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거짓이 없고 올바르게 기록할 때 바른 역사라 할 수 있다. 왜곡한 역사를 역사라 하면 이는 기만이요 역사라 할 수 없다. 우리 역사의 잘못은 중국 일본이 왜곡한 것을 사이비 반도식민사관 자들에 의해 우리역사를 부정하는데 그 원인이 있음은 만인이 다 아는 사실이다.
상고사는 아예 접어두고 고대사도 중세사도 근세사도 바르게 정립하려고 하기 보다는 개인의 안일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자국역사를 그릇되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하는데 역사를 제대로 연구하지 않고 이를 함부로 한다면 이는 노예근성에서 나온 공해(公害)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역사를 바르게 정립하기보다는 중국과 일본이 왜곡 조작하고 조선 총독부가 왜곡 폄하한 역사만을 가지고 우리의 역사라 한다면 이는 우리역사를 모르는 자다. 5~7세기 이전의 우리가 대륙을 지배한 역사를 부정하고 매장하려는 매국노가 아닌가!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더구나 우리역사를 바르게 하고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비한 정부가 만든 역사재단까지도 왜곡역사만을 견지하려는 것은 이해가 안 가기에서다. 지난3월16일 이런 재단을 해체하라는 집회가 세종로에서 있음을 보며 어찌해서 이 지경까지 됐는지 마음이 아픔을 금할 수 없다.
필자역시 이 재단에서 “간도가 우리 땅이 된 적이 없다”고 한데 대해 반론(反論)을 제기한 적이 있다. 간도는 물론이고 우리역사는 한반도가 아닌 대륙에서 탄생하고 대륙에 건재(健在)했다. 반도식민사관자들이 한사군이 반도에 있었다는 것은 역사무지의 극치다.
상고사와 고대사를 거론한 역사서는 다 없앴기 때문에 지금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서책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제외하고 거의 없앴기 때문에 남은 사서와 중국 사서에서 우리나라가 대륙에 먼저 선주(先住)해서 대륙을 정벌하고 지배하고 있었음을 숨길 수 없다.
남아 있는 사서(史書)만으로도 이를 충분히 밝힐 수 있다. 우리는 상고시대(上古時代)부터 반도가 아닌 대륙(大陸)에서 나라를 이루고 살았고 환국과 배달국 고조선 숙신(肅愼) 예맥 부여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 등 수 많은 나라들이 대륙에 산재하고 살아온 역사를 숨길 수가 없다.
오늘은 중국과 일본이 우리나라 사대주의 식민사관자의 잘못으로 반도 안에 우리역사가 있는 것같이 말하나 어불성설(語不成說)임을 밝히고 우리가 대륙(大陸)에서 삼국시대에도 서화(西華)에서 반도까지 지배하고 중국과 일본이 어떻게 역사왜곡을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대륙에 있었던 우리나라 영역과 사서(史書)의 내용
한무제(漢武帝)시대(서기전 142~87)때, 쓴 사기(史記)에서 우리민족을 동이족(東夷族)으로 기록 했는데 동이(東夷)의 영역(領域)은 기자가 살던 서화(西華)-하남성(河南省)의 남쪽에 있는 덕안(德安), 항성(項城), 태원(太原) 은산(銀山)-의 동쪽에서 해주(海州; 금주북쪽 고구려 장성상(長城上)까지 동이족 각국을 기록 하고 있는데 삼국지와 후한서에서 그 위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미 밝힌바 대로 중국(中國) 二十五사(史)에 있는 기록도 우리 고조선은 물론 왜(倭=와)도 광개토태왕 이전부터 양자강 이남에 있었고, 한(韓);마한(馬韓), 변한(弁韓)도 서화(西華)동쪽에 50여국으로 나눠져 발전하고 예(濊)는 하북성에 제(齊)는 산동성에 있었다. 이미 다 밝혔다.
고구려는 247년 이전은 하북성 서안평(西安平), 5세기이전 안휘성 섭라(涉羅)까지 진출한 것을 비롯해 동옥저(東沃沮)는 요하(遼河) 서쪽 해주(海州)지역이 포함되는 지역으로 본래부터 옥저(沃沮) 땅이라고 돼 있다. 이에 대한 기록은 <삼국지(三國志), 명지(明志)>에도 나와 있다.
그리고 역사의 왜곡의 중심에 있는 기자(箕子)도 서화(西華)에 살고 그 무덤 또한 중국 몽성(蒙城;안휘성(安徽省)에 있는데 어디한반도란 말인가! 한심한 거짓말 이제 그만 거둬야 한다.
