㉕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본다-韓民族이 중국대륙 주인

입력 2013-02-16 21: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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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선진문화민족 한민족(韓民族)의 긍지 가져야
 
우리민족과 가장 관계가 깊고 교류가 잦았던 민족은 대륙으로는 한족(漢族,중국)과 해양방면의 왜족(倭族,일본)이었다. 대륙의 한족은 우리에게 문화적 욕구보다 위압적 도전을 해오면서 정치적·경제적 탐욕을 끊임없이 드러내 왔다. 이에 반해 우리 한민족(韓民族)은 침략행위보다는 우리 옛 영토를 회복하는 것과 기존의 영역을 보존하고자하는 노력, 그리고 우리 민족문화의 향상에 대한 욕구를 더 많이 가져왔다. 이런 추세는 오늘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또한 일본은 우리 민족에 대해 정상적으로는 문화적·경제적 욕구를 갖고 있으면서도 침략적인 행위가 많았음에 반해 우리는 그들을 은혜와 위엄으로 대해 주었다. 중국 본토의 경우는 역사적으로 우리가 고대사에서 한족(漢族)의 땅을 먼저 선주한 선진 강대민족이었다. 그러던 중국이 한족(漢族)을 통일한 후 우리 민족보다 우월한 문화를 갖게 됐다. 일본은 근대화 이전 까지는 우리보다 저급한 문화를 가졌기 때문에 우리 민족은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여 이를 융합·발전시켜 일본에 전해주는 역할을 했다.
 
우리 이웃들과의 이 같은 관계 속에 한민족(韓民族)의 역사는 외적의 강압과 내부의 사대주의자, 그리고 정권 비리를 합리화하기 위한 기만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위조되고 왜곡됐다. 더구나 일본의 우리민족 말살정책으로 인한 역사날조로 인해 우리의 유구한 역사 대부분이 잘려 나감과 동시에 넓은 영토의 대부분이 절단되는 결과를 가져 왔다. 이제 잃어버린 수천 년의 고대사와 한반도의 일부로 축소된 민족의 활동 강역을 중국 땅까지 회복해야 한다. 지금도 진행 중인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을 바로 잡고 우리의 고토를 되찾아야 한다. 일본과 중국은 여전히 역사를 기만하는 폭거와 폭력을 합리화 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고토를 마땅히 강탈·지배해야 한다는 허무맹랑한 논리를 그들의 2세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나아가 우리의 선진 한민족을 선천적으로 미개하고 무능한 종족이라고 왜곡·선전하고 있기까지 하다. 우리 교과서는 이처럼 왜곡된 것을 답습하고 있다. 한마디로 날조된 노예의 역사를 받들고 있는 우리가 아닌가. 우리 선조들은 4천여년 전에 우리가 먼저 대륙에서 활동했던 자랑스러운 선진 역사문화를 가졌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선진 민족의 긍지를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
 
죽지 않은 군자(君子)의 나라였다
 
중국과 일본은 우리 개국에 관한 기록의 정사(正史)를 모두 없애는 한편 사료(史料)를 선별로 수집하며 ‘규원사화’도 탈취·소각했다. 이를 통해 역대 임금을 신화적 인물로 날조, 한민족사(韓民族史)를 뿌리채 없애는 잔인한 말살을 기도해 왔다. 그러나 우리의 상고사는 생생히 살아 있다. 규원사화는 개벽신화로 시작하는데, 중국사서(史書)와 사실이 일치하고 있다. 공자도 “군자의 나라로 흠모했던 동이국(東夷國)은 어찌해서 역사책에서 사라졌는가”라고 한탄해 했다. 우리나라 상고사는 만신창이가 돼 있지만 우리의 가슴에서 뛰고 있음을 느껴야 한다. 상고사는 엄연히 장대(壯大)하게 살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일본의 문화 전반 및 국가사회 구성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19세기에 일시적인 폐쇄주의로 근대화가 늦었으나 일찍이 우리 민족사(韓民族史)는 거만한 중국인들까지도 공경을 했었을 정도다. 공자의 경서(經書)와 중국의 사서(史書)에는 “예의를 지키며 겸손하고 양보하기를 좋아하며 굳세고 부지런히 생산하며 노래를 즐기는 죽지 않은 군자(君子)의 나라다”고 예찬을 아끼지 않았다.
 
고대 우리 예맥조선(銳麥朝鮮)은 수십의 제후국을 거느리고 조공을 받았다. 중국이 내세우는 기자조선이나 위만조선보다 먼저 건국해 이들과 병립하고 1천여년 동안 강대한 활동을 전개했다. 당시 부족국가들을 제후국으로 삼아 이들로부터 조공을 받은 강대한 한민족(韓民族)의 국가였다는 것이다. 또한 기자조선은 우리와 피가 섞이지 않은 한족(漢族)의 집단일 뿐 단군조선을 계승치 못한 사실도 판명됐다. 위만조선 역시 한족(漢族)의 집단인 기자조선(箕子朝鮮)을 탈취한 것일 뿐이다. 중국의 한족은 한민족(韓民族)을 정복한 일이 결코 없었다는 것이다. 한무제(漢武帝)가 순수한 한족(漢族)의 집단인 위만조선(衛滿朝鮮)을 정복해 사군(四郡)을 설치한 것이기도 했다. 따라서 강대했던 한민족(韓民族)의 예맥조선(銳麥朝鮮)을 계승한 것은 기자조선도 위만조선도 결코 아니다. 당시 글로벌 패권국가였던 예맥조선이 부여·고구려로 이어졌음을 그 누구도 부인 못할 사실이다.
 
