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강단파들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듣지도 자료를 찾아보지도 않고 일제(日帝)가 만들고 가르친 대로 우리나라 역사를 멸시하고 일제가 취사선택해 과학적이란 말로 던져준 자료만을 다루는 학문 풍토가, 오늘날도 득세하여 이런 결과로 몰아갔던 것에서 기인하고 있다.
당시 이승만(李承晩) 정권은 반민특위를 해체하고 친일세력을 존속시켰다. 역사엔 관심도 없고 내용도 모르는 가운데 다만 단군연호(檀君年號) 만을 쓴 결과, 우리 역사는 조선사편수회가 만든 것을 우리역사로 받아들여 오늘까지도 일제(日帝)시대 내용 그대로를 가르치고 있다.
우리 역사를 복원해야 함에도 제1공화국에서 오늘까지도 우리 역사는 식민사관자들에 의해 뒤엎어져 있다. 이들은 우리 역사를 제대로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자들이다. 이들은 우리 역사를 반도역사로 알고 지금도 달라진 것이 없는 내용 그대로를 고집하는 사학자(詐學者)들인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 역사는 대륙역사임에도 반도역사로 둔갑해서 맹위를 떨치는 꼴이 되고 있다. 과연 우리 역사가 반도역사인가? 눈이 있으면 제대로 연구하고 말을 해야 한다. 우리 역사는 대륙역사이지 반도역사 아니다. 이는 우리 사서(史書)뿐 아니라 중국사서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이를 지금까지도 바로 잡지 않고 그대로 방관만 하고 있다. 더구나 김영삼(金泳三) 정부에 와서는 당시 총리 두 사람도 우리 역사가 대륙사인 것을 모름으로 단군연구 학자들과 사사건건 맞서며 1997년에는 고시(高試)에서 국사과목(國史科目)을 빼기도 했다.
이로 인하여 역사복원은 멀어지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데 앞장서서 외치던 학자들은 벙어리가 되어 요직에 만족하는 풍토가 우리 사학계라는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 역사를 살려야만 이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는데 역사를 아는 자는 소수이고 역사를 모르는 사람들이 다수결이란 것으로 정책을 휘두르는 비극이 계속 되고 있다. 이는 하루속히 시정되어야 이 나라 역사가 산다.
오늘은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고 중국과 일본의 역사연구가 어느 정도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일본의 황통사인 식민사관 배제 왜 미루나
일본의 역사왜곡은 군국주의 자들에 의해 행해졌다. 이들 군국주의자들은 ‘현인신(顯人神) 천황(天皇)’이란 개념을 불어넣기 위해 모든 것을 경주해서 토착 신도신앙(神道信仰)을 누구랄 것 없이 고개 숙여 절하도록 강요했다. 그들은 학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고고학은 위험천만한 학문으로 돌리고 있지도 않은 서기전 660년에 일본 왕이 진무(신무, 神武)라 하는 것이다.
마세일계(萬世一系)를 이어 온다는 일왕의 혈통이 완전한 한국인 혈통으로 이어져 왔음을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이는 군국주의자뿐만이 아니라 일본인들은 이를 숨기려 한다. 그러나 이를 숨길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일본의 신도(神道)가 한국의 무속에 뿌리를 둔 것을 모르고 있고 이를 아는 일본인은 극소에 불과하다. 한국무속은 일본에 가서 미화되고 일왕 숭배사상과 결합했다.
지금 일본은 양자강 이남의 역사와 670년 일본이 타이완(臺灣)을 철저히 숨기려 하지만 숨길 수 없음을 이미 기술한대로 일본은 3~4세기는 말을 할 것도 없고 5~6세기에 한국은 당시 왜(倭)보다 월등히 앞선 선진국이었음을 숨길 수도 없다. 이를 숨기기 위해 일본정부는 고고학 발굴을 금기시 할뿐 아니라 일본왕(日本王)들 고분(古墳)은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
고분(古墳)의 발굴(發掘)과 연구가 자유롭게 허용된다면 과거 일왕(日王)의 존재(存在)를 제대로 밝혀낼 도구가 될 것이다. 1920년대 초 일본고고학자(日本考古學者)들은 경주(慶州)일대 분을 발굴하여 여러 점의 아름다운 금관·귀걸이·허리장식·띠 및 수많은 부장품을 꺼냈다.
