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역사를 연구하며 우리 역사가 왜 이리 왜곡되고 망가졌는가? 살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현행 역사교제 내용을 보면 너무 기가 차고 가관이다. 한 예로 백제가 어디서 망하였는가? 보면 오늘날도 우리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들은 하나 같이 웅진에서 나와서 망했다고 하고 있다.
과연 그런가? 이 근거는 신라본기(新羅本紀)에 쓰여 있다고 한다. 그런데 백제본기(百濟本紀)에는 사비성(泗泌城)이라 했다. 이 경우 어디가 맞는가! 이런 경우 우리나라 학자들은 제멋대로 이야기를 하는데 제 각각이다. 이는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백제가 망한 곳은 분명히 웅진이 아니라 사비성이라 하고 있다. 우리는 반도의 공주가 웅진(熊津)이라 하고 부여를 사비성(泗泌城)이라고 하고 있지만 이는 사서(史書)에서 밝혀진 것이 아니다.
공주가 백제의 웅진이 되려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중국25사에 의한 지명이 있어야 하는데 이 지명들이 반도에도 있어야 하는데 공주와 웅진 정도로 의자왕 시대의 평원·항성·황산·무산· 동성·잠산(岑山)·독산·동명·덕안·백마하(白馬河)·박성(薄城)·제성(諸城)·대산(大山)이 없다.
공주(公州) 주위에는 황산(黃山) 밖에 없다. 김부식(金富軾)이 11명의 학자와 같이 쓴 삼국사(三國史)는 삼국유사(三國遺事)와 함께 우리나라 사서(史書)를 대표되는 사서인데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나오는 지명 360곳을 알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 지명이 대륙에는 다 있다.
하남성의 서화(西華)와 웅진(熊津) 동쪽 대산(大山), 즉 산동성(山東省)의 태산(太山) 주위에 다 있다. 대산(大山)의 서쪽 황산(계백 장군이 전사한 지역)주위를 살펴보면 북쪽에는 평원(平原), 청하(淸河)가 있고, 동쪽에는 대산·박성·제성·역성(力城)·치(淄)· 청(靑)·래(萊)가 있다.
또 남쪽에는 백마하(白馬河)·사비하(泗泌河)·항성(項城)·잠산(岑山)·독산(獨山)·덕안(德安)이 있으며, 서쪽에는 동명(東明)·진평이군(晉平二郡)이 있다. 이와 같이 사서(史書)에 의한 웅진(熊津)은 반도에 있는 웅진(熊津)이 아니기에 결코 반도로 옮길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지명(地名)과 유적, 묘(墓)와 족보(族譜)는 후예(後裔)들의 손으로 얼마든지 위조할 수 있다. 그러나 문화사(文化史)는 위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김유신(金庾信)도 반도에 있었다고 가르치고 있다. 김유신은 서라벌(徐羅伐)의 칸(干)이 다스린 신라 장군이 아니다.
김유신은 서화(西華) 동쪽의 서신라의 왕이 다스리는 신라의 장군이었다. 서신라(西新羅:사로신라(斯盧新羅)가 서화(西華) 동쪽에 있고 반도에는 고구려에서 독립한 서라벌의 신라가 반도에 있음을 삼국사기(三國史記)만이 기록하고 있다. 오늘은 계속해서 신라도 두 개가 있었고 우리 역사는 삼국사기 권46과 남제서 권58의 기록으로 대륙사임을 입증하려고 한다.
일본은 자기들 전통성 내세우기 위해 역사왜곡
중국과 일본이 쓴 사서(史書)에는 거짓 기록한 것이 많은데 한국인들은 이 거짓을 곧이듣고 사실인 듯 받아들인다. 예컨대 필자가 초등학교시절 가야(伽倻)의 시조는 김수로왕(金首露王)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가야의 시조는 헌원의 조상이기도한 소호금천씨가 김수로왕이 선조다.
