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에 맞선 올바른 상고史교육 이뤄져야

입력 2018-04-28 17:39:50

원문 링크

▲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우리가 역사를 논함에 있어서 지질시대(地質時代), 고고학시대(考古學時代), 역사시대(歷史時代)의 관계를 제대로 구분해 연구도 하고 지질시대(地質時代)의 홍적세(洪積世)와 중적세(仲積世)에 지구가 어떻게 형성되고 인류의 역사가 어떠했는지!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구석기시대(舊石器時代), 신석기시대(新石器時代), 금석병용시대(金石倂用時代), 고고학시대(考古學時代), 역사시대(歷史時代)에 어떠한 종족(種族)이 어떻게 살았고 문화생활(文化生活)을 어찌했는지! 등 제대로 연구해야 그 나라의 제대로 된 역사를 바로 알 수 있다.
 
구석기시대의 화석이나 유물이 없는 무토기문화(無土器文化)로 내세울 것이 없는 나라가 마치 오랜 역사가 있는 양 역사를 조작한 것을 보노라면 그 나라의 역사가잘못된 것을 알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은 상고시대의 역사가 없는데서인지 고고학시대(考古學時代)와, 역사시대(歷史時代)의 구성을 제멋대로 저들의 구미대로 왜곡하고 있음을 보며 학문에는 국경이 없는데 중국과 일본의 학자에게는 국경이 있음을 놀랄 만큼 그들은 고고학시대의 구분도 제멋대로다.
 
원래 고고학(考古學)의 시대구분은 물건을 가공하는 이기(利器)의 발달이 인류의 생산발전기초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이를 무시하는 그들이 아닌가! 생각하게 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왜냐 하면 고고학(考古學)에서는 문화의 발전단계를 이기(利器)의 재료(材料)에 의해서 구분하는데 그들은 석기시대와 구석기시대(舊石器時代)=타제석기(打製石器)와 신석기시대=마제석기(磨製石器)로, 금속기시대는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와 철기시대(鐵器時代)로 나눠지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인류학(人類學)이나 언어학(言語學), 유물학(遺物學) 등에서 우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대도 우리역사를 뒤집어 놓고 빗살무늬토기나 수렵용 석족(石鏃)이나 골각기(骨角器), 조침(釣針), 작살, 화살촉, 옥(玉) 장신구(裝身具)등 역사유물을 자기들 것이라 조작 왜곡한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은 우리의 토기(土器), 석기(石器), 철기(鐵器)에서도 우리를 따라 올 수도 없었다. 예컨대 4300년 전 석기시대에 숙신씨(肅愼氏)가 돌(石)과 철을 파괴하는 석족(石鏃)을 발견해 사방 원시민족(原始民族)들을 합병하고 대국(大國)을 건설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역사 교재는 반도식민사관자들에 의해 1만1000년의 역사를 5000년이며 단군조선도 절반으로 자르고 중국과 일본이 왜곡한 역사를 그대로 가르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이렇게 된 것은 중국과 일본을 탓하기에 앞서 전에 이를 가르치는 학노(學奴)들이 연구는 뒷전으로 연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과, 다음이 중국과 일본이 조작 왜곡한 역사를 그대로 가르치는데 있다. 오늘은 중국과 일본이 얼마나 역사를 거꾸로 조작했는가! 를 살펴보고자 한다.
 
고대우리강역 대륙인데 어찌 한반인가
 
필자가 초등학교 때인 1948년의 역사교재는 ‘우리나라의 발달’이라는 책이라 기억하고 있다. 당시는 읽을 책이 많지 않아서 이 책을 몇 번이고 읽다보면 거의 그 내용을 다 외우게 된다. 당시 6학년 2반의 담임이셨던 조승옥(趙昇玉)선생은 대단히 열성으로 역사를 가르쳐 주셨다.
 
선생님은 역사문제출제도 500문제를 출제했고 이를 다 맞춘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그 내용을 보면 거의가 반도 안에서 이뤄진 역사로 일고의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그 내용인즉 환국(桓國), 배달국은 아예 거론조차 않고 고조선(檀君朝鮮)역사도 곰과 호랑이의 신화(神話)로 엮고 있었으며 우리역사의 영역이 모두 반도 안에서 있었던 것이라 돼 있었다.
 
