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의 역사를 뒷받침하는 전쟁터와 인물들

입력 2018-10-13 15: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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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김부식 편찬한「
삼국사(三國史)()46에 최치원(崔致遠)의 전기(傳記)가 실려 있는 기사(記事) 가운데 우리 역사(歷史)의 영역(領域)을 찾는데 도움이 되는 원문(原文)이 쓰여져 있다. 그것은 (高句麗百濟全盛之時 强兵百萬 南侵吳越 北撓幽燕齊魯 爲中國巨蠹)임을 밝힌바 있다.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가 강성(强盛)한 때, 강한 병력(兵力) 백만(百萬)으로 남으로 오()와 월()나라를 없앴고, 북으로는 유(), (), (), ()나라를 제거했으며 그 나라들을 지배해서 삼국시대의 역사가 이곳에서 펼쳐진 것으로 다른 대륙의 나라들에게 크게 위협이 되었다.’고 하였다. 이 영역은 지금의 중국 동쪽 산동반도를 중심으로 한 영역(領域)이다.
 
이 지역의 지명은 몇 번이고 이동을 반복하면서도 아직도 삼국시대의 지명이 남아 있고 그 당시 대륙에서 활동한 최치원(崔致遠), 장보고(張保皐), 김유신(金庾信) 계백(階伯) 장군 등 인물들이 대륙에서 활동한 것을 우리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중국의 18()가 이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은 당치도 않은 역사 조작과 왜곡으로 우리 역사를 폄하(貶下)하고 있는데 이는 김부식(金富軾)의 찬한 삼국사(三國史)50권을 연구하지 않은 섣부른 학자들이 제멋대로 말하는 연구다. 이 연구는 중국과 일본인들이 이를 더욱 환영하며 우리 역사는 한반도에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우리 역사를 연구하지도 않고 한반도에 맞추려는 것은 정신 나간 족속들이 민족의 정신마저 섞어 들어가게 만드는 슬픈 일이다. 우리나라 역사를 깊이 연구한 학자들은 고증을 통해 중국의 사서들에 나타난 우리 역사가 대륙의 역사임을 만천하에 입증하고 있다.
 
삼국사(三國史)와 중국의 18사인 사기(史記),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 삼국지, 진서(晉書), 위서(魏書), 송서(宋書), 남제서(南齊書), 양서()), 주서(周書), 진서(陳書), 북사(北史), 남서(南書), 당서(唐書), 구당서(舊唐書), 구오대사(舊五代史), 오대사(五代史), 동이전(東夷傳)등에서 입증되고 있음에도 아직까지도 헛소리들을 하고 있음은 한심한 일이다.
 
중국의 남제서(南齊書)()58에서도 상대사시중장기록에도 삼국시대(三國時代) 우리가 오()와 월()나라를 없앴고, 북으로는 유(), (), (), ()나라를 제거했고 그 나라들을 지배한 사실과 일치하고 있다. ()나라가 망한 이유도 요()의 동쪽을 정벌(征伐)하려고 한 때문임을 말하고 있다.
 
우리 역사를 규명(糾明)함에 있어서 삼국시대의 지명(地名)이 중국에는 있는데 한반도에는 사서(史書)에 등장하는 지명이 없다. 혹자(或者)는 한반도의 지명(地名)이 변경되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신라-고려-조선으로 변()한 한반도 보다 당(), 오대십국(五代十國)------()으로 변화가 많았던 중국에는 삼국시대(三國時代)의 지명(地名)들이 있다. 그것도 한반도에서 진출하였다고 하는 지역에 있는데 본토(本土)라고 주장하는 한반도(韓半島)에는 없다.
 
오늘은 삼국사(三國史)()46)남제서(南齊書)58의 사실을 삼국사(三國史)와 중국18사를 중심으로 삼국의 위치와 수도(首都)와 고대 당시 삼국시대의 상황을 일부나마 밝히고자 한다.
 