그런데 우리 국민 성인 중에 가야의 조상이 소호금천씨라고 하면 아니라, 김수로왕이라고 말을 한다.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모르고들 있다. 이는 ‘거짓말도 백번하면 거짓도 진실인양 받아들이는데 익숙해 진 탓인지?’ 중국과 일본의 왜곡한 조작된 역사만을 들어서인지? 진실을 말해도 이를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신라가 둘이 있었다고 하면 더 믿지 않으려 한다.
또한 우리 역사가 반도의 역사가 아니라 대륙의 역사라고 하면 설마 그럴 리가 라며 이를 믿지 않은 사람들을 많이 본다. 그러나 역사를 연구해보면 필자가 말하는 것이 옳았다는 것이 입증된다. 우리가 바로 알 것은 중국과 일본은 역사 첫 페이지부터 왜곡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중국은 삼황오제(三皇五帝)가 우리 동이족인데도 자기들 조상이라고 하고, 일본은 1300년 전인 369년 부여(夫餘族)인 가야(伽倻)가 왜(倭)를 정벌(征伐) 이래 700년까지 우리가 정치적, 문화적으로 지배했다는 사실을 완전히 감춰서 일본역사를 꾸몄고 이를 일본 역사라 가르친다.
이는 독일의 독제자인 히틀러가 말한 “거짓말은 클수록 사람들 속이기가 쉬운 것이다”라고 한 것처럼, 일본사가(日本史家)들은 역사를 뒤집어서 가야(伽倻)에서 온 부여족(夫餘族:가야(伽倻)이 왜(倭)를 정복한 것이 아니라 왜(倭)가 가야(伽倻)를 정복(征服)했다고 거꾸로 썼다.
즉 일본은 신공(神功)이 신라·백제·고구려까지 정벌하였다고 일본역사에 기록한 것처럼 보는데 아니다. 사실은 신공(神功)은 왜(倭)를 침략해 정벌한 강인(强靭)한 의지의 신라왕녀(王女)였다.
일본은 369년 오우진(應神)왕부터 게이타이왕(開體王;500~527) 이전까지 일본역사에 등장하는 일왕(日王)은 전혀 왜인(倭人), 일본인이 아닌 순수 부여혈통의 왜왕이었다. 일본의 건국자로 알려진 진무(神武);(應神)는 4세기 부여인, 가야(伽倻)가 일본을 정벌한 사실의 반영일 뿐이다.
해의 여신 아마테라스 오미가미(天照大神)는 무당이며 그녀의 오빠 스사노오노미코토(素盞鳴尊)는 신라인이었다고 한다. 8세기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를 편찬한 자들은 이 두 인물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일본 옷을 덮어 씌웠다.
20세기에 와서 이들의 정체가 들어나기까지 역사가들은 사람을 속이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그러나 진실은 일본이 초기의 역사부터 8세기에 이르도록 어머니가 애를 젖먹이는 것 같이 우리가 떠주는 음식(문화)을 받아먹고 자랐으나 배은망덕을 한 사람이 되고 있다.
수십만 권의 사서를 불살아 없애고 숱한 보물이 나라밖으로 나갔다. 석굴암까지 해체하여 일본으로 가져가려 했다. 이 뿐 아니라 일본은 거짓과 날조를 통해 한국인에게 문화적 대학살을 감행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자랑하는 유물은 우리에게서 가져간 것을 내세우고 있다. (以上, 존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287~312면 참조, 본문을 인용하다.)
중국이 지명 옮기는 이유가 무엇 때문인가
중국은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서 지명(地名)을 옮기는가 하면 같은 지명을 아예 변조하고 바꿔서 옮기고, 지도를 동으로, 동으로 옮기고 또 옮겨왔다. 따라서 우리나라 학자들이 쓴 저서에는 이런 잘못된 저서가 많이 볼 수 있는데 그 저서는 아무런 가치나 책을 쓴 의미가 없다.
