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대史, 한반도 아닌 아시아史 그 자체다

입력 2018-05-19 15:4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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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중국의 저명한 사학자로 손꼽히는 학자인 서량지(徐亮之)와 임혜상(林惠祥)은 고구려·백제·신라·가야·왜 등의 영역을 저서 [중국사사전사화(中國史史傳史話)]와 [중국민족사(中國民族史)]를 통해 “진(秦) 이전에는 동이고역(東夷區域)이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일본과 반도식민사과자들은 “진(秦) 이후에는 동이영역이 아니다”라고 왜곡하고 있다. 아라비안상인들의 그린지도에도 신라가 대륙으로 나와 있고 반도로 나와 있지 않다.
 
고대 우리나라 역사는 아시아사(亞細亞史)지 한반도사가 아니다. 삼국사 권46에는 오월유연제노(吳越幽然齊魯)를 정벌한 것을, 일본은 한국을 침략하면서1896년 삼국사를 연구하고 이를 한반도로 가져오려했다. 그러나 이를 한반도에 가져올 수 없었다.
 
중국의 문헌(文獻)도 다 지워 없앴으나 남제서(南齊書) 권(卷)58에 위와 똑같은 기록이 있음에서다. 그 기록은 삼국사(三國史) 권46에 나와 있는 내용과 똑같은 것으로 ‘고구려와 백제가 강성한 때는 5개 나라의 오월유연제노(吳越幽然齊魯)를 정벌’하고 정복지배한 기록이다.
 
중국의 문헌(文獻)도 남제서(南齊書)58에 유연제노오월(幽然齊魯吳越)을 정벌한 기록이 삼국사 권46에 같은 오월유연제노(吳越幽然齊魯)기록이기에서다. 이는 고대사연구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이 사실을 우리역사를 바로 세우는데 평생을 바친 분도 이를 의아(疑訝)해 하는 것을 보며 잘못된 역사가 한번 각인되면 이에서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러나 연구를 하면 할수록 그 진실이 밝혀지고 있으며 깊이 들어갈수록 그 실체가 파악된다.
 
우리나라는 고대사 연구를 소홀히 함으로 외국학자들도 혼란을 가져오고 있다. 정신문화연구원에서는 [고구리본기(本紀)]와 [신라본기(新羅本紀)]를 연구했다하고, 하바드 대학에서는 [백제본기(百濟本紀)]를 연구했다. 그런데 실체를 제대로 밝혀내지 않은 것은 유감스런 일이다.
 
하버드대학이 [백제본기] 540Page책 중 214Page가 서문(序文)이라니 기가 찬다. 이 세상 어느 책도 서론으로 절반을 장식한 책을 본 적이 없기에서다. 역사는 제대로 연구하고 그 진실을 밝혀서 내 놓고 말을 하는데 이해하기 어려운 작란을 하고 있지 않은가! 납득이 안가서다.
 
그런데 중국의 역사서를 보면 우리나라에 없는 지명(地名)이 중국18사에 동이지명이 지나(支那)에는 있음을 본다. 당(唐)이 침입 시, 평원(平原)과 심구(沈邱)중간에 황산(黃山)이 있다.
 
태산(太山)서쪽에 있는 이 태산을 대산(岱山), 태산(泰山), 대산(大山)등 여러 개로 바꾸고 이동하며 헷갈리게 하고들 있으나 그 전모가 고대사연구가들에 의해서 다 들어나고 있기에서다.
 
예컨대 웅진(熊津)도 곰비(熊羆), 곰비(熊肥), 지금은 비성(肥城)으로 바꿔져 있다. 또한 안평(安平) 서쪽에 있는 평양성을 동황성(東黃城)으로 바꿔 져있다. 지명을 숨기고 바꿔 왜곡한다.
 
이러한 지명 바뀌기와 지역 숨김은 지도(地圖)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송나라 때 소동파(蘇東坡)가 만든 우적도(禹跡圖)는 왜(倭)가 있었던 대만(臺灣)도 지우고 철저하게 우리역사도 숨겨 없애려는 것을 그대로 넘길 수 없다. 오늘은 우리영역이 대륙에 있었음을 살펴보고 져 한다.
 
우리 역사 속 고대지명(古代地名) 중국에 다 있다.
 
필자가 초등학교시절 한사군위치가 평양이라더니 근래에 와서는 요서라고 한다. 그 요서도 틀리고 한사군 자체의 존재조차 부정되기도 한다. 너무 과대평가 된 것에서 나온 말인 것 같다.
 
