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민 대다수는 우리역사의 참된 진실을 모르고 있다. 우리나라가 대륙의 주인이었고 우리영역(領域)이 가장 넓을 때는 유라시아의 80%가 우리 영역으로 동서가 2만리(萬里)요, 남북이 5만리(萬里)로 인구 역시 1억 8천만이었던 것을 모르고, 중국과 일본, 반도식민사학자가 말하는 변조된 역사를 그대로 알고 있는 것이 국민의 대다수이다.
이는 얼빠진 사학자(詐學者)에 의한 사대주의(事大主義)의 자학적(自虐的) 역사조작(歷史造作)에 의한 것을 추종(追從)하는 자들이 잘못된 역사서(歷史書)를 엮어놓아 우리 역사를 못 믿을 것으로 만든 까닭이다.
조선시대 때 사학가(史學家)라 칭하는 안정복(安鼎福)은 “기자(箕子)같은 성인(聖人)이 조선에 온 것은 신이 도운 것이라” 하는가 하면, 한말(韓末)의 대학자라는 유인석(柳麟錫)은 “조선은 중국을 천(天)으로 받들어야 한다”고 하는 사대주의사상(事大主義思想)으로 자학적(自虐的)인 역사를 조작(造作)했다.(東史綱目, 第一). 이들은 우리 역사를 제대로 인식 못한 것이다.
한편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사편수회’와 이병도(李丙燾) 등이 일제의 조선사왜곡에 동참해 식민사관의 역사로 왜곡해 조선시대 때와 같은 맥락의 열등의식(劣等意識)과 패배의식(敗北意識)으로 조작했다. 이 역사를 가르침에 따라 국민에게 노예근성(奴隸根性)을 만연(蔓延)시켜, 망국적 식민사관(植民史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 역사는 뒤엎어져 가치관(價値觀)은 변질되고 국가와 민족에 대한 공동체의식(共同體意識)이나 연대의식(連帶意識)이 희박(稀薄)해져 말이 아니게 된 실정이다.
과연 우리는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조선시대의 문인(文人), 사가(史家)들은 우리가 본래 중국의 노예인양 매도하며 노예가 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식민사관을 조작해 국민을 가르쳤다. 이 같은 교육을 시행한 조선시대이니 이민족(異民族)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우리가 이런 민족이었는가! 그것은 국내외의 문헌(文獻)을 고증(考證)하면 우리가 도리어 위대한 천손(天孫)의 민족으로 고대부터 중국과 일본은 물론 대륙과 유라시아를 사상(思想)과 문화(文化)며 타민족을 정벌·정복하고 이들을 지배하며 문명을 일궈낸 것을 잘 알 수 있다.
오늘은 우리 민족이 인류역사(人類歷史) 상 최초로 유라시아를 정복(征服)해 타민족을 지배(支配)하고 우리 민족에 의해 주역철학(周易哲學)은 물론 물질문명(物質文明)이 발생해 정치와 문물 등 5대 문명을 주도(主導)한 강대한 국가였음이 다시 살펴보고자 한다.
반도사학자는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고 말을 하라
역사를 제대로 알려면 우리는 상고시대(上古時代)와 고조선시대(古朝鮮時代)부터 인류발달사(人類發達史)를 기준(基準)으로 연구를 해야 한다. 지금같이 우리민족의 특수성(特殊性)을 무시(無視)하는 방법(方法)으로는 우리의 역사(歷史)를 발견(發見)하지 못한다. 우리 역사가 대륙의 역사임에도 역사를 바로세우겠다는 이들까지도 자신이 지득(知得)하고 피상적으로 보고 느낀 것에 맞추려는 것은 역사를 연구하는데 큰 장애가 됨으로 유의해야 한다.
역사연구는 인류학적(人類學的)은 물론 고고학적(考古學的)인 입증이 요구되며 원전(原典)을 연구하고 그 진위를 바로 알고 지금 우리역사가 어디가 잘못 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말을 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 역사는 ‘조선상고사’를 쓴 신채호(申采浩)의 수준을 못 넘고 있다.