따라서 그 주인공의 활동무대도 다 한반도안에 가둬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 된 허구가 많음을 역사연구하며 알게 됐고 ‘우리역사가 뒤집혀있다.’는데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도대체 어찌 이렇게 뒤집힌 것인가! 예컨대 최치원(崔致遠)이 고구려사람인데 신라(新羅)사람으로 하는 가하면 김유신(金庾信)의 활동무대가 대륙인데 대륙의 아닌 한반도안에 가두고 있고, 계백장군의 싸운 황산(黃山)이 대륙의 황산(黃山)인데 우리나라논산(論山)이라 하고 있다.
 
또한 목화(木花)씨가 대륙의 사로신라(斯盧新羅=西新羅)때 김유신(金庾信)장군이 고구려(高句麗)에 보내주고 나침반이 신라 침반(針盤)에서 신자(新字)를 빼고 나침반(羅針盤)이 된 것과 신라실크의 비단인 것을 모르고 중국비단으로 둔갑하고 있는 등 완전히 뒤바꿔지고 있음이다.
 
이것은 얼마나 반도식민사관자들이 역사무지가 하늘에 닿고 있음을 말해준다. 지금까지 온 국민은 반도식민사관자들의 잘못으로 국가민족의 의식도 국가민족의 가치관이 말이 아니게 망가지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석학들이 놀라고 있을 정도로 역사는 뒤집혀져있어서 말이 아니다.
 
우리의 강역(疆域)도 주무왕(周武王)의 제의를 거절하고 무리5000과 함께 고조선영역에 온 기자(箕子)는 조선에 살았다는 기록도 모르고 있다. (史記38, 漢書28, 後漢書 85, 三國志 30,)
 
고조선의 영역에 와서 제후국의 하나로 산 기자(箕子)가 한반도가 아닌 대륙 서화(西華;河南省)에 살았고, 이곳은 조선 땅이다. 기자(箕子)의 무덤도 몽성(蒙城)에 있는데 거짓역사를 말함은 사기꾼과 진배없다.
 
정신 나간 미친 사람이 아닌 이상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조상을 욕되게 하는 짓이다. 기자는 반도에 온 적도 없고 그 실체를 국내에서 찾을 수 없다.(大淸一統志172, 水經志23, 史記 38).
 
고조선영역으로 5000의 무리를 이끌고 온 기자(箕子)가 하남성(河南省) 서화(西華)에 살았고, 백제 의자왕을 반도로 옮기면서 우리역사를 왜곡한 것 그대로 가르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백제가 대륙에 있었던 것은 신구당서(新舊唐書)에 의자왕시대 지명(地名)이 말해준다.
 
의자왕당시 지명을 보면, 항성(항(項城), 황산(黃山), 백마(白馬), 사비(泗沘), 덕안(德安), 제성(諸城), 동명(東明), 덕안(德安), 박성(博城), 치청래해(淄靑萊海), 주류성(周留城)등이 대륙에 있고 김유신과 전쟁터가 대륙이지 반도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밝혔고 이 사실을 숨길수도 없다.
 
제아무리 대륙이 아니라 부정해도 중국25사(史) 동이(東夷)기록에서 ‘동이국(東夷國)은 서화(西華)의 동쪽 즉 요(遼)의 동쪽에 있는 국가’라 했다. 이 기록을 바꿀 수 없다. 위서(魏書)에 기록된 조선은 서화(西華) 동쪽의 기록으로 용납 할 수 없는 것이다.
 
고대 우리영역이 대륙인 것을 증명하는 것들
 
고대대륙이 우리강역임을 밝힐 수 있는 것은 중국사서(史書)와 당시 사용한 언어(言語)도 우리말을 썼다. 혹자는 지금은 우리말을 사용하지 않으니 우리영역이 아니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1428년 훈민정음이 만들기 이전까지는 서화(西華)와 반도는 하나의 언어로 같이 사용했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람도 있겠으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반도 내에서도 각도마다 다른 방언이 있다. 고대는 서화(西華)가 있는 대륙이나 반도는 같은 언어를 썼다고 한다.
 
현재 언어가 다르다고 역사를 부정 할 수 없다. 이미 밝힌바와 같이 당시 대륙 서화(西華)에서 반도까지가 다 조선(朝鮮)의 영역(領域)이었기에서다. 서화(西華)동쪽에 서신라(西新羅;서기전57년~서기896년)가 있었고 반도 서라벌(徐羅伐)에 동신라(東新羅;서기503년~936년)가 있었다.
 
반도식민사관자(半島植民史觀者)들은 대륙의 신라는 반도에서 진출한 신라방(新羅坊)이라 한다. 이는 역사무지의 말이다.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에 패망한 백제(百濟)의 지명(地名)이 서화(西華)의 남북에 있음에도 조선(朝鮮)과 신라(新羅), 백제(百濟), 가야(伽倻)를 반도(半島)로 옮기려고 서화(西華) 동쪽의 사실을 숨기고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데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한다.
 