지명(地名)으로 본 삼국(三國)의 위치
 
삼국시대를 지명으로 그 위치를 규명해보는데 삼국지명이 중국에는 있으나 사서(史書)에 등장하는 지명이 한반도(韓半島)에는 없다. 현재 우리나라와 중국 지명(地名)이 같은 것이 있는데 반도식민사학자들은 우리 민족이 이동해 와서 그렇다고 말을 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 대륙에서 이동 하였다면 서로 지명(地名)의 위치가 다룰 수 있다. 그런데 중국의 지명과 비교해 보면 중국의 동서남북의 위치와 너무나 똑 같다는 것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것도 한반도(韓半島)에서 진출했다고 하는 대륙의 지역에는 있는데 본토(本土)라고 주장하는 한반도에는 없다. 그런데 현재 한국과 중국의 지명이 같은 것이 있다. 이것은 이동(移動)에 의해서 그렇다고 보기 보다는 사서(史書)를 인용했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 동사강목(東史綱目)의 채거서목 삼국유사(三國遺事)편에 조선시대 동국통감(東國通鑑)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찬 할 때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인용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가 여기서 간과(看過)해선 안 될 것이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중국사서(中國史書)를 인용(引用)하고 있는 것은 그 원본(原本)은 중국사서(中國史書)가 되는 것이다.
 
중국사서(中國史書) 동이전(東夷傳)에 등장하는 지명(地名)이 중국에 있고 송()나라 때 만든 우적도(禹跡圖)송본지리지장도(宋本地理地藏圖)에도 있으니 동이전(東夷傳)의 위치(位置)는 현 대륙내부(大陸內部)에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백제(百濟)와 고구려(高句麗)가 패망시대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가 동일하기 때문에 중국 25() 동이(東夷) 위치를 벗어 날 수가 없다.
 
또한 삼국시대(三國時代)의 지명(地名)이 반도(半島)에는 없으나 대륙에는 있다. ()나라 제작의 고지도(古地圖)에도 지명이 황해(黃海)서쪽에는 있는데 이의 위치는 대륙임이 판명된다.
 
삼국시대(三國時代) 지명(地名)이 대륙(大陸)에는 있고 반도(半島)에는 없음은 무엇을 말해는 것이며 또한 백제의 패망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삼국유사(三國遺事),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가 동일하게 있는데 반하여 반도(半島)에 없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이는 당시 삼국은 반도에 없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나오는 석문(石門), 평양(平壤), 태백산(太白山), 옥문(玉門) 독산성(獨山城), 항성(項城), 랑산(郞山), 동성(桐城), 잠산(岑山), 평원(平原), 백강(白江), 동명(東明), 덕안(德安), 주류성(周留城), 황산(黃山), 제성(諸城), 박성(博城), 대산(大山) 등이 다 대륙에 있다. 반도에 이 지명은 몇 개가 있고 본보기로 옮겨 놓고 그 많은 지명은 찾아 볼 수 없다.
 
배달국시대의 치우천황(蚩尤天黃)과 헌원천황(軒轅天黃), 그 자손인 김유신(金庾信)과 계백장군, 장보고(張保皐)관계지명과 조선의 기자능(箕子陵)이 몽성(蒙城)과 부여융(夫餘隆)의 무덤과 그 묘비(墓碑)가 다 이 지역에 있다. 상고시대의 치우천황(蚩尤天黃)의 능()이 동평에 있다.
 
그리고 중국(中國)의 삼황(三皇)에 모시는 헌원천황(軒轅天黃)과 그 자손인 김유신(金庾信)의 무덤도 장보고(張保皐), 최치원(崔致遠)의 활동무대가 반도가 아닌 대륙에 있는데 반도에서의 진출(進出)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이상은 百濟中國에 있었다. 12()~16()參照, 引用)
 
한반도사관 조작역사, 천하가 안다
 
반도사관 자들은 우리나라 삼국이 다 반도에 있었다는 전제하에 연구하였기 때문에 한반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망령들을 보는데 이미 살펴 본대로 한반도에는 삼국시대 지명이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현재도 삼국사권46의 지역에서는 삼국미상의 지명 까지도 많이 발견할 수가 있다.
 