이들은 일본 규슈(九州)의 한 고분(古墳)에서 말과 배(舟)그림으로 뒤덮인 벽화를 찾아냈다. 여기서는 금동관(金銅冠)만 나왔을 뿐 금관(金冠)은 출토되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당시 일본 정부는 고고학에 관한 발굴은 금기되고 나라평원의 일본 왕들의 고분은 엄격히 금지된 것이다.
이 금지는 오늘날 까지도 시행되고 있는데 이는 고대 우리 한족(韓族)이 일본을 정벌하고 점복하여 지배한 사실이 부장품으로 인하여 입증될까봐서 취해진 조치이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일본 유학 시 그들과 이야기 하며 일본역사를 바로 알기 위해서도 발굴을 해야 함을 말했으나 그들은 침묵한 것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일본도 정복자 부여(夫餘) 기마족(騎馬族)이 1세(世)인 오진왕(應神王)이나 2세(世) 닌도쿠 왕(仁德王) 왕릉(王陵)들을 발굴하면 여기서는 금관(金冠)이 나올 소지(素地)가 크다. 이 왕릉(王陵)은 그 규모가 세계적으로 큰 왕릉(王陵)으로 알려져 있는데 발굴은 금했다.
고고학은 실로 무서운 것이다. 역사는 종종 지배자에게 야합(野合)하는 날조된 기록을 남긴다. 반면 고고학은 단지 있는 그대로의 유물만을 남김으로 여기서 결론이 도출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까지도 일본 황통사(皇統史, 식민사관(植民史觀)의 배제를 미루어 온 것은 역사의 진실을 외면한 용납할 수 없는 직무유기로 이런 사관은 한일양국에도 유익이 없는 것이다.
일본은 우리 한족(韓族)이 가서 세운 나라이다
일본은 우리 한족(韓族)이 가서 세운 나라라는 것은 이미 밝혔는데 다시 일본이 역사에 관한 논리는 종잡을 수가 없는데서 그 답습은 무의미하다. 한일양국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데 도움 되지 않는다. 사서는 거짓이 없어야 함에서 양국이 공동으로 연구해서 정립함이 바람직하다.
일본은 우리 상고사와 고대사도 왜곡하며 환국과 배달국은 거론조차 않고 단군의 역사도 전반부 2000년을 잘라버리고 반도에는 있지도 않은 기자조선을 가져다가 우리역사가 마치 이때부터라는 것은 역사가 아니기 때문에 올바른 진실 역사를 바로 세워가야 다 같이 사는 길이다.
지금 우리나라 교과서는 일본 학자들도 비웃음거리를 제공하는 것을 모르고 있다. 이는 수치임을 알아야 한다. 조작된 역사를 아직도 우리역사라는 매국반도사관 자들을 이해 할 수 가 없다. 지금이 어느 때라고 이런 무모한 왜곡사(歪曲史)를 역사라 하는가! 이는 정상이 아니다.
8세기인 712년 「고사기(古事記)」와 720년 「일본서기(日本書紀)」를 쓴 일본의 사가(史家)들은 일찍부터 부여 기마족이 와서 통치한 130여년의 흔적을 없애고, 당시의 신흥 화족(和族) 지배자에게 혈통의 정당성을 꾸며 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 매우 기묘한 수단을 꾸며내었는데 그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들의 반쯤은 신빙성(信憑性) 없는 자료로 남았던 것이다.
