㉖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본다-우리가 세계 첫 문명국

입력 2013-02-23 17:3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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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한민족(韓民族)이 세계적으로 우수한 민족인 것은 고대 역사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오늘은 우리 민족이 어떤 민족이고 어떻게 고대 국가를 형성해 왔으며, 이민족에게는 어떻게 평가 받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 민족은 지금까지 크고 작은 외침을 932회 받으면서도 능히 이에 저항하고 자존을 지켜 온 세계사적으로 자랑할 수 있는 강경한 선진 민족이었다. 이와 더불어 우리 민족은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갖고 있다. 고려 때는 몽골의 침입을 받아 40년 간 이에 저항하며 나라를 유지하고 그 전란 중에서도 8만대장경을 완성시키는 등 세계사에서 보기 드문 문화민족의 역사를 썼다. 그 정신에 대해 중국과 일본, 외국의 사학자도 경탄(驚嘆)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 같이 한민족(韓民族)은 타 민족을 경탄케 한 역사를 창조한 민족이었으나 오늘에는 오히려 스스로를 비탄(悲嘆)하는 민족으로 전락했다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가치관이 전혀 다르게 추락해 버렸다. 이로 인해 같은 동족끼리 총을 겨누는 상황까지 오고 말았다.
 
우리 민족은 국가의 위난(危難)이 닥치면 더 단결하고 영웅적 투쟁을 하면서 민족을 더 사랑하는 가운데 민족중흥의 역사를 창조했다. 선조들은 타 민족이 우러러 보고 존경하는 정신문화를 가졌다. 선조들의 정신을 우리는 이어나가야 한다. 지난날 선조들이 타민족을 경탄케 한 원리가 무엇이며 오늘 우리를 비탄하게 하고 있는 것이 또한 무엇인가. 그 원인이 무엇인가. 우리 자신을 역사 속에서 다시 되돌아 볼 때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다. 지금 우리의 최고 가치는 물질만능주의인 냥 변질됐다. 지난날 정신문화의 샘터인 ‘홍익인간’의 이념이 희석된 감이 없지 않다. 이는 물론 우리만이 아니기는 하다. 물질만능에 빠진 인류를 다시 정신문화의 샘터를 통해 구해내야 한다. 동방의 주인이었던 우리가 다시 위용을 발휘해야 함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학노(學奴)들은 사대주의와 일본제국주의, 식민주의, 황통주의에 빠져 있어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들은 왜곡·조작된 것을 답습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그로 인해 잘못된 가치철학을 갖고 있다. 찬란한 역사를 창조한 우리 선조들의 고귀한 문화를 반드시 재현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한민족(韓民族)을 중국은 어떻게 평가했나
 
우리민족은 일찍이 원시시대에 우랄·알타이에서 경제적·사회적 생활터전을 찾아 동방의 해 돋는 곳으로 이동했다. 이를 본 고대 중국인은 양곡(暘谷)이라고 칭했다. 양곡(暘谷)은 ‘해 돋는 동방’이란 뜻이다. 동방에 온 우리 한민족은 태백산(太白山)에서 짐승과 새를 상대로 한 유목생활을 했다. 그리고 한민족(韓民族)은 곰의 신화와 알(卵)의 신화를 갖게 됐다. 해 돋는 동방에서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보고 즐겼다. 해(日)의 신화를 갖고 나라이름도 조선(朝鮮)이라고 칭하고 고려(高麗)라고 했다. 조선은 조일(朝日, 아침과 저녁)이 선명하다는 뜻이요, 고려는 천일(天日)같이 높다는 뜻이다. 이 당시 고조선의 중심부는 발해의 북쪽에 있었고 그 강역은 중국의 북경 근처에 있는 난하(灤河)로부터 한반도의 대부분을 아우르는 광대한 땅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러한 기록은 고구려와 발해계통의 옛 문헌들에 남아 있어 알 수 있다.
 
