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진실 외면한 史學은 매국노와 진배없다

입력 2018-11-09 19:00:48

원문 링크

▲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언제인가 외국인(
外國人) 기자(記者)가 임기를 끝내고 이 땅을 떠나며 남긴 말이 필자의 귀에서 영영 떠나지 않는다. 그것은 한국인의 단점을 꼬집은 이야기로 미래 지향적이지 못하고 과거 지향적이고, 핑계를 너무 내세운다는 것이었다. 솔직한 반성이나 실패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핑계를 내세운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관계에서 질줄 모른다는 것과, “솔직히 잘못을 인정하고 되돌리는 행동이 없음을 지적했다. 이는 심지 않고 거두려는 공짜심리가 강하다는 지적에 대해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제 우리도 솔선수범하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이 뒤따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하게 됐다.
 
이제는 우리나라 지도층도 선진국의 지도자들처럼 노블레스 오블리즈(Nobless oblige)의 모범이 돼 오늘날 ZOMBIE족 형태의 틀에서 벗어나서 역사 바로 세우기를 바래본다.
 
영국과 프랑스의 관계사(關係史)를 보면, 1066년 프랑스의 노르망디 공() 윌리암이 영국을 점령한데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영국을 북구권(北歐圈)으로부터 분리해서 프랑스와 결부(結付)시키려는 것이었다. 그리해서 집권적인 봉건제(封建制)가 성립하고 프랑스어를 말하는 노르망디 귀족이 토착(土着)함으로 앵글로 색슨인()의 위에 군림(君臨)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영국 에드워드1세에 와서 노르망디를 영국정복(英國征服)이래 처음으로 앵구로 색손의 전통을 계승한 영국인의 인적자각(人的自覺)을 가진 왕이 나타났는데, 그가 에드워드1세이다.
 
이 에드워드1세 손자인 에드워드3세 때에는 백년전쟁(百年戰爭)이 발발(勃發)했다. 그 결과 영국은 대륙(大陸)의 지행권(知行權)을 잃고 말았고 아주 적은 칼레를 보유(保有)하는데 그쳤다.
 
영국은 134683일 칼레 시()를 점령하는데 정예병력(精銳兵力) 34000명을 투입(投入)했다. 그러나 칼레시민 8000명을 물리치는데 무려 11개월이 걸렸다. 이에 분노(憤怒)한 영국 왕 에드워드3()는 칼레의 시민 8000명 모두를 학살(虐殺)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주민대표 6명이 삭발하고 목에 밧줄을 맨 채 맨발로 처형대에 오르면 몰살(沒殺)을 면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영국왕의 이 말에 부유하고 지체 높은 6명이 앞을 다투며 죽기를 자처하고 나셨다
     
이를 본 에드워드3세는 마음이 달라져 칼레시민 모두를 용서(容恕)하는 자비(慈悲)를 베풀고 칼레의 지도층이 보여준 용기(勇氣)와 희생정신(犧牲精神)에 크게 감동하였다. 이것이 고귀한 자()일수록 그 책임(責任)을 진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즈(Nobless oblige)의 원형(元型)이다.
 
이 이야기를 여기에 쓴 것은 우리 사학계가 광복 73년이 지나도 반성은 커녕 더 잘못되어가고 있음에서다. 더욱이 국가장래(國家將來)가 염려(念慮)됨에서다.
 
오늘은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의 작태(作態)가 우리의 역사에 대한 실체를 숨기고 있는데 그들은 우리의 역사가 너무나 위대하고 찬란함에, 자기들의 역사를 내세우려 하지만 그들의 역사가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기에 이를 질시(嫉視)하며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있음을 밝히려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은 왜, 중국 25사의 동이 기록을 숨기는가
 
중국이 우리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한족(漢族) 기록인 중국25사 동이전(東夷傳)의 기록을 숨기고 왜곡하는 이유는 우리가 서화(西華)에서 요하(遼河)까지 대륙의 역사를 숨기기 위해서다.
 
