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일본은 우리 동이족이 상고시대부터 대륙에 먼저 선주(先住)해서 대륙을 지배한 것을 숨기고 마치 자기들이 대륙의 주인 것 같이 행세하고 있으나 그들은 우리를 지배한 적이 없다.
오히려 우리가 기원전(紀元前)부터 대륙의 강대한 왕국을 건설하고 대륙을 지배 했다. 환국과 배달국은 물론 고조선이후의 예맥과 흉노(匈奴), 선비(鮮卑), 유연(柔然), 돌궐(突)厥), 토번(吐藩)등 동호(東胡), 오환(烏桓), 말갈(靺鞨), 척발(拓跋), 고구리(高句麗), 신라(新羅), 백제(百濟), 가야(伽倻), 고려(高麗), 발해(渤海)가 대륙이었고 조선도 대륙에서 건국했다.
조선조 때 이자춘(李子春)과 그의 아들 이성계가 요동을 정벌했다. 한반도만의 조선이 아니었다. 지금 일본의 왜노(倭奴)도 양자강 이남에서 건국했고 대만, 남월(南越)지역은 왜(倭)이었다.
중국과 일본은 기원전(紀元前) 3세기~9세기 까지이 1200년간 흉노, 선비, 유연, 돌궐, 회골(回鶻=위글), 토번 등 유목민족이 강대한 왕국을 건설해서 한(漢)왕조를 떨게 했다고 양심적으로쓴 역사의 서물(書物)도 가끔 볼 수 있다. (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44~45面 參照).
더욱이 거란족의 요(遼), 여진족인 금(金), 몽골족인 원(元) 만주족인 청(淸)이 중국에 침입해서 흥망을 반복 했다고 했다. 이 요(遼), 금(金), 원(元), 청(淸)의 역사는 중국의 역사에 편입돼 있으나 이들 나라의 역사는 우리들 역사에 편입돼야 할 역사다.
그간 북방의 동이족에 뒤진 중국의 농업문화권과는 다른 농업과 유목, 수렵문화권을 형성해 북아시아 문화라고 할 수 있는 문화권을 이루어 대륙문화에 자극을 주었는데 그 문화가 세계문명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요하문명을 비롯해서 세계5대문명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서기전 4500년경의 요하문명을 비롯해서 서기전 3800년경의 메소포타미아 문명, 서기전 3200년경의 이집트문명, 서기전 3000년경의 그리스문명에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서기전 2500년경의 인도문명을 촉발 시킨 문명의 원류(源流)다.
그리고 중국이 내세우는 서기전 2000년경의 황하문명을 일으킨 당시의 문명의 주인공도 다른 민족이 아니라 그 주인공들은 모두 우리 동이족이었지 중국의 화하족(華夏族)이 아니었다.
우리는 인류학자들이 말하듯 ‘지구상에서 가장 오랜 인종으로 편두직모(偏頭直毛) 즉 뒷머리가 납작하고 곧은 머리털에 머리에 상투를 하고 새 깃털을 꼽고 다니며 하늘 백성(天民)임을 드러내고, 밝은 땅(밝달-배달)나라에서 높은 문명을 탄생시켰던 민족’은 바로우리선조들이었다.
우리민족은 내부의 분쟁과 분열로 역사의 뒤안길로 간 것을 제대로 알고 말해야 한다. 오늘은 우리민족의 문화와 문명의 선구민족(先驅民族)으로 아시아 대륙은 물론 유라시아와 세계에 고대부터 영향을 주며 세계문명을 열고 대륙을 지배한민족인 것을 살펴보고자 한다.
중국사서(史書)들 지명, 지도(地圖)고치고 조작왜곡
중국과 일본 사서들을 보면 거의가 춘추시대에 한(漢)민족 왕조에 복속돼서 역사의 무대에서 그 이름이 말살 됐다고 까지 하는 서물(書物)을 접하며 이러한 조작은 역사열등감에서 자기나라의 역사를 부각시키려 역사를 숨기려는 것에서 문제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살펴 본바와 같이 우리는 일찍이 대륙에 정착해 삼국시대도 하남성(河南省) 서화(西華)동쪽에서 내동(內東=한반도)까지 우리민족이 국가를 이루고 대륙을 지배한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를 부정하는 반도식민사관자들이 이를 제대로 연구하지 않아 삼국사기의 기록이나 중국의 정사(正史)를 부정(否定)해도 광개토태왕비문(廣開土太王碑文)만으로도 서화(西華)의 동쪽과 한반도가 우리나라 영역(領域)으로 대륙과 반도가 하나임을 입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작년 한배달에서 한서지리지(漢書地理志)연구에 동참하며 살펴본 것은 중국이 우리민족의 지배했던 영역의 지도(地圖)와 지명(地名)을 여러 차례 바꾸고 동북으로 이동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도 우리의 옛 지도와 지명을 다 고쳐 바꿔놓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예컨대 서화(西華) 동쪽의 기록으로는, 대산(大山)을 대산(垈山)-태산(泰山)으로 고치고 역성(力城)을 역성(歷城)으로, 임성(林城)-임성(臨城)으로, 양성(梁城)-양성(兩城)으로, 대방(帶方)을-석문(石門)등의 지명과 신라 백잔(百殘=백제), 왜(倭)가 있으며 한반도의 기록으로는 비리성(碑利城-창녕(昌寧) 진흥왕비(眞興王碑)에 있음도 알게 됐다.
