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지난 3월 2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UN은 인권이사회의 47개국 회원국이 유럽연합(EU)과 일본이 발의한 북한 인권조사위원회(COI=Commission of Inquiry) 신설을 만장일치로 통과했다. COI가 가동되면 북한의 반인도(反人道) 범죄에 해당하는 인권침해 실태가 범죄수사 차원에서 밝혀지게 된다. 그 동안 UN북한인권 특별보고 관 1명이 맡아 다루던 북한 인권문제에 조사위원 3명, 조사관 20여명으로 구성된 공식기구가 발족해 북한의 인권문제 조사에 착수한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 김정은 정권을 반 인도주의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세울 수 있는 디딤돌을 마련한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전후 독일 뉘른베르크와 동경군사재판에서는 새로운 침략 전쟁을 계획, 준비, 개시 또는 공동모의자(共同謀議者) 등에 대해 ‘평화에 관한 죄’로 규정했다. 아울러 일반인에 대한 비인도적 행위 기타를 ‘인도(人道)에 대한 죄’로 규정해 군인이든 일반인이든 그 해당자를 처벌토록 하게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전쟁개시한 자를 처벌한다든가 국제적 재판에 세워 처벌하는 일은 없었다. 따라서 이번 COI 신설은 새로운 전쟁범죄 개념을 정립한 것이다. 이 같은 개념은 평시에도 ‘인도에 대한 죄’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COI가 조사하는 대상은 고문과 비인도적 처우, 강제구금, 정치범수용소, 표현의 자유와 침해, 이동의 자유 침해, 외국인 납치, 강제실종, 생명권 침해, 식량권 침해, 비 평양주민에 대한 차별 등 북한의 반인도적 행위에 대한 것이 대상이 되고 있다.
‘인도(人道)에 대한 죄’는 제2차 대전 후의 새로운 개념
제2차 대전 후 UN은 전시(戰時)와 평시(平時)를 막론하고 ‘전쟁범죄자’를 전시중죄인(戰時重罪人)과 전쟁범죄인(戰爭犯罪人)으로 분류했다. 전쟁범죄(戰爭犯罪)는 ‘평화에 대한 죄’와 ‘인도(人道)에 대한 죄’로 규정해 이를 위반할 경우 제재를 해왔다. 더구나 일반인(문민=文民) 보호법이 불충분하다는 것을 강하게 인식해 무력분쟁의 때에도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두었다. 분쟁 권력하의 지역, 특히 점령지역에 있는 분쟁 당사국 이외 국가의 일반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서 ‘전시문민조약’(戰時 文民保護條約)이 만들어졌다. 이 법은 1949년 쥬네브에서 탄생했다. 이 같이 제2차 대전 후 국제법에 있어서 큰 변화가 있었다. 또 개인의 인권에 관한 법과 해양법, 집단안전보장법, 우주법 등이 나오게 돼 일반인인 문민(文民)에 대해서도 전과는 판이하게 다르게 국제적 보호가 이뤄지고 있다. 이 조약에 따라 문민의 보호에 있어서는 인종, 국적, 종교 또는 정치적 의견의 상위에 의해서 차별할 수 없게 됐다. 이 조약은 또 무차별 적용을 기본으로 해 ‘전쟁에 의해서 일어나는 고통의 경감’을 근본목적으로 하고 있다. 또 문민의 지위 및 처우에 관해서는 인권을 존중하고 인도적 처우를 골자로 해 군사적 이용의 금지는 물론 강제적 정보 취득의 금지, 학대, 살육금지, 연좌제, 약탈, 보복, 인질의 금지도 정하고 있다. 그 외에 집단살해 방지에 관해서는 1948년 ‘집단살해 방지 및 처벌에 관한(일명 제노사이드Genocide)조약’이 UN총회에서 채택됐다.
