㉘중국의 날조된 역사를 본다-한민족은 천자(天子)의 국가

입력 2013-03-09 20:49:38

원문 링크

 ▲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중·일 역사왜곡은 한민족 위대함 말살목적
 
중국과 일본이 터무니없이 우리 민족을 폄하하고 역사를 왜곡·변조·조작한 배경은 무엇일까. 중국은 우리 역사의 중심이었던 고구려와 발해 역사까지도 자신들의 ‘제후국 역사’라고 왜곡해 주장하고 있다. 일본은 ‘고대에 한민족을 지배했다’는 터무니없는 거짓역사를 끊임없이 내세우고 있다. 그들이 이런 거짓 역사를 만들고 있는 것은 당연히 진실을 숨기기 위해서다. 진실은 바로 한민족(韓民族)의 위대함이었다. 한민족이 그들을 발아래 뒀다는 진실을 그들은 숨기고 싶어 한다.
 
따라서 중국과 일본은 전 세계에서 역사를 가장 많이 왜곡하고 변조하는 나라가 됐다. 물론 다른 일부 국가들도 역사를 자민족 중심으로 위조하는 통례가 있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 같이 송두리째 역사를 바꿔 놓는 강도짓은 하지 않는다. 러시아 역시 우리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나 러시아 학자들은 우리 고대 역사를 높이 평가하며 우리 한민족(韓民族)이 고대에 위대하고 강력한 국가였고 강력한 대국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역사는 사실 그대로 바르게 다루어져야 역사다. 승리와 패배, 영광과 수치에 대해 사실대로 다루어야만 발전시킬 장점과 반성할 단점을 배우게 된다. 중국과 일본은 그런 점에서 자신들의 미래를 스스로 망치고 있는 자해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932회에 걸친 끊임없는 외적의 침입으로 인해 우리의 찬란한 한민족(韓民族) 역사는 불타버리고 중국과 일본사가(史家)들에 의해 한국사는 패배와 수치의 역사로 위조됐다. 중국사가가 중국 중심의 역사를 쓰고 일본사가가 한국사를 패배와 오욕의 역사로 왜곡한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인접국인 한국을 지배하고 예속시켰다고 위조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한국의 이물(異物)들은 중국과 일본 사가의 위조에 아부해 우리 역사를 완전한 패배와 수치의 식민지사(植民地史)로 장식해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우리의 위대했던 선조들의 역사는 중국과 일본 땅에서도 분명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 예컨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천왕도(天王圖)가 발견되고 일본에 있는 백제왕 신사에 우두천왕(牛頭天王, 한민족 계열)이라는 간판이 발견됐다. 또 광개토대왕 비문에 영락(永樂)이라는 연호(年號)가 있고 왕토(往討)라는 문구가 있다. 연호는 독립국가에서 제왕(帝王)이 칭한다. 천자(天子)는 토이불벌(討而不伐, 성토하지 정벌하지 않는다)하고 후왕(侯王, 소국의 왕 또는 제후국의 왕)은 벌이불토(伐而不討, 정벌하지 성토하지 않는다)라고 했는데, 천자의 군(軍)에는 토(討)자를 부치고 후왕의 군(軍)에는 벌(伐)자를 부치며 토(討)자를 부치지 못한다. 하늘의 자손이기에 강력한 천자의 나라(天民思想)임을 믿었던 고대의 한민족은 당시 중국과 일본 등 제후국의 나라들에 대해 가끔 꾸짖고 혼줄을 내줄 정도만 지배하고 사실상 정벌할 욕심은 내지 않았던 대국의 아량을 베풀었던 셈이다. 이 같은 정신을 이어받은 우리의 역사가 중국의 제후국 역사라고 하는 것은 도무지 상상 자체를 불허하는 일이다.
 
한민족(韓民族)이 천자(天子), 황제 국가로 등장
 
신라 진흥왕의 국경 순시 비에는 순수(巡狩)라고 명기(銘記) 돼 있다. 천자(天子)가 후왕(侯王)의 국가를 시찰하는 것을 순수(巡狩)라 칭한다. 반면 후왕(侯王)이 지방을 시찰 하는 것을 순수(巡狩)라 하지 못한다. 또 백제의 무령왕(武寧王) 묘지(墓誌)에는 붕(崩)이라고 명기(銘記)돼 있다. 붕(崩)은 천자(天子)가 죽었을 때 쓰는 것이고 후왕(侯王)의 죽음을 붕(崩)이라 쓰지 못하고 훙(薨)이라 한다. 고대 우리민족이 천자(天子), 황제(皇帝)의 국가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에 와서 고고학에 의해 확실히 판명되고 있다. 그런데 문서의 역사에는 천자(天子), 황제(皇帝)의 국가에 예속된 후왕(侯王)의 국가로 위조·날조돼 있다. 즉, 자주독립의 민족사관(民族史觀)이 패배와 예속(隸屬)의 식민지사관(植民地史觀)으로 변모됐다. 식민지사관은 변모(變貌)이고, 자주독립의 민족사관(民族史觀)이 본모(本貌)이다. 변모(變貌)를 배제하고 본모(本貌)를 발견하는 것이 사실을 사실대로 다루는 과학적 방법이다. 따라서 한국사는 식민지 사관을 배제하고 자주독립의 민족사관(民族史觀)을 찾아내는 방향으로 다루어야 정상이요 바른 것이다.
 