이미 밝힌바 대로 분명히 서화(西華) 동쪽의 신라가 먼저 있었고 반도에는 서기503년에 고구려로부터 독립한 신라=동신라가 있음을 삼국사기, 광개토태왕비, 진흥왕비에 기록돼 있음에도 대륙의 신라를 반도로 옮기고 서화(西華)동쪽 역사는 숨기고 전체민족사를 왜곡하고 있다.
 
우리가 제대로 구분해서 알아야 할 것은 중국25사(史) 동이(東夷)에 의한 신라(新羅)는 체계적으로나 지명상(地名上) 서화(西華)의 동쪽 신라(新羅)인 것이지 신라방(新羅坊)이 될 수 없다.
 
삼국유사와 중국25사(史) 동이(東夷)기록에서는 서화(西華)동쪽의 서신라(西新羅)만 기록하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왕(王)이라 칭한 신라가 최치원(崔致遠)의 제왕연대력(帝王年代歷)과 칸(干)이라 칭한 신라지중마립칸(智證麻立干)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것은 거칠부국사(居柒夫國史)와 당령고징신라국기(唐令泒澄新羅國記) 원전명(原典名)에도 기록 돼 있는 사실이다.
 
한족(漢族)의 정사(正史)인 동이(東夷)기록에서는 신라(新羅)가 하남성 서화(西華) 동쪽인 강회(江淮;양자강과 회수지역)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는데 무었을 말하는 것인가! 이는 바로 우리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 왜의 동이족의 나라들이 대륙에 있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기(史記)에는 서화(西華)동쪽에는 구리(九黎;蚩尤九黎時東夷國名也)시대부터 조선을 거쳐 신라가 있음도 분명히 하고 있다. 여기서 구리(九黎)는 조선이전의 환인 환웅시대를 의미한다.
(九黎君號蚩尤也 蚩尤古天子, 蚩尤塚東平 ; 山東省 -史記1, 苗民爲九黎之後 ; 禮記 55, 三苗在江淮荊州 ; 史記 1).
 
한편 구리(九黎)는 고조선(古朝鮮)이전의 환인(桓因)과 환웅(桓雄)시대의 국호(國號)를 기준(基準)으로 한 천자(天子)역사를 말하기도 한다. 여기의 치우무덤은 산동성에 있음을 말해 둔다.
 
김유신 활동무대, 천체관측도 반도 아닌 대륙이다
 
신라의 김유신(金庾信)도 그 활동무대가 대륙이 본거지임을 분명히 말한다. 가야국에서 신라의 장수(將帥)가 된 김유신 장군의 선조(先祖)는 헌원(軒轅)이며 소호김천씨(少昊金天氏)다. 헌원(軒轅)의 묘(墓)도 섬서성에 있으며 중국국보(國寶) 제1호가 되고 있다.
 
당시 김유신 시대(서기595~673)의 지명도 서화(西華)의 동쪽에 황산(黃山), 동명(東明), 석문(石門), 석성(石城), 평원(平原), 박산(博山), 제성(諸城), 항성(項城), 독산(獨山), 동성(桐城), 잠산(岑山), 치청래해(淄靑萊海), 덕안(德安)으로 그 때 지명들이 있다.(唐書220,舊唐書199).
 
수(隨)와 당(唐)의 역사서에서 동이(東夷)를 기록한 역사는 18사(史)다. 이 사서(史書)는 참조(參照)는 되지만 우리역사의 영역(領域)을 정확하게 기록한 사서(史書)로는 김부식(金富軾)이 쓴 [삼국사(三國史)]가 영역(領域)을 찾는데 가장 정확한 기록임을 알 수 있다.
 
[삼국사(三國史 권(卷)46)]에 최치원(崔致遠)의 전기(傳記)가 실려 있다. 그 기사(記事)가운데 우리역사(歷史)의 영역(領域)을 찾는데 도움이 되는 열쇠가 있다. 그 원문(原文)을 소개(紹介)하면 다음과 같다. 즉, (高句麗百濟全盛之時 强兵百萬 南侵吳越 北撓幽燕齊魯 爲中國巨蠹)다.
 
이를 풀이하면,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가 강성(强盛)한 때, 강한 병력(兵力) 백만(百萬)으로 남으로 오(吳)와 월(越)나라를 없앴고, 북으로는 유, 연, 제, 노나라를 제거했다. 그 나라들을 지배했던 나라에게 크게 위협이 됐다.’고 했다. 이 영역은 지금 중국의 동쪽의 영역이다.
 
