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우에다 마사아키(上田正昭) 교토대(京都大) 교수는 필자도 존경하는 양심적인 사학자다. 그는 ‘일본의 천황가(天皇家)가 대륙에서 온 도래인(渡來人)이며 자신이 일본천황가(天皇家)와 귀족들이 실려 있는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을 갖고 있다’고 했다.
사실 일본은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궁내성(宮內省)에서는 대륙에서 건너간 선조를 모신 가라진자(韓神社)에 대한 제사를 지금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일본인들이 축제 때 춤을 추는 태평락(太平樂);미카쿠라 춤)도 그 유래는 백제계(百濟系)의 것이다. 그들은 춤을 출 때 백제계의 옷인 지금 일본의 옷을 입고 백제계 노래로 춤을 추는 것을 필자도 보았다.
그들은 대륙에 왜(倭)가 우리의 식민지였음에도 ‘옛날에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다’라고 거꾸로 말하고 있다. 그들의 역사관은 전전(戰前)이나 전후(戰後)에도 똑 같아 보인다. 그들은 우리를 멸시하는 그릇된 역사관으로 정신세계를 훼손시키고 있다. 또한 교과서를 통해 우리보다 우월한 것 같이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미래의 한국관(韓國觀)은 비관적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것을 받아드린 전후의 학자라는 이병도(李丙燾), 손진태(孫晉泰), 이기백 등이 시간과 공간을 축소 왜곡한 일본의 쓰다사우기치(津田左右吉)의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여 우리나라가 ‘고대는 약했다’고 이야기한다.
이들은 고대 우리가 더 강했음을 알고 있는데 연구는 하지 않고 일본학자의 이론을 받아들이고 광복(光後) 후에도 사학계의 권력(權力)을 잡은 이들 식민사관자들은 우리역사를 망치고 있다. “역사는 과거의 흘러간 일이 아니라 앞으로의 거울이다”라고 한 일본 학자의 말은 외면하면서!
며칠 전 국회방송을 보니 계백(階伯) 장군과 김유신(金庾信)의 신라군이 황산벌판에서의 싸웠다는데 이것이 한반도에서 이뤄진 것 같이 방영하는 것을 보며 개탄을 금할 수 없었다.
백제와 신라가 전쟁을 한 곳은 대륙의 황산(黃山)이 명백한데도 아직도 역사의 무지가 수치임을 모르고 있다. 삼국사를 쓴 김부식도 360개의 지명을 못 찾았는데 이 지명도 다 대륙에 있다.
세계의 석학들이 중국 사서를 연구해 모두 대륙이 전쟁터인 것을 말하고 있는데도 아직까지도 식민사관자(植民史觀者)들만이 무지(無知)한 역사를 말하고 있음을 보며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오늘은 전주(前週)에 이어 우리 역사가 반도가 아니고 대륙의 역사임을 제대로 살펴보고자 한다.
고조선 역사체계의 비극은 삼국유사에서 비롯됐다
일본은 우리 ‘삼국사(三國史)’를 1908년에 ‘삼국사기’로 책명을 바꿔서 나오게 했다. 이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고조선 단군(檀君)에 관한 기록이 전무하다. 그리고 ‘삼국사’ 권(卷)46의 대륙을 지배한 역사인데 이를 지워서 말하는 역사는 역사인가! 너무 기가 차고 한심하다.
그리고 ‘삼국사(三國史)’도 5종류로 되어 있는데 일제(日帝)는 이 ‘삼국사(三國史)’도 다시 고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다섯 종류의 ‘삼국사’중 사직도서관(社稷圖書館)에 있는 일본학자 ‘청유대랑’이 낸 책에는 유연제노오월(幽燕齊魯吳越)을 정벌하고 지배한 기록이 유일하게 나온다.
한편 우리도 반성할 것은 왕조가 바뀌면 멸망한 국가의 기록을 다 없애버리는 것이다. 세종 때 권근, 이첨, 하륜으로 하여금 고려사(高麗史)를 없앴다. 고려사 50권을 한권에 요약하게 했다. 그러나 세종대왕은 이 고려사를 없애지 않았다. 바로 1451년(조선 문종 2년) 8월 25일 ‘고려사 139권’을 왕성했는데 이는 조선조 초기 당시 고려 유신의 반항에 취해진 잠시 조치로 보여 진다.
그런데 우리나라 역사 체계의 비극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우리나라 학자 다대수가 모르고 있다. 1281년(충렬왕(忠烈王) 7년 경에 고려후기(高麗後期)의 승려(僧侶) 김일연(金一然)이 편찬한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전체 5권 2책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은 권(卷)과는 별도로 왕력(王歷)·기이(紀異)·흥법(興法)·탑상(塔像)·의해(義解)·신주(神呪)·감통(感通)·피은(避隱)·효선(孝善) 등 9편목으로 구성(構成)돼 있는데, 여기서 왕력(王歷)은 삼국(三國), 가락국(駕洛國), 후고구려(後高句麗), 후백제 등의 간략한 연표(年表)이다.
