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국 백제 본거지 대륙…멸망 때도 마찬가지

입력 2018-05-12 10:3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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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1999년 3월 19일 일본산케이신문(産經新聞)은 고대(古代) ‘일본열도의 야요이인(弥生人)과 양자강하류의 인골(人骨)의 유전자가 일치하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는 왜인(倭人)이 양자강 이남에 있다가 일본열도(日本列島)로 건너간 역사를 입증해준다.
 
지난 4일 ‘1500년 만에 밝혀진 백제 최고(최고) 절터 공주 고도(古都) 찾기 사업으로 파묻힐 위기다’는 보도가 지면에 등장했다. 내용에는 ‘백제불교는 물론 웅진도성(熊津都城)의 중요한 유적이다’며 ‘조사지역을 확대하고 보존대책을 마련해야한다’고 했다.
 
여기서 필자는 백제(百濟)와 그 도성(都城), 웅진(熊津)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제대로 알고 말하고 있는 것인지 지적하고자 한다. 반도식민사관자들의 거짓을 막기 위해서. 백제는 대륙에 실재했고 과연 한반도에는 언제부터 백제인이 살고 있던 것인지 구분 못하는 것 같아 붓을 든 거이다.
 
이는 제대로 된 역사를 가르치기를 소망하는 국민의 염원이기도 하고. 언제까지 우리 고대(古代)역사가 반도에 있었다고 한심한 소리만하는 반도사관자(半島史觀者)들에게 백제역사를 바로연구하고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서 원전(原典)을 제대로 보고 가르치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망한 곳 역시 반도가 아닌 대륙이었다. 백제는 광대한 지역을 지배한 대제국(大帝國)이었다. 당시 지명을 보면 백제의 수도 위치가 어디였는지 알 수 있다. 수도 웅진(熊津)은 태산(泰山) 서쪽에 있었다. 그리고 백제의 한성(漢城)은 대륙 하북성(河北省)에 있었다. 지금까지 일제가 만든 왜곡역사로 우리나라역사가 반도 안에서 이뤄진 것같이 가르치고 있는데 이것은 다 허구(虛構)의 역사일 뿐이다.
 
우리는 지금까지도 백제가 한반도에 있는 것 같이 배워왔으나 이는 역사의 원전을 읽지도 않고 연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자들이 일제(日帝)가 엮은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가 왜곡(歪曲)한 ’조선사35권‘의 내용을 그대로 앵무새같이 반복(反復)하는 데서 빚어진 것이다.
 
오늘은 백제(百濟)가 대륙 중원에 세워 졌으며 반도에 있는 백제는 서기 660년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에 패해 패망(敗亡)한 후의 역사임을 구분해서 그 역사의 진실을 말 하고자 한다.
 
백제(百濟)는 대륙을 호령한 대국(大國)이었다
 
우리는 일본이 왜곡한 역사를 배워서 지금까지 고대우리나라가 한반도 안에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말도 아니 되는 웃지 못 할 코미디였다. 이미 밝힌바와 같이 우리역사는 상고시대나 고대도 우리나라는 대륙(大陸)에 있었던 역사이지 반도(半島)역사가 아니다.
 
환국이 대륙에 있었고 배달국역시 대륙이며 단군(檀君)시대, 삼국시대도 대륙(大陸)에 있었음은 외국의 사학자들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제아무리 우리역사를 왜곡하고 변조하는 중국과 일본이 우리의 대륙역사를 반도로 옮기려 수단과 방법을 다해도 한반도로 옮길 수 없다.
 
중국은 우리역사를 옮기기 위해 지도를 변조하고 지방과 지명을 여러 번 옮겨가며 우리역사를 조작하고 왜곡해 왔으나 역사의 진실은 숨길 수 없다. 오늘 논하려는 백제도 그 수도(首都)와 지명을 다 바꿔놓으며 우리사서(史書)를 없애고 숨겼으나 다 숨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제는 우리사서도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만 남겨 놓고 거의 다 불태우고 나머지는 거두어 가거나 숨겨 없애버렸으나 몇 권 아니 되는 사서(史書)만으로도 이를 밝힐 수 있다. 즉,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및 중국[25사]동이전(東夷傳)의 줄거리는 같은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
 
예컨대 대륙의 고구려, 백제, 신라, 가라와 왜(倭)까지도 다 대륙에 있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우리[삼국사기]를 분석해보면 대륙에 사로신라(斯盧新羅), 백제(百濟), 고구려(高句麗), 가라(加羅;伽倻), 왜(倭)와 관계되는 지명(地名)이 중국에 있고 우리에게는 없음에서도 알 수가 있다.
 
