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에 관해 그 실체를 말하게 되자 필자가 반중(反中), 반일(反日)의 사람으로 볼지 모르나 아니다. 다 같이 진실을 말하고 거짓 역사는 용납이 되지 않기에 반론을 펴다 보니 필자가 반중, 반일의 사람으로 비춰지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
중국(中國)이 모시는 삼황오제(三皇五帝)나 일본(日本)의 시조(始祖) 모두가 우리의 선조임이 확인(確認)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일 역사를 폄하(貶下)할 이유도 없다. 단지 너무 어처구니없는 역사왜곡(歷史歪曲)의 거짓을 싫어하는 필자(筆者)로선 용납(容納)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미 쓴 칼럼에서 순(舜) 임금은 헌원(軒轅)의 8대 손이고 일본의 응신(應神)왕도 단군의 73대 손임을 아는 필자(筆者)로서는 남 같지가 않은 것이다. 따라서 한·중·일은 형제(兄弟)같이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서는 거짓 역사를 그대로 둘 수 없음에서 허구(虛構)를 파헤치는 것이다.
오늘은 역사를 연구한 학자(學者)들까지도 삼한(三韓)이 한반도(韓半島)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삼한(三韓)은 반도(半島)에 있지 않고 대륙(大陸)에 있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삼한(三韓)의 위치는 어디인가
삼국지(三國志)와 후한서(後漢書)에 의하면 제일 남쪽에 왜(倭)가 있고, 왜의 북쪽에 한(韓)이 있고 한(韓)의 북쪽에 예(濊)가 있다. 예(濊)의 서쪽에는 낙랑(樂浪)이 있으며 예(濊)의 북쪽에는 고구려(高句麗)와 옥저(沃沮)가 있다. 그리고 고구려의 북쪽에는 부여(夫餘)가 있고, 부여 동쪽에는 옥저(沃沮)가 있으며 부여(夫餘)의 서쪽에는 선비(鮮卑)가 있다고 이미 말한바 있다.
그런데 한심한 반도식민사학자(半島植民詐學者)들은 삼한(三韓)이 한반도(韓半島)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삼한(三韓)이 「삼국지(三國志)」권(卷) 430 및 「후한서(後漢書)」권(卷) 85와 「삼국사(三國史)」권(卷) 46에서 그 위치를 연구(硏究)하지 않아 무지(無智)의 말을 하고 있다.
백제는 마한(馬韓)을 병합하고 사로국은 변한(卞韓=변한(弁韓)을 병합하였는데 이에 대한 연구를 하지 않아 반도사관자(半島史觀者)들의 삼한(三韓)을 반도에 맞추려고만 하여, 그 위치를 분명히 나타낸 「삼국사(三國史)」권(卷) 46을 외면하고 있는데 문제가 있다. 눈을 바로 뜨고 봐야 한다.
‘마한(馬韓)은 고구려이고 변한(卞韓=변한(弁韓)은 백제(百濟)이고 진한(辰韓)은 신라(新羅)다’ 라고 하고, 또 ‘고구려 백제가 전성할 때 강병(强兵) 100만으로 남으로 오월(吳越)을 다물(多勿)하고, 북으로 유연제노(幽燕齊魯)를 다물(多勿)하여 중앙(서안(西安)에 있는 국가에 큰 위협이 되었고, 수(隨)나라 패망(敗亡)하게 된 원인도 요(遼)의 동족을 침범하였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오월유연제노(吳越幽燕齊魯)에서 삼한(三韓)을 찾아야 하는데 반도사관자(半島史觀者)들은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가 있는 곳에 삼한(三韓)이 있는 것을 모르고 김일연(金一然)의 「삼국유사(三國遺事)」 이후 삼한(三韓)이 한반도에 있다고 하고 있다.
이것은 이들이 고구려, 백제 위치를 나타낸 오월(吳越)과 유연제노(幽燕齊魯)에서 삼한(三韓)을 찾지 않고 숨겼고, 이를 확인(確認)도 하지 않은 후학(後學)들의 태만(怠慢)이 빚은 결과이다.