기이(紀異)편은, 고조선(古朝鮮)으로부터 후삼국(後三國)까지의 단편적(斷片的)인 역사를 57항목으로 서술(敍述)하였는데 1, 2권에 계속 된다. 기이(紀異) 편의 서두(序頭)에는 이 편을 설정(設定)하는 연유(緣由)를 밝힌 서(敍)가 붙어 있다.
그리고 이승휴(李承休)가 1280년 저술해 1287년에 왕에게 올린 책이 ‘제왕운기(帝王韻紀)’이다. 이 책은 상·하, 2권 1책이며 상권은 반고(班固)로부터 금(金)나라까지 지나(支那)의 역사를 7언사로 읊었고, 하권은 1.2부로 나누어 단군부터 충렬왕(忠烈王)까지 역사를 서술했다.
1부 ‘동국군왕개국연대’는 전조선, 위만조선, 삼한, 신라, 고구려, 백제, 발해 등의 사적을 7언시(言詩)로 엮었고, 2부 ‘본조군왕세계연대’는 고려 건국부터 충렬왕까지의 역사를 5언 시로 엮고 있다. 이는 서사시(敍事詩)로 한반도 역사를 그릇되게 하고 있다. 또한 이 ‘[제왕운기(帝王韻紀)’에는 단군(檀君)도 없다. 이는 역사서(歷史書)라 할 수 없다. 단지 서사시일 뿐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삼국유사기록(三國遺事記錄)’은 옛날 환국(桓國)이라는 나라가 있었다는 ‘석유환국(昔有桓國)’과 신라시대 정신대왕(淨神大王)에 관한 기록 외에는 한국사가 없다. 일연은 김유신을 한반도로 가져오기 위해 가락국(駕洛國)의 역사를 만들며 고구려와 백제를 없앴다.
김유신(金庾信)은 조상 대대로 대륙에 살았다. 순(舜)의 8대조가 헌원(軒轅)인데, 헌원(軒轅)은 동이이면서 화하족의 왕으로 배달국시대 치우천황과 73번 싸웠으나 패한 중국의 삼황오제(三皇五帝)중 첫 황제다. 김유신이 반도에 있었다는 것도 우리 역사를 모르는 자들의 작태(作態)다.
역사를 제대로 연구하면, 일연(金一然)은 삼국(三國)부터 시작해서 고조선(古朝鮮)이 없고, 여기에 더 큰 실수는 ‘삼국사(三國史)’권 46의 유연제노오월(幽燕齊魯吳越)의 기록을 뺀 장본인(張本人)으로 고대의 우리역사를 다 그르치게 하는 단초를 제공한 자가 김일연(金一然)이다.
또한 이 논조에 맞춘 것이 신채호(申采浩)이다. 여기서 우리역사를 냉철하게 볼 필요가 있다. 동이전(東夷傳)에는 자연현상(自然現象)이 없다. ‘삼국사(三國史)’에는 자연현상이 있다. 이당시의 진부(眞否)는 오늘의 과학으로도 천문(天文) 등 자연현상(自然現象)을 맞춰보면 알 수 있다.
고대 우리 ‘삼국사(三國史)’는 대륙과 한반도의 역사를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런데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쓴 김일연(金一然)은 낙랑국과 낙랑군을 구별하지 못 했다. 어떤 이유인지 우리가 대륙의 주인임을 다루지 않았다. 이는 오늘날 일부 식민사관자들의 부패상과 흡사한 것 같다.
‘삼국사’를 제대로 조명하면 우리 대륙 역사 나온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삼국사(三國史)’는 물론 중국의 남제서(南齊書), 25사(史)에도 유연제노오월(幽燕齊魯吳越)에 대하여 쓰여 있다. 그런데 일연(金一然)이 가장 큰 실수(失手)는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가 유연제노오월(幽燕齊魯吳越)을 다물(多勿)한 것을 쓰지 않은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유생(儒生)들도 성리학(性理學)에만 메여 있어서인지 역사(歷史)에 무지(無知)가 들어나는 것들을 볼 수 있다. 예컨대 조선조 대학자 중 한분인 정약용(丁若鏞)은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에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참고 하였으나 영역(領域)을 잘못 알고 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분명히 503년 이전 것은, 동신라가 칸(干)이고, 503년 후는 왕(王)으로 기재(記載)하고 있다. 대륙의 사로신라(斯盧新羅)는 서기 907년에 망하고 907년~936년은 후삼국시대(後三國時代)이다. 우리나라 학계는 이를 모르거나 숨기고 있다.
사로신라(斯盧新羅) 초기(初期)는, 가라(加羅;가야(伽倻)의 속국(屬國)이었다. 그것은 김수로왕(金首露王)때 사로국(斯盧國)의 사신(使臣)을 죽였으나 사로신라(斯盧新羅)는 한마디도 말 못했다. 분명한 것은 이 사로신라(斯盧新羅)는 고구려의 속국(屬國)이었다가 백제의 속국(屬國)이 된다.