이것은 광개토태왕비(廣開土太王碑)에 있는 하남성(河南省) 서화(西華)에서 반도까지 하나의 동이민족(東夷民族)임을 입증하고, 삼국사기(三國史記)를 입증하는 유일한 기록이 되고 있다.
필자가 본 사서(史書)들과 지도의 변천을 보면 중국의 사서들과 지도는 모두 우리역사를 숨기고 제 멋대로 계획적으로 지도(地圖)와 지명(地名)들을 북동으로 이동 필자가 보기에도 5번 이동하고 지명을 다 바꿔 놓고 있었음이 사실인 것이라는 심증(心證)이 갖게 한다.
이는 9세기 이전 우리민족 역사기록에 있어서 한족(漢族)이 쓴 동이전(東夷傳)과 우리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공통(共通)되는 부분과 비공통부분이 있는데 이를 제대로 구분함이 필요하다.
9세기이전 민족사를 밝혀줄 기록에는 장안(長安) 낙양(洛陽)에서 주진한(周秦漢)전통을 계승한 한족(漢族)의 25사(史)에서 동이전(東夷傳)과 치우천자(蚩尤天子) 왕검천제(王儉天帝=단군)를 계승한 기록에 정사(正史)인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야사(野史)인 삼국유사(三國遺事)가 있다.
여기서 한족(漢族)의 25사(史)동이전(東夷傳)과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우리의 역사의 기록인데 중국과 일본이 사서를 없애 우리의 기록이 많지 않은 사료다. 이들 사서(史書)기록만으로도 우리의 고대역사사실을 명백하게 그 진위(眞僞)를 밝혀 낼 수 있다.
중국25사 동이전(東夷傳)과 삼국사기의 기록들
우리나라역사의 잘못 된 점은 애국심이 실종된 자들에 의해 중국의 사서(史書)에서 동이(東夷)기록을 제대로 연구하지 않고 일제의 ‘조선사편수회’ 왜곡역사를 그대로 답습, 우리역사가 한반도에 국한시킨 점이다.
그리고 그들은 역사연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우리역사가 대륙의 역사이고 우리가 대륙의 주인임을 모르거나 알더라도 숨기는 자로 우리역사를 한반도에 극한 시키려는 학노(學奴)들이다.
왜냐하면 중국의 사서(史書)에서도 5세기이전 신라(新羅), 백제(百濟), 왜(倭)가 대륙에 있었음에도 이에 관한 연구는 뒷전으로 기득권유지와 자신들의 안일로 일본의 역사왜곡의 앞잡이가 돼 있으면서 민족과 국가에 큰 죄를 짓는 매국매족을 하고 있음을 못 느끼고 숨기고 있다.
이들은 중국사기(史記)나 한서(漢書), 삼국지(三國志), 후한서(後漢書)의 동이전(東夷傳)을 숨기나 중국사서 25사(史)동이전(東夷傳)과 삼국사기도 우리가 대륙(大陸)에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 표현의 공통점(共通點)과 비공통점(非공통점(共通點)은 있어도 그 내용은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나라와 왜(倭)도 대륙에 있었음을 말하고 우리가 반도에 있었다는 기록은 없다는 점이다.
공통점으로 중국 장안(長安)에서 기록한 우리역사 동이전(東夷傳)기록은 우리민족의 일부기록이지 전체 기록은 될 수 없다. 그러나 중국25사(史) 동이전(東夷傳)과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공통점과 비공통점은 다음과 같이 구분해 줌을 알 수 있다.
분명한 사실은 기자(箕子)가 살던 조선(朝鮮)땅은 반도식민사관자들이 말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대륙 서화(西華=하남성(河南省)중심의 동쪽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 가라(加羅), 서신라(西新羅), 왜(倭)가 이 곳에 있었음을 공통적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를 감추고 있다.