신채호(申采浩) 선생은 우리 고대사를 연구한다면서 우리 역사를 잘못 오도(誤導)한 것을 모르고 있다. 그는 우리 역사를 제대로 나타난 역사서로 ‘삼국사(三國史)’와 ‘지나(支那)18사(史)동이전(東夷傳)’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우리 역사를 한반도역사(韓半島歷史)로 만드는데 공헌한 사학자가 돼 반도식민사관(半島植民史觀)의 수장(首長)이 되고 있다.
우리 역사가 반도가 아닌 대륙에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삼국사’와 ‘지나(支那)18사동이전’의 사실을 제대로 기준을 세우지 못해 ‘조선상고사’ 총론에 만주는 여진족으로 우리와 상관없는 것으로 분류해 후학들이 이를 따름으로 우리 역사를 망가뜨리는 데 큰 몫을 했다.
지금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 반도기(半島旗)를 들고 자랑스러워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며, 한탄을 금치 못한다. 우리가 반도국가 인가! 우리 역사 어디에 반도국가라는 것과 국경을 압록강 두만강으로 획정한 기록이 있는가! 역사의 무지가 나라 망신을 시킨다.
우리와 상관없는 청국과 일본이 전쟁 후 청일간(淸日間)에 맺은 ‘간도조약’에서 우리의 국경을 확정한 것이 옳은 것인가! 이 조약은 청일간의 조약이지, 국제법상 제3국인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런데도 광복 후 이를 그대로 두는 것은 우리의 수준인 것 같다. 중국과 일본이 그은 반도기를 들고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얼마나 무지하고 수치임을 알아야 한다. 이를 반기는 나라는 중국과 일본임도 모르고 있다. 앞으로 우리는 동북3성은 물론 대마도까지도 되찾아야 한다. 일본은 오가와사라 군도를 미국으로부터 되찾았다.
우리는 상고시대부터 대륙에 세계 최초의 시원국(始源國)이었으며 천하를 호령한 민족임에도 스스로 반도인(半島人)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도 우리는 반도식민사를 배우며 이를 자랑스러워함이 수치임을 모르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국민의 역사지식수준(水準)이 이 정도라는 것에 부끄러워해야 한다. 우리는 반도인도, 반도역사도 아니다. 만주는 물론 대륙이 우리의 영토였고 역사본거지이다.
한심한 반도식민사관 우리가 몰아내야 한다
우리는 어찌 이 반도사관에 메여 있는지 반성하고 가야 한다. 지금 헌법도 우리 영역을 한반도로 하고 애국가(愛國歌) 가사(歌詞)도 삼천리(三千里)로 한 것이 얼마나 잘못되 것임을 통감해야 한다. 중국과 일본인은 우리를 보며 쾌재를 부르고 있다. 어찌 반도인가! 대륙이 아니던가!
조선시대 세종대왕(世宗大王) 때 명(明)나라 주원장(朱元璋)이 살아 있을 때 그는 간도(間島)가 명(明)나라 땅이라 주장했다. 이에 세종대왕은 간도가 우리 땅임을 순수비(巡狩碑), 제문(祭文)과 지도(地圖) 등을 보내어 간도가 우리 땅임을 입증했다. 이에 주원장(朱元璋)은 ‘할 수 없다 간도는 조선 땅’이라고 했다.
그런데 중국이 고구려(高句麗), 발해(渤海) 등 우리 역사를 자기들 역사라고 하는 동북공정(東北工程)에 대처한다는 ‘동북아역사재단(東北亞歷史財團)’이 ‘ 간도(間島)가 우리 땅이 된 적이 없었다‘라는 무지(無知)한 발표를 하였다. 참으로 기가 찰 일이다. 간도(間島)는 우리가 찾아야 할 우리영토이다.
