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사정립(歷史鼎立)부터 제대로 해야

입력 2018-12-15 21: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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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필자는 재작년
8월 요하문명(서기전 6천년~9천년)의 발상지인 적봉지역(赤峰地域)을 답사하며 홍산문화(紅山文化) 유적을 접할 수 있었다. 학자에 따라 연대를 달리하나 그 유적이 아직도 다 발굴되지 않았으나 우리나라 동이족이 주도한 5대문명의 역사임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 국정교과서는 거의가 단군조선을 중심으로 다뤄지고 있다. 온 국민이 왜곡된 역사를 배워 우리 역사가 5천년 밖에 되지 않는다며 일반 국민도 이 범주(範疇)에서 역사의 시원(始源)을 찾으려 하는 이가 많다. 이는 역사를 모르는 것으로 매우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세계 석학들도 인류 최초의 기원이 이집트가 아니고 한국인이라 하고 있고 유네스코에서도 여러 가지 증거를 바탕으로 한국의 역사를 인정하고 인류의 기원을 이집트가 아닌 한국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증거로 우리 민족이 거주했던 만주지역에서 탄미(炭米)를 발견하고 그 DNA를 측정한 결과 자연산이 아닌 교배종이란 것이 판명됨에 따라 농사기술도 대단히 앞선 것으로 판명되었다.
 
학자들은 이 탄미(炭米)를 군량미로 추정했는데 불에 탄 흔적으로 보아 대단한 전쟁이 있었던 것으로 의견이 모았다. 추정 연도는 17000년 전이라고 한다. 이 내용은 이미 유네스코가 인정하고 발표한 것을 작년 88일자 스카이데일리에 이미 기고한 내용이다.
 
아직도 우리 국민은 반도식민사관자들이 망친 역사 밖에 모르는데 다시 기억을 되살리는 의미에서 오늘 이 글을 쓴다. 요새 송년회 자리에서 필자는 어찌 기자(箕子)가 나고 자란 곳이 중국 대륙의 하남성 서화인데 역사를 하는 사람들이 이것도 모르고 우리 역사를 말하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참으로 기가 차는 것은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지 않은 우리의 역사 인식이다. 우리는 11000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이다. 학자에 따라 12000년 역사라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5000년의 역사라 하는 사람을 볼 때 우리 역사교육이 말이 아닌데 울분을 금치 못한다.
 
세계가 고조선(古朝鮮) 이전의 환국(桓國), 배달국(倍達國)을 인정하고 있는데도 저명인사들까지 우리의 역사를 5천년 역사라고 하는 역사무지(歷史無知)를 보며 개탄(慨歎)하지 않을 수 없다.
 
외국인 학자들도 우리 상고사를 인정하고 하물며 중국의 사학자들도 우리의 광역(廣域)이 유라시아의 80%라고 한다. 중국의 임혜상(林惠祥) 같은 사학자도 이 같은 말을 하고 우리 삼성기(三聖記)에는 인구도 1800만 명 이었다고 나와 있음에도 부인하는 자가 있으니 기가 찰 일이다.
 
이런 자들은 우리의 대륙 역사를 반도(半島) 안에 가두어놓고 중국과 일본이 왜곡(歪曲)한 내용만을 우리 역사라 하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우리의 역사교육이 현주소를 보게 된다. 오늘은 우리나라가 세계 시원국가(始源國家)이며, 그 역사 또한 위대함을 살펴보고 자한다.
 
이제는 우리 역사가 제대로 정립해야 한다
 
우리는 유구하고 세계 시원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역사가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 원인은 우리가 우리 역사를 제대로 연구하지 않아 왜곡된 역사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제일 큰 문제다. 지금은 과학적으로 얼마든지 지난 역사를 입증할 수 있는 시대다.
 
우리는 고대 역사도 제대로 정립이 안 돼 있고 9세기 이전의 역사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황이다. 때문에 삼국시대인 서기전 2세기~9세기 역사도 정립한 것 같으나 아직까지 제대로 안하고 있다. 따라서 문제가 되는 것은 상고 때부터 각국의 위치, 지명을 하나하나 바로 정립하는 일이다.
 
