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학사관(自虐史觀) 역사는 우리 역사가 아니다

입력 2019-12-28 18: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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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교수
우리 역사는 일본의 황통사
(皇統史) 식민사관(植民史觀)을 그대로 조선사편수회가 조작 왜곡한 역사임은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다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역사를 광복73년이 지나는 동안 여전히 우리 학생들에게 그대로 가르치고 있다.
 
우리나라 상고사(上古史)는 물론 단군조선(檀君朝鮮)도 전반부(前半部) 2000여년을 잘라버리고 신화화(神話化)해 우리들 조상과 우리 민족이 대륙의 강역(疆域)에서 살아온 것을 숨기고 있는데 역대 우리 교육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 곳인지 알 수가 없다.
 
최태영 선생은 이것은 우리의 고대사를 부정하는 학자들 중에 누구도 우리 상고사나 고대사(古代史)를 제대로 알아서 부정해 버렸다고는 생각하고 싶지가 않다.
 
그것은 일제(日帝)의 음습(陰濕)한 기도(企圖)아래 제대로 된 우리 역사를 듣지도, 자료를 찾아보지도 않고 일제가 가르친 대로 자기 나라의 역사를 멸시(蔑視)하고 일제가 취사선택(取捨選擇)과학적(科學的)’이란 말로 던져준 자료(資料)만을 다루는 학문풍토(學問風土)가 득세(得勢)해 이런 결과로 몰아갔던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로 인해 자학사관자(自虐史觀者)들이 늘어나고 안일한 연구는 역사를 바로 연구하지 않고 일제가 왜곡한 역사에서 벗어나지 못해 이 수준에만 머물고 있으며 역사 교재(敎材)도 일제가 조선사편수회가 왜곡한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시정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여기에 안주하고 있는 담당부서인 교육부가 아직도 자학반도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 잘못은 우리나라 역사를 왜곡(歪曲)된 역사만 알고 바른 역사를 담당자도 모른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 역사가 환국시대부터 대륙에서 시작하고 삼국시대도 그 이후 9세기 이전도 대륙에서 발흥(勃興)하고 있는데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음은 국가와 민족에 대한 크나큰 범죄란 인식이 없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누구인가를 숨기는 일이다.
 
오늘은 조선사편수회의 식민사관의 역사는 진실이 아니기에 역사가 아니라는 것과 우리 역사를 바르게 하는 길은 인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아는데 있음을 망각하지 않는 것이므로 정체성(正體性)을 잃은 역사는 역사가 아님을 살펴보고자 한다.
 
반도사관(半島史觀)은 김일연(金一然)부터 시작됐다
 
이스라엘인들은 아우슈비츠의 학살을 기억하며 600만명 이상의 희생자를 한 책으로 간행해 그 비극을 잊지 않고 있는데 반해, 우리는 일본이 조작하고 왜곡한 역사를 답습하며 그들 논리를 답습하는 자학사관자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이들로 인해 우리 역사는 세계의 석학들이 말하는 것과는 달리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일제가 왜곡, 조작한 역사논리를 답습하는 자학사관자들로 인해 거꾸로 뒤집혀져 있다. 이 역사를 광복 후 한 번도 바로 한 적이 없다.
 
역사를 연구함에 있어서 사실(事實)만을 추구(追究)해야 함에도 우리 역사를 망친 김일연(金一然)과 신채호(申采浩) 선생은 이미 선각자들이 심혈(心血)을 기울여 연구한 사서(史書)를 외면하고 지나(支那;中國)의 사서(史書) ‘25‘18’, ‘남제서(南齊書)’에 나온 사실을 외면함으로 우리 역사를 한반도 안에 가두는 우()를 범해 추락시켰다.
 
어느 민족이나 인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라 했다. 즉 인간이면 자신이 어느 조상의 자손이며 선조가 어디서 무엇을 하였는지도 알고 자기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자신이 선조를 위해서도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김일연(金一然)과 신채호(申采浩) 선생은 김부식(金富軾) () ‘삼국사(三國史)’를 접()하고도 이를 재현(再現)해 보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삼국사(三國史)’를 반도 안에 맞추어 보고 비평(批評)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는 육하원칙에 의한 방법보다 자기 자신의 사고(思考)에 맞추는 무지(無知)에서 오는 오만한 의식이 문제였다.
 
김일연(金一然)은 당()과 송()이 우리 역사를 대륙에서 반도로 밀어내는데 동참하고 반도역사로 만든 장본인(張本人)이다. 그것도 최초의 인물이 되고 있다. 그들은 한()과 당()이 사서(史書)를 편찬할 때도 동이전(東夷傳)을 넣었다.
 
‘18의 동이전은 남제서(南齊書)’ 58 범위의 동이(東夷)의 기록인데 이는 삼국사(三國史)’46 범위의 유연제노(幽然 齊魯) 오월(吳越)이 있는 지역으로 대륙의 기록이다. 고구려(高句麗)와 백제(百濟)가 패망하자 당()은 동이(東夷)의 기록을 지나(支那) 동쪽으로 밀어내기 시작 했다. ()나라 때 소동파(蘇東坡)역대지리지장도를 만들어 송()나라 이전에 남제서(南齊書)’58 범위의 동이 흔적을 지우고 있다.
 