한민족은 다른 민족이 인간을 발견치 못한 신학시대(神學時代)에 인간을 발견했다. 이를 본 고대 중국인은 이(夷)라고 칭했다. 이(夷)는 인(仁)이라고 해서 인간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한민족(韓民族)은 지구상에 없는 고시(楛矢, 싸리나무로 만든 화살)와 석족(石鏃, 청동기시대 화살촉)을 발견하고 최초에 대궁(大弓)을 발견했었다. 이를 본 고대 중국인은 다시 이(夷)라고 칭했다. 이자(夷字)는 대궁이자(大弓二字)로 구성돼 대궁(大弓)을 발견한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최초에 철을 발견한 한민족이다. 이를 본 고대 중국인은 철자(鐵字)를 쇠금(金)변에 이(夷)자(즉, =金+夷) 자로 사용했다. 이것은 동이인(東夷人), 한민족(韓民族)이 철을 발견한 것을 표시한 것이다. 이상의 모든 사실들을 봤을 때 한민족(韓民族)은 인류사상 최초의 문화를 꽃피운 민족이었다. 역사 이래 최초의 강대국으로 등장한 한민족(韓民族)은 인류의 대표라고 자처해 천신(天神)의 피를 받은 천민(天民, 하늘의 자손)이라는 자존감을 잃지 않았다. 이 천민은 우리와 유대민족 뿐이다. 일본은 우리 유민들이 세운나라이기에 우리를 본받은 것이다.
 
또한 지구상에 없는 고시(楛矢), 석족(石鏃), 동주(東珠, 동쪽의 진주)가 선조들의 땅에서 생산된 것은 이 땅이 세계의 중심지라고 자처했기 때문이다. 삼국유사 가락국기(三國遺事 卷二 駕洛國記)에 수로왕(首露王)이 “황천(皇天)의 명(命)을 받아 왕이 됐다”하면서 중국(中國)이라고 칭했다. 이 황천(皇天)의 명(命)과 결부된 중국(中國)은 세계중심지를 의미한다. 한족(漢族)이 중국이라 하는 것은 여기서 기인한 것으로 본다. 이 가락국(駕洛國)도 우리 교과서와는 다르게 한반도의 김해(金海)가 아닌 중국대륙에 있었다가 한반도로 밀려났었던 국가였다. 본토가 오늘의 중국대륙이었다. 그리고 고대 중국인들은 고대 우리나라를 군자국(君子國)이라고 예찬(禮讚)하면서 큰 나라, 대국(大國), 구국(舊國)이라고 경외(敬畏)했다. 이 같이 중국이 우리를 높이 숭앙(崇仰)한 역사였음에도 우리는 스스로를 폄하하고 있다.
 
한민족(韓民族)은 천민(天民)으로 자처했었다
 
군자국(君子國)을 자랑하던 한민족 역사가 엉망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서 집고 가야 할 것을 하나 느낀다. 천민(天民)을 자처하던 조상들이 살던 우리 강토가 조선조에 와서 중국을 섬기는 자원(自願) 제후국으로 변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조선조 말기에는 일본에 강제 병합되는 우리 역사상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또한 남겼다. 인간을 사랑하는 군자국(君子國)으로 사해(四海)에 무위(武威)를 떨치던 대국(大國)이 소국(小國)이자 망국(亡國)으로 떨어진 셈이다. 왜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인가. 그것은 식민지사관(植民地史觀)에 젖어 있는 학노(學奴)들 탓이다. 외래사상에 구걸하는 병폐가 이런 결과를 낳았다. 지금도 식민지사관에 빠져 외래사상에 구걸하는 병폐를 일으키며 우리 역사를 좀먹고 있는 학노(學奴)들이 활개치고 있다. 이들이 우리 역사를 송두리째 바꾸어 버리고 있다. 조선의 역사도 사실 자존의 역사였으며, 일제 치하에서도 우리는 끊임없는 독립투쟁을 전개해 임시정부를 이어갔음은 물론 땅은 잃었어도 정신은 독립국을 유지했었다.
 
중국정사(中國正史)와 중국경전(中國經傳)에 한민족(韓民族)의 특징은 어질고(仁) 인간을 사랑하는 민족이라고 언급돼 있다. 한민족(韓民族)이 최초로 인간을 사랑하는 인(仁)을 발견했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중국문화의 개척자 순(舜)과 중국문화의 대종사(大宗師) 공자(孔子)도 (고대의) 조선국을 ‘군자국’으로 찬양하고 있다. 또한 고대 예맥(銳麥)이 장기간 중국을 정벌한 것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중국병가(中國兵家)의 대종사(大宗師), 강태공(姜太公)이 한민족(韓民族)을 대국(大國), 구국(舊國)이라고도 적었다. 그리고 조선에서 궁시(弓矢)만을 수입(輸入)할 것이 아니라 문화까지 수입해야 한다는 말까지 하고 있다. 자기민족만을 사람으로 여기고 타민족을 짐승이라며 하시(下視)하는 대중화주의(大中華主義)를 선전하는 중국의 정사(正史) 경전(經傳)에 이상과 같이 명기(明記)·찬양하며 결론까지 내린 사실을 위조라 말 할 수 있는가. 한민족(韓民族)이 최초에 문화민족으로 발전하고 최초에 강대족(强大族)으로 등장한 것이 확실하다.
 