5세기 이전의 중국 정사(正史) 한무제(漢武帝(서기전 142~87)때,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를 비롯해서 후한효장제(後漢孝章帝)때 쓴 한서(漢書)며, 진(晉);서기365~316년에 편찬된 삼국지(三國志), 송(宋;420~479)때 편찬된 후한서(後漢書), 우리고려(高麗)때 1145년 편찬된 삼국사기(三國史記)는 모두 우리나라가 5~7세기 이전도 모두 대륙으로 밝혀지고 있는데 어찌 반도인가!
삼국사기(三國史記)도 우리나라는 대륙에서 제후국들을 지배하고 활거(活據)한 기록들을 남기고 있다. 그 변천사(變遷史)도 대륙이지 한반도가 아니다. 예컨대 변한(弁韓)은 서기전 38년에 신라에 병합되고, 마한(馬韓)은 서기8년에 백제에게 병합됐으며 북옥저(北沃沮)는 서기전28년, 선비(鮮卑)는 서기전 9년에 고구려에 병합됐다.
그리고 양맥(梁貊)과 현토(玄菟)는 서기14년에, 부여는 서기22년에, 개마국(蓋馬國)과 구차국(句茶國)은 서기26년에, 낙랑국(樂浪國)은 서기32년에, 낙랑군(樂浪郡;낙선군)은 서기37년에, 동옥저(東沃沮)는 서기56년에, 고구려(高句麗)에 병합됐다고 기록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역사는 우리나라역사를 연구해온 세계석학(碩學)들까지도 ‘중국과 일본은 없는 역사도 있다고 조작 왜곡하고 있는데 한국의 학자라는 자 중에는 자기나라역사가 엄연히 있는데도 없다’고 하는지 이해 할 수 없다고 비웃고 있을 정도인데 참으로 이해 할 수 없는 족속들이다.
우리는 환국과 배달국시대와 고조선(古朝鮮)시대는 물론 예맥(銳麥=濊貊)과 부여(夫餘), 고구려(高句麗) 신라(新羅) 백제(百濟) 가야(伽倻)가 모두 서화(西華) 항성(項城)등, 동북쪽에서 건재(健在)했고, 왜(倭;와)도 대륙 남단인 양자강 이남에 예부터 있었음을 숨길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부정(否定)해도 우리의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고조선은 위서(魏書;삼국지 위서 동이(東夷)를 통해서 단군(檀君) 기자(箕子) 위만을 기록하고 있고,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기(史記)’에서 대청일통지(大淸一統志)까지 기록된 우리의 역사는 다 대륙의 역사기록이다.
우리가 확실하게 알아두어야 할 것은 중국은 우리가 대륙에 있었다는 장안(長安) 낙양(洛陽)중심의 한족(漢族) 기록인 중국이십오사(中國二十五史)의 동이기록을 숨기는데서 역사왜곡이 되고 있다. 또한 우리가 너무 역사연구를 소홀히 함으로 이를 밝히지 않았음도 반성 할 점이다.
우리역사는 대륙의 역사이지 반도에 그 역사를 가져 올 수 없다. 중국의 사서(史書)들도 우리가 대륙에 있을 때 쓰여 진 것이다. 예컨대 한서(漢書)는 전한(前漢;서기전 202~서기 8년)의 역사를 1세기후반 반고(班固)가 편집한 것이고, 후한서(後漢書)는 후한(後漢;서기25년~220년)의 역사를 5세기 초 범엽(范曄)이 쓴 것이 우리가 대륙에 있을 때의 기록들이다.
위지(魏志)도 위(魏;220년~265년)의 역사를 3세기(世紀)말 진수(陳壽)가 편집(編輯)한 것이다. 이 사서(史書)들은 모두 우리나라가 대륙에서 이들을 정벌하고 지배한 시대의 역사인 것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중국이십오사(中國二十五史)의 기록과 다른 중국의 사서(史書)에 나타난 광개토태왕비(廣開土太王碑)와 진흥왕비(眞興王碑)를 통해서도 이를 입증(立證)할 수 있다.
낙랑국(樂浪國)과 낙랑군(樂浪郡)을 혼동하지 말아야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는 1만1000년의 역사에서 요서를 건너온 중국한족(漢族)이나 요하를 건너와서 정착한 국가 없다. 이러함에도 중국과 일본과 이를 추종하는 자는 우리역사가 반도를 벗어난 적이 없는 양 한반도에 우리역사를 한정시키면서 역사의 오류를 범하게 하고 있다.