사가(史家)들은 ‘규슈(구주, 九州)로부터 왜(倭)로 들어온 정복자 진무왕(神武王)의 역정(歷程)을 서기전 660년 일로 각색(脚色)했다.’ 이것은 참으로 거의 천년이나 역사를 왜곡한 것으로 신빙성이 없는 것이다. 일본의 사가(史家)들도 이를 믿지 않는다. 당시 왜(倭)는 석기시대(石器時代)를 막 벗어난 야요이시대(彌生時代)라 부를 때인데 이때 왜는 양자강 이남에 있을 때이다.
이 당시 말을 한다면 무당(巫堂)인 히미코(卑彌呼)가 30의 부족장들이 강력한 존재인 이도국(伊都國, 邪馬台國)을 세우고 통치하고 서기240년 중국사신이 왔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당시 왜(倭) 전역(全域)에 무속신앙이 팽배하여 수많은 신령들이 있었다. 이 무속적지배자는 예언을 하여 부족을 통치했다. 강신(降神)을 받은 무당들은 종종 여자였다. 히미코(卑彌呼)도 여자다.
이 히미코(卑彌呼)의 30부족 국들은 「삼국지」 동이전에 나온 것은 22국이었다. 즉, 사마국(斯馬國), 이백지노국(已百支奴國), 이사국(伊邪國), 도지국(都支國)지, 미노국(彌奴國), 이노국(伊奴國), 호고도국(好古都國), 불호국(不呼國), 저노국(姐奴國), 대소국(對蘇)國), 소노국(蘇奴國), 호읍국(呼邑國), 화노소노국(華奴蘇奴國) 귀국(鬼國), 위오국(爲吾國), 귀노국(鬼奴國), 사마국(邪馬國), 궁신국(躬臣國), 유파리국(有巴利國) 지유국(支惟國), 오노국(烏奴國), 노국(奴國)이다.
이런 부족국가로서 한(韓)의 78 제후국(諸侯國)의 하나이었다. 이런 왜(倭)가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한국인(韓國人)에 의한 왜(倭) 정벌의 본말(本末)을 통째로 뒤집어 가야(伽倻) 및 백제(百濟)와 신라(新羅)도 정벌(征伐)한 것처럼 기록하고 있다. 그렇게 해 놓음으로서 일본인들이 자기네 역사에 대해 만족하게 여기도록 한 것이다. 이것은 날조(捏造)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당시 왜(倭)는 중앙집권(中央集權)개념의 국가는 미쳐 형성되지도 않은 상태였다. 래저드 교수에 따르면 부여 기마족(騎馬族)이 일본을 통치한 시기는 서기369년부터 506년까지이며 이는 오진왕(應神王363~394) 때부터 12대 케이타이(繼體王 507~527)이전에 이르는 것이다.
이에 대해선 이미 기술한대로 오진왕(應神王 363~394) 때부터 12대케이타이(繼體王 507~527)까지 부여-가야계(伽倻系)이고 그 이후는 백제계(百濟系)가 왕을 계승하였다. 이와 같이 일본은 우리 한족(韓族)이 왜(倭)로 가서 야마토(大和)와 타이완(臺灣)의 일본(日本)을 세운 것이다.
반도사관 사라지지 않은 원인어디에 있나
반도사관이 사라지지 않은 그 원인은 첫째 사대주의사상이다. 이사상은 조선조 500년 이후 권력의 주변에서 살아온 사상이다. 조선시대는 임금의 주변에서, 한일합방 후는 총독권력주변에서, 광복 후도 정권의 권력주변에서 살아온 타성(惰性)이 씻겨 지지 않은 것이 문제다.
자신의 안일과 이익을 위해서는 국가와 민족도, 역사도, 안중에 없는 양심의 자유와 독립이 없는 족속들에 의해서 사회의‘종적(從的)인 삶은 있어도 횡적(橫的)인 삶이 없는’사회가 되어 있어 우리사회는 병들어 있다. 또한 우리나라지도자의 삶도‘사회공동체의식(社會共同體意識)이 실종된 인사들에 의해서 행해지는 사회정신상황(社會精神狀況)이 문제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책무를 제대로 하지 않고 솔선수범을 다해야 할 지위에 있는 자가 본을 보이지 않고 지도자들이 거짓과 부정부패, 한 예로 국민의 의무인 병역을 기피하고 지도자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즈(Nobless Oblige)를 보여주지 못한 것 등은 암울한 사회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아직도 사대주의(事大主義) 역사관(歷史觀)으로 역사의 교훈(敎訓)을 찾지 못하는 인간들 때문에 역사의식(歷史意識)과 국가의식내지 민족의식의 실종은 우리나라 발전에 심대한 저해를 낳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 자기나라역사도 일제가 만든 역사를 가르친 결과이다.
