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진실 외면한 허구역사는 역사가 아니다

입력 2018-11-17 20:5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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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우리나라 역사는 반도가 아닌 중원대륙에 있었던 역사이다
. 일본이 우리 역사를 한반도역사인양 조작하고 왜곡 변조한 역사를 가지고 우리 역사인양 가르치는 것은 국가와 민족에 대한 반역으로 국가와 민족에 죄악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너무나 반도식민사관에 저려있는 이런 사람들을 보노라면 이들이 과연 우리나라 사람인가!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중국과 일본의 양심 있는 학자들도 우리 역사가 반도역사가 아니라 중원대륙의 역사이며 유라시아의 80%를 아우르는 광대한 영역의 나라임을 말하고 있다.
 
이런데도 몽유병 환자같이 반도식민사관자 중에는 지금도 반도역사로 간주하며 가르치는 사람은 우리 역사를 말할 자격이 없는 자다. 이 사람들은 우리 국민도 학자도 할 수 없는 자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 역사는 상고시대부터 대륙에 터전을 둔 국가들이 고대는 물론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가야·왜까지도 반도가 아닌 대륙에서 건국하고 대륙에서 발전하여 왔다.
 
삼국시대 반도에는 최리(崔理)의 낙랑국(樂浪國)이 서기 32~503년까지 있었다. 신라는 낙랑국(樂浪國)이 고구려에 의해 멸망하고 난 후 서라벌의 동신라가 고구려의 제후국으로 칸()이 다스리는 신라가 있었다. 대륙에는 왕이 다스리는 사로신라(斯盧新羅)가 있었다.
 
신라(新羅)(서시 전57~서기 935)는 동과 서에 두 신라가 있었다. 신라가 도읍한 곳은 지금 중국의 감숙성(甘肅省) 난주(蘭舟)로 궁()은 금성(金城)이다. 이미 대륙에서 건국되었다. 박혁거세는 대륙에 있는 사로신라의 왕으로 그 능()도 대륙에 있음은 이를 말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992년의 약 천년의 대륙 신라와 약 5백년의 서라벌 신라도 구분 못하고 있다.
 
박혁거세(朴赫居世)의 왕릉(王陵)은 강소성(江蘇省) 오현(吳縣)에 있는 호구산(虎口山)으로 지금 중국 운남사(雲南寺) 남쪽으로 4리에 있다. 이는 조선왕조세종실록 지리지에 명기되어 있다. 중국과 일본은 제멋대로 지명과 지경을 바꿔 놓았으나 사실을 뒤엎을 수 없는 것이다.
신라에 관해서 문정창(文定昌) 선생은 신라가 4개 있었다고도 말을 하고 있는데 1974년 일본어판 韓國史延長- 古代日本史에서는 양 신라(新羅)로 표현하고 있을 정도로 신라가 하나가 아니다. 서라벌의 신라는 지증왕(智證王) 때부터 왕이 다스리는 신라가 되었다.
 
사람은 착각도 실수도 할 수 있다. 필자도 특강과 칼럼을 쓰며 착각할 대가 있다. 아베신조(阿部晋三)의 조상이 아베 노브유키아(阿部信行)라 하여 기시노브스케(片 信介) 외조부를 노부유키와 착각해서 말하여 토론 때 질문을 받고, 바로 아베 노브유키阿部信行)는 구마모도현(熊本縣)출신으로 아베신조(阿部晋三)는 야마구치현(山口縣) 출신이라 정정한 적도 있다.
연구하다가 보면 잘못되는 것도 있을 수 있고,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틀릴 수 있다. 그것들은 다시 시정을 하고 그럴 때마다. 제 위치로 돌리고 이를 바르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반도사관자도 왜곡되고 변조된 역사는 우리 역사가 아님을 제대로 학생들에게 가르쳐주기를 바라고 기대하며 오늘은 신라의 건국과 수도(首都), 영토에 대하여 잠시 살펴보고자 한다.
 
천년 신라와 오백년 신라 바로 알아야
 
조선사편수회가 왜곡한 역사만을 배워온 우리나라에서는 신라가 두 개라고 하면 다들 정신나간사람으로 보는 이들도 많음을 본다. 너무 오래 일제의 왜곡역사에 질 들여져 있고 광복 후도 삼국사기에 분명히 신라가 두 곳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 사학계가 얼마나 우리 역사 연구에 소홀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다수 학자들은 김일연(金一然)과 신채호(申采浩)의 무조건 한반도에 맞추려는 반도사관때문에 대륙에 사로신라가 존재한 사실조차 모르고 있음을 너무 잘 보여준다.
 
그러나 삼국사기(三國史記)삼국유사(三國遺事, 중국 25() 동이전(東夷傳) 외에 다수의 사서를 보면 분명하게 대륙의 사로신라와 서라벌의 신라가 있음이 확인된다. 사로신라는 북으로 유연제로(···), 남으로 오월(·)사이에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이곳은 안휘성(安徽省)을 중심으로 백제·신라·가라(加羅=가야(伽倻)지명이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이 신라는 위장(魏將) 관구검(毌丘儉)이 고구려 동천왕(東川王) 때 전쟁에서 고구려군(高句麗軍)이 압도적으로 우세했으나 고구려와 부여가 분쟁관계에 있을 때라 부여군(夫餘軍)이 위군(魏軍)에 가담해 고구려군의 배후를 침으로 고구려군이 대패한다.
 