우선 중국과 일본이 왜곡한 잘못된 위치와 지명을 일치시켜야 한다. 상고사가 없는 중국과 일본은 우리의 위치와 지명을 반도 쪽으로 몇 번이고 이동시켰기 때문에 고대 우리나라 역사 각국의 지명 위치가 잘못돼 있고 지명들을 너무 바꿔 놓아서 혼선을 가져오게 하고 있다.
 
다음으로 명칭(名稱)과 국가(國家) 간 지명이 중복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예컨대 왕의 칭호(稱號)를 사용한 사로신라와 간(; , )에서 왕으로 칭호를 바꾼 서라벌의 신라 역사와 태수(太守)의 낙랑(樂浪)과 왕의 낙랑(樂浪)을 사학자 중에서 아직도 이를 제대로 구분 못하는 이들이 있다.
 
여기서 그 지명(地名)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삼국(三國)을 살펴보면, 고구려(高句麗)는 북평(北平태원(太原서안평(西安平은산(銀山용도(甬道)와 신성(新城)이 있어야 한다.
 
한족(漢族)동이전(東夷傳)에는 서안평(西安平북평(北平태원(太原광주(光州섭라(涉羅)가 있어야 한다. 이곳은 거의 요동(遼東)에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역사는 잘못돼 있다.
 
또한 백제(百濟)는 박산(薄山대산(大山백마(白馬평원(平原동성(桐城잠산(岑山독산(獨山황산(黃山사비성(泗泌城하수(河水석문(石門대방(帶方)의 백제(맥제)가 있다.
 
한족(漢族)의 동이전(東夷傳)에는 대방(帶方청하(淸河성양(城陽광양(廣陽진성(晉城고평(高平항성(項城동명(東明덕안(德安백마(白馬대산(大山)의 지명이 있는 곳이다.
 
신라(新羅)는 항성(項城연주(兗州사지연수(泗之漣水우이(嵎夷덕안(德安)이 있어야 한다. 이 덕안(德安)이 강회(江淮)에 있다. 그런데 반도에서만 신라가 있는 것 같이 다루고 있다.
 
한편 왜()는 회계(會稽단주(澶洲이주(吏洲담이(儋耳;南越)등 지명이 있어야 한다. 이곳은 양자강()子江) 이남의 대륙이다. ()도 일본열도에 있지 않고 대륙에 있었다.
 
공통부분으로서 신라(新羅백제·고구려·()가 오늘의 중국 대륙에 있고 그리고 삼국사기(三國史記)에만 있는 부분으로 낙랑왕국(樂浪王國)과 왕()의 칭호(稱號)를 사용한 사로신라(斯盧新羅)와 간(; , )에서 왕으로 칭호를 바꾼 서라벌의 신라(동신라)가 있었다.
그런데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위치를 명확히 제시하지 않았다. 낙랑왕국(樂浪王國)과 왕의 칭호(王稱號)를 사용한 사로신라(斯盧新羅; 西新羅)와 칸(; , )에서 지증왕(智證王) 때 왕()으로 칭호(稱號)를 바꾼 서라벌(徐羅伐)의 신라(新羅;東新羅)가 있다는 사실의 기록이 없다.
 
그런데 한족(漢族)은 우리나라 국가(國家)들의 위치를 정확(正確)하게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동이(東夷) 각국(各國)의 지명(地名)들을 보면 다음과 같은데 모두 다 그 지명들이 대륙에 있었다.
 
중국 사서에 의한 동이(東夷) 국가들 위치
 
삼국지(三國志)후한서後漢書)에 의하면 이미 중국대륙에 제일 남쪽에 왜()가 있고 왜()의 북쪽에 한()이 있고, ()의 북쪽에 예()가 있고 예()의 서쪽에 낙랑(樂浪)이 있고, ()의 북쪽에 고구려와 옥저(沃沮)가 있으며 부여(夫餘)의 서쪽에 선비(鮮卑)가 있었다고 했다.
 
이를 더 자세히 말하면 부여(夫餘)는 장성(長城)의 북쪽에 있다.-()이전), 고구려는 우북평(右北平어양(漁陽상곡()태원(太原서안평(西安平)이 후한서에 기록이 돼 있다.
 