최치원(崔致遠)이 살던 지역도 대륙신라(新羅)지역인데 북과 남의 중간지역(中間地域)이다. 그도 반도가 아닌 대륙에 살았다. 당시 고구려, 신라, 백제. 가라(加羅;가야(伽倻)도, 지금 중국 동쪽 대륙(大陸)에 있었다. 그리고 왜(倭;일본)는 양자강 남쪽에 있었음도 이미 다 밝혔다.
 
또한 수(隨), 당(唐)나라가 고구려와 전쟁지명도 사오십 곳이 대륙 하북성, 하남성, 산동성, 안휘성등으로 한반도가 아니다. 이 곳에서 그 지명을 찾을 수 있고 한반도에서는 찾을 수 없다.
 
한반도에는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로맨스가 있었던 낙랑국이 있었다. 그 당시 낙랑왕은 최리(崔理)였다. 같은 시기에 낙랑 태수(太守)는 세 명이 등장한다. 여기서 중국의 삼국지와 후한서기록을 검토해 보면 북에서 남으로 부여, 고구려, 예(濊), 한(韓), 가야(伽倻), 왜(倭)가 있다.
 
그리고 그 서쪽에 낙랑군(樂浪郡)이 있었고, 그 동쪽에 최리(崔理)가 왕(王)인 낙랑국(樂浪國;서기전1233~서기32)과 옥저(沃沮)가 있었다. 당시 만주(滿洲)와 반도(半島)는 최리(崔理) 왕이 다스리는 낙랑국(樂浪國)의 영역(領域)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훗날 고구려 호동왕자(好童王子)가 낙랑공주(樂浪公主)에게 자명고(自鳴鼓)를 찢게 해 서기32년 낙랑국(樂浪國)은 멸망하고 고구려의 제후국(諸侯國)인 왕(王)이 아닌 칸(干)이 다스리는 동신라(東新羅)가 서라벌(徐羅伐)에 있었다가 서기503년에 신라영토(新羅領土)가 된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유물(遺物)도 찾아 볼 수 있다. 경주(慶州)에서 발굴(發掘)된 광개토경호태왕(廣開土境好太王)의 명문(名文)이 색여진 호우(壺玗 ; 제기(祭器)로 추정되는 청동(靑銅)그릇도 한동안 서라벌(徐羅伐)이 고구려영토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후 삼국사의 700년대 후반 천문기록(天文記錄)도 신라 땅이었음을 알 수 있다. 독일은 우리 천문학이 최고라 한다. 지금 과학이 발달로 천체(天體)의 천문관측, 일식, 월식도 대륙에서 일치하고 한반도에서는 맞지 않는다. 또 지진과 장마와 계절에 관한 것들도 모두 대륙이 맞다.
 
이는 우리영역이 한반도 아닌 중국대륙의 주인이었음을 바로 말해 주는 것임을 입증해 준다. (吳在成,‘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54面以下 參照引用).
 
우리는 반도식민사관자들의 역사만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삼국유사를 인용해 단군이 반도의 통치자였다고 하면서도 단군(檀君)이 대륙의 서화(西華)동쪽에서 반도(半島)까지 하나의 조선임을 밝히려하지 않는다. 이것은 원문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사학자의 책임이 아니가 싶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再考證 韓國思想의 新發見’.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吳在成,‘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조선상고사에 한반도 상고사가 없다.’ ‘高句麗史’, ‘九犂系史‘’ 犂: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校勘 十八史’ ‘우리역사(東夷傳)’. ‘高句麗史’, ‘斯盧新羅史’, ’百濟史‘ ’加羅史. 황순종,‘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반재원,‘鴻史桓殷’. 대야발 원저 ‘단기고사’. ‘단군과 교웅-단군의 호적등본’.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石井進外3人, 智勝, ’우리上古史‘-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바이칼 민족과 홍익인간세상’.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石井進外3人, ‘詳說日本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津田秀夫, ‘ひとりで學べる日本史’.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貝塚茂樹, ‘中國の歷史’上.中,下. 吉川幸次郞, ‘漢の武帝’. 외 다수(多數)의 서책(書冊)을 참조(參照)하고, 본문(本文)을 인용(引用)했음을밝힙니다.
 
이을형 필진페이지 +
후원하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0
좋아요
0
감동이에요
0
화나요
0
슬퍼요
0
댓글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