그들은 고대부터 우리가 중국을 지배한 것을 부정하려고 우리의 역사를 숨기고 고대부터 지금까지도 모든 유적 발굴도 우리를 참가시키지 않고 몰래 숨기며 하고 있음을 본다. 특히 주()나라와 진()나라가 장안(長安) 중심의 역사를 정립하면서 사기(史記)’에서 당서(唐書)’까지 우리 민족을 동이민족(東夷民族)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동이의 영역(領域)은 기자가 살던 하남성의 서화(西華)의 남북에 있는 덕안(德安항성(項城은산(銀山)의 동쪽에서 해주(海州-금주북쪽 고구려 장성(長城上)까지 동이민족의 각국을 기록하고 있는데 삼국지(三國志)후한서(後漢書)에 그 위치기록을 하고 있다.
     
이에 앞서 삼국사기기록은 변한(弁韓)은 서기전 38년에 신라에 병합되고, 마한(馬韓)은 서기 8년 백제에 병합, 북옥저(北沃沮)는 서기전 28, 고구려에 병합되고, 선비(鮮卑)는 서기전 9년 고구려에 병합되었고 양맥(梁貊)과 현토고구려현(玄菟高句麗縣)은 서기 14년 고구려에 병합되었다.
 
또 부여는 서기 22년 고구려에 병합되고 개마국(蓋馬國)과 구차국(句茶國)은 서기 26년에 고구려에 병합되고, 낙랑국(樂浪國)은 서기 32년에 고구려에 병합되고 낙랑군(樂浪郡)은 서기 37년에 고구려에 병합되고 동옥저(東沃沮)는 서기56년에 병합됨을 기록하고 있으나 위치와 기록은 없다.  
 
() 때의 삼국지(三國志)나 송() 때의 후한서(後漢書)에서는 부여·고구려(高句麗동옥저(東沃沮읍루(挹婁((()의 위치배열이 기록되어 있고 그 위치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명도 있다. 그런데 삼국사기에는 나라 위치(位置)에 대한 기록이 없다.
 
이는 삼국사삼국사기로 옮기면서 일본이 삭제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당시 나라들의 병합기록은 하고 있다. 그런데 강단파의 반도식민사관자들은 나라들의 위치를 모르기에 오로지 반도 안에 가두고 우리의 역사가 한반도에서 생성된 것 같이 말을 하고 있다.
 
반도사관 자들이 일본이 왜곡한 역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에 일본은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고나 있는지 묻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일본은 과연 어떤 나라인가? 중국25사 동이전기록을 보면 왜(=()는 광개토태왕 이전부터 양자강(楊子江) 이남에 있었다.
    
삼국지(三國志)후한서(後漢書)에 나오는 지명(地名)으로는 회계(會稽담이(儋耳=남월(南越주애(朱崖이주(夷洲단주(澶洲) 등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들은 문신(文身)을 하였고 비단과 목화를 사용하였다. 후한서 이후 당태종 시대 발간한 남사(南史)의 기록도 같다. 이 왜(); 왜노(倭奴)670년 대만(臺灣)에 있을 때, ()으로부터 국호를 일본(日本)이라 불러도 좋다고 해서 부르기 시작했다. 또한 1403년 명()나라로부터 야마토(大和)가 변경된 동일본(東日本)이다. 허나 일본열도의 일본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 한국인들이다.
 
일본 역사도 제대로 알고 역사의 왜곡 막아야
 
일본(日本)의 시작은 중국의 대만(臺灣)에서부터 일본이라는 국호(國號)를 쓰기 시작한다. 그전에는 왜()라고 했는데 왜()는 지금 일본열도가 아니라 양자강 이남에 있었다. 그들이 나라를 세우기 이전은 왜인(倭人)이라고 불렀고 고구려·백제·신라·가야의 지배를 받았다.
 
이 왜()는 비미국(卑彌國;伊都國)과 구노국(狗盧國)이 발전한 국가로 월왕구천(越王句踐)이 살던 지역에서의 일본인데 우리 한()78제후국(諸侯國) 중의 하나였다. 삼국지 권30에 왜인(倭人)으로 기록되어 있다. 일본은 월왕구천(越王句踐)의 후예(後裔)이기도 하다.
 
