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왜사(倭史) 숨기고 갈 수가 없다

입력 2019-07-27 09:2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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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교수
일본(日本)은 왜()의 역사부터 제대로 하고 가야 한다. ‘()(日本)’은 없는 역사를 꾸미다 보니 그 연대가 천년이나 너무 부풀려 있는 것은 물론 사실과 다르고 없는 사실들을 8세기 편찬된 고사(古事) ()일본서기도 처음부터 날조하고 조작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살펴 본대로 일본은 일본의 역사를 편찬하면서 일본의 국호가 언제부터 어떤 경로를 거쳐서 왜가 대륙 양자강 이남에 있었고 670년 타이완(臺灣)에서 일본이 된 기록을 남기지 않고 있다. 과연 일본의 전신인 왜()가 어디에 있었으며 일본열도와의 구분을 어떻게 하느냐에 고민이 있다. ‘거짓말도 100번을 하면 진짜가 된다는 말은 오늘날에는 통하지 않는 시대이다.
 
일본이 역사를 읽다보면 연대나 그 사실 내용이 너무 사실과 다르게 기록 되고 있음에서 혼란을 가져 온다. 예컨대 왜()가 신라 침공을 하였다고 하고 있다. 2324월 왜인(倭人)이 갑자기 쳐들어와 금성을 포위했다고 하고 2926월 왜병(倭兵)이 사도성을 쳐 함락시켰다고 했고, 294년 여름 장봉성 공격했으나 이기지 못하고 갔다고 있지도 않은 거짓을 말하고 있다.
 
4444월에 왜병(倭兵)이 금성을 포위 퇴각하고 독산(獨山)까지 추격하였다고 하는데 이곳은 서라벌(徐羅伐)의 신라가 아니며 대륙이다. 설령 서라벌의 금성(錦城)을 포위할 수 있다는 것은 성()이 있어야하는데 경주(慶州)에 반월성(半月城)은 있어도 성()이 있었는가!
 
또 당시 왜인들이 성을 공격하고 침입할 능력도 힘도 없는 데 그런 상황도 아니었다. 또한 사도성이다, 장봉성이다, 금성을 거론하고 있는 것 자체가 역사를 모르는 소치이다. 이곳은 왜인(倭人)들이 침입을 한 적이 없고 있다고 한다면 이곳은 대륙의 사로신라로 일본열도가 아니다.
 
경주에는 성()이 없으나 사로신라(斯盧新羅)지역에는 성()이 많다. 여기서 한심한 것은 일본서기(日本書紀)의 기록들은 일본열도와 관련을 지우고 역사를 펴 가려고 하고 있으나 이것은 일본열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사실이 맞지 않는데도 연관을 지우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신라의 역사를 한반도에 몰아넣기 위해 백제역사(百濟歷史)를 지우고 김유신(金庾信)을 반도로 가져 오려고 가진 수단방법을 동원하고 있음을 바로보고 경계하여야 한다. 그들의 말하는 사서는 일부가 아닌 거의 전부가 왜곡(歪曲)된 역사로 메워져 있기 때문이다.
 
김유신의 활동지명이 대륙 대산(大山)이고, 백제한성(漢城)이 황하강 유역에 있고 웅진은 서화 동쪽에, 황하는 한수(漢水), 진수(晉水), 면수(沔水)등으로 불렀다. 서화·항성·덕안(德安) 동쪽에 서신라가 있었다. 왜는 서기전 50~서기 670년까지 양자강 이남에 있었고 한()의 일부였다.
 
오늘은 720년에 일본이 편찬한 일본서기(日本書紀)의 내용들이 사실과 다른 것은 물론 연대(年代)도 지역도 지명도 이동시키며 지도(地圖)를 바꿔 놓는 작태와 역사사실을 조작, 날조(捏造)하여 사서가 진실과 동 떨어진 내용이 나와 있음을 일부나마 그 사실을 밝히고자 한다.
 
일본서기(日本書紀)의 허구날조 바로 잡아야
 
일본의 국호를 받은 곳은 일본열도가 아니고 타이완(臺灣)인 것은 이미 밝혔다. 그런데 일본은 국호(國號)가 언제 어디서 어떤 경로를 거쳐서 되었는지를 일본서기(日本書紀)어디에서도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고대 역사의 지명과 지도며 모두 제멋대로 기록하고 있음을 본다.
 