전후 국제사회는 개방사회로 열려졌는데 우리는 역사와 법도 제도도 거의 일제의 법 그대로 금과옥조로 학계도 19세기적인 데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고 사고도 19세기방식 그대로이다.
지금 우리는 21세기의 개방사회로 옮겨져야 하는데 개방사회의 의식이 없다. 이게 없으니 역사하나를 제대로 바로세우지 못하고 있고, 민족의식도 참된 민주주의정치도 거리가 있다.
정치는 개혁과 바른 민주정치를 한다하면서도 참된 민주주의는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의 상황이다. 이로 인해 우리의 사회는 불심감이 팽배되어 있다. 어느 만큼이나 불신케 되었느냐 법을 불신케 되었다. 이는 무서운 이야기이다. 그 이유가 어디 있는가?
이는 지도자의 솔선수범이 없음이다. 지금 우리사회는 법도 실종되어 6법 이외에 무법(無法), 파법(破法), ‘떼 법’이라는 9법이 있다고들 한다. 개선이 아니 되고 있다. 이것은 일제가 심어놓은 패배의식으로 되는대로 사니 가치표준이 없는 사회가 되고 있음이 아닌가!
미시나 쇼에이(三品彰英)가 쓴 「조선사개설(朝鮮史槪說)」의 괴변에서 보는 이를 따르는 반도사관의 사람들이 과연 대한민국의 국민인가?! 일본의 사대주의자인가! 국가와 민족의 공동체의식과 연대의식도 찾아보기 힘든 오늘 이들의 자화상이 분노를 금할 수 없게 한다.
현재 우리의 정신상황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나라를 이끌고 간다는 사람들의 국가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애국자가 있는 반면 조선시대권력주변을 감도며 불의와 부와뇌동(浮訛雷同)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곳곳에서 정상이 아닌 상황은 이를 말해 주고 있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崔仁, ‘韓國學講義’, ‘再考證 韓國思想의 新發見’.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카터 코벨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吳在成,‘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조선상고사에 한반도 상고사가 없다.’ ‘高句麗史’, ‘九犂系史‘’ 犂: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校勘 十八史’ ‘우리역사(東夷傳)’. ‘高句麗史’, 九犂系, 新羅史’, ‘‘斯盧新羅史’, ‘百濟史’ ‘加羅史’. 九犂系, 倭-日本史’. 吳在成 編著, ‘지도로 보는 우리나라역사(東夷疆域圖)’. 윤진영, 編集 ‘三國史. 苻都誌’. 반재원,‘鴻史桓殷’. 대야발 원저, ‘단기고사’. ‘단군과 교웅-단군의 호적등본’. 國會 文公分科委員會, 國史敎科書內容要求에 關한 請願-[國史公聽會 陳述人 發言內容].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김동락, ‘천부경과 문디’ 거시기’. 황순종, ‘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이종호, ‘한국인의 뿌리’. 박영규, ‘고려왕조실록’. 李丙燾, ‘譯註 三國遺事’. 이강민,‘대한국고대사’.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智勝, ‘우리上古史’-발로 확인한 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바이칼민족과 홍익인간세상’.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石井進外3人, ‘詳說日本史,. 文定昌, ’韓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秋山謙藏, ‘日本の歷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津田秀夫, ‘ひとりで學べる日本史’. 槐一男, 永原慶二 監修, ‘絶對 中學社會歷史’.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上. 中, 下. 李民樹,'朝鮮傳‘.外 其他多數書冊을 參照, 本文引用 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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