백제가 660년 패망하고 백제인과 왜인(倭人)이 탈출해 왜의 이주(夷洲)였던 대만(臺灣)에서 일본(日本)이라는 국호로 13세기까지 존속하였다. 이후 원()나라에 의해 127년에 공격을 받았던 나라로 백제와 왜의 연합군이 본토 회복의 노력이 바로 왜구(倭寇)활동이었다. 그러나 이 노력은 무산되었다. 이는 일본열도(日本列島)에 야마토(大和)가 있기 이전의 일이다.
    
당시 백제 유민이 세운 일본은 백제와 연합군이 되어 본토 수복활동은 명()나라 초기까지 왕성하게 하였다. 그러나 청()나라가 대만(臺灣)을 완전히 평정함으로서 끊기고 말았다.
    
이태리의 마르코 폴로(Marco Polo)가 세계여행을 하고 중국대륙을 여행하며 북경을 거쳐서 대륙 동해안을 남하하며 여행하면서 동해안 너머 보이는 이주(夷洲)였던 대만을 보면서 물었던 지판궈(之覑國)(Zipangu)로 일본열도보다 먼저 일본 국호를 쓴 대만이다.
    
일본열도(日本列島)에는 이후 야마토(大和)정권이 서고 이미 기술한 1403년 아시카가 요시미츠(足利義滿)가 일본이라는 국호를 명()나라로부터 받은 이후의 국호인 것이다. 이 마마르코 폴로(Marco Polo)의 여행기(旅行記)에 등장하는 대만(臺灣)=왜노(倭奴)이 바로 670년 국호를 일본(日本)으로 변경한 고일본국(古日本國)인 것이다.
    
그리고 동일본은 야마토(大和) 때 명()나라가 1403년에 국호(國號)를 일본 국왕에게 책봉(冊封)했다. 이 일본이라는 국호를 받은 아시카가 요시미츠(足利義滿)1404년에 조선에도 사신을 파견해 해적을 엄히 단속할 것을 약속하고 대장경(大藏經)의 증여를 요청했다.
    
이때부터 조선 정부도 명()의 책봉을 전제로 대등한 관계에 서게 되었고 외교의례(外交儀禮)의 형식이 성립되었던 것이다. 일본은 아시카가 요시미츠(足利義滿)가 죽은 후에 대를 이은 아시카가 요시모찌(足利義持)는 명의 책봉을 거부했지만 조선과의 국교는 계속되었다.
 
그 후 아시카가 정권은 명과의 국교를 계속했고 조선과 일본과 관계도 과거의 전통대로 세이이 다이쇼궁(征夷大將軍) 외교체제가 계속된다. 이 체제는 아시카가(足利) 정권의 성격을 고찰(考察)하는 데에도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아시카가(足利)는 일본의 실력자였다.
    
반도식민사관자들이 왜의 이주(夷洲)인 대만(臺灣)을 몰랐던 것과 같이 역사왜곡에 앞장섰던 송() 시대의 소동파(蘇東坡1036~1101)도 왜()의 이주(夷洲);대만(臺灣)을 몰랐을까?
 
소동파(蘇東坡)역대지리지장도의 그림을 그렸는데 대만(臺灣)을 그리지 않았다. 그는 46편의 그림을 그리면서도 대륙의 부속돼 있는 대만을 그리지 않았는데, 이는 의도적이다.
 
강수 이남에서 회계(會稽)동쪽에서 지판궈(之覑國)(Zipangu)는 이주(夷洲)=대만(臺灣)을 말한다. ()가 대륙에서 대만으로 가서 670년 국호변경을 한 것을 숨길 수 없다. 대만(臺灣)이 일본이었다. , 정강성, 복건성 동쪽에 대마도(對馬島)와 일본(日本)이었던 것이다.
 
글을 맺으며, 삼국지(三國志)왜인(倭人傳)천하고금총편람도(天下古今總便覽圖)’에서 이주(夷洲)인 대만(臺灣)은 일본지역이다. 이를 제 아무리 왜곡하며 감추어도 숨길 수가 없다. 정신문화연구원의 교수였던 박성수(朴成壽) 교수는 일본에 갔을 때 일본학자에게 이를 말하니 일본학자는 보관한 지도(地圖)를 가져다 펴고는 대만(臺灣)이 일본(日本)이었다고 시인했다고 한다.
 