일본 역사는 일본의 국호가 우리 유민이 가서 세운 야마토국(大和國;396~669) 후 망명정권(亡命政權;670)이후부터 일본국이라는 국명(國名)을 쓰기 시작한 것은 신당서(新唐書) () 220에 나와서 세계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일본은 이를 숨기고 있어서 일본사는 허구 투성이다.
 
왜냐하면 일본서기(日本書紀)의 기록은 사실과 너무 다르기에서다. ()와 일본국호가 대륙과 타이완에 있었던 때부터 부르고 있음이 25사 동이전이나 삼국사사기에 나와 있다. 이 사실을 숨기고 허구 사실로 국민과 세계에 거짓을 진실인양 역사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일본은 일본열도에 없는 지명(地名)도 모두 아전인수격(我田引水格)으로 가져다놓고 있다. 예컨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등장하는 대마도(對馬島)는 사로신라와 왜() 사이에 있던 지명이다. 그런데 이 대마도(對馬島)라는 명칭은 408년에도 같은 위치인가 의문이 있기 때문이다.
 
현 대마도(對馬島)의 위치가 고대신라와 왜() 사이에 있었던 대마도(對馬島)인가? 하는 점이다. 당시 왜()는 양자강 이남의 대륙(大陸)에 있었지, 일본열도(日本列島)에는 없었다. 500년 전 일식집중관측지(日蝕集中觀測地)도 사로신라(斯盧新羅)가 있는 대륙으로 밝혀지고 있다.
 
또한 현재 부산(釜山)동남에 있는 대마도(對馬島)408년에는 같은 위치인가 하는 의문(疑問)을 해소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또한 이때 사로신라(斯盧新羅;西新羅)는 고구려 칸()들에 의해서 통치(統治)되고 있었기 때문에 신라가 아니라 고구려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로신라(斯盧新羅;西新羅)는 제()나라와 노()나라, 오월(吳越)사이에 있었다. 대마도 역시 현재와 같은 위치에 있었다고 확정해서 말 할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대륙 동해안에 큰 섬으로 타이완(臺灣)이 있고, 주산군도(舟山群島)가 있으며 서남으로 크고 작은 섬들이 있다.
 
1666년 그려진 지도에는 영파(寧波), 태주(台州), 온주(溫州) 동쪽에 대마도(對馬島)가 있고 일본(日本)이 있다. 그런데 현재 그 지역에는 주산군도(舟山群島)가 있고, 온주(溫州) 남쪽이고 북주 동쪽에 타이완(臺灣)이 있다. 그렇다면 주산군도 쪽에 대마도가 있고 대만이 일본이라는 결론이 될 수밖에 없다. 옛 일본과 대마도가 절강성(浙江省) 앞바다에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송나라 때 송본 지리지장도에 그려진 백제, 신라의 서남쪽에 일본 왜노(倭奴) 등이 그려 져 있고, 1666년에 일본과 대마도를 대륙 동해안 타이완 위치에 그린 것은 우연인가! 우연이 아니다. 바로 동이전 왜()와 일본(日本)의 위치를 바르게 나타낼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마도는 절강성 온주 앞바다에 있는데 이를 쓰시마를 대마도로 기록한 것은 이상하고 이해하기 어렵다. 대마도(對馬島)라는 한자(漢字) ()‘시마’;‘しま라고 하는데 대마(對馬)가 단음(單音)라고 발음이 될 수가 없다고 본다. 이것은 쓰시마;두섬이라는 것으로 다른 이름을 가진 섬이었는데 조작하는 역사에 맞추려고 대마도(對馬島)로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이름이었을까? 바로 라는 발음이 나오는 한자를 찾아보면 가장 근접(近接)한 것은 일본열도(日本列島)에서 제일 서쪽에 있다고 보면 서도(西島)’라고 표현일 수 있다는 것이다. (以上吳在成,‘九黎系 倭-日本史’ 65~69面 外 多數書冊 參照, 本文引用하였음 밝힘).
 
대마도(對馬島)는 중국의 주산도(舟山島)가 대마도(對馬島)로 중국[독사방여기요](卷 九十二)에 보면 거제도(巨濟島)1,4배 섬으로 진시황(秦始皇)이 서복(徐福)에게 불로초(不老草)를 구하러간다 하며 간곳으로 이 주산도(舟山島)가 당시의 대마도(對馬島)임을 숨길 수 없다.
 