()나라가 패망한 이후 건국한 송()나라가 제작된 우적도(禹跡圖)’가 중국역사도설(中國歷史圖說)에 소개되어 있는데 중화민국(中華民國)에서 발행한중화민국지도집(中華民國地圖集)과 일치(一致)하고 있다. 이러한 것을 확인하고 삼국시대의 지명의 말을 해야 한다.
 
오월 유연제로 지역에서 삼국시대 지명(地名)이 존재하는데 고구려, 백제가 건국 때와 패망할 때 지명이 대륙에 많이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역사를 한반도에 맞추는 연구는 분명히 잘못 된 것이다. 이미 밝힌 대로 삼국사50권과 중국18사 동이전이 다 같이 유(), (), (), ()나라와 오()와 월()나라를 정벌하고 정복하여 지배한 것 숨길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삼국사(三國史)50()과 중국 18() 동이전(東夷傳)의 지명(地名)을 보면, 옥저(沃沮) 동쪽 만주와 반도에 걸친 낙랑국(樂浪國)이 있고, () 동쪽에는 낙랑군(樂浪郡)이 있다.
그런데 삼국시대 지명이 삼국사(三國史)46에 있고 반도에는 없는데 어찌 반도인가!
 
인구 적으로도 한반도의 인구로는 아니 되고 유(), (), (), (), (), ()지역의 인구로는 가능한 것이다. 또한 홍수(洪水)와 가뭄이 한반도(韓半島)에서는 설명할 수 없으나 남제서(南齊書() 58지역(地域)에는 가능한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보통 특이한 기상(氣象)은 한반도에서는 홍수가 져도 일주일이면 평상(平常)이 되나 삼국사(三國史)() 46에서는 몇 달을 머물 수가 있다. 또한 삼국 일식(日蝕)의 집중 관측지(觀測地)삼국사(三國史)]()46지역이고, 겨울에 돌림병도 유(), (), (), (), (), ()지역이다.
 
그리고 신라명절(新羅名節)8.15민속절(民俗節)9.9, 달도절(怛忉節)도 이지역이다. 지진(地震)과 황충(蝗蟲)피해지역도 한반도보다 많은 삼국사(三國史)()46지역인 유(), (), (), (), (), ()지역이다. 이곳은 대륙이지 한반도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화랑(花郞)이전 원화시대 남모를 죽여 던진 곳도 황하(黃河)이다. 이러한 기록들이 우리나라 전라도(全羅道)와 경상도(慶尙道)에는 불가능(不可能)한 일이고 대륙에서만 가능한 결과들이다.
 
또한 옥저(沃沮)와 낙랑국지역과 고구려, 백제, 사로신라(斯盧新羅)와 함께한 낙랑군(樂浪郡)지역으로 구별이 가능하고, 낙랑태수(樂浪太守)는 온조(溫祚), 같은 지역에 있었고, 후한서(後漢書)에 의하여 고구려(高句麗) 남 쪽 예()의 서쪽에 있었으니 백제초기(百濟初期)는 예()의 서쪽에 가까운 지역에서 건국한 것으로 봐야 한다.
 
남제서(南齊書)시대에도 백제는 낙랑군, 대방군지역에 있었다. 그리고 가라(加羅;가야(伽倻)고구려, 백제에서 광복한 사로신라와 고구려에서 독립한 신라로 구별이 가능하고, 백제와 고구려에서 광복하고, 화랑을 육성하여 무장을 한 사로신라(斯盧新羅)에 의하여 패망하였다.
 
이 고구려(高句麗)에서 독립한 신라(新羅)는 광녕(廣寧)에서 길림(吉林)에 이동(移動)해서 통치하였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다각적인 방법도 삼국사46지역에서 가능한 것이다.
 