이로 인해 고구려 건국 이후 고구려의 영지(領地)가 되어 있던 동옥저(東沃沮)를 잃는다. 신라는 삼국 중 제일 먼저 건국한 나라이다. 진한계(辰韓系) 사람들이 서기전 57년에 신라(新羅)라는 나라를 세운다. 이 신라가 대륙의 서신라(西新羅)인 사로신라(斯盧新羅)인 것이다.
 
이 신라는 고구려가 강할 때는 고구려에, 백제가 강할 때는 백제에, 가라(加羅), 즉 가야(伽倻)가 강할 때는 가라加羅), ()이 강할 때는 당()에 매달렸다고 볼 수 있다. 이 신라는 현실타개(現實打開)를 위해 강력한 외부에 의존하였던 것이다.
 
당시 고구려는 대륙과 반도의 신라왕을 간, 또는 칸()으로 봤다. 삼국 중 가장 약한 나라이었다. 이 약체인 신라는 고구려·백제·신라·가라(加羅)의 지배를 받았기에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당()나라와 결탁해 같은 동이족인 백제, 고구려를 무너뜨린 대륙 신라(新羅)인 것이다.
 
이 사로신라는 현실을 타개하는 방법으로 대륙 최고의 실력 있는 나라들과 우호관계를 맺음으로 나라를 유지했는데 주로 고구려의 일부로 있었음이 중국 북사(北史)에 기록되고 있다.
 
중국25사에 의하면 신라·백제··가라는 서화(西華) 중심의 동쪽에 있었지 반도에 있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삼국사기만이 503년 고구려로부터 독립한 또 하나의 신라가 있음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503년 이전에는 마립칸(麻立干)을 포함하여 10()이 있었다.
 
10()은 마립간(麻立干아도간(我刀干·여도간(汝刀干피도간(彼刀干오도간(五刀干유수간(留刀干유천간(留天干신천간(神天干)이 반도 남쪽에 있었다, 이 칸··()은 고구려의 지방지도자였다. 오늘의 도지사 같은 지위였다고 보면 된다.
 
한편 고구려는 반도와 만주에 걸친 낙랑국(樂浪國)을 멸망시킨 후 고구려의 거서칸(居西干)이 만주와 한반도(韓半島)를 다스리는 서라벌(徐羅伐)의 신라(新羅)=동신라(東新羅)가 고구려의 제후국으로 있었다. 왕이 다스리는 신라가 된 것은 503년 지증왕(智證王) 때부터이다.
 
그런데 반도식민사관자들은 서라벌의 신라가 대륙의 사로신라(斯盧新羅)로 보는데, 이건 아니다. 신라는 대륙과 반도에 2개가 있었다. 이 대륙의 서신라는 992년간이고 반도의 동신라는 약 500년의 신라일 뿐이다. 고구려 수도가 여덟 번 옮겼는데 신라도 여섯 번이나 수도를 옮긴 것을 알 수 있다.
 
신라 수도 여섯 번 바뀐 것,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우리나라 역사는 대륙의 신라를 가르치지 않음으로 대륙의 신라를 모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경주의 신라는 왕이 아닌 칸()이 다스린 연수는 약 500년 밖에 아니 된다. 1천년(992)의 신라의 역사는 대륙의 신라부터 경주를 포함하여 말하는 것이다.
 
신라(서기전 57~서기 935)에 관한 사서(史書)들을 보면 우리나라의 삼국사기(三國史記)신라본기(新羅本紀)와 신라원전(原典) 정역에 관한 중국의 후한서, 동이열전, 삼국지, 진서(晉書), 양서(梁書), 수서()), 북사(北史),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중국25, 태평어람, 태평환우기등에는 신라 영역이 반도가 아니고 그 수도도 대륙임을 알 수 있다.
 
신라의 건국에 관하여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은 조선의 유민들이 박혁거세를 추대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당시 6()이 박혁거세를 추대하였다는 것이다. 6()은 알천양산촌·돌산고허촌·자산진지촌·무산대수촌·금산가리촌·명활산고야촌 이다.
 
6촌은 진한(辰韓)6()로 되어 있다. 창원대의 최남기 교수는 그의 연구논문에서 신라의 건국과 수도 이동에 대해서 아래 같이 말하고 있다. 즉 이 6()이 서기전 57년 금성(金城)에서 서나벌(徐那伐)이라는 나라를 세웠는데 이 나라가 신라(新羅)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이 6()이 경주의 서라벌(徐羅伐)이 아니고 대륙인 것이다. 그리고 신라의 수도도 6번 바뀌어가며 발전해 갔다. 창원대의 최용기 교수는 그의 연구논문에서 수도가 6번 바꿨다고 하는데 우선 그 내용을 말하려 한다. 아직 필자는 이에 대하여 고증을 하지 못하여 다음 기회로 미루고 이를 말하면, 건국 당시 수도는 감숙성 난주이며 궁은 금성(金城)이다.
 