예컨대 연(燕)나라 때 고구려 요동 요서가 같았으나 당(唐) 때 요동요서로 나눠서 동자(東字)를 붙여서 동으로 옮겼다. 그리고 요동(遼東)에 대한 지도(地圖)도 동으로 옮겼다. 본래 산서성 요(遼)는 645년 당태종이 요동성(遼東城)을 요주(遼州)로 만들었다. 그래서 송(宋)나라 때 만든 우적도(禹跡圖)에 요(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중공은 다시 이를 좌권(左權)으로 변경했다.
요(遼)를 좌권(左權)으로 변경한 것은 권(權)을 ‘저울질 할 권(權)’으로 좌측에 있다고 보는 것인데, 요(遼)는 허리 즉 중앙(中央)에 있다고 보아서 중앙보다 왼쪽에 있다는 것으로 요(遼)를 요하(遼河)의 동서(東西)로 보게 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인 것이다.
이것은 삼국사기(三國史記) 권46과 남제서(南齊書) 권58 기록인 ‘고구려, 백제가 남으로 오월(吳越), 북으로 유(幽)·연(然)·제(齊)·노(魯)를 다물(多勿)한 사실을 감추려는 의도인 것이다.
중국이 지명을 바꾸거나 옮긴 것을 보면 너무나 노골적이고 담대한데 놀랍고 가관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46 지역에는 기자(기(箕子)가 살던 서화(西華)가 있고 항성(項城)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이곳은 주(周)나라와 조선시대 당나라와 신라의 교역지점이라는 것이 공통점이다.
그런데 당(唐)나라를 숨기려고 구당서(舊唐書) 권199에는 당(黨)으로 표기하고 신당서(新唐書) 권220에는 당(棠)으로 표기했다. 삼국사(三國史) 본기에는 당(党)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삼국지(三國志) 권30 한전(韓傳)에 나오는 사로국(斯盧國) 신라를 감추려고 했던 것이다. 즉, 당(唐)나라는 항성(項城)을 당항성(黨項城), 당항성(棠項城) 당항성(党項城)으로 했다.
그 뿐이 아니다. 북경(北京)에 조선성(朝鮮城)이 있다는 명일통지(明一統志) 기록은 여러 가지 해석을 야기시키고 있다. 그것은 654년에 당태종이 고구려를 침범하여 현도·횡산·마미·요동· 백암·비사·은산·후황 10성을 빼앗았다고 했다. 그런데 요동성(遼東城)을 요주(遼州)로 만들었다고 했는데 요(遼)는 산서성(山西省)에 있고 은산(銀山)은 하북성(河北省) 북쪽에 있다.
은산(銀山)남쪽에 용도(龍道)라는 지명이 있는데 645년에 용도(甬道)라는 지명이 등장한다. 이를 보면 북평에 있다는 성은 고구려 용도성(甬道城)으로 봐야 한다. 지금은 용도성(龍道城)이다.
또한 위서(魏書) 권100에서 가(珂)라는 특산물 생산지를 백제(百濟)에게 빼앗겼다는 기록이 있는데 바로 가(珂)의 생산지가 섭라(涉羅)라고 했는데 이곳은 삼국사기(三國史記) 권46과 남제서(南齊書) 권58 지역의 흡(歙)이다. (歙)은 흡과 섭으로 발음할 수 있으니 섭(涉)과 같은 발음이 비슷해서 고치기 쉽다고 해도 무엇 때문에 이렇게 역사를 왜곡 변조하는 것일까!
그러나 특산물의 생산지는 지명(地名)을 옛날에 변경해도 생산지역은 같은 지역임으로 그 위치(位置)를 확인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중국이 이 같은 방법으로 지명도 지도도 바꾸는 것은 역사를 왜곡함에 있음인데 중국이 같은 수법으로 많은 지명을 바꿔놓았으나 숨길 수 없다.
신라는 대륙과 반도에 두 개가 있었다
삼국시대 신라는 가장 미약한 나라였다. 그리고 역사는 신라가 대륙과 반도에 신라라는 나라가 두 개가 있었음을 말한다. 대륙에 있는 신라는 가라(加羅);伽倻)·고구려·백제에서 광복한 사로신라(斯盧新羅)가 있고, 반도에는 고구려에서 독립한 서라벌(徐羅伐)의 신라가 있었다.