▲ 서기전 239~서기 936의 삼국사기, 삼국유사, 동이전에 나오는 국가지도
 
()와 일본의 대륙에서의 외교관계 
 
()와 일본(日本)의 대륙에서의 외교관계를 살펴보면 왜국(倭國)일 때 사로신라와는 서기 14년부터~500년 까지 43회 접촉(전투 등)이 있었다고 하였고, 663년 왜국(倭國)의 수군이 맥제(百濟)를 돕기 위해 왜선(倭船) 1000척이 백강(白江)에 머물러있었다. 신라본기에 나와 있다.
 
501년부터 670년 까지 사로신라(斯盧新羅)와 서라벌(徐羅伐)의 신라(新羅) 두 신라시대(新羅時代)는 총13회의 일본(日本)과 왕래(往來)가 있었으나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고 하고 있다
 
백제본기에는 백제는 왜와 397년부터 670년까지 10번 교류가 있었다고 나와 있다. 663년 백강어귀에서 왜국군사를 만나 네 번 싸워서 모두 이기고 그들 배 400척을 불 살았다고 백제본기(百濟本紀)에 쓰여 있다. 또 국호(國號)를 변경했는데 왜()로 했다고 기록 한 것도 있다.
 
802년 겨울 12월 균정(均貞)에게 대아찬의 위()를 주고, 거짓왕자(王子)로 꾸며 왜국(倭國)에 볼모로 보내려 하였으나 균정(均貞)이 이를 사양(辭讓)하였다는 기록들을 볼 수 있다
 
또한 당()나라는 일본(日本)670년에서 907년까지 4회 교류가 기록되어 있고, ()나라는 988년부터 8번의 기록이 있으며 요()나라 때는 3회 정도 교류이고, ()나라는 없고, ()나라 때인1266년부터 1275년까지7번의 기록이 있다고 대륙에서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고리(高麗)999년부터 1089년까지 17회 교류에 2회가 귀화이고, 나머지가 교류이며, 다시 1226년부터 1281년까지 16회의 교류기록에 왜인(倭人)기록이 6회이고, 나머지는 일본(日本)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 중 1274년과 1281년의 일본정벌과 관계된 기록이 있다.
   
여기서 왜()와 왜인(倭人)기록들은 양자강 이남에 있을 때이고, 670년 이후는 타이완(臺灣)의 일본(日本)인데 이곳이 대륙이지, 일본열도(日本列島)가 아니다. 그런데도 왜()와 왜인(倭人)도 일본열도(日本列島)로 보는 자가 있다면 이는 제대로 연구한 사가(史家)라 할 수 없다.
 
삼국지(三國志)후한서(後漢書)에는 왜인(倭人)이 왜()로 나온다. 그런데 우리유민이 가서 왜()나라를 세우고 깨우친 왜()를 후한서(後漢書)에 삼국(三國;고구려 백제 신라), 가라(加羅), 임나(任那), 모한(慕韓), 진한(辰韓)을 다스렸다고 왜곡하여 왜전(倭傳)에다 집어넣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670~1200년에서 타이완(臺灣)은 고일본(古日本)이고, 일본열도(日本列島)는 타이완(臺灣)의 일본(日本)을 이어간 일본임을 숨길 수 없다 이를 제대로 구분하고 봐야 한다.
 
앞으로 우리는 우리 국민과 일본 국민과의 이해(理解)와 신뢰(信賴)를 높이기위해서는 양국의 국민들이 자신들의 국가가 고대부터 걸어온 역사도 제대로 알아야 상대의 국가를 이해하게 되는데 자기들의 나라역사도 제대로 모르고서는 상대국을 이해 할 수도 없음을 바로 알아야 한다.
 
오늘날 한일관계의 선린우호국가(善隣友好國家)가 되기 위해서도 바른 역사의 인식(認識)의 토대 위에서 가능하다. 그리고 그 당시 역사(歷史)와 문화(文化)의 뿌리를 제대로 모르고서는 진정한 선린교류(善隣交流)는 영원히 이뤄질 수 없고 정상의 국가라 할 수도 없다고 사료 된다.
 
오늘날 중국과 일본은 역사조작과 변조, 왜곡하며 대륙의 우리역사를 반도로 옮기려고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지명을 옮기고 지역과 지도(地圖)까지 조작하고 감추고 없애나 역사의 진실은 숨길수도 감출 수도 없다. 우리역사는 중원대륙을 지배한 역사로 영원히 남아 빛날 것이다.
 