이런 재단이 수백억의 예산으로 유지하는 것은 예산 낭비다. 이런 재단도 이제 해체(解體)해야 한다.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연구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 목표도 없으며 미래지향적인 국가관도 역사관도 없는 이런 재단을 정부는 무엇 때문에 지원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제 우리 역사를 바로 세워가기 위해서 학자들과 국민이 역사를 바로 세우고 지켜가야 한다. 지금 만연된 잘못된 우리 역사를 제대로 바로 세우지 않으면 우리는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우리의 역사에 조작이나 왜곡은 있을 수 없다. 있는 그대로 밝히면 된다.
우리 역사를 반도사관으로 한 자는 ‘삼국유사’를 쓴 김일연(金一然)과 ‘조선상고사’를 쓴 신채호(申采浩)에 의해 잘못되고 있다. 김일연(金一然)은 ‘남제서(南齊書)’에 의해서 ‘삼국사’가 옳다는 것을 알면서 연구하지 않았고, 신채호(申采浩)는 ‘조선상고사’ 총론에 만주의 우리 동이족(東夷族)을 ‘여진족’으로 분류하여 무조건 모든 사서(史書)를 고쳐서라도 반도역사로 만들어· 버렸다.
또한 ‘조선사연구초’에 동을 서로 맞추라하며 대륙의 신라, 백제가 홍수가 잘못 되었으니 자연과학에 대한 것을 빼고 누가 왕이 되었느냐 ‘동서양자(東西兩者) 상환고증(相換考證)’이라하며 삼국사 [삼국사(三國史)]를 부정적(否定的)으로 한, 일본이 한 그대로 보게 한 장본인이다.
신채호(申采浩)는 우리 역사를 바로한 학자가 아니다. 그는 우리역사를 제대로 인식(認識)못하고 있는 반쪽의 학자이지 대 학자가 아니다. 지금의 식민사관자(植民史觀者)들은 신채호(申采浩)의 반도이론을 따르며 우리역사가 반도역사(半島歷史)인양 말하고 있다. 이는 우리사학계가 얼마나 역사연구를 하지 않고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고 나라를 망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1700년까지 유럽 지도(地圖)에는 만주(滿洲)는 조선(朝鮮)으로 되어 있다. 또한 카톨릭교구(敎區)도 역시 1945년 흑룡강 길림(吉林) 동쪽을 원주교구(原州敎區)로 표시하고 있다. 일본인도 만선사관(滿鮮史觀)이었고 해방 후 만한사관(滿韓史觀)으로 바꿨다. 우리는 언제까지 반도사관인가! 각성하라!
(以上, 주참고서는 吳在成,‘三國史 高句麗本紀’‘百濟本紀.’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조선상고사에 한반도 상고사가 없다.’ ‘高句麗史’, ‘九犂系史‘’ 犂: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校勘 十八史’ ‘우리역사(東夷傳)’. ‘高句麗史’, ‘斯盧新羅史’, ‘百濟史’ ‘加羅史’. 九犂系, 倭-日本史’. 윤진영, 編集 ‘三國史. 參照, 本文을 引用 하였음을 밝힙니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崔仁 ‘(韓國學講義)’, ‘再考證 韓國思想의 新發見’.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吳在成,‘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조선상고사에 한반도 상고사가 없다.’ ‘高句麗史’, ‘九犂系史‘’ 犂: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校勘 十八史’ ‘우리역사(東夷傳)’. ‘高句麗史’, ‘斯盧新羅史’, ‘百濟史’ ‘加羅史’. 九犂系, 倭-日本史’. 윤진영, 編集 ‘三國史. 苻都誌’. 황순종,‘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반재원,‘鴻史桓殷’. 대야발 원저, ‘단기고사’. ‘단군과 교웅-단군의 호적등본’.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사람과 북방주민들’.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石井進外3人, 智勝, ‘우리上古史’-발로 확인한 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바이칼 민족과 홍익인간세상’.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石井進外3人, ‘詳說日本史,. 文定昌, ’韓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津田秀夫, ‘ひとりで學べる日本史’.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貝塚茂樹, ‘中國の歷史’上.中,下. 吉川幸次郞, ‘漢の武帝’. 李民民樹,'朝鮮傳‘.외 다수(多數)의 서책(書冊)을 참조(參照)하고, 본문(本文)을 인용(引用)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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