한편 1990년대부터 일본에서도 대만이 일본이라는 것이 나왔다고 한다. 또한 북경대학에서도 대만이 일본이라는 것이 나왔다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여전히 이를 숨기며 여전히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백제가 망한 후 중국과 일본은 사기(史記)부터 뜯어고치며 대만에 있었던 일본을 숨기고 지금의 일본열도(日本列島)가 일본이라 하나 더 이상 숨길 수 없다.
 
소동파가 1100년에 그린 지도 후, 170년 후의 역사 후한서에 이주(夷洲)인 대만(臺灣)이 있다. 역사의 왜곡을 자행하면서 이를 숨기고 있다. ()나라가 그린 지도에는 1100년 이후의 그림에는 대만이 없고 이주(夷洲)로 나온다. 이로 인해 대만인들도 자기들 역사를 모른다
     
고대 일본의 일식 관측 지도에는 대만(臺灣)으로 나온다. 지금은 과거같이 숨길 수 없는 시대다. 이제 역사 왜곡으로 시간 낭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원래 일본(日本)은 대만(臺灣)이었다.
 
중국과 일본은 후삼국에 대한 자료를 없애서 1330년 이전의 고려사가 거의 가짜이다. 고려가 반도안의 고려가 아니다. 고려도 대륙을 지배한 나라이다. 여진족을 물리치고 함주·영주·웅주·길주·복주, 공험진·숭녕진·진양진·통태진 9성을 쌓은 윤관(尹瓘) 장군은 장춘에서 출발해서 적을 평정했다. 우리는 반도족(半島族)이 아니다. 중앙아시아대륙 족이다.
 
중국과 일본은 우리가 서기전 3세기~9세기 중엽까지 1200여 년간 동이족 특히 흉노(匈奴선비(鮮卑유연(柔然돌궐(突厥회골(回鶻토번(土蕃) 등의 유목민족이 강대한 왕국을 건설하여 한민족(漢民族)의 왕조를 위협을 계속했다고 하면서 역사를 거꾸로 꾸미고 변조하며 왜곡들을 하고 있으나 우리는 원래부터 대륙에 나라를 세우고 대륙의 주인이었다.
    
더구나 10세기부터 20세기에 걸친 1000년 간에는 대륙을 누비는 정복왕조(征服王朝)인 요(-거란족(契丹族)), (-여진족(女眞族)), (-몽골족), 그리고 청(-만주족(滿洲族))이 중국을 지배하였는데 이들은 우리와 같은 동이족으로 우리 역사에 편입해야 하는 나라들이다.
 
필자는 역사를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우리역사가 대륙에서 위대한 역사를 일궈낸 것을 알 수 있었다. 반도식민사관자들이 말하는 고구려·백제·신라·가야가 한반도가 아니라 대륙이 활동무대였음을 더 깊이 알게 되었고 이들 나라가 모두 대륙에서 건국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왜(=일본(日本)도 중세기 유럽인들이 일본을 가리키는 명칭인 지판구(Zipangu; Chipangu)로 중국어로 지펜쿼(之覑國)라는 말은 이태리의 여행가 마르코 폴로(Marco Polo)가 북경을 거쳐 대륙을 여행하면서 동해안을 지나며 물었던 동해 저편에 있는 나라는 무엇인가?”라는 지판궈(之覑國)(Zipangu)가 시작으로 당시 대만에 있는 일본을 말한 것이다.
    
이것은 중국어의 지펜쿼(JihpenKue)를 의미하는 것으로 일본어로 닙본(Nippon) 혹은 니혼( Nihon)이 변화한 것으로 말레이반도어의 야푼(Japun)이라는 말에서 나온 건지도 모른다.
    
마루코 폴로(MARCO POLO)가 물어본 지판궈(之覑國)(Zipangu)는 대륙에서 본 동해(東海)에 있는 저곳은 무엇인가? 라는 말로서 절강성, 복건성에서 동쪽의 대만지역을 가리킨 것이다
    
이제 우리는 잃어버리고 잘못된 역사를 제대로 바로세우고 새로운 웅비를 해나가야 한다.(以上<韓國우리民族史硏究會>傘下 우리歷史敎育院에서 吳在成 院長 發表討論內容이다)
 
(다음에 계속)
이을형 필진페이지 +
후원하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0
좋아요
2
감동이에요
3
화나요
5
슬퍼요
0
댓글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