또 「남제서(南齊書)」권 58에서 ‘가라(加羅=가야(伽倻)는 삼한(三韓)이 발전한 나라’라 하였으니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와 함께 가라(加羅=가야(伽倻)위치를 확인했더라면 밝혀질 것을 반도에만 있는 것으로 무조건 믿음으로, 이를 밝혀내지 못한 것은 태만이 빚은 결과로 봐야 한다.
2000년 전, 중국의 주(周) 때부터 고구려 백제와 가라(加羅=가야(伽倻) 등은 「삼국사」권 46 지역에서 삼한(三韓)이 고구려, 백제, 신라로 발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음에도 무조건 왜곡역사에 안주하고만 있는 것은 참으로 한심하고 국가관과 민족혼의 결여로 본다.
「삼국사」권 46에서 삼한이 발전되었다는 것은 「삼국지」권 30 및 「후한서」권 85의 한 위치를 찾으면 「남제서(南齊書)」권 58 및 「삼국사」권 46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송(宋) 시대 만든 우적도(禹跡圖)와 중국지도에서도 밝힐 수 있는데도 이를 찾을 생각도 안한 것은 사학자가 아니다.
이곳은 특히 「삼국지(三國志)」. 「후한서(後漢書)」 동이(東夷) 지명(地名) 중에서 왜(倭)와 관련지명이 가장 많이 남아 있어서, 「동이전(東夷傳)」의 「삼국사(三國史)」권(卷) 46을 벗어날 수가 없고, 오월제노(吳越齊魯)사이에 바로 사로국(斯盧國)의 발전한 신라(新羅)가 있는 곳이다.
이를 모른다는 것은 얼마나 역사연구(歷史硏究)를 소홀히 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들은 변명 아닌 변명으로 고구려가 삼한(三韓)과 같이 등장함으로 「삼국사」권 46이 모순이라 생각할 수 있겠으나, 「삼국지(三國志)」에서 삼한 속에 고구려·백제·신라가 연관돼 있다.
즉, 한(韓) 78국 중에서 백제국(伯濟國)은 백제(百濟)로 발전되고, 고리국(古離國)은 고구려(高句麗)에 병합(倂合)되고, 사로국(斯盧國)은 신라(新羅)로 발전되고, 비미국(卑彌國)은 왜(倭)로 발전하고, 구노국(狗盧國)은 왜노(倭奴)가 되어서, 왜(倭)로 합병(合倂)되니 결국 삼한(三韓)이 삼국(三國)으로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들 나라들은 「삼국사(三國史)」권 46 지역에 존재 했는데, 진당간(秦唐間) 동이무대(東夷舞臺)를 한반도에 옮기려는 송(宋)나라에서 명(明)나라까지 동이(東夷)를 밀어내기에 동북아시아 역사를 한반도에 맞추려고 했던 명(明)과 동 일본(日本)에 의하여 우리 역사는 숨겨지게 되었다.
특히 「삼국사」와 지나(支那)18사(史) 동이전 왜(倭) 역사를 일본열도 역사로 하기 위하여 「삼국사」와 18사(史) 동이전을 한반도에 맞추려고 하는 과정에서 우리역사가 숨겨지게 된 것이다.
삼국사(三國史)는 상고사를 계승한 아시아사다
우리나라는 환국(桓國)시대부터 삼국시대(三國時代)까지도 유연제노(幽燕齊魯)와 오월(吳越)에서 반도가 아닌 대륙 아시아를 무대로 활동했다. 그런데 중국의 당(唐), 송(宋), 청(淸)나라 등은 백제(百濟)의 역사를 한반도에 맞추려고 사서(史書)를 바르게 해석하지 않고 반도의 한조선(韓朝鮮;서기1392~1910년)에 맞추어 백제사(百濟史)를 해석하려고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송나라 소동파(蘇東坡)의 「역대지리지장도」와 김일연(金一然)의 「삼국유사(三國遺事)」처럼 역사를 왜곡(歪曲)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삼국사(三國史) 권(卷)46이나 남제서(南齊書)권(卷)58에서 이를 입증(立證)하고 있다.