김일연은 선덕여왕(善德女王)·김춘추(金春秋)·김유신(金庾信)이 황해 동쪽 신라인(新羅人)이 아님을 알았으나 이를 숨겼다. 그는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집필하면서 백제와 고구려는 두 항목만 소개하고, 선덕여왕·김춘추·김유신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하여 70%를 할애하고 19%를 ‘가락국기’를 넣었다.
그리고 단군(檀君) 이전의 역사인 상고사(上古史)를 삭제하고 단군(檀君)을 요(堯)와 동시대 역사로 만들었고 낙랑왕국(樂浪王國)역사를 지우고 낙랑군(樂浪郡)으로 덮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덕여왕·김춘추·김유신의 신라를 말하면서 선덕여왕의 신라가 아닌 정신대왕이라는 신라왕의 기록을 남긴 것은 두 신라가 있음을 알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즉, 자장법사가 선덕여왕의 신라와 정신대왕의 신라를 다녔다는 기록을 남김으로 두 신라를 구별할 수 있는 자료를 남겼다. 선덕여왕·김춘추·김유신으로 나타내는 신라가 고구려 백제를 패망시킨 인물이 아닌 정신대왕신라를 구별을 가능하게 한 것은 삼국사 신라본기에서 최치원(崔致遠)이 ‘제왕년대력’을 만들 때 모두 왕(王)이라고 했던 신라가 있음을 말하였다.
또한 김부식은 거칠부(居柒夫)의 국사에서 마립간(麻立干)이라고 하는 가한(可汗) 지역이었다가 신라왕(新羅王)이라 했던 신라를 구별할 수 있는 자료가 되었다. 이는 북사(北史)에 의해 가라·고구려·백제에서 광복하는 신라가 있음을 분명히 할 수 있고 김부식이 있는 곳에서는 고구려 가한(可汗)에서 신라왕(新羅王)이 되었으니 독립하는 신라로 표현이 가능한 것이다.
일연은 오월(吳越)과 제노(齊魯)지역에서 활동한 최치원이 이 지역에 사로신라(斯盧新羅)가 있음을 나타내고 있음에도 일연(一然)은 이를 외면하고 선덕여왕·김춘추·김유신을 황해 동쪽 인물로 만들기 위해 신라와 가라사(加羅史)를 중심으로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지은 것이다.
이것은 진(秦)·한(漢)·당(唐)의 지나(支那), 통일논리(統一論理)를 받아들이고 황해 동쪽에 통일신라(統一新羅)를 만들기 위해 고구려, 백제의 사실을 외면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대한제국의 이완용(李完用)과 다를 바가 없는 것으로 우리나라 역사를 망가트리는 행위였다.
이것은 제 아무리 선덕여왕·김춘추·김유신을 반도신라의 인물로 만들려고 해도 모든 자료에서 밝혀질 수밖에 없고 특히 김유신과 그 조상(祖上)의 활동무대가 상고시대(上古時代)부터 대륙이고 김유신(金庾信)시대의 특산물(特産物) 생산지(生産地)로도 분별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김일연(金一然)이 지나(支那)18사(史) 동이전은 남제서(南齊書) 권58의 지역을 벗어나지 못한 역사로 밝혀질 수밖에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본기는 인문과 자연 모두가 남제서(南齊書) 권58 지역에만 일치됨으로 감추고 숨긴다고 될 일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나라 역사는 삼국시대(三國時代)의 역사를 바로 함은 물론 중국(中國)과 일본(日本)이 감추려는 백제사를 바르게 재정비함이 뒤엎어진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음을 말해준다.
(以上은 吳在成,‘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右犂) 歷史‘校勘 十八史’ ‘우리역사(東夷傳)’.‘高句麗史’, 九犂系,‘斯盧新羅史’,‘百濟史’ ‘加羅史’.外 參照, 引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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