우리는 오늘 까지도 웅진(熊津)이 충청도 공주(公州)지역으로 보아 왔으나 역사기록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고구려, 백제, 신라가 대륙(大陸)에 있었음이 증명되고 있다.
 
삼국시대 조공품목의 생산지는 어디이고 조공 일수는 얼마나 걸렸는지! 일식(日蝕), 홍수(洪水), 인구(人口)며, 가스분출, 황충(蝗蟲)의 출현, 지각변동(地殼變動), 적조현상(赤潮現像)등 자연현상(自然現象)의 발생지가 한반도가 아닌 대륙(大陸)으로 판명(判明)되고 있기에서다.
 
중국의 사서(史書)인 [중국[25사(史)] 동이전(東夷傳)에서도 백제의 위치를 조명(照明) 할 수 있다. 백제초기 서기전 5년 이전에는 낙랑군(樂浪郡)지역의 서쪽에 있었고 대방(帶方)지역에 있었다. 즉 한수(漢水) 또는 하수(河水)지역에 있었던 것이 백제의 위치로 보고 있다.
 
서기32년 이전에는 고구려(高句麗)와 예(濊)의 서쪽 낙랑군과 고구려와 예(濊)의 동쪽옥저(沃沮)에 가까운 곳에 낙랑국(樂浪國)이 각각 다르게 있었다. 현재의 한강(漢江)은 한강이라고 확인 할 수 없으나 백제지명(百濟地名)이 많은 황하(黃河)는 한수(漢水), 한강(漢江), 하수(河水)로 불렀다는 기록이 있어서 [중국[25사(史)] 동이전(東夷傳)이나 삼국사는 대륙으로 돼 있다.
 
현재 반도식민사관자들은 우리역사의 강역(疆域)을 한반도(韓半島)로 한정해 사서를 맞추어 한반도에 맞지 않으면 사서를 부정하고 수정하기 때문에 우리역사를 정립할 수 없었던 것이다.
 
분명히 알아야할 것은 역사연구가는 기록을 부정하거나 수정(修正) 할 수 없다. 역사기록을 위서(僞書)에 맞추어서도 아니 되며, 있는 기록을 바꾸려는 우(愚)를 범해서도 아니 된다. 단지 정리할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여기에 그 초점을 맞추어 정리하지 않으면 잘못 된다는 것이다.
 
중국사서(中國史書)에서 보는 우리 강역(疆域)
 
반도식민사관자(半島植民史觀者)들은 우리역사를 중국과 일본에 의해 왜곡 변조한 것을 그대로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임과 이는 우리 선조들을 욕되게 하는 것임을 알아야한다.
 
일본학자들 까지도 지금 가르치는 우리역사가 허구의 거짓 역사라 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차제에 있지도 않은 우리고대사를 반도 안에 가둬 들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반도식민사관자(半島植民史觀者)가 중국과 일본의 앞잡이가 돼있는 것은 납득이 안가고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정상적인 사람인지 정신 나간 사람인지 착각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우리가 대륙을 지배하고 반도에는 이미 밝힌 바와 같이 반도와 만주까지 영역이었던 낙랑국이 있었다. 고구려 제후국격인 왕이 아닌 칸(干)이 다스리는 [칸신라(干新羅=동신라(東新羅)]가 있었을 뿐이다.
 
5세기 이전 신라(新羅), 백제(百濟), 왜(倭), 가라(加羅)=가야(伽倻)는 서화(西華) 동쪽에만 있었고 반도에 백제(百濟)는 없었다. 유우찬 선생은 중국사서인 위서동이전, 환단고기(桓檀古記), 삼국사기를 검토해보고, 고구려가4~6게, 백제가~6개, 신라가 4~6개로 나타남을 말하고 있다.
 
즉, 백제는 1, 소서노의 어하라; 감숙성 동부의 어하라,(송양비류국), 2, 비류백제 ; 감숙성동남의 대반백제 ; 하남한성백제, 3, 온조백제; 사천성 성도지역의 마한백재(추정). 4, 위구태 백제(비류백제를 밀어내고 대방 땅 차지한 백제(추정), 고례백제(高禮百濟) ; 산동~한반도의 고례백제(高禮百濟)추정의 백제(百濟)가 다 대륙에 있고 한반도에 백제가 없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한나라가 세웠다는 한사군(漢四郡)도 반도에 없었고 대륙의 요동 요서에 있었다. 요동에 현토군과 낙랑군이 있었고 요서에 진번군과 임둔군이 있었다. 그리고 삼국도 대륙에 있었다.
 
