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사관의 가장 큰 문제는 1만 2천년의 역사와 강역(疆域)을 한반도로 한정하고 사서(史書)를 맞춘데 있다. 지금까지 우리 강역을 추적해 보면, 한반도가 아니고 대륙이었다. 그런데 반도식민사관자들은 아직도 허구(虛構)역사만 논하는 참으로 딱한 이방인이 되고 있다.
이들은 우리가 대륙의 역사 주역임을 모르고 우리가 마치 중국 지배를 받아온 것인 양 자조적(自嘲的)인 사고와 열등의식, 패배의식이 오도된 의식구조로 되어 있다.
우리가 유라시아를 지배하고 선진문명과 문화민족으로서 우리의 찬란한 문명과 문화를 대륙에 전수(傳授)시키고 이식시켰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아직도 김일연(金一然)과 신채호(申采浩)가 한반도로 국한시킨 역사를 우리 역사로 보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
우리가 역사의 주체임을 망각한 이들로 인하여 자손들이 만대에 뻗어나갈 우리 2, 3세들에게 열등의식과 패배의식을 조장해 우리 역사와 조상을 자조적으로 보게 하고 있으니, 이들은 조국과 조상에 대해서 용서받을 수 없는 불충과 역사를 매도하는 사기꾼과 진배없는 자들이 되고 있다.
이들은 일본이 대륙 침략을 하면서 만든 조선침략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일본은 명치유신 이후 도쿄대학에 동양사학과를 신설하고 일본역사는 1천년이나 조작하며 우리 상고사도 없애고 우리 역사는 단군시대부터라 하며 단군도 전설화하여 우리 역사를 반만년이라는 이론을 폈다. 이들은 구제받을 수 없는 역사논리를 펴고 있는 매국노와 같은 참으로 한심한 사학자(詐學者)들인 것이다.
이들이 일제 조선사편수회에서 만든 왜곡된 역사를 조선사라하며 뿌린 씨앗은 우리의 정신뿐 아니라 민족혼과 우리의 기상을 송두리째 말살하여 우리 사회의 가치관을 변질시킨 자들이다. 외국의 저명한 사학자들도 우리를 보며 한탄할 정도로 비판을 가하고 있을 정도이다.
반도사관 학자들은 조상을 욕되게 하고 자손만대 자랑스러운 인류시원국인 우리 역사를 말살하는 역사범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이런 역사를 계속해서 지금도 왜곡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를 바로 세우도록 연구해서 그들이 역사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하여야 함에도 현실은 정반대이다.
그들은 일제가 정략적으로 1916년 ‘조선반도사 편찬과’를 설치를 시작으로 1922년에는 ‘조선사편찬위원회’ 설치하고 1925년에는 ‘조선사편수회’로 개편하여 1938년 ‘조선사’ 35권(2만 4천쪽)과 부록으로 ‘조선사료총간(朝鮮史料刊)’ 20종과 ‘조선사료집진(朝鮮史料集眞)’ 3질을 발행한다.
반도사관 학자들은 이 35권의 책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가르치는 자로 반도식민사관자들이다. 오늘은 일본의 간악한 흉계와 반도사관자는 일본주구(走狗)며 잘못된 것을 살펴보고 자 한다.
일본의 우리 대륙역사 말살의 왜곡과정
쇄국정책을 답습하는 일본막부(幕府)에 대해서 1884년 네델란드는 개항권고(開港勸告)를 하나 막부(幕府)는 거절한다. 1853년 페리 미국의 해군제독이 미국 대통령 친서를 일본의 막부(幕府)에 전했으나 일본 막부(日本幕府)는 회답을 보류한 채로 양이(攘夷) 개국(開國)에 국론이 분열한다.
여기에 미국의 페리제독은 재차 일본에 내항하여 1854년 3월 미일화친조약(美日和親條約;가나가와조약(神奈川條約)을 시작으로 동년 영국, 러시아, 네델란드와 조약을 체결하고 그 이듬해 1855년에는 프랑스와도 조약을 체결한다. 이를 안정5개국조약(安定5個國條約)이라한다.
이어서 1868년 3월에 일본은 명치유신(明治維新)의 새 정부는 근대적 제제도의 정비를 한 후 운양호사건을 일으키며 조선을 침략한다. 그리고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의 강제병합을 시작으로 대동아전쟁 -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며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수탈과 고통을 안긴다.
