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은 미국 트럼프대통령과의 대화에서 한국은 중국이 오랫동안 우리를 지배했던 나라라고 했다. 역사 무지도 이 정도면 참으로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중국은 우리나라 역사와 비교도 되지 않은 나라로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 역사를 모른다고 시진핑(習近平)은 제 멋대로 역사 무지의 말을 함부로 하고 있다. 중국은 역사가 오래됐다고 하지만 중국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나라가 아닌 것도 나라라고 버젓이 올리고 있다
역사가 2~3년 밖에 되지 않는 무리를 나라라 하고 있는 것을 본다. 예컨대 서한(西漢)은 2년이고 후한(後漢)은 3년, 이런 2~3년의 단명(短命)의 나라가 어찌 나라라 할 수 있겠는가. 가늠하기 어려운 나라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 무리도 조공을 받았느니 하는 가소로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천년 가까운 왕조를 유지하고 있을 때 중국은 나라인지 부족인지 나라 아닌 무리를 나라라고 하며 자기 백성조차 돌보기 어려워 망한 나라들이 우리가 대대로 속국이 되었다는데, 우리는 고대 중국의 지배를 받은 적이 없다. 도리어 우리가 중원을 정벌, 정복해 지배했다.
중국 왕조의 평균 존속기간은 64.77년이다. 우리나라 왕조의 평균 존속기간은 환국이나 배달국, 발해 뺀 수치도 673.8년이고 (환국 3301년, 배달국1565년, 가야 441년, 발해(渤海)를 뺀 수치다.)
중국인이 우리를 다스린 적이 없다. 중국 역사의 주역들은 거의 우리 동이지만 중국은 우리 조상들까지 자기 조상이라고 조상을 바꿨다. 그 실체를 2016년 중국에 가서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삼황오제(三皇五帝)가 중국인인가. 우리 선조들인데 자기들 조상이라 하고 있다.
중국 역사를 보면 진시황(秦始皇)~부의(溥儀)까지 2100년의 역사를 봐도 그 주역은 동이족으로 고대는 물론 그 이후의 명(明)나라도 고려인(高麗人)이고 몽골과 금(金)은 신라후예(新羅後裔)이다. 거란(契丹)은 고구려(高句麗)의 후예이며, 청(淸)과 만주국(滿洲國)은 가야인(伽倻人)이다. 여진(女眞)은 고구려 발해의 후예며 후금(後金)은 동족이기에 반도(半島)를 치지 않았다.
중국 역사에 그 주역(主役)들은 모두 우리의 동이인(東夷人)으로 이를 감출 수 없다. 그리고 이들 동이족은 낙후한 대륙에 새로운 발전의 원동력이 되어 거의 중국왕조말기(中國王朝末期) 조정내(朝廷內)의 관료(官僚)에 의해서 관위(官位)나 재산이 독점(獨占)되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귀족(貴族)도 세습(世習)이 되어 일반 백성은 농노적(農奴的) 지위(地位)가 고정화되고 있었다. 이러한 체제를 버리게 하고 새로운 체제를 성립시키는 원동력이 된 것은 우리의 체제(體制)와 정책(政策)이었음을 역사를 제대로 연구하면 바로 알 수 있다. 물론 우리도 세습이 없는 바는 아니나 우리는 군자국다운 사상과 제도의 중심이 달랐다.
오늘은 우리 동이족(東夷族)이 대륙에서 여러 미개한 대륙의 족속(族屬)들을 깨우치고 어떻게 이들을 변화시켰으며 그 중심에는 무력에 앞서 ‘인간사상(人間思想)’으로 깨우치고 제도적(制度的)으로도 대륙을 변화시킨 역사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왜 조선을 ‘군자불사(君子不死)의 나라’라 했는가
동양사(東洋史)를 읽다보면 많은 나라가 명멸(明滅)하는 역사(歷史)의 내용은 전쟁의 역사가 주(主)이고 종교철학(宗敎哲學)의 토대는 찾아 볼 수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고대부터 사상과 철학을 가진 민족으로 인류애(人類愛)를 말하고 있음을 본다.
그것은 고대(古代)부터 우리나라에서 철학과 사상이 나오고 국가(國家)를 존중하고 우리 역사를 창조한 사상이기도 한 ‘홍익인간사상(弘益人間思想)’이 그 주축(主軸)을 이루고 있다고 말을 할 수가 있다. 이 사상이 나오게 한 족속(族屬)은 다름 아닌 바로 우리 민족이다.