이를 고증해 보면, 서화(西華)남쪽에 있는 항성(項城)중심으로 동쪽에 은산(銀山), 광양(廣陽), 북평(北平), 어양(漁陽), 상곡(上谷), 신성(新城), 태원(太原), 서안평(西安平), 동명(東明), 덕안(德安), 사라(紗羅)로 이어지고, 태산(太山-泰山), 제성(諸城), 부산(簿山), 치청래해(淄靑萊海), 연수(漣水), 등이 지명이 공통임을 말해주고 있어서 수밀 수 없음에도 침묵으로 일관한다.
또한 특산물의 지명(地名)으로는 나전칠기(螺鈿漆器)의 생산지인 섭라(涉羅;安徽省)를 고구려가 504년 이전에 백제(百濟)에게 빼앗겼다는 점과, 장보고(張保皐=정년(鄭年;장보고의 원래 이름)이 신라에 돌아온 이후 정년(鄭年)이 살던 곳이 연수(漣水);江蘇省)이었음이 공통점이다.
그리고 고구려의 역사는 해모수(解慕漱) 천제시대(天帝時代)부터였다는 것이 공통기록이다.
비 공통부분으로는 삼국지(三國志), 후한서(後漢書)에서 고구려를 분리해 기록하고 있다.
선비(鮮卑), 오환(烏桓) 부여(夫餘) 읍루(挹婁) 고구려(高句麗) 동옥저(東沃沮) 예(濊)가 각각 항목(項目)으로 기록돼 있으나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고구려에 병합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낙랑국(樂浪國)과 낙랑군(樂浪郡)이 분명 하지만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쓴 일연(金一然)은 역사를 깊이 연구하지 않은 관계로 우리역사를 반도 안에 가두는 우를 범하고 있다. 그는 낙랑국(樂浪國)과 낙랑군(樂浪郡)조차도 혼돈하고 있는 사람이다.
중국과 일본은 이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사서(史書)를 가지고 역사를 왜곡(歪曲)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으나 중국사서(中國史書)들도 우리가 대륙(大陸)에 있었음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왜(倭·일본)는 대륙에서 우리지배 받은 제후국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우리나라역사를 잘 모르기 때문에 3세기이전과 5세기이전에도, 649년까지도 왜(倭)가 지금의 일본열도(日本列島)라고 알고 있는데 이는 역사왜곡에 의한 잘못된 인식이다.
민사관의 사람들은 연구부족으로 649년 이전의 장안(長安)중심의 정사(正史)에서도 왜(倭)가 양자강 이남에 있음이 분명함에도 일본이 숨기고 왜곡해왔던 사실을 모르고 있다. 이는 중국의 정사(正史)에도 왜(倭)의 위치를 분명히 양자강 이남에 있음을 말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3세기 진(晉)의 삼국지(三國志)와 4세기 송(宋)의 후한서(後漢書)에 그 지명(地名)을 말하고 있다. 회계(會稽), 회계동야현(會稽東冶縣)은 대주(臺洲=夷洲)로, 단주(澶洲)는 주산(舟山)으로 이주(夷洲)는 대만(臺灣=夷灣))으로, 주애(朱崖)는 애(崖)로 담이(儋耳)는 담(儋)으로 돼있다.
담이(儋耳)는 남월지(南越地;漢書七)라 하며, 그 지명들을 감추기 위해 고쳐서 쓰고 있으나 그 영역(領域)은 반도가 아닌 양자강 이남에 있는데 왜가 일본열도에 있다고 왜곡하고 있다.
특히 담이(儋耳)는 조선 땅이며 진번군(眞番郡)으로 부르던 땅이다.(漢書七). 위의 지명은 중국대륙 기자(箕子)가 살던 조선(朝鮮)땅은 서화(西華=하남성(河南省)중심의 동쪽에 있는 땅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 가라(加羅), 서신라(西新羅), 왜(倭)가 있었음을 공통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왜(倭=일본)는 양자강 이남에 있다고 하지 않고 역사를 왜곡하고 있으나 이는 숨길 수 없다.
위의 기록은 4세기(世紀) 이전 기록이지만 서기 64년 당태종(唐太宗) 이전 까지 발간된 중국의 사서(史書)인 양서(梁書) 북사(北史), 남사(南史)까지도 왜(倭;일본)가 회계(會稽), 담이(儋耳;南越地)에 있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음에도 왜(倭;일본)는 이를 숨기고 왜곡해 왔던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서기 649년 이전의 장안(長安)중심의 한족(漢族)의 정사(正史)에서 왜(倭)가 회계(會稽), 담이(儋耳;(南越地)에 있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는데 일구이언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왜(倭;일본)는 고대부터 동이(東夷)의 일부이지 결코 다른 민족이 아니다.