예컨대 삼국지(三國志)와 후한서(後漢書)의 동이전에도 분명하게 기록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부여는 현토북쪽(장성북쪽) 천리되는 곳에 있고, 남쪽은 고구려, 동쪽은 읍루(挹婁), 서쪽은 선비(鮮卑)에 속하고 있으며 북쪽은 약수(弱水)다. 즉. (夫餘在玄菟北長城北千里) 南與高句麗 東與挹婁 西與鮮卑接 北有弱水)라고 했다. (유우찬 [한국사의 실체] 87面 參照 引用).
 
고구려는 요동의 동쪽에서 천리에 있고 남쪽으로 조선예맥이 동쪽에는 옥저(沃沮)가 북쪽으로 부여가 접(接)해 있다고 했다.(高句麗 在遼東之東千里 南與朝鮮 濊貊東與沃沮 北與夫餘接).
 
[송서(宋書)] 권(卷)97 이만전(夷蠻傳) 동이백제(東夷百濟)에 관한 기록은 “백제는 본래 고구려와 함께 모두 요동(遼東)동쪽 천 여리 되는 곳에 있었다. 그 뒤에 고려는 요의 동쪽을 침략해서 소유 했고 백제(百濟)는 요의 서쪽을 침략해서 소유했는데 진평군, 진평현이었다.
 
즉, (百濟國 本與高麗俱在搖動之東千餘里 其後 高驪略有 搖動百濟 略有 搖動百濟 略有 遼西百濟 所治謂之晉平君晉平縣).이라고 하고 있다. 이곳이 과연 반도인가! 아니지 않은가! 고대 우리나라영토는 대륙에 있었다. 아울러 이 기회에 반도식민사관자들은 거짓역사를 이제 그만 하고 올바른 역사를 가르쳐 지금까지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 가르치기를 치기를 바라진다.
 
양서(梁書) 권(卷)54 제이전(諸夷傳)에는 “백제(百濟)란, 그 조상(祖上)이 동이(東夷)다. 동이(東夷)는 세 한국(3韓國)이 있으니 첫째, 마한(馬韓)이요, 둘째 ,진한(辰韓)이요, 셋째, 변한(弁韓)이다. 변한(弁韓)과 진한(辰韓)은 각각 12나라가 있고 마한(馬韓)은 54국이나 됐다고 했다.”
 
“그 중에 큰 나라는 인가가 만여호(戶)나 되고 작은 나라는 수천호가 돼 모두 합치면 도합 10여 만호(萬戶)가 되니 백제(百濟)란 그 중의 하나다. 그것이 뒤에 와서 점점 강대해져서 모든 조그마한 나라들을 합쳤다.”고 했다. 吳在成,‘三國史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46面’).
 
또 그 나라는 본래 구리(句驪)와 함께 요동동쪽에 있었는데 진(晉)나라 때에 구리(句驪)가 이미 요동을 침략해 차지하게 되자 백제도 역시 요서와 진평(晉平)의 두 군(郡) 땅을 점령해서 스스로 백제군(百濟郡)을 두었다고 했다. 백제는 대륙에서 대제국을 이룩하고 있었다.
 
의자왕(義慈王)은 대륙에 있었지 반도에 없었다
 
의자왕(義慈王)도 대륙에 있었지, 반도에 있었다는 것은 허구다. 백제왕국(百濟王國)이 반도가 아닌 대륙에 있었다. 이는 변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중국사서(中國史書)와 우리나라 사서(史書)인 삼국사기(三國史記)도 대륙에 있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어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한무제(서기전142~87)때 편찬된 사기(史記)와 후한 효장제(後漢 孝章帝(서기76~88)때 발간된 한서(漢書), 진(晉)(265~318) 때 편찬된 삼국지(三國志), 송(宋)서기420~479때 편찬된 후한서(後漢書), 고려(서기1145년에 편찬된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들도 백제가 한반도에는 없다.
 