상고시대부터 이성계(李成桂) 태조(太祖)가 세운 조선(朝鮮)도 현 중국함양 즉 한성, 한양(漢陽)으로서 반도가 아니다. 우리가 평양이라 할 때에는 그 평양은 고구려의 평양인 지금 중국의 감숙성 천수와 고평 개평지역 두 곳 중 하나다. (유우찬 ‘한국사의 실체’129면 참조 인용)
역사를 왜곡하는 나라들은 고조선의 역사무대를 통째로 하북성(하(河北省)쪽으로 옮기었으나 여기에 수도 평양이란 이름은 찾아 볼 수 없다. 그리고 산서성에서 일어난 북위(北魏)도 조선인을 옮긴 적이 없다. 중국은 지도와 지명을 여러 번이나 변조하며 옮긴 것 드러나고 있다.
조선현(朝鮮縣)은 당나라 때의 조선성(朝鮮城)으로서 왕험성(王險城) 평양인 감숙성 팽양;평라지역인데 중화민국 초에는 진해도(津海道)라하고 지금은 조선성(朝鮮城) 왕험성(王險城) 평양인 감숙성 팽양지역을 하북성(河北省)이라고 말하고 있다.(유우찬‘한국사의 실체’130면 인용)
조선의 낙랑국(樂浪國)도 서기전 196년경부터 고구려의 동쪽에 있는 옥저(沃沮; 해주(海州)와 같이 있었다. 그리고 서기전 32년에 낙랑국은 고구려에 병합(倂合)된 것이 낙랑국(樂浪國)이다. 이 낙랑국은 503년 동신라(東新羅=마립칸(麻立干)가 고구려의 지배로부터 독립됨으로 신라의 영역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역사를 제대로 보지 못하면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쓴 김일연(金一然)과 같이 낙랑국(樂浪(國)을 낙랑군(樂浪郡)과 혼동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우(寓)를 범하게 된다. 일연(一然)은 우리역사를 반도 내에 가두는데 크게 기여해 우리역사를 잘못되게 한 사람 중 한사람이다.
한(漢)의 낙랑군은 서기전108년부터 예(濊;滄海之郡)의 서쪽에 있었고 서기300년에 대륙에 있는 서신라(西新羅)에 항복 했다. 그리고 낙랑태수는 유헌에서 왕조, 왕조에서 왕존으로 변경 될 시기(서기25~30);(후한서 76, 후한서1), 낙랑왕은 최리(최(崔理)이었다.(삼국사기(三國史記).
왜(倭·일본)의 역사도 제대로 알아야 학자다.
왜(倭)는 서기전 1세기경 100여의 부족국가가 일본열도(日本列島)의 구주(九州)에 분립해서 낙랑군(樂浪郡)에 사자(使者)를 보내어 조공했다.(津田秀夫, ‘ひとりで學べる日本史’16面)고 하며 마치 왜(倭)가 일본열도에 있는 것 같이 조작(造作)하고 있으나 서기1세기경(西紀1世紀頃) 왜(倭)는 일본열도(日本列島)에 없었다. 이는 모두 허구(虛構)의 날조(捏造)다.
서기57년 왜노국왕(倭奴國王)이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로부터 금인(金印)을 받고 또 히미코(卑彌呼)가 위(魏)의 명제(明帝)로부터 ‘친위왜왕(親魏倭王)’이라는 칭호를 받았다고 하며, 사마대국(邪馬臺國)이 구주(九州)에 있는 것으로 하고 있으나 구주에는 없었고 대륙에 있었다.
조선무녀(朝鮮巫女)인 히미코(卑彌呼)가 세웠다는 이도국(伊都國=사마대국(邪馬臺國)은 대륙양자강 이남에 있는 조선의 72제후국의 하나이었다. 이 당시 일본열도에는 이런 나라가 없었다.
왜(倭)는 철저히 대륙에서 우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伽倻)의 남쪽에 위치하고 우리의 4개국에 지배를 받았던 것을 숨기려하나 이를 숨길 수 없다. 왜는 대륙의 왜지 일본열도에 없었다.
이 당시는 우리도 대륙에 있었다. 반도(半島)에는 고구려 칸(干)이 다스리는 동 신라가 있었다. 이 북쪽에 호동왕자(好童王子)와 낙랑공주(樂浪公主)의 설화가 있는 낙랑국(樂浪國)이 있었다.
우리는 역사가 뒤집혀 져 있어 광복이 된지 73년이 됐어도 아직도 왜곡역사들을 말하고 있는데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일본조선사편수회가 편찬한 35권조선사는 다 왜곡된 것으로 휴지와 진배없다. 우리역사를 바로 알아야 한다. 이제는 뒤집혀진 역사를 바로 세울 때다.