지금 우리 사학계(史學界)에는 원문(原文)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사학자(詐學者?)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래서인지 일제(日帝)시대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의‘조선사편수회’가 만든 왜곡역사(歪曲歷史)만을 우리역사라 하는 부류(部類)가 너무 많음은 이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삼국사(三國史)’는 천년의 역사로 세계에 유례(類例)가 보기 드문 역사다. 이 삼국시대에 우리와 상대되는 중국사로서 ‘18사’가 있다. 이 ‘18사’는 참조(參照)는 되지만 우리역사를 가장 정확하게 기록한 것은 우리나라 학자가 더 정확히 기록한 책일 것이다.
 
그런데 일제(日帝) 강점기(强占期)동안 우리의 사서들은 다 없애고 나서 세뇌(洗腦)된 사학자들에 의해 우리역사는 뒤엎어져 있다. 그런데 ‘삼국사(三國史)’ 권46에는 최치원(崔致遠)의 전기(傳記)가 실려 있다. 그 기록가운데도 우리역사의 영역(領域)을 찾을 수 있는 열쇠가 있다.
 
즉, “고구리와 백제가 강성한 때, 강한 병력(兵力) 100만으로 남으로는 오(吳)와 월(越)나라를 없앴고, 북으로는 유(幽), 연(燕), 제(齊), 노(魯)나라를 제거(除去)했다. 그 나라를 지배했던 나라에게 커다란 위협이 됐다.”는 기록이다. ‘유연제노오월’이 현 중국의 동쪽 영역이라는 주장이 맞는다면 최치원(崔致遠)이 살던 신라지역(新羅地域)은 그 북과 남의 중간(中間)지역이다.
 
이는 고구려, 백제, 신라는 지나(支那)대륙 동쪽에 있었던 것이다. 이 삼국은 수당(隨唐)간에 전쟁지명이 40~50곳을 지금도 하북성, 하남성, 산동성, 안휘성 등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현재 중국에 있는 지명(地名)들을 살펴보면 [삼국사기]와 [중국25사] ‘동이전(東夷傳)’에 등장하는 고구려지명(高句麗地名)인 북평(北平), 태원(太原), 은산(銀山), 용도(甬道), 신성(新城), 고대인성, 섭라성(涉羅城), 영평성(營平城)이 중국에는 있고 한반도에는 없다.
 
또한 [삼국사기]와 [25사] ‘동이전(東夷傳)’에 등장하는 백제지명(百濟地名), 예컨대, 평원(平原), 석문(石門), 청하(淸河), 광양(廣陽), 광능(廣陵), 성양(城陽), 황산(黃山), 백마하(白馬河), 동명(東明), 주류성(周留城), 덕안(德安), 동성(桐城), 잠산(岑山), 독산(獨山), 항성(項城), 숭산(崇山), 하수(河水), 한수(漢水),치청래해(淄靑萊海)가 중국에 있다. 그런데 한반도에는 없다.
 
또한 [삼국사기(三國史記)]와 [25사] 동이전(東夷傳)에 등장하는 신라지명(新羅地名)인 석문(石門), 항성(項城), 석성(石城), 덕안(德安), 동성(桐城), 잠산(岑山), 독산성(獨山城), 정주(汀州), 진해(鎭海)등이 중국에는 있는데 한반도에는 없는데 반도에도 중국의 지명과 같은 것이 몇 있으나 이는 전쟁과 상관없는 것이다. 우리역사는 반도 역사가 아니다. 바로 대륙의 역사다.
 
중국에서 가장 역사기록이 적은 가야(伽倻)역시 구자산(九子山;구지봉?), 황산(黃山), 허촌(許村), 묘수(廟首), 귀지(貴池)등의 지명(地名)이 중국(中國)에는 있는데 한반도(韓半島)에는 없다.
 
그리고 귀지(貴池)의 지자(池字)도 (氵)=삼수변을 빼고 난 야(也)를 쓰면서 귀지(貴池)를 귀야(貴也)가, 가야(伽也;伽倻)로 부르게 된 것이라 하나 좀 더 연구해야 할 과제(課題)다. 고대 백제국은 고구려와 함께 모두 요동동쪽 천 여리 되는 곳에 있었다. 그 뒤에 고구려는 요 동쪽을 침략해서 소유했고 백제는 요의 서쪽을 침략해서 소유했는데 진평군 진평현 이었다.
 
왜(倭)는 양자강(揚)子江) 이남에 엄연히 있어서 왜(倭)와의 전투지명(戰鬪地名)이 중국에 있다. 예컨대 독산(獨山), 함산(含山;토함산?)으로, 고구려 백제, 신라, ‘가라(加羅);가야(伽倻)’, 왜(倭)는 동이(東夷)로 공통으로 기록돼 있어서 이를 한반도로 옮길 수 없는 것이다.
 