백제는 처음부터 패망까지 한수(漢水;황하(黃河)유역에 있었다. 의장왕(義慈王)과 부여융(夫餘隆)은 반도에 없었다. 의장왕(義慈王)의 능(陵)은 손호(孫皓), 진숙보(陳叔寶)의 묘 옆에 있다.
 
부여융(夫餘隆)은 676~678년 사이에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 대방군왕(帶方郡王)을 삼아 본국으로 보내어 남은 백성을 안돈(安頓)시키게 함과 동시에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를 신성(新城)에 옮기어 그로서 통솔하게 했다. 당시 당(唐)나라는 그곳 출신을 임명하는 정책을 취했다.
 
그 때 신라(新羅)가 강성(强盛)함으로 융(隆)은 감히 본국(本國)에 들어가지 못하고 고구려(高句麗)에 붙어 있다가 죽었다고 삼국사기(三國史記) 의자왕전(義慈王傳)에 기록(記錄)하고 있다.
 
그 융(隆)의 묘비(墓碑)가 낙양(洛陽)에 있고 그리고 융(隆)이 있었다는 신성(新城)은 하북성(河北省)에 있다. 부여융(夫餘隆)의 묘비(墓碑)도 서화(西華) 서쪽 낙양(洛陽)에 있다함은 그가 대륙에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의자왕(義慈王)과 부여융(夫餘隆)은 한반도에는 없었다.
 
배달국(倍達國) 제14대 천황(天黃)인 치우(蚩尤)의 능(陵)도 산동성 동평군 수장현에 있다. 이곳은 백제 부흥운동이 활발했던 수호지(水湖志)에 나오는 양산박(梁山泊)의 서쪽에 있다. 그리고 반도에 있었다는 허구(虛構)의 기자조선(箕子朝鮮)의 기자(箕子)의 묘(墓)도 대륙 몽성(蒙城)에 있음은 기자(箕子)가 반도에 없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즉, 기자(箕子)의 묘(墓)는 지금 중국의 안휘성(安徽)省) 몽성(蒙城)에 있고 하남성(河南省)의 서화(西華)는 기자(箕子)가 살던 곳이다. 서화(西華)는 주(周)와 조선의 경계(境界)에 있는 우리조선 땅이다. 이 땅에 백제(百濟)와 의자왕(義慈王)이 있었던 곳이다.
 
의자왕(義慈王)은 산동성(山東省) 태산(太山)서쪽의 웅진(熊津)사람으로 보는 게 옳다. 이 곳은 서화(西華)의 동쪽이며 태산(太山;岱山,大山)의 주위에는 의자왕시대 지명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하북성(河北省)의 평원(平原)이 있고, 산동성(山東省)의 동명(東明), 황산(黃山). 태산(太山), 박산(博山), 제성(諸城), 백마하(白馬河,;백강(白江)이 있고, 하남성(河南省)에 항성(項城)이 있다.
 
안휘성(安徽省)에 동성(桐城), 잠산(岑山), 독산(獨山)이 있고, 강서성(江西省)에 덕안(德安), 무주(撫州)가 있고 전쟁(戰爭)터의 지명(地名)들과 부여융(夫餘隆)의 행적과 묘(墓)등에 의해 의자왕(義慈王)이 대륙에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중국25사(史) 동이전(東夷傳), 삼국유사(三國遺事)도 입증하고 있다(吳在成,‘百濟는 중국에 있었다.’46面 以下,‘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硏究’169面~170面參照引用).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崔仁 ‘(韓國學講義)’, ‘再考證 韓國思想의 新發見’.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吳在成,‘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조선상고사에 한반도 상고사가 없다.’ ‘高句麗史’, ‘九犂系史‘’ 犂: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校勘 十八史’ ‘우리역사(東夷傳)’. ‘高句麗史’, ‘斯盧新羅史’, ’百濟史‘ ’加羅史. 황순종,‘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반재원,‘鴻史桓殷’. 대야발 원저 ‘단기고사’. ‘단군과 교웅-단군의 호적등본’.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사람과 북방주민들’.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石井進外3人, 智勝, ‘우리上古史’-발로 확인한 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바이칼 민족과 홍익인간세상’.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石井進外3人, ‘詳說日本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津田秀夫, ‘ひとりで學べる日本史’.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貝塚茂樹, ‘中國の歷史’上.中,下. 吉川幸次郞, ‘漢の武帝’. 외 다수(多數)의 서책(書冊)을 참조(參照)하고, 본문(本文)을 인용(引用)했음을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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