왜구(倭寇)는 왜국(倭國)의 해군으로 13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서 해적(海賊)이었다. 이 왜구는 조선과 중국 등 대륙의 연안(沿岸)을 침탈하는 만행으로 조선, 중국 등 나라의 골칫거리였다. 우리나라가 외침(外侵)을 931회를 받았는데 그 중 일본 왜구(倭寇)의 침입이 가장 많았다.
13세기의 왜구(倭寇·1223~1265)는 우리나라를 병참기지로 할 정도였고 1350년~1391년 경인년(庚寅年) 이후의 왜구는 40년 동안(1392~1555) 591회의 침략을 했다. 더욱이 1392년~1555년대 조선시대의 왜구는 최고조에 달해 울릉도(鬱陵島) 주민을 이주시키기 까지 하게한다.
그 후 조선의 대마도(對馬島)정벌과 이후 교역의 길을 열어주고 왜구(倭寇)가 다시는 조선을 범하지 않도록 단속을 강화해 우리나라에 왜구(倭寇)가 오는 일은 자제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왜구는 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일본 재원충당의 수단이었다. 이후 막부(幕府)재원은 무역 비중(比重)이 큼에 따라 이익도 커져서 경제적 안정이 됨에 따라 도요도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일본국내통일을 완료 한 후 해적금지명령(海賊禁止命令)으로 소멸(消滅)한 것으로 돼 있다.
동북공정은 명(明)의 주원장(朱元璋) 때도 있었다.
명 태조(明太祖) 주원장(朱元璋)은 조선조 때도 동북공정 같은 것을 제기했다. 그것은 간도(間島)가 자기 명(明)나라 땅이라 한데 대해 당시조선의 왕 세종대왕(世宗大王)은 이를 풀었다.
세종대왕은1712년 백두산비(白頭山碑)와 국경(國境碑), 충현비(忠顯碑), 지도(地圖), 제문(祭文)등을 보내어 간도는 우리 땅으로 간도(間島)는 중국 땅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간도는 원래 우리 땅으로 돼 있다. 이에 주원장(朱元璋)은 “할 수 없다. 간도(間島)는 조선 땅이라 했다.”
주원장(朱元璋)은 세종대왕의 반론을 보고 간도는 중국 땅이 아니고 조선 땅으로 받아 들였다. 그런데 중국의 동북공정의 잘못을 바로 잡겠다고 세워진 동북아재단은 “간도는 우리 땅이 된 적이 없다”고 하며 아니라고 했다. 도대체 무엇을 연구하는 재단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런데 이 동북아재단에서 지금 우리고대지도를 만들겠다는 말을 듣는다. 이것은 우리역사를 더욱 망가트리는 일로 절대로 하게 해서는 아니 된다. 지금 동북재단에서 나온 지도도 독도(獨島)를 빼고 내는 등 말이 아니다. 고대 중원(中原)은 우리나라에 뿌리를 두고 있고 상고시대부터 삼국시대(三國時代)도 우리가 대륙을 지배한 것을 제대로 알고 말을 했으면 한다.
우리역사를 발로 뛰며 31회의 중국답사를 하신 김세환(金世煥)선생은 중국대륙을 누비며 고구려의 삼족오(三足烏)와 세발로 만들어진 신석기시대의 유물들을 보며 우리나라는 대륙에서 그 문화를 꽃피웠는데 중국한족이 4발과 달리 우리는 3발의 ‘기수(奇數)문화’민족이라고 했다.
또한 삼국사를 심층적으로 연구해온 우리민족연구회 오재성 선생은 “우리국사는 반도를 넘어 아시아역사다”고 평생연구를 통해 역설하고 있을 정도로 사실 우리역사는 환국과 배달국, 고조선과 숙신, 예맥, 부여, 고구리(高句麗), 백제, 신라, 가라(伽倻)등 여러 나라로 갈라졌으나 모두 대륙에 있었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민족임을 그 근거를 들며 강력히 강조하고 있다.
기수(奇數)문화민족임을 증명하는 유물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할 것은 우리삼국사(三國史)권(卷)46의 기록과 중국남제서(南齊書) 58권(卷)의 기록은 이를 뒷받침하며 우리가 대륙(大陸) 주인(主人)이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삼국사(三國史)권(卷)46의 기록과 남제서(南齊書) 권(卷)58의 기록 내용은 고구리(高句麗)와 백제가 대륙에서 오(吳), 월(越), 연(然), 제(齊), 노(魯)나라 즉 오월유연제노(吳越幽然齊魯)를 백만 대군으로 정벌(정(征伐)하고 지배한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숨길 수 없다.