한편 그들은 우리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총독부 발표의 통계만 해도 22만 수천 권을 거둬 들여서 총독부 연병장에서 불태워 없앴다. 그 이후도 관리들을 동원하여 사대부집에 가서 서책을 빌려 달라고 해서 역사서적을 거둬 와서 모두 불태워 없애고 우리 역사를 왜곡하게 된다.
이는 고도의 문화를 가진 조선을 통치하는데 그대로는 어렵다는 판단 하에 사이토 마코토(齊藤) 3대 총독은 조선사 편찬방향에 대해 “조선인들에게 그들 조상들의 무위(無爲), 무능, 악행을 많이 들추어내어 알려줌으로서 부조(父祖)를 경시하고 멸시하는 것을 하나의 기풍으로 만들라... 실의와 좌절에 빠진 그들에게 일본의 사적(史蹟)과 문화 인물들을 소개하면 동화(同化)의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것이 조선인을 반(半)일본인으로 만드는 첩경(捷徑)이다”고 했다.
조선총독부는 이 지침에 따라 상상을 초월하는 야비(野卑)하고 목불인견(目不忍見)의 가증(可憎)스러운 거짓조작(造作)으로 우리 역사를 만들어 민족혼을 상실케 하고 열등의식과 패배의식을 부식(扶植)하는데 목표를 두고 ‘조선사편수회’의 왜곡된 35권의 조선사를 간행케 한 것이다.
이 책은 상고시대의 환국이나 배달국은 아예 없앴고 단군조선도 절반으로 잘라서 우리 역사의 상한연대를 끌어내리고 일본연대는 천년을 덧붙여 서기전 역사로 하며 우리 단군을 전설화하여 우리 역사의 기원을 부정하며 우리의 정체성(正體性)을 훼손하는 식민사학을 고정화한 것이다.
(以上은 이도상, 한국고대사 바로알기, 24面 ~ 29面과. 31面 ~ 32面 參照하고 引用하다.)
이런 역사를 광복이 된지 73년이 되는 오늘날까지도 식민지체제를 강화하기 위하여 우리 역사를 정체성(停滯性)과 타율성(他律性)의 역사로 매도한 것을 지금도 모든 학교의 역사교재로 가르치고 있다. 이것이 얼마나 수치스럽고 우리 선조에게 모욕을 주고 있는 것조차 모르고 있다.
이는 참으로 이해할 수가 없는 현상으로 결코 정상(正常)이 아니다. 우리의 천손민족을 폄하(貶下)하고 우리의 천민사상(天民思想)과 인간사상은 물론 찬란한 고대문명과 문화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이들이 진정 우리나라 사람인지 의문이 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것은 도저히 이해도 용납도 할 수가 없다.
조선사편수회 왜곡역사 허구역사 뿐이다.
일제(日帝)가 우리나라 역사조작을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산하에 ‘조선사편수회’를 두었던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조선사편수회’는 우리나라가 세계의 시원국(始源國)인 환국(桓國)은 물론 치우천황(蚩尤天黃;자오지천황(慈烏支天黃)의 전쟁신(戰爭神)으로 자타가 숭상하는 배달국(倍達國) 제14대 천자(天子)로서 지울 수 없는데도 이 배달국마저도 역사에서 지우고 간다.
그리고 단군(檀君)의 고조선(古朝鮮)역사도 절반 이하로 잘라서 전설화(傳說化)하고 기자조선(箕子朝鮮), 위만조선(衛滿朝鮮), 한사군(漢四郡)도 반도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반도에 있었다고 왜곡했다.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은 고조선 지역에 와서 조선의 명칭을 사칭한 것일 뿐, 중국인들이 고조선지역에 위치했다는 의미로 조선이라 호칭한 것인데 이것도 반도가 아닌 대륙에 있었다. 또한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은 우리 역사의 범주에 들어가지도 않는 우리와 상관없는 역사다.
일제(日帝)는 ‘조선사편수회’가 1938년 <조선사> 35권을 발간하는데 그 초점은 우리 상고사를 없애고, 고대사도 고조선에 그 주안점(主眼点)을 두고, 고조선 역사를 그대로 인정하게 되면, 일본의 역사의 기원(紀元)보다 앞선 조선을 일본보다 후에 건국한 것처럼 조작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있지도 않은 역사를 조작하고 왜곡하며 조선을 침략한 일본역사의 복원(復元)이라는 논리로 식민지 지배를 합리화(合理化)하려던 그들 억지가 궤변이 되는 것도 예사로 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 역사와는 엄청난 연대차를 잘라내어 상고사를 없애고 고대 조선의 역사를 부정하여 고대조선강역(疆域)을 아예 지도(地圖)에서 없애버리는 작업이었다.
