 그들은 이를 자기들 조상(祖上)으로 둔갑시킨다. 이는 정상적인 양식(良識)이 있는 나라라면 도저히 용납(容納)할 수 없는 일이다.
이와 같은 그들 만행은 중국의 경우 사가(史家) 백양(白楊)이 말한 “중국사4300년은 자기들이 조금이라도 유리할 때는 철저히 박해하는 역사이며, 중국문화는 인간에 대한 존엄(尊嚴)과 포용력(包容力)이 결여(缺如)하고 있다”고 분석(分析)하고 있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우리는 중국과 일본의 역사를 보며 그들이 어떻게 침략, 지배, 약탈, 학살, 말살, 차별, 학대를 계속 했는가를 바로 봐야한다. 그들은 자국어린이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지도 않는다. 중국의 경우 지금 초등학생들에게 단동(丹東)도 우리나라 대동강으로 가져다 놓고 가르치고 있다.
또한 왕조교체 시 마다 수많은 사람을 살육했는데 어찌해서 중국인이 거주하고 있지 않은 원격지(遠隔地)를 지배한 것인지!, 중국의 서책(書冊)에도 우리의 서물에도 바르게 쓴 책자(冊子)는 몇 되지 않으며 너무 과장되고 허위조작하고 왜곡된 역사를 말함에 혐오를 느낀다.
일본의 경우도 전후 양심적인 사가들에 의해 일본사(日本史)의 위조, 조작을 말하는 학자들도 많으나 여전히 일본의 교과서는 아직도 조작과 왜곡역사는 고쳐지지 않고 여전히 그대로다.
우리역사 바로잡고 세워야 이 나라가 바로 선다
중국과 일본은 우리가 전해준 문화와 제도를 받아서 발전한 역사를 숨기고 자기들이 어느 민족보다도 우수하다며 모든 문물이 자기들이 만든 것이라 자랑하나 허구다. 그들은 인간의 물질적 정신적 생활을 창조한 전설을 말하나 그 주역은 다 우리의 조상일 뿐이다.
우리가 대륙을 지배하며 모든 문물제도를 전수(傳授)해준 우리선조의 역사를 숨기는 데서 나오는 작태다. 그들은 도덕도 재능도 다른 민족과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하다고 평한다.
그들은 우리역사를 시기하며 제멋대로 역사를 꾸미고 우리를 폄하(貶下)하며 역사를 조작 왜곡하는데 그들의 정치제도와 문물(文物)과 사상(思想) 등은 우리에게서 다 배우고 행한 것이었다. 그들은 이를 자기들이 창안한 것 인양 말한다. 그러나 진실은 밝혀지고 숨길 수 없다.
우리도 반성하고 새 결단을 하고 역사를 바로 세워가야 한다. 우리가 광복73년이 됐어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려 가치관이 변질되고 역사가 망가지게 된 것은 우리의 잘못으로 참으로 부끄럽고 한심한 일이다.
우리민족은 한무제(漢武帝)가 나오기 이전부터 “조선은 군자지국(君子不死之國)이라던 군자의 나라가 왜 망가졌는지! 되돌아보며 민족정기를 찾아 볼 수 없는 나락으로 전락한 것! 왜 이런지! 이제 반성하고 그 이유를 밝혀가야 한다. 반도식민사관으로 가치관의 변질은 문제이다.
특히 조선조에 와서 조선의 선각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성리학(性理學)에 도취돼 일본인조차도 조선의 명현(名賢)으로 숭앙(崇仰)하는 퇴계(退溪) 이황(李滉,1502~1571)과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7~1584)조차도 모화사상(慕華思想)으로 자주성을 잃고 역사에 무관심은 오늘우리역사가 퇴락한 원인이 되고 있는 원인중 하나로 짚고 갈 문제가 되고 있다.
공자 맹자 주자(朱子)가 만든 전기(傳記)인 시전(詩傳)과 (書傳)을 서전(詩經)과 서경(書經)이라하고 조선조에는 성리학에 도취돼 유구하고 찬란한 우리역사를 외면하고 중국경전(經典)의 세계에만 함몰됐었다. 이 결과 조선지식인들은 중국과 일본의 역사추이에 눈 감고 있었다.
이들은 오로지 소중화사상(小中華思想)과 그 이념 하에 모화사상(慕華思想)으로 가득차고 있었다. 따라서 퇴계(退溪) 이황(李滉)은 성리학에 관한 서책(書冊)은 있으나 우리역사에 대해 논하거나 단 한권의 역사서도 저술하지 않았음은 이를 말해 준다.