한성(漢城)과 웅진(熊津)은 어디에 있었나
 
우리는 백제의 수도(首都)가 한반도의 한성(漢城)과 웅진(熊津)에 있었다고 배워 왔으나 이에 관한 기록과 일치되는 것을 입증된 것이 없다. 그러나 한성(漢城)에 대한 기록으로는 낙랑태수지역에 가깝고, 그 동쪽 끝에 있으며, 대방태수(帶方太守)지역에 있는 욱리하, 숭산(崇山)과 사성이 있고 하수(河水)를 따라서 제방(堤防)이 있다. 한성(漢城)을 입증하려면 궁실누각(宮室樓閣)을 화려하게 지은 흔적이 있어야 한성(漢城)이 되는 지역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웅진(熊津)에 대한 것은 그 땅이 신라와 발해 말갈이 차지할 수 있는 지역이여야 하고, 동명(東明), 덕안(德安), 항성(項城), 평원(平原), 침구, 동성(桐城), 잠산(岑山), 독산성(獨山城), 주류성(周留城)등이 있어야 한다. 한반도에는 이런 지명이 역사왜곡을 위한 것 외에는 없다.
 
웅진(熊津)은 대산(大山), , 태산(泰山)의 서쪽에 있다는 것이다. 백제와 웅진에 대한 사료(史料)삼국사(三國史)()46과 한반도에 각각 대입해 보면, 웅진은 평원(平原), 황산(黃山), 동명(東明)과 대산(大山) 사이에 웅진(熊津)이 있었다는 것이고, 한성(漢城)은 고구려 평양성의 동황성과 웅진지역에서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대륙의 사로국이었던 서신라(西新羅)의 수도 금성은 항성(項城), 침구, 옥문곡의 동()쪽에서 찾아야 하는데 1666년에 제작된, <천하고금편람도>에서 팔공산 근처에 경주가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이렇게 고구려, 백제, 사로신라(斯盧新羅) 위치가 삼국사(三國史)()46에 있었다.
 
한편 백제 패망위치는 삼국사(三國史)()46의 제(), ()지역이고, 일부를 발해(渤海)가 차지했다. 반도식민사관자들은 의자왕(義慈王), 백제가 한반도에서 패망하였다고 하나 아니다.
 
의자왕 백제기록은 구당서(舊唐書), 당서(唐書), 삼국사(三國史), 삼국유사(三國遺事)가 동일하고, 백제(百濟)땅을 신라(新羅)와 발해말갈(渤海靺鞨)이 차지하였다는 사실을 밝히려 하지 않았으나 삼국사(三國史)()46지역 즉 남제서(南齊書)58지역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남제서(南齊書)58지역에서 백제는 발해만(渤海灣) 북쪽까지 진출하였으니 광양(廣陽), 안국(安國), 청하(淸河), 성양(城陽)이 발해만(渤海灣)을 감싸고 있는 곳이 백제(百濟) 지명(地名)이다.
 
발해(渤海)가 이 지역을 차지하였으니 모든 사서(史書)에서 백제(百濟)가 망하고, 그 땅을 신라(新羅)와 발해말갈(渤海靺鞨)이 차지하였다는 것은 사실이다. 만약에 한반도(韓半島)에서 패망하였다고 하면, 이 같은 기록(記錄)을 남길 수가 없는 것이다.
 
때문에 반도식민사관자들은 이런 논문(論文)이 없는 것은 연구를 하지 않음에서 삼국사(三國史)()46의 기록을 외면하고, 남제서(南齊書)58도 밝히지 못함으로 숨겨져 왔던 것이다.
 
백제가 패망하던 서기660년에 가뭄과 홍수(洪水)에 대한 기록과 자연 상황이 한반도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삼국사(三國史)()46의 제로지역에서는 가능한 현상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상의 글은 한국사연구원의 오재성 박사의 저서의 내용들을 발취된 것임을 밝힙니다.)
 
이상에서 보는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역사는 세계어디에 내놓아도 위대하고 찬란한 역사임을 자랑할 수 있는 역사이다. 반도식민사관자들의 무엇을 추구하는지! 나라와 민족의 혼을 말살하며 우리의 정신문화마저 좀먹는 반도사관은 이제 살아져야 한다. 우리의 역사는 위대하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 「한국고대사를 생각한다」, 「단군을 찾아서」. 崔仁 「韓國學講義」.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 「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犂: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우리역사(東夷傳」. 윤진영 編集 「三國史」.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문화열차」. 이강민 「대학국고대사」. 황순종 「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智勝 「우리上古史-발로 확인한 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文定昌 「韓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外 다수(多數)의 서책(書冊)을 참조(參照)하고, 본문(本文)을 인용(引用)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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