위서(魏書)에는 광주(光州), 섭라(涉羅)가 있고 신구당서(新舊唐書)에는 은성(銀城)과 신성(新城)이 기록되어 있다. 대방(帶方)은 서안평(西安平)에 있고, 석문(石門)에 접하여 있다고 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북평(北平태원(太原)서안평(西安平은산(銀山:은성(銀城)이라고 하는데 같은 곳이다) 용도(甬道), 신성(新城)이 있어야 한다. 한족(漢族) 동이전(東夷傳)에는 서안평(西安平북평(태원(太原광주(光州섭라(涉羅)가 있음을 이미 밝힌 그대로이다.
 
()의 지명은 창해에 있어야 하며 이는 사서(史書)와 한서(漢書) 기록
 
백제는 진평이군(晉平二郡성양(城陽광양(廣陽광능(廣陵대방방(帶方조선(朝鮮청하(淸河낙랑(樂浪) 이상이 남제서(南齊書)에 기록돼 있고, 항성(項城백마(白馬대산(大山웅진(熊津동명(東明덕안(德安)신구당서(新舊唐書)에 기록돼 있다.
 
삼국사기에는 석문(石門제성(諸城하수(河水숭산(崇山백마(白馬황산(黃山평원(平原동명(東明항성(項城덕안(德安독산(獨山동성(桐城잠산(岑山) 등 기록이 있다.
 
신라는 강회(江淮)지역에 있다고 사기]구당서에 있다고 했는데 항성(項城)신구당서에 쓰여 있고, 연주(兗州)구당서, 연수(漣水)당서(唐書), 우이(嵎夷);()가 있다. 삼국사기에 석문(石門황산(黃山독산(獨山동성(桐城잠산(岑山덕안(德安)이 다 기록되고 있다.
 
그리고 왜()도 처음부터 대륙 양자강 이남에 있었다는 것을 몇 번이고 말하였다. ()의 지명으로는 회계(會稽), 담이(儋耳;南越)삼국지(三國志)에 쓰여 있고, 이주(吏洲)후한서(後漢書), 북사(北史)에 쓰여 있다. 이상 나라별 지명을 바로 잡기 위해 찾아보았다.
 
그리고 위 지명(地名)이 있는 곳에서 활동한 우리나라 고대 역사의 인물(人物)들도 모두 반도 아닌 대륙에서 출생해서 대륙에서 그 생을 마쳤다. 또한 그 무덤들도 대륙에 다 있다.
(以上吳在成 編著, ‘지도로 보는 우리나라역사(東夷疆域圖)’9~11, 參照引用하였다.)
 
그런데 우리나라 역사를 연구하지 않은 국내 사학자(史學者) 중 학자 아닌 사학자(詐學者)가 말하는 역사는 허구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기자(箕子)가 나서 자란 곳이 하남성(河南省) 서화(西華)이고 무덤이 몽성(蒙城)에 있는데 어찌해서 한반도 있다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기자묘(箕子墓)를 만들어 놓고 기자(箕子)가 반도에서 기자조선을 세웠다는 무지가 창피하지 않은지! 실체도 없는 이야기는 이제 그만둬야 한다. 중국과, 일본이 역사왜곡에 우리는 단호하게 나서서 역사를 바로 세워가야 한다. 우리 역사는 왜곡되리만큼 그런 역사가 아니다.
 
결어(結語)에 대신하여
 
우리 역사는 현대 과학으로도 우리가 대륙 역사임을 말해 준다. 일식에 관한 NASA의 관측에서 보듯 고구려는 바이칼호수이고 신라가 가장 많은 관측을 했는데 반도가 아니고 모두가 대륙에서다. 백제와 일본도 관측한 곳이 반도나 일본열도가 아니고 다 대륙은 무엇을 말하는 가!
 
우리의 강역(疆域)은 상고시대로부터 고대도 반도가 아니고 대륙 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대만(臺灣)에서 관측한 것으로 나온다. 일본 국호는 670년부터 사용했는데 대만이다.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는데도 언제까지 무지(無知)한 역사로 국민을 기만하려는지 묻고 싶어진다.
 