율곡(栗谷) 이이(李珥)역시 소중화(小中華)의 이념하에 기자동래설(箕子東來說)을 강조한 ‘기자실기(箕子實記)’를 남겼을 뿐, 그 외에 다른 사서(史書)를 집필(執筆)한 것 찾아볼 수가 없다.
따라서 지금 우리나라의 정신적상황은 사대주의(事大主義思想)가 만연(蔓延)되고 있음을 본다. 이 사대주의는 조선조 500여년 이후 권력주변에서 살아온 주 사상이 바로 사대주의사상이다.
조선조시대는 임금주변에서였고 한일합병 후에는 총독부주변에서 개인의 이익과 영달에만 신경을 쓰고 양심의 자유나 독립은 없는 가장 잘못을 저지르는 가장 불쌍한 삶이 사대주의였다.
지금도 권력주변에서 ‘국가와 민족의 장래는 어떻게 되든 말든 나만 잘살면 그만이다’는 무리들이 정치권과 언론계, 사법부와 행정부, 학계와 사회전반에 걸쳐서 예외가 아니게 만연돼 있음은 이 사회가 정상이 아니다. 이는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이것은 국가장래를 위해서나 자손만대를 생각할 때 너무나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국가의 장래를 가늠할 수 없는 오늘 각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그대로 넘길 수 없는 상황이다.
그것은 일제(日帝)가 우리에게 심어준 ‘열등의식’과 ‘패배의식’과도 무관치 않다. 일제(日帝)는 우리에게 가치관을 변질시키고 위계질서를 파괴했다. 이 결과 사회의 종적(縱的)인 생활은 있어도 횡적(橫的)인 삶이 없는 사회로 전락하게 해 이사회는 장래를 바라볼 수 없게 했다.
정상 아닌 우리의 민족정신 이래선 안 된다
이제 우리는 달라져야 하는데 오늘같이 ‘국가공동체의식’이나 ‘사회공동체의식’과 ‘연대의식’이 없이 자기이익과 지역이익을 위해서는 나라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고 자신과 자당과 자기지역만의 이익을 취하면 그만이다는 식의 논리는 법도 원칙도 상식도 실종된 국가가 위기상태다.
있어야할 ‘민족정기(民族正氣)’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고 국가를 생각하고 민족의 장래를 위해 개방사회의식은 희박하고 19세기시대의 재판(再版)인양 사상적으로나 이데올로기(ideology)의 종이 돼있는 이사회는 나락으로 떨어져 가는 양상(樣相)이 온천지를 덮고 있는 꼴이다.
사회는 열려져야 하는데 꽉 막혀 있는 우리사회는 장래가 없는 것 같이 보일정도로 말이 아니다. 열린 개방사회로 가야 하는데 이게 없다. 개방사회의식이 없으니 참된 민주주의는 가지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이사회는 인간 존엄도 무시되고 이데올로기가 팽배해있음을 본다.
어느 만큼이나 불신케 됐느냐고 하면 법까지도 불신하게 됐다. 참으로 무서운 이야기다. 우리사회에는 육법(六法)외에 무법(無法), 파법(破法), ‘떼 법’이 판치는 구법(九法)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하고들 있다. 모든 법을 정상의 위치로 돌려야 하는데 한심한 상황이다.
참으로 우려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음이다. 우리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는 한물간 시대와 체제에 안 맞는 법과 정책은 국제사회를 보는 눈도 견식도 19세기수준이다. 어느 사회나 패배의식은 금물이다. 되는대로 사니 ‘가치표준’이 없는 사회가 됐다. 참으로 우려되는 상황이다.
잘못된 미혹(迷惑)에서 깨어나 역사와 민족정기 되찾아야
‘우세한 문화는 열등한 문화에 압력을 가지고 다가온다.’고 50년대 김성식(金成植)선생의 세종회관에서 강연을 필자는 잊지 못한다. 선생은 일제에서 해방은 됐으나 우리의 정신 상황이 이래서는 아니 됨을 우리국민에게 간곡히 호소하는 강연이었다. 필자도 감명을 많이 받았다.
오늘 필자가 쓴 글도 선생의 특강내용을 반추(反芻)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광복은 됐다하나 우리의 자화상이 다른 것이 없고 제자리걸음만하고 있다. 이는 광복이 됐다고 말을 할 수 없는 일로 이를 정상으로 바로 하고 가야 한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우리나라가 열강들의 틈 속에서 우리살길은 우리의 [민족정기]를 바로 하고 21세기에 걸 맞는 혜안(慧眼)을 가지고 국제사회경쟁사회에서 우리가 갈 길을 제대로 알고 가야 사는 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위정자나 지도층은 선진제국과 같이 지위에 걸 맞는 솔선수범으로 본을 못 보여줌은 물론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 국제사회에서 우리가 나아갈 바를 제대로 아는 것이 위기극복의 길인데 오늘의 국가 위기가 생각보다 매우 심각함을 우리 모두가 체감하고 있다.
