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세기 상황을 보면, 2세기 후반은 한(漢)의 정치가 혼란하여져서 궁정(宮廷)에서 왕후(王后)의 일족이나 측근자가 마음대로 정치를 하는 바람에 농민생활이 어렵게 되자 민중(民衆)들 사이에서는 태평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태평도(太平道)‘라는 종교가 필요하다는 것에서 이 종교가 나왔다.
이때 농민들은 억압 반대해 누른 수건을 머리에 쓰고 반란을 일으켰다. 또 각지의 호족(豪族)들은 서로 다투고 싸웠다. 때문에 한(漢)이 멸망하고 황건군(黃巾軍)도 호족근(豪族軍)에 진압되며 생긴 것이 삼국지에 나오는 오(吳)·위(魏)·촉(蜀) 3국이다. 이 3국의 대립이 50년 계속되었다.
한편 4~6세기는 북방 유라시아의 흉노(匈奴)와 선비(鮮卑) 등의 기마민족(騎馬民族)이 대륙에서 한족을 정벌하고 정복해 지배한 시기이다. 이 당시 유라시아 대륙은 민족의 대이동이 일어나 대륙이 동과 서에서 나뉘어 활동한 시기이다. 이 당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았다.
북방의 기마민족인 우리는 동(東)으로는 만리장성을 넘어서 한족(漢族)을 정벌하고, 서(西)로는 로마제국을 분열시켜 서로마제국을 멸망시켰다. 이 후 동로마제국은 콘스탄지노블을 수도로 해서 번영했다. 한편 인도에서는 서기 4세기 초 갠지스강 중류 지방에 다브다조(朝)가 일어나 훌륭한 문화를 만들어 민중 사이에는 힌두교가 퍼지고 있었다.
한편 3세기 초 한(漢)이 멸망 후 4~5세기의 동아시아는 북방 기마민족이 강성해 중국 사회는 많은 독립국이 생겨나고 분열과 분쟁의 시대가 시작돼 남북으로 나눠진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을 형성됐다. 이 시대를 사가(史家)들은 오호십육국시대(五胡十六國時代)라 한다.
오호(五胡)의 하나인 선비족(鮮卑族)이 북중국을 통일하고 북위왕조(北魏王朝)를 439년에 세웠다. 이 북위(北魏)는 농민에게 균전(均田)을 주고 불교를 장려해 큰 불상(佛像)을 만들었다.
여기서 북방기마족(北方騎馬族)에 시달리는 것을 싫어한 한인들의 일부가 양자강 지방으로 내려가 거기서 새로운 왕조를 만들어 대립했다. 화북(華北)을 중심으로 하는 왕조를 북조(北朝)라 말하고 강남을 중심으로 한 왕조를 남조(南朝)라고 했다. 이때를 남북조시대라고 한다.
그런데 이 남북조를 통일시킨 것이 589년의 수(隨)나라 이다. 최초의 황제인 문제(文帝)는 균전제(均田制)·조용조(租庸調)의 세법(稅法) 실시하고, 인재를 등용하기 위해 과거법(科擧法)을 실시해 나라를 굳혔다.
오늘은 원래 가야(伽倻)는 대륙에 있었는데 그 역사와 왜(倭;일본)의 왕들이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가야계(伽倻系)이고 백제계(百濟系)인지. 또한 지금 경상도에서는 가야를 복원한다며 서로 자기 지역으로 가야를 복원한다고 야단인데 가야(伽倻)가 어디에 있었는지도 살펴보고자 한다.
일본 왕들은 가야계(伽倻系)와 백제계(百濟系)이다
일본은 1300년 전부터 역사를 왜곡했다. 왜 그들은 역사를 진실되게 이야기하지 않고 왜곡(歪曲)하는 것인가. 그것은 당대 일왕(日王)들이 정통성을 가진 지배자임을 내세우기위한 것이었다.
일본 사가들은 369년 가야부여족의 왜(倭) 정벌 이래 700년까지 한국이 정치적 문화적(文化的)으로 일본을 전적으로 지배한 사실을 완전히 감추기 위해 철저히 숨겨버린 것이다. 그러나 거짓은 탄로가 나게 마련이다. 여기서 왜(倭)란 대륙의 야마도국(大和國)을 지칭하는 것이다.
일본은 이 야마도국(大和國)이 일본열도에 있었던 것 같이 역사를 꾸미고 있으나 진실은 일본 초기 역사부터 8세기에 이르도록 어린아이가 엄마가 떠주는 음식을 받아먹듯 우리가 전해주는 문화를 받아 성장한 왜(倭)였다. 지금은 이런 왜곡된 허구역사가 다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왜(倭)가 양자강 이남에 있었다는 것은 역사를 제대로 연구한 사람이라면 다 알 수 있고, 일본열도에 있었다는 것은 제멋대로 꾸민 허구(虛構)라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일본 사가들도 이제는 이런 허구의 역사를 믿지 않는다. 단지 극우파와 그 추종자만이 이 역사를 신봉한다.