우리에겐 고대부터 화랑계(花郞系), 불교계(佛敎系), 유교계(儒敎系) 등, 세 가지 계열(系列)의 사상이 있었다. 이 세 가지 계열의 사상은 우리나라 사람들에 의해 나왔으며 이 사상은 강렬한 민족의식과 전통적문명(傳統的文明)에 의해 역사사건(歷史事件)을 만들었음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공자(孔子)도 2500년 전에 조선(朝鮮)을 ‘군자국(君子國)’이라 찬양(讚揚)했다. 또한 ‘후한서(後漢書)’ 동이전(東夷전(傳)에는 우리나라를 ‘군자불사(君子不死)의 나라’라고 했다.
그런데 조선조에 와서 민족의식(民族意識)을 배제하고 적통적(嫡統的) 문명을 말살(抹殺)한 자가 유교도(儒敎徒)이다. 그들은 유교사대사상(儒敎事大思想)을 맹신(盲信)해 중국을 조국으로 받들고 조선(朝鮮)을 속국(屬國)으로 자처하며 민족의식(民族意識)을 배제했다. 그 결과 중국의 시진핑(習近平)과 같은 역사관을 갖게 했다. 중국 역사는 왜곡 조작된 역사임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유교가 나쁜 것이 아니다. 성현(聖賢)이라는 퇴계(退溪) 선생과 율곡(栗谷) 선생이 주자(朱子)의 성리설(性理說)을 추종하며 중국을 높이고 조선을 배제(排除)했다.
여기서 퇴계(退溪)와 율곡(栗谷) 두 선생의 학문을 흉보는 것이 아니다. 두 선생은 주자사상을 추종했다. 이는 본질상 중국사상이지 조선의 사상이 아니다. 유교(儒敎)를 창시(創始)한 공자(孔子)도 조선에 와서 살고 싶다고 말하니 어떤 자가 조선은 루(陋)한 나라라고 했다.
이에 공자(孔子)는 ‘君子居之 何陋之有’라 대답했다(論語 卷九, 子罕篇). 즉 조선은 군자(君子)가 살고 있음으로 루(陋)가 없다고 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중국은 무도(無道)해 내 사상을 보급시킬 수 없고 조선은 루(陋)가 없는 군자국(君子國)으로 내 사상을 보급시킬 수 있다.
그럼으로 ‘나는 중국을 떠나서 조선에 가서 살고 싶다’고 말한 것이다. 이것은 공자가 조선을 ‘군자국’이라 찬양한 것이다. 이상의 해석은 중국의 안사고(顔師古)를 비롯한 많은 학자의 해석이다. 그런데 주자(朱子)만이 군자는 공자가 자기를 가르친 것이라는 엉뚱한 해석을 했다.
공자는 중국의 무도(無道)를 개탄한 것이었다. 공자(孔子)가 말한 ‘君子居之 何陋之有’는 조선은 군자(君子)가 살고 있음으로 루(陋)가 없다고 한 것인데, 주자(朱子)는 대중화(大中華思想)을 신앙해 평생(平生) ‘중국을 높이고 조선(朝鮮)을 헐뜯는데 광태(狂態)’를 부렸다.
이 주자(朱子)의 광태는 오늘날 우리나라 반도식민사관(半島植民史觀)의 효시(嚆矢)라 할 만큼 주자의 기본사상은 대중화주의(大中華主義)요. 이는 ‘중국인만이 사람이요 타 민족은 짐승이라 하시(下視)하는 것이다’ 이 같은 사상은 시진핑(習近平)을 비롯한 중국인들에 잠재해 있다.
(以上은 崔仁, ‘韓國學講義’, 20面~34面, 최태영 ‘한국고대사’의 ‘한국고대사를 생각한다’, ‘단군을 찾아서’. 김세환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유우찬의 ‘한국사의 쟁점’.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김동락의 ‘천부경과 문디’, ‘거시기’를 참고하였음을 밝힙니다.)
사대주의역사관 답습한 주자학도 역사 망치게 했다.
이같이 주자(朱子)가 말하는 성리학(性理學)은 우리나라의 유생(儒生)들을 오로지 중국을 받드는 사대주의(事大主義)에로 몰입시켜 그 피해는 이 나라 역사를 뒤엎어놓는데 충분했다.
한말(韓末)의 유인석(柳麟錫)은 “중국은 세계의 대종(大宗)이요 천지의 중심이다”라고 하며 “조선은 중국을 천(天)으로 받들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안정복(安鼎福)은 ‘기자(箕子)를 기점(起點)으로 조선사를 엮었다’라고 했으며 이는 일본이 우리 역사를 기자조선(箕子朝鮮)으로부터 시작하게 한 효시가 되고 있다.