천민(天民), 천민지(天民地)가 식민화는 왜인가
 
안타깝게도 식민사관(植民史觀)에 빠져 있고 외래사대사상(外來事大思想)에 구걸하는 거지같은 학노(學奴)의 현실은 다르다. 조선 500년 사대사가(事大史家)의 독주(毒酒)에서 깨지 못하고 일제(日帝)의 왜곡된 일본사가(史家)의 마약을 먹은 결과다. 자아를 발견하지 못하면서 민족적 주체를 확립하지 못한다. 주체 없는 공허(空虛)에 손님이 주인으로 춤추고 있는 격이다. 우리나라 사학계는 참으로 한심한 작태를 여전히 보여주고 있다. 위대하고 찬란한 우리 역사를 다시 본래의 궤도에 올려놓아야 민족적 자존심과 민족적 주체를 확립하고 손님이 주인으로 춤추는 현재의 잘못된 역사를 환원할 수 있다. 오늘 한국의 역사학계는 소수의 학자를 제외하고는 민족적 주체를 확립하지 못한 학자가 아닌 자가 학자로 행세하고 있다. 민족적 주체가 없는 역사는 반식민지의 사관을 고취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고대 유대민족이 위대한 자기 역사를 발견치 못했을 때에는 민족의식이 말살돼 파쟁, 분열, 지리괴멸(支離潰裂)에 빠져 야만민족으로 지냈다. 그런데 바빌로니아 포로생활을 할 때에 위대한 유대 역사를 발견한 후 달라졌다. 민족의식을 회복한 유대는 문화민족으로 거듭났다. 이 같이 오늘 우리 한민족도 비탄한 역사 현실에서 깨어나 경탄의 역사를 다시 찾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나가야 한다. 찬란하고 유구한 한국역사를 다시 발견해야 할 이유는 이처럼 분명하다. 나폴레옹이 독일을 침범했을 때 독일의 선각자는 부득이 국토는 유린당하지만 독일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철학은 잊지 않았다. 독일이 두 번의 세계대전을 일으킬 정도로 강인한 국가가 된 배경이다. 우리도 위대한 1만년의 역사를 창조한 한국역사의 위대한 사상을 발견하고 자각하면 분명히 달라진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 및 사상은 우리 한민족에게 영혼의 생명력이다. 이 생명을 발견·부흥시키는 중흥운동을 온 국민이 전개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며 당면한 과제다.
 
민족사관에 입각한 역사주체 확립해야 한다
 
최태영(崔泰永) 선생, 정인보 선생, 신채호 선생, 최인(崔仁) 선생, 서희건(徐熙乾) 선생 등을 대학 일선에서 주야로 연구하고 고증을 해야 한다. 이런 노력에 심혈을 기울이는 적잖은 학자가 있어야만 ‘잃어버린 역사’의 부활이 가능해진다. 이는 국가적 차원에서 정책적으로도 고려해 역사를 반드시 바로 잡고 가야 한다. 지금까지 중국과 일본의 잘못된 역사왜곡 너울을 벗어 던져야 민족정기를 바로 세울 수 있다. 중국·일본이 조작하고 왜곡·변조해 망신창이가 된 우리역사를 바라보면서 비탄(悲嘆)하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침탈당한 역사를 복원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다. 역사의 진실을 다시 찾아 강당학파에 메스를 가해야 한다. 우리는 민족사관(民族史觀)에 입각, 역사의 주체를 확립하고 밝은 세계로 새롭게 나아가야 한다. 이렇게 될 때 손님이 주인으로 춤추는 현실을 벗어나 자원반식민지(自願半植民地)로 전락된 현실을 올바르게 되돌려 재구축 할 수 있다. 이는 시급한 과제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선조는 물론 우리 자신과 후손들을 위한 지상명령과 같은 것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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