같은 민족이기에 우리는 일본에 고대부터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며 그들을 지배하며 지도해 왔으나 그들은 이를 숨기고 일본(日本)이 대륙에 없는 것으로 역사왜곡을 하고 식민사관(植民史觀)자들이 이 왜곡역사를 추종하고 있는데 이를 제대로 알고 우리나라역사를 말해야 한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金一然)은 사서(史書)의 해석을 잘못으로 우리역사를 반도 안으로 왜곡한 것은 근시안적 해석 때문이라고 하나, 진실은 대륙의 서화(西華)에서 반도까지 동북아시아가 하나의 민족으로 기록 했던 것을 뭉개어 버리게 한 죄과가 너무나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3세기 이전에도, 5세기 이전에도, 649년까지도, 왜(倭)가 지금의 일본열도(日本列島)라고 알고 있는 것은 역사무지에 의한 잘못된 인식이다. 이제 바로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뒤엎어진 역사를 바로 세우는데 그 인식전환(認識轉換)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가라(加)羅)도 왜와 같은 양자강유역에 있었다.
우리나라사서들은 아직도 가라(加羅)도 한반도(韓半島)에 있다고 하고 있으나 사서(史書)의 왜(倭;위)의 항목(項目)에서도, 송서동이 왜(宋書東夷倭) 항목에서도 대륙에서 시작하고 있다.
송서동이왜(宋書東夷倭)항목의 내용에, 백제, 신라, 임나(任那), 진한(秦韓), 모한(慕韓)속에 있으며 남제서(南齊書)에만 가라(加羅)항목이 있을 뿐이다. 왜와 가라가 포함된 기록은 송서왜(宋書倭) 남제서왜(南齊書倭) 양서왜(梁書倭)에 있으니 왜와 가라는 같은 영역에 있어야 한다.
한족(漢族)의 동이(東夷)기록과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공통부문에 가라(加羅)가 있는데 이것도 서화(西華)에서 요하(遼河)까지의 기록이다. 회계담이(會稽儋耳;南越地)의 왜(倭), 강회(江淮)의 신라(新羅), 요동(遼東-遼의東)의 백제(百濟)에 의해서 반도의 기록이 아닌 서화(西華) 동쪽의 가라(加羅)인 것이다.
그러면 삼국유사의 가락국(駕洛國)은 무엇인가? 이것은 김일연(金一然)의 역사를 연구치 않아 모르고 쓴 잘못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 당시(서기32년~503년)의 한반도는 고구려 칸(高句麗 干)이 다스렸었는데 경주(慶州)에서는 거서칸(居西干), 또는 마립칸(麻立干)으로 불렀다.
한편 이 당시 가락국기(駕洛國記)에 반도남부지역에 9칸(九干)이 있었다고 했다. 이를 참고로 적는다면 다음과 같다. 즉, (아도칸(我刀干), 여도칸(汝刀干), 오도칸(五刀干), 유수칸(留水干), 유천칸(留天干), 신천칸(神天干), 오천칸(五天干), 신귀칸(神鬼干)이 그것이다.
여기서 마립칸(麻立干)이나 9칸(九干)은 칸(干)으로서 동위(同位)의 칸(干)이다. 칸(干)의 지역이기 때문에 마립칸(麻立干)의 지역에서는 금관(金冠)이 출토(出土) 된 적이 없다. 금관(金冠)이 출토됐다면 9칸(九干)의 지역에서 9개의 금관(金冠)이 출토돼야 마땅한데 이게 없다.
경상도(慶尙道)지역에서 가라(加羅)의 명문(名文)이 출토된다면 양자강유역과 반도 두 곳에 있었다고 볼 수 있지만 가라(加羅)에 관한 명문이 출토되지 않은 이상 가라(加羅)는 왜(倭)와 같이 양자강유역에 있어야 할 것이지 왜곡(歪曲)해 반도에 있다고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 본바와 같이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한 신라(新羅), 백제(百濟), 왜(倭), 가라(加羅)는 대륙 하남성의 서화(西華)동쪽의 기록이지 이를 결코 반도로 옮길 수 없는 것이다.
(以上은, 吳在成,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56面) 以下, ‘加羅史’ 參照, 引用하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再考證 韓國思想의 新發見’. 吳在成,‘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조선상고사에 한반도 상고사가 없다.’ ‘高句麗史’, ‘九犂系史‘’ 犂: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校勘 十八史’ ‘우리역사(東夷傳)’. ‘高句麗史’, ‘斯盧新羅史’, ’百濟史‘ ’加羅史. 반재원,‘鴻史桓殷’. 대야발 원저 ‘단기고사’. ‘단군과 교웅-단군의 호적등본’.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石井進外3人,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詳說日本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 智勝, ’우리上古史‘-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바이칼 민족과 홍익인간세상’.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 津田秀夫, ‘ひとりで學べる日本史’.외 다수(多數) 서책(書冊)을 참조(參照)하고, 본문(本文)을 인용(引用)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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