이들은 우리가 내외(內外) 사서(史書)를 고증하면 우리가 도리어 하늘을 받드는 ‘천민사상(天民思想)’이 있고, 인간(人間)을 존중하는 ‘인간사상(人間思想)’이 있으며, 물질을 존중하는 ‘중물사상(重物思想)’이 있어서 이 3대 사상을 가진 문화(文化) 민족으로서 중국(中國)과 일본, 기타 민족을 지도하고 무력(武力)으로 중국과 기타 민족을 지배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
이 같이 중국(中國)을 천(天)으로 받드는 조선시대(朝鮮時代)의 문인(文人), 사가(史家)가 우리민족은 본래 중국의 노예요. 또한 노예가 되야 한다는 식민사관을 조작해 국민을 가르쳤다.
이 같은 국민교육을 한 조선조(朝鮮朝)가 이민족(異民族)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본다면 조선의 유생들은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쓴 김일연(金一然)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김일연(金一然)의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앞서 살펴본 대로 그의 역사 인식은 우리 역사를 반도안의 역사로 해 중국과 일본이 우리 역사를 왜곡하게 하는데 엄청난 기여(寄與)를 했고 이어서 조선조에 이어 일제와 광복 후 신채호(申采浩)의 반도사관은 역사를 망치게 했다.
‘삼국유사(三國遺事)’가 왜 문제인가 하는 자가 있겠으나 ‘삼국유사’는 우리의 상고사를 없애고 우리 첫 국가(國家)가 단군(檀君)부터라는 데서 문제가 있다. 그 이전을 지웠기 때문이다.
중국의 사서(史書)인 ‘25사(史)’에도 단군조선 이전에 배달국의 역사가 있음을 말하고 있는데, ‘삼국유사’에는 석유환국(昔有桓國)을 기록하고도 환국과 배달국 역사를 기록하지 않았다. 그 뿐 아니라 ‘삼국유사(三國遺事)’는 낙랑국(樂浪國)의 역사도 기록(記錄)하지 않고 지웠다.
우리나라 역사를 중국(中國)과 일본(日本)이 바라는 대로 한반도(韓半島)로 국한(局限)시켰다. 이것은 이완용(李完用)과 같은 역적(逆賊)과도 다름이 없는 죄(罪)라 하기에 충분하다. ‘삼국사(三國史)’와 중국의 ‘25사(史)’도 우리 강역이 중원(中原)이었음을 말하고 있는데, 김일연의 ‘삼국유사’는 이도 기록하지 않았다. 또한 조선조 선비들과 신채호(申采浩)도 똑같이 반도역사(半島歷史)로 만들었다. 이것은 지울 수없는 우리민족의 혼(魂)을 팔아먹는 결과를 낳게 했다.
이는 김일연(金一然)이 일본의 돈을 받고 국사(國史)를 팔아먹는 자와 같이 돈을 먹고 쓴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김일연(金一然)은 분명히 발해전(渤海傳)에 지장도(地藏圖)를 봤다고 했다. 이를 보고도 기록하지 않은 것은 역사를 매도(賣渡)한 자로 보고 있다. 이는 자랑스러운 위대한 역사를 가진 민족으로서 참으로 참담함을 금할 수 없는 일이다.
글을 맺으며
우리는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를 재현(再現)시켜야 한다. 김일연(金一然)을 비롯해서 조선조에는 퇴계(退溪) 선생과 율곡(栗谷) 선생, 정약용(丁若鏞), 안정복(安鼎福), 한말(韓末)에는 유인석(柳麟錫) 등 많은 지식인이 우리역사를 폄하(貶下)했다. 이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에는 ‘조선사편수회’를 통해 우리 역사를 제멋대로 엮었으나 지금은 그 허구(虛構)의 왜곡된 그 너울이 벗겨지고 있다. ‘삼국유사’가 우리상고사를 지웠으나 ‘삼국사’와 ‘중국25사(史)’에는 고조선 이전에 구리(九黎)가 분명히 있음을 말하고 있다.
김일연(金一然), 신채호(申采浩)와 그를 추종하는 반도식민사관자들은 우리 역사를 반도 안에 가두려 하나 ‘삼국사’와 ‘중국25사(史)’의 동이전(東夷傳)은 한반도에 없음을 말하고 있다. 그 강역(疆域)도 대륙 중원에 있었음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즉 ‘중국18사(史)’에 한반도 역사가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자들은 사료(史料)가 없었기에 왜곡(歪曲)된 역사만을 말하는 자가 많은데 우리 ‘삼국사’와 ‘중국25사(史)’는 똑같이 우리 강역이 유연재노오월(幽燕齊魯吳越)지역임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식민교육만 받아 우리가 대륙의 넓은 광역(廣域)임을 모르고 있다.
즉 유라시아는 우리 삼국(三國史)인 것을 모르고 우리영역(領域)을 한반도로 맞추는 잘못을 저질러서 지금도 이를 그대로 초등·중등·고등·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수치(羞恥)로 알아야 한다.