글을 맺으며
 
우리나라의 역사는 반도의 역사가 아니라 대륙을 지배한역사이다. 이를 반도로 옮겨 맞추려는 것은 역사를 모르는 소치이다. 삼국시대의 삼국사(三國史)는 아시아사임을 알아야 한다. 삼국사(三國史)라 하나 이시대의 역사는 고구려, 백제(百濟), 가라(加羅;伽倻)와 왜()의 역사이다.  
 
그런데 중국과 일본은 역사열등의식 때문에 우리역사를 제멋대로 조작하고 날조해서 퍼뜨리고 있다. 거칠부(居柒夫)의 역사도 22() 계속되었는데도 이 역사도 없애고 낙랑국역사도 없앴다. 만주(滿洲)와 반도의 낙랑국(樂浪國)을 없앤 자는 다름 아닌 김일연(金一然)부터이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김일연(金一然)과 신채호(申采浩)선생이 엄연히 대륙에 건재했던 우리 역사를 압록강 두만강 이남만 조선역사로 한 실수는 통탄할일이고 일제강점기 최남선(崔南善)선생은 동양사(東洋史)에서 진()을 빼었다가 넣었던 것도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직도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들 중에는 살수가 청천강이요 패수(浿))가 대동강이며 백제의 도읍지가 하남 위례성이라 가르치는 선생이 있다고 하는데 너무 한심하다. 이 당시 백제는 반도에 없고 대륙에 있었다. 660년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에 망한 후 이 곳에 그 유민이 다시 세워졌으나 그 웅장한 백제궁궐은 반도에서는 찾을 수 없고 그 궁궐은 북경에서 찾아야 한다.
 
리역사는 세계석학들이 말하고 있듯이 대륙사로 세계 유례없는 찬란한 역사를 잊지 말고 뒤엎어진 역사를 이제는 바로 세워가야 한다. 존 카터 코벨(Jon Cater Covell;1910~1996)박사도 미국의 학자로서 일본의 시조(始祖)는 서기전 660년이 아니라 부여기마족(夫餘騎馬族)과 왜()라는 책에서도 369년임을 밝히고 있다. 세계학자들도 일본의 허구역사 바로 알고 있다.
 
()는 서기전53~에서 500년간 대륙에 있었다. 우리는 왜()를 일본역사로만 봤으나 우리역사이다. 고대72개 제후국(諸侯國)중의 하나이었다. 히미코(卑彌呼)를 일본에 뺏겼다. 사기(史記)에도 5번 나온다. 분명한 것은 1066년 타이완(臺灣)이 일본열도(日本列島)인 것이다. (以上吳在成,‘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53~63面 參照 本文, 引用하였음을 밝힙니다.)
 
서기649년 이전의 장안(長安)중심의 한족(漢族)의 정사(正史)에서 왜()가 양자강 이남에 있었음이 분명함에도 중국과 일본은 이를 숨기고 백제역사와 김유신(金庾信)도 반도로 가져 왔다.
 
타이완(臺灣)은 원래 이만(夷蠻;夷灣)이었다가 670년 일본국호를 썼는데 글자를 다르게 하고, 지도(地圖)는 다른 지역으로 바꾼다. , 동치지동(東治之東)을 동야(東也)로 하고, 대만(臺灣)의 만자(灣字)자를 빼고 이만(夷灣)을 태현(台縣) - 구이(九夷) 등으로 3번 바꾸어 놓았다.
 
또한 서복(徐福)이 진시황(秦始皇)의 불로초를 구하러 간 곳도 지금의 일본열도(日本列島)가 아니다. 그 곳은 상해(上海)앞바다의 주산도(舟山島)이다. 이 서복(徐福)도 일본은 일본열도에 사당(祠堂)을 만들고 마치 서복이 일본열도(日本列島)로 온 것 같이 조작하고 있어 가관이다.
 
중국의 정사(正史)에서도 왜()의 위치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3세기 진()때의 삼국지(三國志)4세기 송()때의 후한서(後漢書)에서는 회계(會稽), 단주(澶洲), 이주(夷洲), 주애(朱崖), 담이(儋耳)가 있는 곳이 왜()의 위치라 했다. 담이(儋耳)는 남월지(南越地)라고도하였다
 
이곳은 일본열도인가? 아니다. ()는 가라(加羅)와 함께 양자강유역의 나라였지 일본열도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이는 신라, 백제, (), 가라(加羅)도 하남성(河南省) 서화(西華)동쪽의 기록으로 숨길 수없는 대륙이다. 이 대륙사를 반도사로 옮길 수 없는 것이다.(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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