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 중원의 삼국시대 백제위치는 어디인가?

입력 2020-02-22 11: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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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교수
상고사(上古史)가 없고 우리보다 늦게 나라를 세우고도 우리보다 먼저 세우고 있다며 역사를 왜곡(歪曲)해온 지나(支那;中國)와 일본(日本)은 우리역사를 ‘자기들 역사보다 뒤늦게 세웠다’고 말도 아니 되는 조작도 모자라, 지나(支那;中國)는 동북공정으로, 일본은 그들의 역사 상반부가 우리의 역사임에도 자기들 역사라고 왜곡하고 있다.
 
그런데도 자학식민사관자(自虐植民史觀者)들은 지금도 지나(支那;中國)와 일본(日本)이 왜곡하고 조작한 역사를 앵무새같이 우리역사가 반도역사라고 하며 조상을 욕되게 하고 있다. 이들은 과연 역사를 제대로 연구한 사람들인가 의문을 아니 가질 수 없다. 
 
역사를 제대로 연구한 사람이면 자기조상을 욕되게 할 수 없음에도 여전히 우리역사를 폄하(貶下)하고 자학사관을 버리지 못 하고 있다. 그들 주장은 여전히 우리 역사가 반도라고 말하는데 이들이 이방인(異邦人)이 아닌가! 느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들 주장을 보면 양서(梁書) 54권에는 “한무제(漢武帝)가 조선(朝鮮)을 멸망시킨 뒤 현토군을 설치하고 고구려(高句麗)를 현(縣)으로 삼아 여기에 소속시켰다” 하고 송사(宋史) 487권, 외국고려조(外國高麗條)에는 “고구려는 하우(夏禹)시대에 속했고 지금은 요동(遼東)이라 하고 하우(夏禹)때는 기주(冀州)였다”고 하고 있다.
 
한사군도 원래 고조선 땅이라고 하고, 우공추지(禹貢錐指)에는 동이(東夷九族)이 우이(嵎夷)이고 우이(嵎夷)가 고조선이라는 견해가 실려 있으며, 경패(經稗) 3권에는 조선, 고구려, 여러 나라가 우(禹)임금 시대에 실제는 다 청주(靑州)에 있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유방(劉邦)이 한(漢)나라를 세운 이후 비로소 한족(漢族)이라 부르고 있는데 유방(劉邦) 자신도 동이족이고 그가 조선을 멸망시키고 고구려를 현(縣)으로 삼았다고 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조선은 한(漢)나라를 세우기 2000년 전부터 대륙에 있었고 한(漢)의 지배를 받은 적도 없었다. 참으로 한심하고 못 말리는 족속들이다.
 
지나(支那;中國) 고대사서(古代史書)에서는 고구려를 이역외국(異域外國)으로 기록하고 있다. 후한서, 구당서에는 고구려를 동이전에 넣고 주서(周書)에는 이역조(異域條)에 기술했다. 구오대사(舊五代史)와 송사(宋史)등에는 외국열전에 넣고 있는데 동북공정에서는 고구려를 이역외국(異域外國)이며, 자기들 지방정권이라고 왜곡하고 있다.
 
오늘은 지나(支那;中國)와 일본이 백제역사를 철저히 왜곡하여 그들의 수치스러운 역사를 숨기고 국가위상을 높이려하나 이는 거짓역사임을 문헌으로 밝혀 입증하려 한다. 
 
, 일의 역사왜곡은 성공 할 수 없다.
 
중,일과 자학식민사관자들의 우리역사를 한반도강역(韓半島江域)으로 보는 무지(無知)는 이제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가 상고시대(上古時代)부터 삼국시대(三國時代)도 대륙의 중원(中原)을 정벌하고 정복하며 지배한 것은 그들의 사서에서도 확연히 입증된다.
 
우리 역사가 반도가 아니고 대륙인 것은 지나(支那;中國)와 일본의 사학자들도 우리가 유라시아의 주역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역사를 바로 알기 위해서는 삼국시대의 우리영역의 위치를 바로 아는 것이 우리역사를 아는데 필수이다. 
 