‘삼국사(三國史)’ 권(卷) 41 김유신전(金庾信傳)을 봐도 대륙의 선덕여왕의 사로신라(斯盧新羅;西新羅)와 정신대왕의 서라벌신라(徐羅伐新羅;東新羅)가 있음을 알 수 있고, 백제가 패망한 웅진(熊津)은 대산(大山) 서쪽에 있고, 백제 계로왕이 제방을 쌓아 물이 없으니 고구려가 백제를 쓸어버린 곳이 대륙이고 부여융이 고구려에서 죽었다고 했는데 이곳은 반도 아닌 대륙이다.
우리는 진번(眞番)도 반도에 있다고 하나 1100년 전의 송(宋)나라 때 소동파(蘇東坡)가 그린 지도 우적도(禹跡圖)에는 분명히 담이(澹耳), 진번군(眞番郡)이 귀주성(貴州城)지역에 있음을 말하고 있다.(前漢7書 4面). 이곳은 대륙 남단으로 우리 역사가 얼마나 엉터리임을 보여 준다.
김일연(金一然)과 신채호(申采浩)는 무조건 우리 역사를 한반도 안에 맞추려한 것은 한심한 일이다. ‘삼국사’와 ‘중국25사(史)’에 지명이 있고 최치원의 당영호징 신라국기에도 지명이 있는데도 이를 묵살했다. 또한 한서(漢書28下)에 낙랑국(樂浪國)이 있는데 이를 지운 것도 김일연(金一然)이다. 우리 사서(史書)와 중국 사서(史書)에 있는 역사를 지운 것이 김일연 이라는 것이다.
한편 신채호(申采浩)는 ‘동서를 바꿔서라도 한반도에 맞추라’고 해서 이들은 우리나라 역사를 그릇 치게 했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잘못된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
일본은 ‘삼국사(三國史)’도 1908년 ‘삼국사기(三國史記)’로 했고, 상고사를 지우고 고대사도 숨겼다. 분명한 사실은 거의 800년간 왜곡하였으나, 왜곡된 역사를 가지고 정사(正史)를 이길
수 없다. 김일연 등이 잘못 쓴 소설을 중국정사인 ‘25사, ’18사‘로도 이를 바로 할 수 있다.
우리의 연구부족은 강홍립(姜弘立) 장군이 싸운 곳이 건주(建州)가 장성(長城) 밖이다. 즉 만리장성의 밖인 것이다. 중국은 건주(建州)하고 심하(深河)를 같이 감추고 있다. 이성계(李成桂) 장군도 요양과 심양을 평정했다. 조선조의 영역도 대륙과 반도에 걸쳐 있다. 반도만의 아니다.
중국은 지도(地圖)도 고쳐서 명초치건주(明初置建州)라 해 장성(長城)안으로 옮겼을뿐 아니라 요사(遼史)에 기주(驥州)가 하북성(河北省)이라 하나 옛 지도(地圖)에는 산서성(山西省)이다. 중국은 지도와 지명을 지우고 옮기며 조작을 멋대로 하나 이런 작태는 지금도 멈춤이 없다. 이것은 이 같은 왜곡된 역사를 수용하는 영혼이 섞은 반도식민사관자의 행태에도 책임이 있다 하겠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 <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崔仁, ‘韓國學講義’, ‘再考證 韓國思想의 新發見’.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조선상고사에 한반도 상고사가 없다.’ ‘高句麗史’, ‘九犂系史‘’ 犂: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校勘 十八史’ ‘우리역사(東夷傳)’. ‘高句麗史’, 九犂系, 新羅史’, ‘‘斯盧新羅史’, ‘百濟史’ ‘加羅史’. 九犂系, 倭-日本史’. 吳在成 編著, ‘지도로 보는 우리나라역사(東夷疆域圖)’. 윤진영, 編集 ‘三國史. 苻都誌’.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김동락, ‘천부경과 문디’ 거시기’. 황순종, ‘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이종호, ‘한국인의 뿌리’. 박영규, ‘고려왕조실록’. 반재원,‘鴻史桓殷’. 대야발 원저, ‘단기고사’. ‘단군과 교웅-단군의 호적등본’. 李丙燾, ‘譯註 三國遺事’. 이강민,‘대한국고대사’.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智勝, ‘우리上古史’-발로 확인한 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바이칼민족과 홍익인간세상’. 카터 코벨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石井進外3人, ‘詳說日本史,. 文定昌, ’韓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秋山謙藏, ‘日本の歷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津田秀夫, ‘ひとりで學べる日本史’. 永原慶二 監修, ‘絶對 中學社會歷史’.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李民樹,'朝鮮傳‘.外 其他多數書冊參照, 本文引用 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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