두 번째가 20대 마립간(麻立干, 서기 455~475)때 명활성(明活城)으로 옮겼다 하고, 이곳은 감숙성(甘肅省) 난주(蘭州)의 부근이다. 세 번째는, 21대 소지마립간(炤知麻立干,서기 476~496)이 월성(月城)으로 옮겼는데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소현(巢縣)이라 하고 있다.
 
네 번째 수도는 31대 신문왕(神文王, 서기 678~688)이 서원경성(西原京城)을 쌓았고 이곳은 달구벌(達句伐)이 있는 사천성(四川省)이고, 달현동천도(達縣東川道)이라 하며 이곳은 신주(信州)이고 파주(巴州)인데 지금은 사천성(四川省) 봉절현(奉節縣)으로 옛 금주부경(鈙州府境)이라고 하고 있다.
 
다섯 번째는 52대 효공왕(孝恭王, 서기 896~910)이 송악군(松岳郡)으로 수도를 옮겼다. 이 송악(松岳)은 동경(東京)이고 낙양(洛陽)이라고도 하는 곳이다. 여섯 번째는 56대 경순왕(敬順王)이 운주계(運州界)에서 신라(新羅)를 고려의 태조 왕건(王建)에게 물려주고 항복한 것이라 한다. 이곳은 중국 낙양(洛陽) 북쪽 산서성(山西省) 최남단에 있는 하현(夏縣)밑의 안읍(安邑)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는 다음에 더 정리를 하려고 하는데 우선 적어봤다.
 
이상에서 보듯 신라의 건국이 반도가 아닌 대륙이다. 그런데 아직 까지도 반도라 하는 자는 연구를 제대로 하지 않았거나 정신 나간 사람이다. 제 아무리 목구멍이 포도청일지라도 올바르게 가르치는 것이 정도(正道). 자손만대의 영광을 가리는 짓은 해선 아니되는 것이다.
 
신라시조 박혁거세의 무덤도 반도가 아닌 신라를 건국한 대륙 운남사(雲南寺) 남쪽으로 4리에 있다. 이곳은 강소성(江蘇省)오현(吳縣)에 있는 호구산(虎口山)임이 세종실록에 명기되어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중국25동이기록에서는 서화(西華)동쪽의 서신라(西新羅)만을 기록하고 있으나 삼국사기는 서신라(西新羅)의 기록과 반도의 동신라(東新羅)를 함께 기록하고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왕이라 칭한 신라(최치원 제왕 연대력)와 간()이라 칭한 신라(지증마립간(智證麻立干)가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거칠부(居柒夫)국사(國史), 당령고징신라국기(唐令孤澄新羅國記)의 원전명(原典名)이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우리 역사를 연구도 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일본이 왜곡한 거짓 역사를 앵무새같이 말하는 것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반도사관의 역사로 우리나라 정신세계는 황폐할 대로 황폐한 것을 바로 보고 가르쳐야 하지 반도 안의 신라만을 말하는 자는 역사를 가르칠 자격이 없는 자이다.
 
역사의 열등의식에 우리 역사를 폄하하는 일본의 왜곡한 역사를 더 이상 가르치지 말라! 우리역사는 대륙 아시아의 역사이지 반도의 역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실만이 역사라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이집트에 있는 박물관에는 이를 증명하는 박물관지도(博物館地圖)가 있는데 그 지도에도 신라 2개가 실려 있다. 이제 국민들도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고 말을 했으면 한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崔仁 韓國學講義, ‘再考證 韓國思想新發見’.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 三國史高句麗本紀’ ‘百濟本紀’ ‘百濟中國에 있었다’.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조선상고사에 한반도 상고사가 없다’ ‘高句麗史’, ‘九犂系史:東夷歷史 ’. (右犂)歷史校勘 十八史’ ‘우리역사(東夷傳)’. ‘高句麗史’, ‘斯盧新羅史’, ‘百濟史’ ‘加羅史’. 九犂系, -日本史’. 윤진영, 編集 三國史. 苻都誌’. 김동락, ‘천부경과 문디, 거시기’. 황순종,‘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반재원,‘鴻史桓殷’. 대야발 원저, ‘단기고사’. ‘단군과 교웅-단군의 호적등본’. 이강민,‘대한국고대사’.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사람과 북방주민들’. 李進熙’ ‘好太王碑’. ‘石井進外3, 智勝, ‘우리上古史’-발로 확인한 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바이칼 민족과 홍익인간세상’.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歷史’. 石井進外3, ‘詳說日本史,. 文定昌, ’韓國史延長-, ‘古代日本史’. 秋山謙藏, ‘日本歷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津田秀夫, ‘ひとりでべる日本史’. 杉山徹宗, ‘眞實中國四千年史’. 貝塚茂樹, ‘中國歷史.,. 吉川幸次郞, ‘武帝’. 李民樹,'朝鮮傳‘.외 다수(多數)의 서책(書冊)을 참조(參照)하고, 본문(本文)을 인용(引用)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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