산해경(山海經 第十一, 海內書經)에도 부여국이 예맥조선(銳麥朝鮮)의 고지(故地)라 하고 있다. 진서부여전(晉書夫餘傳)에는 “그 왕이 인문(印文)에 예맥왕(銳麥王)의 인(印)이 있고 국중(國中)에 예맥(銳麥)의 성(城)이 있는데 본래 예맥(銳麥)의 땅”이라고 기록돼 있다. 아울러 삼국지 부여전(三國志 夫餘傳)은 “선대(先代)로부터 전해 온 옥벽규찬(玉壁珪瓚)에 예맥왕(銳麥王)의 인(印)이 찍혀 있다”고 했다. 후한서 동이전(後漢書 東夷傳)에 예맥(銳麥)의 노인들이 “예맥(銳麥)은 고구려와 종(種)이 같다”고 언급했다. 고구려의 일명(一名)이 맥이(貊耳)라 하기도 했다. 또한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킨메이천황(欽明天皇) 12년 12월조(條) 예맥(銳麥)을 맥(貊)이라고 했다. 이 맥(貊)은 우리 한민족(韓民族) 예맥(銳麥)이다. 이들 모든 기록은 부여(夫餘)와 고구려(高句麗)가 예맥조선(銳麥朝鮮)을 계승한 것을 의미한다.
 
한민족(韓民族)은 유라시아를 지배했다
 
우리 한민족의 개략적인 계보를 보면 환국(桓國) 환웅(桓雄)-신시시대-숙신(肅愼氏)-예맥(銳麥)-부여-고구려-발해-고려-조선조 등으로 발전돼 왔다. 즉, 한민족은 기존의 5천년 보다 두배가 더 긴 1만년의 중단없는 역사를 갖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 중국민족의 지배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한국사가(韓國史家)는 크게 잘못됐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잘못된 국사를 교과서에서 배제하지 못한 것은 학노(學奴)들에 의한 것일 뿐이다. 우리가 중국에 선주(先住)해 한족(漢族)을 지배했던 것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역사도 한반도에서 벗어나 중원대륙으로 바로잡고 가야 한다. 고구려·발해를 넘어 웅대한 기상으로 세계를 제패한 조상들이었음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선진문화 민족으로 고조선 시대 및 삼국시대는 물론이고 고려·조선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을 지배한 것을 이어가야 한다.
 
중국과 일본이 우리역사를 왜곡하기 시작한 것은 고구려 멸망 시 설인귀(薛仁貴)가 고서(古書)를 모두 불태우고 백제는 소정방(蘇定方)이 역시 고서(古書)들을 불태우면서 부터다. 그리고 일부는 우리 고서들을 자기나라로 가져갔는데, 중국은 당나라 때부터 일본과 손을 잡고 우리역사를 자기 구미에 맞게 왜곡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 선조의 강역은 삼성기(三聖記) 기록에 있는 대로 바이칼(Baikal) 호수를 중심으로 중국대륙, 몽골, 만주, 시베리아, 한반도, 일본열도에 이르는 대 영역이었다. 동서 간 3만리에 달하고 남북이 5만리에 이르렀다. 인구는 1억8000만명인 때도 있었다.
 
한민족(韓民族)은 한민족(漢民族)에 공헌도 크다
 
우리 한민족은 BC4000년 전에 환국(桓國)으로부터 태백산(백두산) 박달나무 아래에 이르러 그 산 북방의 평원, 즉 북만주 송화강(松花江) 연안지대에 정착했다. 선조들은 원주민의 일부와 융합하면서 그곳을 근거지로 해 발전했다. 환웅(桓雄)까지 신시시대(神市時代 )를 거쳐서 단군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민족적 동방이동을 개시했는데, 중국인들은 한민족(韓民族)을 동이(東夷) 또는 숙신국(肅愼國) 혹은 예(濊), 맥(貊)족이라고 일컬었다. 중국고전에 나오는 구이(九夷)라는 것도 대체로 조선족을 의미한다. 중국 본토까지 선주한 동이(東夷)들이 중국 한족(漢族)에 공헌한 바가 매우 컸다는 것이다. 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 선생은 “조선, 만주, 몽골, 터어키 등은 여러 천 년 전에는 같은 혈족이었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터어키 사람들은 지금도 우리를 만나면 형제라고 반긴다. 다만 중국의 한족(漢族)을 동족(同族)으로 보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다.
 