이를 착안한 것이 고대(古代) 조선과 중국의 국경선의 위치를 지금의 한반도 깊숙이 끌어들이는 방법을 모색한 것이었다. 이 원인을 제공한 자가 김일연(金一然)과 신채호(申采浩)이었다.
우리가 반도역사가 아니고 대륙의 역사임에도 고대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가 마치 한반도에 있었던 것처럼 조작하고 한(漢)나라가 마치 고조선을 멸하고 한사군이 반도에 있는 것 같이 왜곡하는 것도 부족하여 가야의 식민지를 일본에 임나(任那)를 경상도로 가져다가 조작하였다.
그러나 지금 역사를 제대로 연구하고 고고학적으로 입증된 것은 한사군(漢四郡)도 임나(任那)도 한반도에 없었음이 한일 학자들 간에도 모두 밝혀져서 이를 말하는 것은 연구를 하지 않은 반도식민 사관자 중 바보들이나 하는 말로 일고의 가치가 없는 허구임을 알아야 한다.
지금도 고대의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가 반도에 있었던 것 같이 말하는 자는 우리 역사를 모르는 자가 하는 말일 뿐이다. 그들은 김유신(金庾信)도 한반도에서 활동한 것 같이 말하고 장보고(張保皐)와 최치원(崔致遠)도 반도가 아닌 대륙에서 활동한 역사를 모르고 있는 자들이다.
그리고 최치원도 고구려 사람인데 신라 사람이라 하고 면화(棉花)가 삼국시대부터 우리 선조들이 재배하고 옷을 해 입었는데 고려 때 문익점(文益漸)이 중국에서 분통에 숨겨왔다고 잘못 알고 있다. 신라침판이 신(新)자를 빼고 나침반(羅針盤)이 된 사실, 실크로드의 상인들이 ‘신라실크’라고 말하는 것을 모르는 자들이다. 우리 역사가 뒤집혀진 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
고대 대만이 일본이다. 진실은 감출 수 없다.
양자강 이남에 있던 왜(倭;왜국倭國)가 670년 대만에서 국호를 일본(日本)이라 쓰기 시작했다. 이 일본은 양자강 이남의 대륙에 있는 일본이고, 동일본(東日本)은 일본열도(日本列島)에서 당시 실권을 잡고 있던 막부3대장군(幕府3代將軍)인 아시카가 요시미츠(足利義滿)가 1404년 명(明)나라로부터 국호(國號)를 받은 일본열도(日本列島)의 나라를 이르는 말이다.
일본은 처음부터 일본열도(日本列島)에 있었던 것처럼 조작해서 말하나 대만의 일본(日本)은 670년부터 당(唐)나라의 국호승인(國號承認)을 받고 쓰기 시작했고, 일본열도의 일본은 1403년 명(明)나라가 우리 왜인전(倭人傳)을 일본에 준 후 일본국호를 쓰도록 했음도 이미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일본은 애초부터 일본열도(日本列島)에 있었던 것 같이 말하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양자강 이남에 있는 왜(倭)는 야마도(大和國)를 말하는 것이고, 중국역사서(中國歷史書)에서 왜(倭), 또는 왜인(倭人)이라는 기록은 양자강 이남에 사는 왜인 외에 동남아 제종족(諸種族)을 말하는 것이다.
발해(渤海)의 역사가 분명치 않은 것과 같이 동이중(東夷中) 제일 남쪽에 있던 왜(倭)나 일본(日本)이 언제 패망했는지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없다. 이는 사서를 다 없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백제가 망한 뒤 백제유민이 왜(倭)로 가서 일본을 세웠다고 하는 것은 일본열도(日本列島)가 아니라 양자강 이남 대륙의 왜(倭)이며 중원세력으로부터 축출되어 이주(夷洲)인 타이완;대만(臺灣)에 이주(移住)해 가서 일본(日本)이라는 국호를 쓰기 시작한 670년의 서일본, 대만(臺灣)과 1404년의 일본열도에서 일어난 동일본(東日本)인 나라의 국호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주(夷洲)인 타이완;대만(臺灣)과 일본열도(日本列島)의 일본은 그 위치가 다른 것이다. 중국25사 동이전(東夷傳)에 있는 왜는 일본열도와 무관한 나라이다.