백제사(百濟史)의 연구(硏究)도 남(南)으로 오월(吳越), 북(北)으로 유연제노오월(幽燕齊魯)에서 한반도(韓半島)에 이르는 아시아를 무대로 연구해야 하는데 하지 않았다. 우리는 환국(桓國)때나 배달국시대(倍達國時代)와 고조선(古朝鮮), 삼국시대(三國時代)까지도 대륙에서 활동하였다.
중국의 사학자 임혜상(林惠詳)도 「중국민족사(中國民族史)」에서 주(周)의 성왕(成王) 때도 중국의 영토가 가장 좁았다고 실토하고 있을 정도로 우리는 광활한 중원의 80% 영역을 지배하였다.
서량지(徐亮之)의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에서도 은주(殷周)이전은 물론 은주(殷周)시대까지도 대륙과 한반도를 포괄(包括)한 광대한 지역에 있었고 그 중심은 산동반도였다고 했다.
더구나 환국(桓國)은 서기전 7199년 환인(桓仁=桓因) 안파견천왕(安巴堅天王)에 의하여 파내류산(波奈留山)아래서 건국하여 3,301년간을 전(傳)하였고, 상고시대의 영토(領土)는 동서(東西)가 2만리(萬里)요 남북(南北)이 5만리(萬里)로 여기사는 인구(人口)도 1억8천만이라고 하였다.
세계최고의 인류학자이며 석학인 이탈리아의 자코모(Giacomo)박사는 1971년 이탈리아정부의 초대를 받은 우리나라의 한글학자 한갑수(韓甲洙) 박사와의 만남에서 인류시원(人類始源)의 수수께끼인 ‘솟대’를 비롯한 11가지 문화(文化)에 대한 질문을 하고 한(韓) 박사의 설명을 들은 자코모(Giacomo) 박사는 2시간이나 감격의 눈물을 흘린 후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고 한다.
“코리아 당신의 나라(Corea)가 세계에서 유일(唯一)하게 선진국(先進國)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나라가 분명히 세계제일(世界第一)의 먼저 절대자(絶對者)를 모신 민족(民族)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학설(學說) 입니다”라고 말을 했다고 했는데 이는 사실이다.
또한 자코모(Giacomo) 박사는 반생(半生)의 피나는 연구(硏究) 속에서도, 그 어느 나라에서도 풀지 못했던 인류시원(人類始源)의 수수께끼들이 조선(朝鮮)의 사상(思想)과 문화(文化)와 종교(宗敎) 속에서 오롯이 존재하여 풀림을 깨닫고 조선(朝鮮)이 인류역사(人類歷史)의 시원국(始源國)을 깨닫게 되는 감격(感激)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뜨거운 눈물을 흘린 것이었던 것이다.
이후 자코모(Giacomo) 박사는 충격적인 사실을 더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그것은 ‘인류의 위대한 시원사상(始源思想)이라고 일컫는 삼위일체사상(三位一體思想)이 정작 이집트나 이스라엘도 아니고 바빌로니아나 인도(印度), 중국(中國)이 아닌, 코리아(Corea)에서 나왔음’을 말했다.
또한 ‘코리아(Corea)는 고대(古代) 이집트인보다 2세기 반에서 2세기 전에 황하연안(黃河沿岸)에서 인류문명(人類文明)을 싹틔운 민족임‘을 발표(發表)하면서 ’당시 황하유역에는 중국인이 한사람도 없었음‘을 강조하고 ’황하문명(서기전2000년)과 황하문명의 모체문명(母體文明)인 요하문명=홍산문화(서기전4500~서기전3000년)이 바로 코리아(Corea)의 문명임‘을 밝힌 것이다.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38면~39면. 參照, 引用).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필자는 한갑수(韓甲洙) 박사의 타계소식을 듣고 그 빈소(殯所)에 가서 고마움과 국가를 위해 애쓰신 노고(勞苦)에 깊은 감사(感謝)를 드린 것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이런 위대한 우리의 역사도 반도사관자(半島史觀者)들은 안다고 하나 제대로 모르고 있다.