즉 일본의 건국자로 알려진 진무(神武;363~394)는 4세기 부여가야인의 후예로 서기전 660년이란 것은 조작된 허구이다. 일본은 부여 기마족이 왜(倭)를 정벌한 사실을 감춘다. 일본은 이 진무(神武)를 자기들의 시조(始祖)라며 서기전 660년에 일본을 세웠다고 조작하였으나 다 허구이다.
일본의 첫 왕은 그들이 조작한 왕가의 15대로 가져다 놓은 오우진 덴노(應神天皇)라 하는데 이 덴노가 일본의 제1대 왕으로 소화(昭和) 일왕(日王)의 세자(世子)시절 스승이었던 사사가와 린푸(笹川臨風) 박사가 말한 바와 같이 단군의 73대 손으로 일왕 제1대임은 이미 밝혔다.
그리고 26대로 돼 있는 일왕(日王) 12대 케이타이(繼体;507~527)까지가 가야 계다. 전후 일본학계는 이미 연구가 끝났다. 이 진무(神武)에서 케이타이(繼体)까지 가야계(伽倻系) 일왕(日王)이고, 일왕(日王) 제13대 안칸(安閑;528~535)~래이와(令和;2019~)까지는 백제계(百濟系)로 보고 있다.
왜(倭)는 일본열도에 없었다. 히미코(卑彌呼)의 이도국(伊都國)도 우리의 72제후국 중 하나로 대륙의 역사이다. 중국과 일본은 왜(倭)를 일본열도로 가져가기 위해 별짓을 다하고 있으나 일본은 4세기~7세기를 ‘고분시대(古墳時代)’라 하며 거대한 천황릉(天皇陵)을 만들었다고 하나 이 당시 일본사정은 이처럼 천황릉(天皇陵)을 만들 상황도 아니었다. 원시생활 그대로인 만큼 이는 조작에 불과하다.
또한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日本書紀)’를 쓴 8세기 왜(倭)에 천황(天皇)이라는 명칭도 없었다. 그런데 8세기에 쓴 이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제1대 진무(神武) 이후 대대로 천황(天皇)이 정치를 한 것으로 조작돼 있다. 당시 왜왕(倭王)은 정치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제2대의 닌도크(仁德 395~457) 일왕(日王)의 이름도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당시 천황(天皇)이라는 명칭은 쓰지 않았다. 기타 다른 사서에서도 천황은 없다. 그리고 5세기 중국 송서(宋書)에 왜5왕(倭五王)의 기록이 있다. 즉 찬(讚)·진(珍)·제(濟)·흥(興)·무(武)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일본에서는 여러 설(說)이 있다. 찬(讚)은 닌도크(仁德) 일왕(日王)인지 오우진(應神)인지. 진(珍)은 한세이(反正) 인지 아니면 닌도크(仁德) 인지. 제(濟)는 인교우(允恭), 흥(興)은 안코우(安康), 무(武)는 유우랴쿠(雄略) 등인데 이들은 야마도국(大和國)의 왕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이 왜5왕(倭五王)도 대륙의 야마도국(大和國)의 왕(王)인데 북구주(北九州)의 왕이 아닌가, 이를 조작하는 일본이다. 어떻든 일본의 왕들은 1대 오우진(應神;363~394)부터 12대 케이타이(繼体;507~527)까지 가야계(伽倻系)이고, 13대 안칸(安閑;528~535)~래이와(令和;2019~)는 백제계(百濟系)로 보고 있다. 일본 왕계(王系)는 우리 기마족(騎馬族)의 후손인 것도 숨길 수 없는 것이다. (以上은 永原慶二 監修, ‘絶對 中學社會歷史’.39~42面外 多數書冊參照, 引用하였음을 밝힘)
가야(伽倻), 가라(加羅)는 어떤 나라였나
부여 기마족의 후예인 가야는 6세기 이전에는 가라(加羅)로 호칭되었다가 가라(加羅)가 패망 후 600여년이 지난 이후에는 가야(加耶)·가양(加良)·가락(駕洛)·가야(伽倻). 금관국(金官國) 등으로 불렸다. 이 호칭(呼稱)들은 모두 삼한(三韓) 또는 변진(弁辰)의 후예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문제는 우리가 그 위치를 분명하게 나타내지 못하고 있고, 이 가야(伽倻)가 반도가 아닌 대륙에 있었음을 모르고 있다. 광복이 되어 74년이 지난 후에도 경상도 지방에 있었다는 전제 하에 가야 역사를 말하고 있음은 너무 안타깝다. 아직도 가야가 대륙에 있었음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즉 가야는 중국 ‘25사’ 동이(東夷)의 고구려·백제·사로(斯盧)신라와 함께 대륙에 있었다. 왜(倭)가 양자강 이남에 있었던 것을 모르는 것과 같이 우리는 가야(伽倻)가 대륙에서 가야(伽倻)의 건국(建國)이 서기 42년에 건국하여 561년까지 존속된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라, 가야의 연구는 금관국(金官國) 위치 연구가 선행되어야 그 위치를 밝힐 수 있다. ‘중국 25사’와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 공통부분과 비 공통부분으로 정리한 후에 공통부분의 위치와 비 공통부분의 위치를 찾고 그것이 하나되는 방법을 찾아야 풀릴 수 있다.