중국역사는 조작된 허구의 역사다.
 
지금 중국의 삼황오제는 중국한족의 시조(始祖)라하고 있지만 다 우리 동이족인 것은 다 아는 사실이고 이미 밝혔다. 헌원(軒轅)을 중국한족의 시조로 돼 있어 한족(漢族)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사기에도 헌원(軒轅)의 후예로 소호금천씨가 있고 고신씨(高辛氏)도 있다. 그러나 헌원의 8세손으로 기록된 순(舜)이 동이(東夷)로 기록 돼 있으니 그 조상은 동이일 수밖에 없다.
 
한족시조는 헌원(軒轅)이라 하는데 헌원은 제후(諸侯)인 소전의 아들이고 그 당시 동이(東夷)는 구리(九黎)이며 배달국의 제14대 통치자 치우천황(蚩尤天黃)은 천자(天子)라 했으니 그 당시 천손(天孫), 천황(天黃)이라 칭하는 나라는 당연히 동이국(東夷國)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한족(漢族)은 동이(東夷)에서 분리 독립했다는 뜻이며 우리는 동이(東夷)의 후예로 황제제도(皇帝制度)의 역사도 제대로 정립(鼎立)해야 하고 동이전과 일치하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왜의 위치가 대륙 동쪽에 있는데 이를 황해 동쪽 반도로 옮길 수 없는 것이다.
 
필자역시 초등학교시절 역사시간에서 김유신(金庾信)은 한반도에서 활동한 것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유신의 활동무대는 대륙이지 반도가 아니다. 김유신(金庾信) 조상능(祖上陵)과 김유신(金庾信)시대 지명(地名)이 대륙(大陸)에 있으나 반도(半島)에는 없다.
 
그의 조상능(祖上陵)이 중국에 있고 백제(百濟)와 전쟁을 한 지명(地名)이 대륙에 있다는 것은 우연인가! 반도에는 김유신(金庾信)시대 지명(地名)이 없다. 물론 세월이 지나가면 지명도 변해서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의 흔적을 지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조상(祖上)의 묘(墓)가 잇는 곳은 지명(地名)이 현존(現存)한다면 달라지는 것이 아닌가! 어느 때 까지 우리역사를 반도에 두고 반도(半島) 운운(云云) 할 것인지!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김유신의 조상은 소호 금천씨이며, 헌원(軒轅)의 아들이라고 했다. 김(金)이라는 글자가 들어가지 않았으나 김천씨(金天氏)는 김유신과 같이 김(金)을 사용하고 있는데 김천씨(金天氏)의 능(陵)이 곡부에 있다고 한다. 천하고금지도에 나와 있다는 것은 이를 입증하는 것이다. (以上은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50면~96면 참조(參照)하다.)
 
그런데 곡부를 동서남북으로 해 김유신시대 지명이 현존하고 있으니 황산(黃山), 평원(平原), 동명(東明), 항성(項城), 주류성(周留城), 대산(大山), 박성, 덕안(德安), 동성(桐城), 잠산(岑山), 독산(獨山)등과 김유신시대(金庾信時代) 특산물의 생산지도 중국에 있고, 한반도에는 없다.
 
우리의 대륙역사 한반도로 껴 맞추려 하지 말라!
 
우리나라사람이면서 우리역사를 폄하하고 중국과 일본이 역사왜곡을 조장한 자는 고대의 삼국유사를 쓴 김일연(金一然)과 신채호(申采浩)와 일본의 조선사편수회의 이마니시 류(今西 龍)등 일제와 이에 추종하는 매국적인반도식민사관자들은 우리역사를 한반도(韓半島)에 맞추려 한다.
 
필자도 삼국사기가 고조선 단군에 관한 역사를 찾아 볼 수 없어서 무시해 왔다. 그러다가 우리역사연구원에서 평생을 역사연구해온 오재성 선생과 박완서 원장 외 여러 선생님들과 고대사를 연구하며 삼국사기가 고대 후기역사에 근거가 되는 참고 할 것이 많음을 알게 됐다.
 
[삼국사기(三國史記)]는 장안(長安)중심의 한족(漢族)이 쓴 서화(西華), 항성(項城) 동쪽 동이전(東夷傳)에서 하나의 민족으로 수용(收用)하고 있다는 점과 고구려의 제후국(諸侯國)인 서라벌(徐羅伐)의 칸(干)이 다스리는 동신라(東新羅)와 대륙에 사로신라(斯盧新羅)가 있음을 삼국사는 말해주고 있으며 신당서(新唐書), 구당서(舊唐書)의 기록도 동일함을 말하고 있다.
 