그것도 상고사와 고대사, 삼국사(三國史)도 왜곡역사만 내세우며 우리역사를 제대로 모르고 있다. 어찌해서 이런 사태를 낳고 있는지! 그 사실들을 살펴보면 자신들의 연구부족(硏究不足)과 중국과 일본의 합작(合作)한 역사왜곡함정에 빠져서 여기서 못 벗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은 어떻게 했나?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은 당(唐)이 신라(新羅)와 단담(談合)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패망시킨 후부터 적극적으로 왜곡을 대대적으로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은 670년, 대만(臺灣)에서 처음으로 일본(日本)이라는 국호를 당(唐)나라의 승인을 얻고 쓰기 시작하면서 그 서막을 연다.
당(唐)·송(宋)·명(明)·청(淸)을 거치면서 이미 살펴본 대로 제멋대로 지명(地名)을 바꾸고 옮기며, 지도도 조작하며 상상을 초월(超越)하는 역사(歷史)조작과 왜곡을 하였음을 볼 수 있다.
지면상 말을 줄이면, 서기 1403년 명(明)나라는 「사기(史記)」에서 오대사(五代史)까지 지나(支那) 18사(史) 동이(東夷)의 하나인 왜(倭(서기전 194년의 비미국(卑彌國)과 일본(670년~1271년) 역사를 대륙에서 몰아내려고 일본열도(日本列島)의 아시가-(足利義滿-1358~1408)의 야마도(大和)정부에 일본이란 국호(國號)를 써도 좋다고 하면서 왜사(倭史)를 일본에 넘겨준다.
이 왜사(倭史)를 받은 일본은 역사를 제멋대로 왜곡은 더 박차를 가하여 역사를 뒤엎어 놓는다. 여기서 잠시 명(明)과 아시가-(足利義滿)의 과계를 보면, 당시 아시가-(足利義滿)는 일본의 야마토정부(大和政府)의 3대(代)의 장군(將軍)으로서 강력(强力)한 권력(權力)을 가지고 일본왕(日本王)을 제 마음대로 갈아 치울 정도로 그 위세가 대단히 막강(莫强)하였다.
그는 중국의 명조(明朝)와 1401년에 국교를 개시해서 명(明)과의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데, 명(明)과의 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그는 명(明)에게 막대한 은혜를 주고받는다. 명(明)의 황제(皇帝)는 의만(義滿)에게 「일본국왕(日本國王)」이라는 칭호(稱號)를 내릴 정도였다.
그가 얼마나 명(明)에 잘 보였으면 일본열도(日本列島)에서 「일본국호(日本號)」를 사용해도 좋다고 하고, 명(明)이 갔고 있던 대륙의 왜사(倭史)까지도 일본(日本)에 건네주었을 정도였다.
그래서 그는 그 자신이 명제(明帝)에 올리는 글에서도 ‘일본국왕(日本國王), 신(臣) 원(源)’이라 서명(署名)을 했을 정도였다. 의만(義滿)은 사실상 일본의 국왕(國王)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그는 명(明)과의 무역으로 막대한 부(富)를 축적하며 무역의 이익 외에도 각종 세금을 농민, 일반 민중과 재영주(在領主)와 장원영주(莊園領主)에게도 이중삼중(二重三重)의 세금(稅金)을 부과(賦課)하여 당시 민란(民亂)의 원인을 제공(提供)한 자(者)이기도 하였다.
(以上은 井上 淸 「日本の歷史」180面~184面, 參照, 引用).