한편 공통부분과 신라 마립간(麻立干)과 가라국기의 9간(干)의 간(干)은 격이 다른지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신라의 거서간(居西干)은 통치자로 보는 것이 당연시 돼 왔다.
마립간(麻立干)은 신라의 통치자로 여겼으니 9간(干) 즉, 아도간(我刀干)·여도간(汝刀干)·피도간(彼刀干)·오도간(五刀干)·유수간(流水干)·유천간(留天干)·신천간(神天干)·오천간(五天干)·신귀간(神鬼干)도 마립간(麻立干)과 동등한 간(干)으로 봐야 할 것이 아닌가! 보고 있다.
이 간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수로왕(首露王)을 맹주(盟主)로 받아 드렸을까. 통치를 할 수 있음에서 받아들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마립간과 9간(干)은 지역통치자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왕관이 출토되면 이 왕관은 간(干)의 금관이지 왕의 금관이 아니다. 고구려 대왕과 그 왕관의 격이 같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이 땅에 가라가 없다고 해도 고구려 땅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삼한의 위치가 반도남부로 인식하는 것이 통설이었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분명히 삼국지 한전(韓傳)에서 한지(韓地)로 갔다고 해 한(韓)나라 땅에 들어갔음을 분명히 했다. 기준(箕準) 이전에 한지(韓地)로 표현할 수 있는 나라가 없다.
고대 조선의 삼한(三韓)은 분할통치자(分割統治者) 명칭이지, 국호(國號)가 아니다. 기준(箕準)이 삼한의 다스리기 이전의 춘추전국시대 한(韓)나라 밖에는 없다. 한(韓)나라 땅으로 들어가는 바닷길이 해(海) 즉, 동해로 들어가 서쪽으로 가면 역사의 중심지인 낙양(洛陽)에 이르게 된다. 이곳은 한(韓)의 땅임으로 기준(箕準)이 통치(統治)를 하던 삼한강역(三韓江域)으로 대륙이다.
이곳은 기준(箕準)의 조상 기자(箕子)가 살던 서화(西華)가 있고, 당(唐)나라와 신라(新羅)의 경계에 있는 항성(項城)이 있는 지역으로 이곳은 대륙이지 반도가 아니다.(史記 卷69, 列傳 8)
(以上은 吳在成, ‘九犂系,‘斯盧新羅史’,‘百濟史’ ‘加羅史’7~13面. 外 參照, 引用하였음을 밝힘.)
글을 맺으며
오늘은 광복 74주년을 맞는 날로서 참으로 의미가 깊은 날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광복74년 동안 한국사는 변한 것이 없다. 오늘 광복74주년 기념식을 독립기념관에서 하고 있는데 이 기념관도 크게 훌륭한 건물로 지었으나 그 속에 들어가 보면 독립기념관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우리 역사 유물 진열은 너무 빈약한데 놀랍고 그 내용은 식민사관 기념관임에 화가 난다.
우리나라 역사는 세계 석학들도 인류 시원국(始源國)이라 할만큼 세계 최초의 나라로 1만 2000년의 역사를 가졌는데 기념할만한 유물은 찾아볼 수 없고 환국과 배달국의 역사자료도 하나도 찾아 볼 수 없는 ‘조선사편수회’ 이마니시 류(今西 龍)의 이론에 맞춘 빈약한 기념관이었다.
도대체 지금까지 역사를 어떻게 연구하고 왔기에 이런 것인지. 서구제국의 기념관과 중국 등 동양의 역사가 짧은 나라의 박물관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또한 국립박물관에 가 봐도 똑 같이 반도사관에 맞춘 것뿐으로 실망스러운 것뿐으로 이제 광복74주년을 기점으로 잘못을 바로 잡고 가야 한다. 모든 일제강점기의 청산해야 할 잔재(殘滓)를 깨끗이 없애고 가야 한다.
일제강점기의 잘못된 법제와 제도도 다 정비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형사법과 세법도 명치헌법체제의 치죄(治罪)와 수탈의 법을 광복 74년이 지나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일본은 형사법도 패전 다음해인 1946년 4월 4300여개의 조문을 비롯해 모든 법을 일본국 헌법체제로 다 정비했다
우리는 역사용어도 최근 ‘성피해자’를 ‘위안부’라고 일본이 폄하해 말하는 것을 그대로 쓰고 있는 것도 수치로 알아야 한다. 위안부는 매춘을 하는 여자라는 의미가 아니던가! 이제 우리는 이런 잘못된 용어도 철저히 고치고 정비해서 새 출발을 할 때, 극일(克日)도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극악무도한 일제가 인간생체시험까지 하며 유아까지 그 엄마 앞에서 생체시험 한 사례가 밝혀지는 오늘, 아베신조는 아직도 일제강점기의 잘못을 뉘우치지 못함은 한일양국을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우리는 극일(克日)을 하기 위해서는 변질된 가치관과 사관도 바로잡아야 가능하다. 이제 우리는 국제적 시각에서 세계로 웅비할 준비를 하고 가야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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