한국사(韓國史)는 고대부터 대륙을 지배한 자주독립의 한민족사(韓民族史)를 찾아내는 방향으로 연구돼야 한다. 우리 고대의 문화와 사상을 고증해 나가야 한다. 왜곡된 위서(僞書)는 배제하고 진서(眞書)를 중심으로 거짓 없는 우리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 이는 한민족(韓民族)의 특성을 바로 알고 한국사를 발견해 올바르게 역사를 제대로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한민족의 특수성을 무시하는 왜곡된 역사로는 한민족사를 제대로 발견하지 못한다.
 
한민족의 특수성은 경제·사회적 문화사상이 주축
 
한민족의 특수성은 타민족에 없는 경제적·사회적 조건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한민족(韓民族)은 특수한 문화 사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특수한 경제적·사회적 조건에서 창조된 특수한 문화사상이다. 고대 한민족(韓民族)은 타민족에 비해 우위(優位)의 경제적 환경에 있었다. 오늘날의 미국 처럼 경제대국이었다. 그것은 당시 맹위를 떨친 고시(楛矢), 석족(石鏃), 산삼(山蔘) 등의 생산이 사실을 웅변한다. 그 당시 고시(楛矢)와 석족(石鏃)은 석기와 철기를 파괴하는 신비성이 있었는데, 다른 국가에서는 생산되지 않고 오직 고대 우리국가에서만 생산됐다. 고대 중국은 2천년 동안 우리의 고시(楛矢), 석족(石鏃)을 수입하면서 보물이라고 칭했다. 또한 이때부터 우리나라의 산삼(山蔘)은 불로장생(不老長生)의 신비성이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당시 중국과 일본인이 우리나라에서만 생산되는 산삼에 대해 희귀한 진물(珍物)이라고 칭하면서 앞 다투어 수입해 갔다.
 
이러한 특수한 경제적 조건에 힘입어 한민족(韓民族)은 특수한 문화사상을 창조했다. 당시 석기시대에 석기, 철기를 파괴하는 고시(楛矢), 석족(石鏃)을 발견한 한민족(韓民族)은 주변의 원시민족을 정복하고 대국으로 등장했던 것이다. 산삼도 한민족(韓民族)이 천명(天命)을 받았다는 자존심을 갖게 했다. 이를 기반으로 인류사상 첫 대국으로 등장한 한민족(韓民族)은 천신(天神)의 피를 받았다는 천민사상(天民思想)을 창조하면서 인류의 대표로 자임하기에 이른다. 이 같은 사회적 조건은 932회의 침략을 받으면서도 외침에 저항한 민족투쟁 정신이 잘 반증한다. 이는 자존·자주의 민족의식에서 나온 것이며, 천민사상(天民思想)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우리 한민족(韓民族)은 중국 문헌에도 최초에 천자, 황제의 문물제도를 창안했다고 소개되고 있다. 고구려, 신라, 백제 등도 모두가 천자나 황제라고 칭했다.
 
중국·일본의 역사침탈, 식민사관(植民史觀) 지워야
 
이들 사실은 분명히 천민사상(天民思想)을 입증한다. 인류의 대표라고 자처하는 천민사상(天民思想)을 발견하고 이를 계승한 한민족(韓民族)이 자주독립의 민족국가로 발전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한민족(韓民族)은 천민사상(天民思想)이라는 특수한 문화 사상을 발굴해 고대부터 대륙을 지배하며 호령했던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진 민족이다. 따라서 중국과 일본에 의해 변조되고 위조되고 왜곡된 역사는 이제 철저하게 배제돼야 한다. 중국의 조작된 역사나 일본에 의해 왜곡된 식민사관(植民史觀)에 의한 역사관은 우리역사에서 아예 지워 버려야 한다. 역사의 변조·날조·왜곡을 탈피하지 못하면 우리의 역사는 바로 세울 수도 없고 유령이 지배하는 죽은 역사일수밖에 없다. 왜곡된 식민사관(植民史觀)을 탈피 하지 못하는 한, 진정한 한민족(韓民族)의 위대한 우리 역사를 바로 정립해 갈 수 없다. 중국의 역사침탈과 일본의 식민사관(植民史觀)을 탈피하지 못하면 우리의 앞날도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다 같이 일어서야 한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선생 및 최인선생의 서책(書冊)과 많은 연구가의 글에서 참고했음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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