이는 전후 인권이 인류보편의 진리로 받아들여진 결과다. 이러한 배경에는 독일의 히틀러에 의해 5000만명이 학살당하고 2억5000만명이 부상당한 전대미문의 전쟁 상흔 등이 영향을 주었다. 일본도 태평양 전쟁을 수행한다며 우리나라와 중국, 대만, 필리핀 등 동남아에서 학살과 인권을 묵살하는 야만적 행위를 자행했다. 이 같은 독일과 일본의 야만적 행위에 대한 일반 문민의 희생을 촉발한 결과 기존의 ‘불소급의 원칙’이나 ‘죄형법정주의’를 무시하고 시효가 없는 단호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12명의 사형이 있었던 것을 비롯해 동경 극동군사재판에서는 연합국전범자 A급 사형 7명, 종신형 16명, 유기 2명 등의 처벌도 있었다. 싱가포르 챤기형무소 복무자와 한국, 대만인 포로 감시자도 ‘포로학대’를 이유로 기소 된 자가 25000명이 넘는데, 이중 4403명이 유죄판결을 받고 이중 984명은 사형언도를 받아 920명이 사형집행을 당했다. 한국인도 148명이 유죄판결을 받고 이 중 23명이 사형집행을 받았다. 대만인은 173명의 유죄판결 중 26명이 사형집행을 당했다. 유태인 학살의 주동자인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 1905~1962)은 아우슈비취 유태인 400만 명을 학살한 죄를 이유로 아르헨티나에 피신해 살고 있는 것을 이스라엘은 끝까지 추적· 체포해 ‘나치스 및 나치스협력자처벌법’에 근거해 1962년 5월 31일 처형시켰다. 최근에는 이라크의 후세인 대통령을 처형한 것 등도 ‘인도(人道)에 대한 죄’에 의한 것이다.
뉘른베르크와 동경 극동군사 재판의 원칙
뉘른베르크 재판이나 동경극동군사재판에서 문제점은 자위권 차원의 전쟁과 침략의 인정 문제 등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었다. 전쟁종료가 가까웠던 1945년 6월 26일~8월 8일 사이에 국제군사재판소 조례작성을 위한 작업이 있었고 런던에서도 논란이 됐다. 각국은 자위를 위한 전쟁은 할 수 있다고 봤다. 따라서 자위전쟁인가 아닌가는 그 행동을 취하는 나라 자체가 판정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때문에 국가는 어떠한 경우에도 자위를 위한다며 전쟁을 개시하는 가능성이 남아 있었다. 이에 국제연맹 규약은 가맹국에 대해서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의무화 했다. 분쟁의 중재, 사법재판, 연맹이사회 심사 등에 있거나 그 판결이 나오기 까지는 3개월간 전쟁에 호소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에 반해서 개전국은 다른 모든 연맹국에 대해 전쟁을 개시한 취지를 규정하고 있어(제16조) 전쟁 그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위반국에 대한 제재가 불완전했다. 예컨대 1935년 10월 3일 이태리가 에티오피아에 대해서 침략행위(Abyssinian War)를 할 당시 경제제재가 실패로 끝났다. 결국 제2차 대전의 발발을 방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국제연합헌장은 전쟁자체에 대해서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가맹국은 잠정적 한정적 무력행사로서 ‘자위’행동은 인정하고 있으나 종래와 같은 ‘전쟁’을 하는 것은 인정하고 있지 않다.