그럼에도 ‘18동이전(東夷傳)은 대체로 그대로 두고 있어 20세기에 진실 규명을 할 수 있게 했다. 이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가라(加羅), 고구려, 백제(百濟)에서 광복한 신라와 고구려 간에서 독립한 신라가 있었는데 남제서(南齊書)’ 58에 있던 사로신라(斯盧新羅)를 감추고 고구려, 백제 사로신라(斯盧新羅)기록을 지나(中國)대륙에서 황해 동쪽으로 밀어내서 진()에서 당()까지 통일국가(統一國家)였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백제(百濟)가 패망한 곳을 반도로 밀어냈던 것이다.
 
김일연, 신채호 선생의 궤변을 한반도 역사로 정착시켰다
 
김일연(金一然)과 신채호(申采浩)는 어찌하여 당송(唐宋)의 우리역사 밀어내기에 동참하고 반도역사로 만들었을까? 이는 삼국사(三國史)’에 동이전(東夷傳)을 제대로 연구하지 않음으로 우리 역사의 오점(汚點)을 내는 천추(千秋)의 한()을 심어놓았다.
 
김일연(金一然)삼국유사(三國遺事)’를 집필할 때 인용한 서목(書目)에서 김부식(金富軾)삼국사(三國史)’는 필수이고 지나의 사기(史記)’에서 오대사(五代史)까지 지나 ‘18동이전도 많이 인용했다. 그리고 소동파의 역대지리지장도도 보았음을 발해전(渤海傳)에 남겼다.
 
그런데 삼국사(三國史)’와 동이전(東夷傳)을 그대로 전수(傳授)한 것이 아니고 동이전을 한반도사 만들기 위해 취사선택한 것은 물론 각색(脚色)까지 했다. 그는 동이전을 한반도에 맞추기 위해 최치원의 상대사시중장에서 삼한(三韓)은 취하고 삼국사(三國史)’ 46의 사실을 숨기면서까지 삼한(三韓)을 한반도(韓半島)의 역사로 만들었다.
 
또한 백제, 고구려 패망을 한반도에서 일어난 것으로 하기 위해 김유신에 대한 것을 삼국사(三國史)’와 다른 가락국기(駕洛國記)’를 소개했는데 삼국사(三國史)’ 41에 있는 수로왕(首露王)이전을 삭제해 버렸다. 그리고 가락국을 한반도에 맞추어 놓았다.
 
그리고 삼국사(三國史)’사기(史記)’에 기록된 삼국의 전전(前前)국가 구리(九黎)의 역사를 지워 버렸다. 그리고 곰과 범 이야기로 단군전을 만들어 비 인간세계로 만들어 버렸다.
 
한반도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 낙랑국(樂浪國) 항목을 낙랑군(樂浪郡)으로 덮어 기자조선(箕子朝鮮)과 위만조선(衛滿朝鮮) 및 한사군(漢四郡)을 이 땅의 역사로 만들었다.
 
일연(金一然)삼국사(三國史)’를 재현하려고 하였다면 고구려 백제가 남으로 오월(吳越), ()으로 유연제노(幽然齊魯다물(多勿)한 것을 찾고 오월(吳越)과 제노(齊魯)사이에 사로국(斯盧國)을 찾았다면 선덕여왕 때 보천(普天), 효명태자를 둔 정신대왕 신라를 찾아서 거칠부(居柒夫)국사이후 신라 기록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낙랑국(樂浪國)이 고구려에 다물이 되고 500년의 가한(可汗) 또는 마립간(麻立干)시대를 고구려로 보았을 것이다. 더구나 일연(金一然)은 고리(高麗)가 만주(滿洲)를 통치(統治)한 사실을 밝히지 못해 삼국사(三國史)’와 동이전(東夷傳)의 공통부분을 한반도(韓半島) 역사로 만들어 버렸다.
 
일연의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이승휴(李承休)제왕운기(帝王韻紀)’에 의해 조선국가사관 즉 반도사관으로 우리 역사를 보게 되었고 조선학자들에게 무시당하고 신채호(申采浩)에 의해 조선사연구초의 궤변(동서를 바꿔서라도 우리역사를 반도 안으로 하라)은 삼국사(三國史)와 동이전(東夷傳)을 한반도 역사로 만들어 버렸다.
 
왜곡된 역사를 역사라 하는 것은 학자가 아니다
 
일연과 신채호 등에 의해서 반도에 한정(限定)된 역사는 진실이 뒤엎어져 있기 때문에 바른 역사는 밝혀지지 않고 의혹만 점점 늘어만 가니 말이 아니다. 이렇게 된 원인은 우리의 대륙역사를 한반도에 맞추는 연구가 역사를 망치게 했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는 대륙의 역사인데 한반도에 맞추어 놓은 그 폐해는 세계시원국이라는 정체성(正體性)이 실종되게 하고 그 폐해(弊害)는 우리의 정신상황을 피폐하게 했다.
 