동이전(東夷傳)은 일본열도를 중심으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산서성(山西省) 요(遼)를 중심으로 동서를 가르는 중국25사동이전(東夷傳)과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공통부분을 기록 한 것뿐이다.
한편 720년에 편찬된 ‘일본서기(日本書紀)’도 일본열도의 기록으로 보기 어려운 것은 지진과 홍수가 많은 자연조건을 가진 일본열도에서 기록된 것으로 보기에 어려울 만큼 자연현상도 기록이 되어 있지 않았고 ‘일본서기’의 일식기록의 관측(觀測地)이 양자강 이남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동이전(東夷傳)의 동이(東夷)위치는 요(遼)의 동쪽을 중심으로 요(遼)의 서쪽진출로 인한 장안세력(長安勢力)과의 분쟁(紛爭)의 기록들인 것이다. 일본열도로 진출하기 전 왜인들은 본토회복을 위해 대륙 동남해안으로 진출하여 본토회복을 기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또한 조선해변으로 진출했지만 이 또한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일본열도로 진출한 왜인들의 후예는 동일본(東日本)을 건국했다. 물론 한반도에서 진출한 낙랑인, 고구리인, 신라인, 가라인 들의 후예가 일본열도로 진출해 왜구들과 함께 동일본을 건설한 것으로 보고 있다.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에 기록된 1579년 원(元)나라 원정이후(遠征以後) 왜구활동(倭寇活動)이 극대화(極大化) 되었는데 명(明)나라 동해안과 고리(高麗)해안을 넘나들며 본토회복(本土回復)을 꾀했으나 본토회복은 하지 못하고 본거지(本據地)도 네덜란드에 평정되는 바가 되었다.
이렇게 되자 왜구(倭寇)는 새로운 활동무대를 위한 새 개척지가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왜구는 일본구주(九州)와 대마도(對馬島)를 접수하고 일본열도(日本列島)를 개척해 동일본(東日本)을 통합하게 되는데 그들은 성(城)을 쌓고 해자(垓字)를 만드는 등 대륙(大陸)에서 사용되는 방어법(防禦法)을 적용(適用)하여 일본열도(日本列島)를 통일국가(統一國家)로 만들었다.
그럼 대륙의 일본 패망은 언제였나?
대만(臺灣)에 있었던 일본이 언제 망했는지 대만의 친지에게 물어봐도 모른다고 답했다. 이것은 중국 대만에 있던 일본의 역사(歷史)를 가르치지 않은 탓이다. 즉, 중국과 일본이 대만역사(臺灣歷史)를 16세기(世紀) 이전(以前)은 모르는 것으로 차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왜(倭)가 이주(夷洲)였고 이는 타이완;대만(臺灣)인 것은 다 밝혀진 것으로 패망일은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旅行記)에 지판구(Zipangu)라고 나오는 부분이 일본 패망으로 보인다. 이는 송(宋)나라 때 발행된 ‘송본(宋本)지리지장도’에서 대만(臺灣)은 그려지지 못했다.
이것은 송(宋)나라 때까지도 타이완;대만(臺灣)은 잘 알지 못했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원(元)나라 때 남경(南京)에서 배를 띄워 쳐들어갔다면 가장 가깝고 큰 섬이 타이완;대만(臺灣)인데 이곳이 지도(地圖)에도 등장하지 못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대만이 일본이었으며 서양에서 말하는 지판구(Zipangu)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이 지판구(Zipangu)가 타이완;대만(臺灣)임은 이미 다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일본열도의 일본은 대륙의 왜인(倭人)과 백제인이 진출한 신개척지이며, 왜인들이 해류의 흐름 때문에 류구열도를 거쳐 일본열도에 갔고 한반도에서는 강릉에서 해류를 따라 가고시마를 거쳐 일본열도로 간 것이다.
일본열도는 여러 곳에서 진출 되었어도 자연재해가 많아서 중앙집권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지역 활거로 지내오다 15세기 조선이 대마도정벌에 자극받아 점점 중앙집권적으로 편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들은 대륙의 왜사(倭史)를 1404년 이후 일본열도의 역사로 재창조(再創造)해 이용했음으로 현재, 왜사(倭史)인 동이전(東夷傳)을 바로 볼 수 없게 해온 것이다.