고대에 기후 변화와 자연현상에서도 우리 영역은 반도가 아닌 대륙이었다. 그것도 아세아(亞細亞)뿐 아니라 유라시아를 지배한 역사임을 바로알고 말을 해야 한다. 우리는 황하(黃河)와 산동(山東)을 중심으로 대륙을 정벌하고 정복하여 지배하며 무한히 발전해온 것 숨길 수 없다.
 
세계5대문명의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도 지금의 이라크의 지경이고 3800년 전에 쓰여진 함무라비 법전도 우리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사관(史觀)부터 바로하고 우리와 같은 동이(東夷) 나라들의 아시아인을 수용할 줄 알아야 바른역사가 된다.
 
그들은 다 우리의 형제들이기에 폭넓게 그 역사도 제대로 수용해야 한다. 그들은 고대부터 우리와 형제 같은 사이다. 한편, (:日本)는 서기전 50~서기 670년 까지 양자강 이남에 있었다. ()가 있었던 담이(儋耳)와 남월(南越)은 지금의 광서성(廣西省)이다
 
그런데 왜()가 양자강 이남에 있었다고 하지 않고 670년 대만(臺灣)에서 일본(日本)이라는 국호를 쓴 것을 숨긴다. 이곳은 왜()라 부르기 이전, 노자(老子)가 산 곳이 담이(儋耳).
 
4세기 이전 기록이지만 649년 당태종(唐太宗)이전까지 발행한 양서(梁書), 북사(北史),남사(南史)까지도 왜()가 회계(會稽담이(儋耳남월지(南越地)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는 649년 이전의 장안(長安) 중심의 한족(漢族) 정사(正史)에서 왜()가 양자강 이남에 있었음이 분명함에도 숨기고 왜곡하여 왔던 것이다. ()는 고조선(古朝鮮)의 제후국으로 동이의 일부이지 결코 다른 민족이 아님에도 현재 반도와 일본의 상황으로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의 해석을 반도로 왜곡(歪曲)한 것은 근시안적인 해석 때문이다. 진실은 하남성(河南省)의 서화(西華)에서 반도까지 동북아시아까지 조선이 지배한 것이었다.
 
우리는 환국 때부터 12부족들이 축제에 떡과 술을 나누던 훈족·퉁구스족·여진족·몽골족·말갈 등, 아이누인까지 우리와 관계없는 듯 말하는 무지는 이제 그만해야 하며, 일제가 심어놓은 단일민족(單一民族)이라는 민족사관은 이제 왕조사관으로 역사를 제대로 재구성해야 한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崔仁 ‘(韓國學講義)’, ‘再考證 韓國思想新發見’.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吳在成,‘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百濟中國에 있었다.’.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조선상고사에 한반도 상고사가 없다.’ ‘高句麗史’, ‘九犂系史‘’ :東夷歷史 ’. (右犂)歷史校勘 十八史’ ‘우리역사(東夷傳)’. ‘高句麗史’, 九犂系, 新羅史’, ‘‘斯盧新羅史’, ‘百濟史’ ‘加羅史’. 九犂系, -日本史’. 吳在成 編著, ‘지도로 보는 우리나라역사(東夷疆域圖)’. 윤진영, 編集 三國史. 苻都誌’. 김동락, ‘천부경과 문디, 거시기’. 황순종,‘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반재원,‘鴻史桓殷’. 대야발 원저, ‘단기고사’. ‘단군과 교웅-단군의 호적등본’. 이강민,‘대한국고대사’.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사람과 북방주민들’. 李進熙’ ‘好太王碑’. ‘石井進外3, 智勝, ‘우리上古史’-발로 확인한 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바이칼 민족과 홍익인간세상’.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歷史’. 石井進外3, ‘詳說日本史,. 文定昌, ’韓國史延長-, ‘古代日本史’. 秋山謙藏, ‘日本歷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津田秀夫, ‘ひとりでべる日本史’. 杉山徹宗, ‘眞實中國四千年史’. 貝塚茂樹, ‘中國歷史.,. 李民樹,'朝鮮傳‘.외 다수(多數)의 서책(書冊)을 참조(參照)하고, 본문(本文)을 인용(引用)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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