우리 역사는 한반도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재현(再現)을 해야 하는 지극히 평범한 논리를 망각하고 조상들의 무대를 한반도에 맞추려는 생각으로 우리 역사를 하나로 보는 사관이 정립하지 못해 타민족으로 보는 시각에 의해 아직도 헤매고 있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고려(高麗) 이전을 나타낸 김부식(金富軾) () ‘삼국사(三國史)’ 46남제서(南齊書)’ 58은 동일한 내용임을 확인하고 삼국사(三國史)’ 50권을 상대사시중장의 오월-유연제노와 한반도에 대입해보고 지나의 ‘18동이전을 한반도에 대입해보면 그 내용만 봐도 우리 역사가 반도 아닌 대륙사임을 확인할 수 있다.
 
또 한편 고구려에는 가한(可汗), 또는 마립간(麻立干)으로 있었던 지역이 있고 광복한 신라(斯盧新羅)와 독립한 신라(徐羅伐)의 구별이 가능하며 낙랑국(樂浪國)과 낙랑군이 확연히 다른 것이 드러나 있는데 이를 구분 못해 반도역사라고 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특히 신라와 고리(高麗)가 만주(滿洲)를 다스린 사실을 일연부터 지금까지 밝히지 못했기 때문인데 신라는 631년 이전부터 고구려 장성(長城) 이남을 다스렸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광령에서 길림(吉林) 이동(以東)은 신라(新羅)였고 송령에서 상성 이남을 고려가 통치한 것을 모르고 역사를 쓰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다.
 
지나(支那;中國)남제서(南齊書)’에는 우리가 한반도에 있었다는 기록은 그 어디에도 없다. 김일연과 신채호(申采浩)는 우리 역사를 한반도로 넣은 장본인들이다
 
지나의 ‘25()’,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및 광개토태왕비(廣開土太王碑)에서 9세기 이전 우리 민족의 영역(領域)은 서화(西華;項城) 중심의 동쪽에서 반도(半島)까지로 기록하고 있다. 이 당시의 왜(;)는 양자강이남 진파(眞番)로 불리던 담이(儋耳;南越)와 회계(會稽) 지역의 민()을 말한다. 이곳은 대륙이다.
 
글을 맺으며
 
우리 역사가 반도가 아니라 대륙에 있다는 것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사기(史記)’, ‘예기(濊記)’에도 기록들이 있다. ‘남제서58에는 유일하게 가락국기(駕洛國記)가 있고 가라(加羅;伽倻)는 송서(宋書), 남사(南史)까지 왜전(倭傳)에는 왜(), 가라(加羅), 임나(任那), 신라(新羅), 모한(慕韓), 진한(眞韓)이 대륙에 다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신라(新羅)631년 장성(長城) 이남(以南)을 통일하고 고려(高麗)는 장성(長城) 이남(以南)을 다스렸음을 고려사(高麗史)에도 쓰여 있으며 1830년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에도 나와 있다고 평생을 삼국사 연구에 정진(精進)한 오재성 선생은 말한다.
 
지나(支那;中國)와 일본이 역사왜곡을 위해 숨기는 양자강 이남에 있었던 왜()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가 다 있고 이 왜()도 우리의 78개 후국(侯國)중 하나였다.
 
근래 가야 유물이 경상도에서 나왔다고 가야(伽倻)가 반도에 있었다고 요란인데 역사를 바로 연구하고 말해야 한다. 유물 몇 개로 전체를 논할 수 없다. 옛 신라를 영해(寧海)라고 하였고 토함산은 간헐천이 나와야 토함산이다. 천년이 넘는 백제 의자왕 때 지명이 지금도 우리나라가 아닌 대륙에 있는데 역사를 제대로 연구하고 말해야 한다.
 
김일연은 서기전 137~서기 32년까지 있었던 낙랑국(樂浪國)부터 지우기 시작해 이 낙랑국(樂浪國)이 고구려에 다물 된 후 서기 32~502년까지 고구려간(高句麗干)이었다. 당시 고구려 간()10명이 넘는다. 이런 역사를 제대로 연구를 하지 않고 우리역사를 한반도 안에 가두는 무지는 이제 그만 둬야 한다. 세계가 웃고 있다.
 
(이상은 <최태영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 김부식 찬()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九犂系 加羅史.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東夷歷史 ’. 右犂歷史 校勘十八史’, 百濟中國에 있었다. 윤진영 編集 三國史」「우리역사(東夷傳. 智勝, ’우리上古史‘-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반재원, ‘鴻史桓殷’. 대야발 원저 단기고사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더 알씨랑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 황순종,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권진규 조선사’.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이강민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歷史’. 李進熙’ ‘好太王碑’. 杉山徹宗, 眞實中國四千年史外 書冊 參照하고, 本文引用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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