광개토태왕(廣開土太王)시대 백제(百濟), 사로신라(斯盧新羅), 가라(加羅;伽倻), 왜(倭)는 대륙에 있었다. 반도(半島)는 고구려(高句麗) 간지(干地)이며 503년에 신라가 독립했음을 말하고 있다.
 
중국 동쪽에서는 [진서]에 역성(力城), [당서(唐書)]에 대산(大山)이 있고 [남제서]에 광양(廣陽), 청하(淸河), 성양(城陽), 광능(廣陵)이 중국에 있고 반도는 호태왕(好太王) 이전부터 고구려 성(城)인 비리성(碑利城)이 칸(干)에서 왕으로 칭(稱)한지 58년 후 세워진 진흥왕비(眞興王碑)에 나와 있다. 송나라 때 왜곡을 한 우적도(禹跡圖)에도 삼국시대 명칭이 40개가 나온다고 한다.
 
또한 백제(百濟)의 수도(首都)를 서화(西華), 항성(項城)동쪽에서 찾을 수 있게 했다. 백제의 수도에 대한 기록과 지명(地名)은 중국에는 일치하고 있다. 우리는 백제의 한성(漢城)을 서울로 보고 웅진(熊津)을 공주(公州)로 사비(泗泌)를 부여(夫餘)로 보고 있으나 삼국지명이 없다.
그러나 중국에는 백제의 지명이 많이 현존한다. 석문(石門), 한수(漢水)=(한강(漢江);하수(河水), 숭산(崇山), 평원(平原), 백마강, 대산(大山), 동명(東明), 주류성(周留城), 동성, 잠산(岑山), 독산(獨山), 덕안(德安)등 많은 지명과 개로왕(蓋鹵王)이 하수(河水)를 따라 쌓았다는 제방(堤防)과 지명(地名)이 존재함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백제가 대륙에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백제의 위치는 동이(東夷)의 위치를 밝힌 우적도(禹跡圖)의 범위를 벗어 날 수가 없다. 또한 사서(史書)와 일치하는 백제(百濟)의 수도(首都)는 중국(中國)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고구려(高句麗)는 중국 안휘성(安徽省)에서 지금 반도 경상도까지 통치(統治)한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는 고구려(高句麗)가 중국안휘성(安徽省)에 있는 나전칠기(螺鈿漆器)의 고장 섭을 백제(百濟)에 빼앗겼다고 했고 최치원전(崔致遠傳)에는 오월(吳越)까지 통치한 때가 있었음을 기록해있고 지방(地方) 통치자(統治者)를 칸(干)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광개토태왕비(廣開土太王碑)는 석성(石城), 역성(力城), 대산(大山)이 있는 지역을 통치했다고 했다. 석성(石城)은 합북성(河北省)에, 역성과 대성과 임성은 산동성(山東省)에 있으며 한반도는 광개토태왕(廣開土太王)의 땅이라는 명문의 유적이 평안(平安道) 진묘비, 경주의 황남대총의 잔, 창녕 진흥왕비(眞興王碑)의 비리성(碑利城) 등이 있어 고구려 땅임을 입증하고 있다.
 
우리나라 영역(領域)은 환국(桓國), 배달국(倍達國), 고조선(古朝鮮), 삼국시대는 물론, 발해와 고려조도 대륙을 아우르었지, 반도식민사관자들의 말하는 한반도가 아님을 분명히 밝혀 둔다. (以上은 吳在成,‘ 百濟는 중국에 있었다.’46~135面. ‘三國史’를 參照引用했음을 밝힙니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崔仁 ‘(韓國學講義)’, ‘再考證 韓國思想의 新發見’.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吳在成,‘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조선상고사에 한반도 상고사가 없다.’ ‘高句麗史’, ‘九犂系史‘’ 犂: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校勘 十八史’ ‘우리역사(東夷傳)’. ‘高句麗史’, ‘斯盧新羅史’, ’百濟史‘ ’加羅史. 황순종,‘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반재원,‘鴻史桓殷’. 대야발 원저 ‘단기고사’. ‘단군과 교웅-단군의 호적등본’.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사람과 북방주민들’.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石井進外3人, 智勝, ‘우리上古史’-발로 확인한 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바이칼 민족과 홍익인간세상’.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石井進外3人, ‘詳說日本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津田秀夫, ‘ひとりで學べる日本史’.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貝塚茂樹, ‘中國の歷史’上.中,下. 吉川幸次郞, ‘漢の武帝’. 외 다수(多數)의 서책(書冊)을 참조(參照)하고, 본문(本文)을 인용(引用)했음을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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