서기 307년 고구려로부터 떨어지려 하였으나 여의치 않아 진평왕(眞平王) 때인 503년 칸(干)에서 왕이 된다. 이 신라가 936년까지 간다. 신라의 국호(國號)는 307년부터 쓰게 된다. 서라벌 신라(新羅)는 서기 503년부터 왕(王)의 명칭을 쓰게 된다. 당시 왕(王)은 지증왕(智證王)이었다.
당시 한반도(韓半島)의 신라인데 고구려연방(高句麗聯邦)의 하나였다. 이 반도의 신라는 지증왕(智證王), 진지왕(眞智王), 법흥왕(法興王), 진흥왕 4대가 한반도의 기록이다. 한반도가 평화지(平和地) 였다. 진지왕 후의 기록은 없다. 신라의 기록은 거의 97%가 대륙(大陸)의 기록(記錄)이다. 선덕여왕(善德女王)의 기록도 반도가 아닌 대륙의 기록이다.
사로신라(斯盧新羅)는 663년에 백제가 멸망됨과 함께 계림도독부(鷄林都督府)가 되어 이때 천문기록(天文記錄)이 당(唐)에 빼앗긴다. 그리고 가한(可汗), 한(韓)은, 다 제후국(諸侯國)이다.
여기서 한(韓)은 광개토태왕(廣開土太王) 때, 칸(干)을 한(韓)으로 하였다. 이상의 기록들을 결론을 말한다면 일연(金一然)의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제일 이해가 안 되는 점은, ‘동이전(東夷傳’)에서 가장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고구려, 백제전(百濟傳)을 기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신라(新羅), 가라(加羅;가야(伽倻) 역사보다 더 많은 자료가 18사(史) 동이전(東夷傳)에 있음에도 고구려, 백제, 전사가 없다.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후한서(後漢書), 신구당서(新舊唐書)를 인용하면서도 신라(新羅), 가라(加羅)를 위주로 했다.
가라(加羅)는 18사에서 유일하게 남제서, 권 58의 항목을 가지고 있음에 가락국기(駕洛國記)를 마련하였는데도 동이전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고구려사, 백제사도 없고 왜인전(倭人傳)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 이것은 신라와 가라(加羅)를 고구려 땅에 맞추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
고구려, 백제에 대한 기록은 중국 18사에 신라보다 월등히 많다. 그럼에도 전기(傳記)를 마련하지 않은 것과 삼국사열전(三國史列傳) 46의 우리가 대륙에서 고구려, 백제가 남으로 오월(吳越), 북으로 유연제로(幽燕齊魯)를 통치했음을 우리 영역과 상관이 없다고 보았을 가능성이다.
이는 역사 무지다. 중국 18사의 왜인(倭人)은 일본열도 인이 아니었다는 사실도 몰랐다는 것은 오늘 우리나라 반도사관의 사학자들이 고구려, 백제, 신라, 가라가 유연제노오월(幽燕齊魯吳越)땅에 있었고 왜인도 그곳에 있었음을 모르는 것과 같은 수준으로 상상도 못한 것과 같다. 일연(金一然)은 ‘삼국유사’부터 ‘조선상고사’까지 삼국시대 사서(史書)를 한반도에 맞추었다.
우리는 정사(正史)인 ‘삼국사(三國史)’가 있으나 ‘삼국유사’에서 ‘조선상고사’까지 삼국시대를 나타내는 ‘삼국사’와 ‘삼국지’ 동이전으로 한반도에 맞추어 역사를 보려는 경향이 있어 왔다. 이것은 ‘삼국사’와 ‘중국 18사’ 동이전을 부정적으로 보고 한반도에 맞추려는 자세가 문제이다.
사서(史書)를 고쳐서라도 한반도 역사를 만들려고 하는 것은 아직도 ‘삼국사’나 그 시대를 나타낸 기본사서인 ‘중국 18사’ 동이전(東夷傳)을 검증(檢證)하고 정리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연구를 뒷전으로 우리역사를 한반도에 맞추려는 ‘신채호(申采浩) 방식’으로는 우리 역사를 바로 정립할 수 없다. 사료가 없다고 하나 있는 사서만으로도 우리역사는 바로 얼마든지 정립할 수 있다. 이를 연구도 확인도 않고 한반도에 맞추려는 자는 사학자라 할 수 없다.
중국과 일본의 왜곡된 역사에 익숙한 상식으로 역사를 보면 우리역사는 영원히 찾을 수 없다. 사마천의 ‘사기(史記)’도 진시황(秦始皇) 이전의 역사는 무조건 동이역사(東夷歷史)로 보고 있는데 우리의 사학계가 이리도 난맥상을 이르는 것은 역사를 제대로 인식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너무 한심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한심하다. 우리의 각성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以上, 주 참고서는 吳在成,‘三國史 高句麗本紀’‘百濟本紀.’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조선상고사에 한반도 상고사가 없다.’ ‘高句麗史’, ‘九犂系史‘’ 犂: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校勘 十八史’ ‘우리역사(東夷傳)’. ‘高句麗史’, ‘斯盧新羅史’, ‘百濟史’ ‘加羅史’. 九犂系, 倭-日本史’. 윤진영, 編集 ‘三國史. 參照, 本文을 引用 하였음을 밝힙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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