1945년 11월 12일 동경 극동 군사재판소 판결은 자위인가 아닌가의 판정에 대해 1차적으로는 행위국이 결정하지만 최종적으로는 국제기관에 의한 심사와 판정에 의하게끔 하도록 했다. 따라서 침략전쟁을 개시한 정부 주요 각료 고급지휘관을 ‘평화에 대한 죄’에 의한 상대국민의 살상을 ‘인도에 대한 죄’에 해당한다고 규정했다. 종래 인정되고 있는 통예의 전쟁범죄(포로 상병자 학대)와 함께 유죄로 처형한 것이었다. 뉘른베르크 재판에 있어서도 똑같은 소추(訴追)·처벌을 했다. 여기서 일본은 재판소가 전승국에 한해서 구성된 것, 또 전승국의 범죄(원폭투하)에는 소추(訴追)· 처벌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서 실정법주의 입장에서 개전시(開戰時) 침략전쟁의 개시가 국제법상 범죄였느냐, 정부구성원 개인의 처벌을 인정하는 실정법이 존재해 있었느냐와 관련해 연합국 간에서도 유력한 반대가 있었으나 이러한 재판에 재판관을 내고 있는 전승국은 그 기초가 되는 재판소 조례나 판결에 포함된 제 원칙(諸原則)에 대해서 동의를 얻은 것이 됐다. 이후 이 원칙이 제국(諸國)을 구속하는 것이 됐다. UN총회도 1946년 12월 11일의 결의 ‘95(1)’에서 이 원칙을 승인하고 있다.
북한에도 인권보호 신장되는 계기 될 것
1945년 창설된 본격적인 평화유지기구로서의 국제연합은 그 목적의 하나로 국제협력을 들고 있다. 여기에는 모든 자를 위해서 인권 및 기본적 자유를 존중 할 것을 들고 있다. (UN헌장 전문 제1조3항, 제13조, 1항, 제55조, 제62조, 제76조 등 참조). 그러나 UN헌장의 인권개념은 구체적이 아니라 매우 애매하다. 그 보장의 실현에 관해서 구체적인 절차 등이 나와 있지 않고 단지 인권에 관한 가맹국의 행동기준을 나타내고 있는데 불과하다. 법적구속력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도의적인 구속력만 있을 뿐이다. 여기서 인권위원회가 구속력을 가진 인권조약의 초안화에 착수해 그 내용은 본래 자유권에 관한 기본권에 관한 것이었으나 생존권까지 포함한 ‘국제인권규약’이 1966년의 제21회 UN총회에서 전원일치 채택된 것이다. 이 인권규약은 ①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②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③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의 의정서 등 3개로 돼 있다. 이 중 전31조로 되는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은 그 실질조항으로서 근로의 권리, 노동자의 단결권, 사회보장, 교육을 받을 권리 등 소위 생존적 기본권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전53조가 되는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은 그 실질조항으로서 생명, 신체의 자유와 안전, 이전의 자유, 외국인의 추방, 공정한 재판, 법 앞에 평등, 사상·양심 및 종교의 자유, 소수민족의 권리 등 자유권적 기본권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 이 인권규약은 인권의 보장을 규약당사국에 의무화 하고 있다. 이것은 세계인권선언에 법적 구속력을 준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인권규약은 실시조치를 갖고 있다.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서는 체약국에 대해서 규약에 규정된 인권 준수 등의 상황에 관한 보고를 의무화 하고 있다.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서는 보고의무 뿐 아니라 체약국 18명의 국민으로서 구성되는 ‘인권위원회’를 설치해 위의 보고를 심리하고 아울러 다른 체약국의 규약 상 의무를 위반하고 있을 시 그 심리를 신청하게 하고 있다. 즉, ‘특별조정위원회’를 두어 해결하게 하고 있다. 더욱이 ‘선택의정서’의 당사국이 규약상의 권리를 침해한 경우에는 개인에 대해서 국내적 구제를 하게 하는 조건에 인사위원회에 청원하는 권리를 주고 있다. 이와 같이 인권 규약은 제2차 대전 후의 인권의 국제적 보호에 획기적인 의의를 갖고 있다.
이제 북한에도 인권이 보장되고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존엄은 물론 인권존중의 서광의 보이기 시작한 것은 다행이다. 이 인권에 도전하는 자는 ‘인도(人道)에 대한 범죄’로 처벌을 면치 못하는데서 그 의미는 매우 크다 할 것이다. 지금 북의 행태로 봐서는 지금도 비참한 인권유린이 계속 되고 있어 조사가 진행되면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루속히 인권이 신장되는 북한이 되기를 소망한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