한편 명(明)나라는 고려권지국사(高麗權知國事) 이성계(李成桂) 나라에 지나(支那) 18사(史) 동이전(東夷傳)의 기자(箕子)가 살던 대륙의 조선과 기후의 번조선 및 위만조선과 기준(箕準)의 삼한(三韓), 그리고 한사군(漢四郡)등 동이역사(東夷歷史)를 대륙에서 한반도로 계속 몰아내기 위하여 서기 1401년에 조선(朝鮮)이라는 국호(國號)와 동이전(東夷傳)을 밀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태종(太宗)은 김부식(金富軾)이 찬(撰)한 「삼국사(三國史)」를 권근, 하륜, 이첨에게 한권으로 축소할 것을 명(命)하고 조선(朝鮮)에 맞추기로 획책했고 정약용(丁若鏞)의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가 발행되고, 지나(支那)18사(史) 동이전(東夷傳)을 한반도 역사로 해석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삼국사(三國史)」권 46의 상대사시중장의 범위는 「남제서(南齊書)」권 58이 입증하고, 지나 18사 동이전(東夷傳)도 이를 입증하고 있어서 삼국시대의 요동, 요서는 요(遼)나라 이후의 현재와 같은 요동, 요서(遼西)가 아니고 신서성의 요(遼)의 동서쪽을 말하는 것으로 규명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우리역사를 반도내(半島內)에 가두려 하나 역사의 진실은 숨길 수 없다. 우리는 중국과 일본과 반도식민사관의 학노(學奴)들이 제아무리 반도에 가두려 하지만, 우리의 「삼국사(三國史)」권 46의 범위를 벗어나서 반도의 역사라 함은 정신병자나 할 소리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할 말이 아니다. 우리역사는 대륙사로 오늘의 과학으로도 다 소명(疏明)되고 있다.
그것은 삼국사의 지역이 홍수(洪水), 가뭄, 특산품(特産品), 일식(日蝕)등을 연구해보면 「삼국사(三國史)」권 46과 「남제서(南齊書)」권 58의 범위(範圍)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 중국과 일본, 반도식민사관자들이 요동쳐도 우리의 역사는 대륙역사이기에 반도역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양서(梁書)」54권(卷)에는 ‘한무제(漢武帝)가 조선(朝鮮)을 멸망시킨 뒤 현도군을 설치하고 고구려를 현(縣)으로 삼아 여기에 소속시켰다’고 하는데 한무제(漢武帝)가 한반도에 온 적도 없고 한(漢)은 위만조선도 정벌하지 못하고 위만조선은 내분에서 살아진 것을 이미 밝힌 대로이다. (이상은 吳在成 「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犂:東夷歷史 集’.(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를 參照, 再構成하다)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은 한반도에 있은 적이 없다. 또한 유방(劉邦)이 세운 한(漢)나라가 또 우리를 지배한 적도 없고 한사군이 반도에 설치된 적도 없다. 허구역사는 이제 그만둬야 한다. 우리는 하루속히 잃어버린 역사(歷史)와 문화의 뿌리를 찾아, 세계로 웅비(雄飛)해 가야 한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 「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再考證 韓國思想의 新發見」.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국가형성의 사회사」.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 「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犂:東夷歷史 외 集’. (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윤진영 編集 「三國史」, 「우리역사(東夷傳」. 智勝, 「우리上古史」-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반재원 「鴻史桓殷」, 대야발 원저 「단기고사」,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황순종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권진규 「조선사」.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이강민 「대한국고대사」.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文定昌 「韓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井上 淸 「日本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二十一世紀出版社集團 「山海經」.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石井進外 「詳說日本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 「大王から天皇へ」. 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の成立」. 上井久義 「日本古代の親族と祭祀」. Georges Duby : L'HISTOIRE CONTINUE, 松村剛 譯 「歷史は續」. 劉泳,海燕 「赤蜂博物館」. 各國 別 「世界史の整理」.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西島定生 護雅夫, 木村常三郞, 猿谷 要 編著 「世界歷史の基礎知識」 외 다수의 서책(書冊)을 참조하고,본문을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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