BC.10 세기쯤부터 그 후 5~6백 년 동안은 조선 단군의 전성시대였다. 당시에는 많은 제후국을 두었다. 예컨대, 고죽국(孤竹國=지금의 연평부)도 조선족의 하나였다. 고대의 양자강 회하역(淮河域)에도 조선인이 많은 소왕국(제후국)을 건설했다. 그 중에는 서언(徐堰)이 세워 1000여년을 누리면서 지나(支那)의 36개국(혹은 50여국이라고도 함)의 조공을 받은 서(徐)같은 나라가 있었고 불이지국(弗離支國)같은 정복국가도 있었다. 불이지국(弗離支國)은 주서(周書)의 불이영지(弗離令支)와 사기(史記)의 이지(離支)로 지금의 직예(直隸), 산동(山東), 산서(山西) 등 여러 성을 정복하고 발해(渤海)란 이름을 주기도 한 나라이다. 옛 이름 하르빈(哈爾濱)은 조선족이 최초로 개척한 평야(불)다. 신채호(申采浩), 최동(崔棟) 선생 등에 의하면 옛3조선이 있었다. 진(眞=진한辰韓), 번(番=변한弁韓), 막(莫=마한馬韓))이다. 옛 조선이 강성했을 때 왕후(王侯)의 3경(3京) 중 상경(上京)은 북부여의 옛 지역인 아사달(阿斯達=구월산)이다. 지금의 하르빈인 중경(中京)은 현 개평현 동북 안시성(安市城)의 터이고, 남경(南京)은 평양(平壤)이었다. 이 같이 우리 한민족의 활동 무대는 중국대륙이었다.
 
역사왜곡은 몰지각한 후안무치의 범죄행위
 
전한서지리지(前漢書 地理誌)에는 산동반도(山東半島) 래육묘(來六墓, 백제 동성왕의 무덤)가 있다. 양자강 남쪽 남경교외에는 공주의 무령왕릉(武寧王陵) 보다 규모가 크고 모양이 같은 무덤이 300여개가 또한 있다. 이는 백제가 한반도 남서쪽에 국한하지 않고 대륙에 진출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대륙은 이처럼 우리의 고토(故土)다. 중국의 국가 존속연한을 보면 송나라 역사 319년이 가장 길다. 이를 제외하고 300년 미만의 중국 나라들이 어찌 거꾸로 우리나라를 지방정권이니 제후국이라 하는가. 고조선은 몇 천 년간 이어진 부강한 패권국가였고 부여는(BC2~AD494) 496년, 고구려는 705년, 신라는 929년, 백제는 681년 등의 역사를 갖고 있다. 발해는 백두산 화산폭발로 인해 228년이었다. 고려는 475년, 조선은 528년간 존립했다.
 
연길대(延吉大) 김희덕(金熙德) 박사는 중국에서 최고의 학자로 숭앙을 받는 분이다. 미 코네티컷 주립대학과 일본 동경대학원에서 수학한 중국의 대표적 학자다. 김 박사는 중국사회과학원과 일본연구소 부소장을 지냈다. 그는 지난 2009년 “김정일의 건강과 치료를 위해 중국 의료진이 북한에 파견됐다”는 내용을 한국과 일본에 기밀누설(漏泄)했다고 죄를 뒤 집어 써 14년 형을 선고받아 징역을 살고 있다. 그가 형기를 마치고 나오면 71세가 된다. 이것은 역사를 말살하기 위한 중국의 치졸한 행위로 보여진다. 또 한편 조선족의 유망한 관리 장유성(張留成)은 “북·중 정상회담을 누설했다”는 식으로 해서 사형까지 시켰다. 왜 중국은 조선족들에게 이렇게 가혹한 형을 가하는 것인가. 그들의 이런 가혹한 일을 하는 이면에는 역사 전쟁과 무관치 않다. 인권을 이렇게 까지 유린하면서까지 역사왜곡을 하려는 중국의 파렴치한 행위를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지난 모택동이 일으킨 홍위병난동 때도 우리 조선족 지도자들이 아무 죄 없이 많이 희생된 이면에는 정치적 의도가 없었을까. 정상적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일들을 중국은 해 왔고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중국이 무리수를 둬도 고대 아세아의 중심은 우리 한민족이었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중국 역시 일본보다 못지않게 우리의 역사왜곡에 거침이 없다는 것을 되새겨야 한다. 고구려·발해를 지방정권이라고 하면서 학자도 관리도 죽이면서 까지 거리낌 없이 역사왜곡을 자행하는 중국을 우리는 더 이상 좌시해서는 안 된다. 고구려와 발해가 지방정권이라는 것은 코미디(comedy)이고 난센스(nonsense)다. 우리는 이러한 후안무치(厚顔無恥)의 만행(蠻行)을 결코 잊지 말고 잘못된 우리 역사를 바로 찾고 바로 세워 가야 한다. <칼럼의 내용들은 최태영 선생과 최인 선생 등의 서책을 참고·인용했음을 밝혀둔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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