‘환웅(桓雄)이 군대 3천을 거느리고 처음 정착(定着)한 곳이 송화강(松花江)가인데 흰소(白牛)를 제물로 바치며 제사 지낸 연원이 있어 송화(松花)를 소머리라는 뜻의 소밀, 속말로 불렀다. 이 소머리라고 하는 것이 민족이동(民族移動)과 함께 성씨(姓氏)로 전래 됐다.
참고로 제3대 단군(檀君) 갸륵 때, 반란(叛亂)을 일으켜 소머리에서 사형(死刑)당한 자가 있었는데 그 후손 섬야노(陝野奴);샨이 바다건너 일본으로 건너가서 국왕으로 칭해졌다고 한다. 그런데 제36대 단군 매륵 때에 배폐명을 일본에 보내 일본을 모두 쳐서 평정했다고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와 ‘마한세가’에 기록돼있다. 소머리가 언제 일본으로 갔는지는 모른다.
일본고대사(日本古代史) ‘신대기일서(神代紀一書)’에는 스사노오노미코토(素盞鳴尊)가 소머리(소시머리)에 거처하다가 일본 이즈모(出雲), 히노가와(簸川), 조토(鳥土)에 이르렀다고 한다. 한국의 땅 소머리가 민족 이동(移動)에 따라 지명(地名)을 옮긴 것이다.
일본에는 우두(牛頭)라는 성씨도 전한다. 연원을 물으면 “모른다. 우리 조상 때부터 내려온 성씨가 우두(牛頭)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강원도 춘천에도 소머리 무덤이 있다. 일본인들이 저희 조상 찾아온다고 이곳을 방문한다. 6.25동란 기념비를 크게 세워 놓은 자리다.
그리고 일본 각지에 우두신사(牛頭神社), 우두사(牛頭寺)등 많은 산사(山寺)라는 절간을 세워 우두신(牛頭神)에 제사(祭祀)지낸다. 일본의 조상(祖上)을 모셨다는 이세신궁군(伊世神宮)에 모신 신위(神位)는 모두가 우리나라 선조(先祖)들이다. 일본은 우리 선조들이 세운 나라였다.
필자는 78년 학위를 받고 귀국을 하기 전 일본의 조상을 모셨다는 미에갱(三重縣) 미에시(三重市)에 있는 이세신궁(伊勢神宮)에 가 봤다. 이 이세신궁(伊勢神宮)에는 우리나라 가야신라신과 백제신이 모셔져있다. 가야신라신의 신위(神位)가 1위(位)외에 35신위(神位)가 백제신위다.
가야(伽倻)와 신라신(新羅神) 1위(일본은 가야와 신라의 구분 안 되어 가야와 신라가 하나로 보고 있다)와 백제신(百濟神) 2위(位)가 가장 윗자리에 있고 그 밑에 33위로 신위(神位)가 있다.
신위(神位)는 모두 36위인데 우리 선조의 신위(神位)들인 것이다. 이는 우리가 일본을 지배한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며, 일본에서 건국한 모든 국왕이 대륙에서 건너간 자임을 말하는 것이다.
(이상은 최태영 단군을 찾아서233面~237,面 吳在成 九犂系, 倭-日本史’.42面~48面참조 인용)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崔仁, ‘韓國學講義’, ‘再考證 韓國思想의 新發見’.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조선상고사에 한반도 상고사가 없다.’ ‘高句麗史’, ‘九犂系史‘’犂: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校勘 十八史’ ‘우리역사(東夷傳)’. ‘高句麗史’, 九犂系, 新羅史’, ‘‘斯盧新羅史’, ‘百濟史’ ‘加羅史’. 九犂系, 倭-日本史’. 吳在成 編著, ‘지도로 보는 우리나라역사(東夷疆域圖)’. 윤진영, 編集 ‘三國史. 苻都誌’. 김동락, ‘천부경과 문디’ 거시기’. 황순종, ‘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반재원,‘鴻史桓殷’. 대야발 원저, ‘단기고사’. ‘단군과 교웅-단군의 호적등본’. 이강민,‘대한국고대사’.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智勝, ‘우리上古史’-발로 확인한 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바이칼민족과 홍익인간세상’. 카터 코벨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石井進外3人, ‘詳說日本史,. 文定昌, ’韓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秋山謙藏, ‘日本の歷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津田秀夫, ‘ひとりで學べる日本史’.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上. 中, 下. 李民樹,'朝鮮傳‘.외 다수(多數)의 서책(書冊)을 참조(參照)하고, 본문(本文)을 인용(引用)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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