위기의 심각성을 바로 아는 것이 위기극복의 시작인인데 이를 제대로 모르고, 것 돌고 있다. 지난날 지배엘리트가 엄청난 변동시대에 지혜롭게 자기변신을 하지 못하다가 일본에 먹힌 것을 지금도 망각(忘却)하고 있다.
지난 1일 3·1절은 제99주년이었으며 내년 3·1절은 100주년이다. 한세기 가까이 시간이 지났으나 우리는 잘못된 미혹(迷惑)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비극은 다시 아니 온다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와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사회는 국제사회가 우려하고 있을 만큼 법도 문어지고 원칙도, 상식도 다 실종(失踪)된 사회인양 병들어 있고 출구가 없는 것 같이 느끼게끔 그 치유가 되지 않고 있다.
교육은 너무 잘못돼 있고, 역사와 전통, 민족정기도 찾아볼 수 없다. 눈앞의 이익과 출세에 눈이 멀어있는 양상은 이제 역사도 민족정기도 바로잡고가야 함이 요구되고 있는 오늘이다. 역사학은 아직도 ‘조선사편수회’의 벽을 못 넘고 있고 당시 대한제국의 내재적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었던 점도 멸망의 원인이 됐는데 당시 지배계급의 무지와 무능과 실수로 빚어진 인재(人災)였음을 모르고 있다.
대한제국의 멸망이 역사적 필연이 거나 운명적인 것도 아니었다. 당시 우리는 너무 세계의 변화에 둔감했고 국제적시각과 국제법무지를 간파한 일제가 1875년 운양호(雲養號)를 앞세워 강화도에 침입한 때 그 야욕을 피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대표는 국제법무지가 가관이었다.
지금도 대일관계의 현안이 일본은 이미 법적으로 다 처리된 것을 한국이 정권이 다룰 때마다 거론하는데 대해 몇 번이나 사과해야 하느냐! 하며 일본국민의 여론을 모우며 대한(對韓)문제를 영악하게 대처하고 있다. 우리의 무지가 그들을 도와주고 있음을 알고 대처해야 한다.
우리는 지난날도 감상주의적인 대처로 일관해 국권을 잃어버리게 됐다. 지금 일본에 대한 우리의 대처도 독도문제나 위안부문제나 한일협정문제도 UN조약법제65조에 입각해 법적으로 연구하고 한일문제도 법적으로 척결해야 한다. 삼일절을 맞으며 다시 생각하게 한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再考證 韓國思想의 新發見’.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국가형성의 사회사’.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智勝, ’우리上古史‘-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吳在成,‘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조선상고사에 한반도 상고사가 없다.’ ‘高句麗史(고구리사)’, ‘九犂系史‘우리역사’ ‘(右犂)의 歷史는? 리(犂:東夷)歷史 쇠集’. ‘校勘 十八史 우리역사(東夷傳)’.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황순종,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사람과 북방주민들’. 반재원, ‘鴻史桓殷’. 대야발 원저 ‘단기고사’. ‘단군과 교웅-단군의 호적등본’. 권진규 ‘조선사’.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윤기,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南帝 ‘命理속의 哲學’.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二十一世紀出版社集團, ‘山海經’. 大連出版社, ‘行走 大黑山’.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石井進外, ‘詳說日本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 ‘大王から天皇へ’. 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の成立’. 上井久義, ‘日本古代の親族と祭祀’. Georges Duby : L'HISTOIRE CONTINUE, 松村剛 譯 ‘歷史は續く’. 坂本泰良,‘明治維新から現代へ’. 劉泳,海燕,‘赤蜂博物館’. ‘各國別 [世界史の整理] 三省堂發行’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 世界史史料集’,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石井進, 笠原一男, 兒玉幸多, 笹山晴生, ‘詳說日本史’. 稻垣泰彦, 川村二郞, 村井益男, 甘粕 健 共著 ‘日本史’. 西東社出版部編 ‘日本の古墳, 古代遺跡’ .西島定生 護雅夫, 木村常三郞, 猿谷 要 編著, ‘世界歷史の基礎知識’.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貝塚茂樹, ‘中國の歷史’上.中,下. 吉川幸次郞, ‘漢の武帝’.외 다수(多數)의 서책(書冊)을 참조(參照)하고, 본문(本文)을 인용(引用)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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