그리고 신라(新羅)와 고리(高麗)도 옥락(沃樂=만주의 옥저, 반도의 낙랑국)을 다스렸고, 고구리(高句麗)는 서라벌(徐羅伐=경주)의 마립간(麻立干:가한(可汗)에서 독립한 신라를 말하고 있다.
가라(加羅), 고구리, 백제에서 광복한 대륙의 사로신라(斯盧新羅=서(西)신라(新羅))와 고구리(高句麗)에서 독립한 칸(干)이 다스린 서라벌(徐羅伐=경주)의 동신라(東新羅)가 한반도에 있었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이 사실을 중국과 일본과 이를 추종하는 자들만이 숨기고 있을 뿐이다.
일본 가지마 노부루(鹿島 昇)는 나당연합군에게 패한 백제왕자풍장(豊璋)이 일본 왕이 된 뒤 일본역사를 편찬할 때 상가야왕조사(上伽倻王朝史)를 말살하고 우리가 이도국(伊都國)에 침입한 사실을 숨기고 일본왕가(日本王家)가 일본에서 자생한 것처럼 역사를 조작했다고 말 한다.
오늘날 우리나라를 포함해 역사를 제대로 연구한 사학자는 서기712년 일본‘고사기(古事記)’와 720년 ‘일본서기(日本書紀)’가 일본열도의 진짜 사서(史書)라고 믿는 사학자(史學者)나 고고학자(考古學者)는 없다는 것이다. 왜냐? 일본은 대륙에 있었고 허구투성의 책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대륙에서의 백제가 망한 후 당(唐)의 지시에 따르고 신라에 아부하며 선조(先祖) 상가야역사를 말소하고 허구의 일본역사작성에 착수해 일본의 거짓역사는 살아서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역사의 진실은 숨길 수 없다. 지금 일본은 전 후 권력사(權力史)에 불과한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日本書紀)’와 이와 다른 올바르게 쓰여 진 사서(史書)가 여러 가지나와 있다.
천황가(天皇家) 7천년의 역사인 ‘신황기(神皇紀)’를 비롯해서 수진전(秀眞傳), 상기(上記), 죽하문서(竹內文書), 구귀문서(九鬼文書)등이 지금은 공개돼 일본역사의 허구를 깨우치는 일본의 학자들도 새 출발을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반도식민사관을 추종하는 사람들만이 문제다.
신황기(神皇紀)는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日本書紀)’보다 100년이나 먼저 쓰여 졌고 위지(魏志) 왜인전(倭人傳)보다도 50년이나 일찍 쓰여 진 것으로, 비신화적(非神話的)이고 비 허구적(虛構的)이라는 것은 이미 밝혀진 지 오래다. 필자도 이미 이를 소개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日本書紀)’를 바이블로 맹신(盲信)하는 자는 학자라 할 수 없다. 조선총독부가 우리역사말살정책으로 우리역사를 한반도에 맞추는 아사미 린타로(淺見倫太郞)와 이마니시 류(今西龍)등이 왜곡한 역사를 맹종(盲從)함은 정신이 나간 사람들이 아닌 이상 이대로 둘 수없는 것이다. 시대도 바뀌고 허구가 용납되는 세상도 아니다.
우리가 세계5대문명을 일으키고 인류의 문명을 주도한 것을 숨길 수 없다. 우리는 고대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역사의 주역이었으며 대륙의 주인으로 6000년 전 요하문명(紅山文化)을 시작으로 황하문명(黃河文明)까지 그 주역(主役)이 바로 우리조상들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再考證 韓國思想의 新發見’. 吳在成,‘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조선상고사에 한반도 상고사가 없다.’ ‘高句麗史’, ‘九犂系史‘’ 犂: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校勘 十八史’ ‘우리역사(東夷傳)’. ‘高句麗史’, ‘斯盧新羅史’, ’百濟史‘ ’加羅史.‘鴻史桓殷’. 대야발 원저, ‘단기고사’. ‘단군과 교웅-단군의 호적등본’.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石井進外3人, ‘詳說日本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 智勝, ’우리上古史‘-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바이칼 민족과 홍익인간세상’.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津田秀夫, ‘ひとりで學べる日本史’.외 다수(多數) 서책(書冊)을 참조(參照)하고, 본문(本文)을 인용(引用)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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