지나(支那;中國)와 일본은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백제와 고구려가 내부의 배신과 분쟁으로 망하자마자 바로 역사 왜곡을 하여 왔는데 당(唐)은 무엇 때문에 우리 역사를 왜곡을 하였는가를 보면,  당(唐)은 찬란한 우리역사를 지우기 위해 왜곡하였고, 일본은 제3국에까지 거액의 지원을 하며 거짓역사를 조작하고 있다.
 
예컨대 일본은 외국의 대학에 까지 연구비를 지원하며 백제사(百濟史)를 일본에 유리하게 유도하려고 하고 있다. 그 한 예로 미국의 하바드(Harvard)대학에 연구비를 지원(支援)하며 백제사(百濟史)를 연구하며 우리 역사를 지우려고 애쓰고 있다.
 
그들의 역사왜곡의 의도는 대륙역사가 한족(漢族)인 진(秦)과 당(唐)에 의해서 대륙이 통일되고 대륙을 지배하였다고 조작하는데 있으며 일본은 양자강(揚子江) 이남에서 고구려 백제, 가야, 신라의 지배받은 것을 숨기위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역사왜곡이 허황된 것임을 바로 알아야 한다. 지난날은 몰라도 지금은 왜곡이 통하지 않는 세계가 되어서 다 드러나고 있다. 우리 조상은 기마민족(騎馬民族)으로 중앙아시아와 지나(支那;中國) 북방지역과 몽골고원 서부와 유라시아의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살면서 대륙을 정벌하고 정복하여 지배한 사실을 숨길 수가 없다. 
 
이는 지나(支那;中國)의 임해상(林惠詳)등 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고대 3000년 이전에 지나(支那;中國)를 정벌한 피발(被髮)민족으로 춘추시대(春秋時代)에 지나(支那;中國)를 정벌하여 거의 멸망케 한 민족은 예맥(銳麥;濊貊)이었다 하고 있다.
 
이에 관해서는 예맥(銳麥;濊貊)조선이 동주시대(東周時代)부터 한무제(漢武帝時代)까지 1000여 년 동안 지나(支那;中國)를 정벌, 정복, 지배(支配)한 사실이 지나사(支那;中國史)에도 분명히 명기(明記)되어 있다. (史記 23, 27, 33, 34,參照)
 
지나(支那;中國)는 고구려(高句麗) 모본대왕시대(模本大王時代) 고구려군(高句麗軍)이 한(漢)나라의 요지인 태원(太原)을 점령하니 요동태수 채동(蔡彤)이 항복하고 배상금을 바치었다. 그런데 후한서(後漢書)에는 항복을 받았다고 하는 지나(支那;中國)인 것은 이미 기술했다. (前漢書78, 蕭望傳第48, 後漢書 85, 東夷列傳, 第75, 高句麗 參照).
 
이래서 지나(支那;中國)의 사람들은 우리 동이(東夷)인 예맥(銳麥;濊貊)조선의 역사를 지우고 있는 것이다. 예맥(銳麥;濊貊)은 후(候), 읍(邑), 군(君), 3부족이 연합하여 통치하였다고 한다. 이 예맥(銳麥;濊貊)은 모든 부족 중 주체(主體)는 예맥조선이라 했다. 
 
서전(書傳) 무성편(武成篇)에 화하예맥(華夏濊貊)이라 하였다. 즉 안으로 지나(支那;中國)와 밖으로 예맥(銳麥;濊貊)이라고 기록한 것이다. 이는 예맥이 극히 강대하여 지나(支那;中國) 이외의 모든 민족을 대표하였다는 것이다. 무성편(武成篇)은 주무왕(周武王)이 은(殷)을 정벌한 역사를 기록 한 것이다. 
 
이런데도 지나(支那;國)인들은 자기들이 인류의 종주국(宗主國)이라 자처하며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고 있는데 이런 왜곡은 오늘날 통하지 않는다. 이미 1000년 전 [송본지리지장도(宋本地理指掌圖)], [우적도(禹跡圖)도 이를 입증(立證)한다.
 
삼국시대 지도, 지명기록도 모두대륙이다.
 
우리나라 역사(歷史)는 고려조(高麗朝) 때 김일연(金一然), 조선조(朝鮮朝) 때, 박지원(朴趾源), 유인석(柳麟錫), 안정복(安鼎福)등은 지나(支那;中國)를 천(天)으로 받드는 사대사상(事大思想)은 우리역사를 자학적(自虐的)인 역사로 만들게 했다.
 
그리고 최근 신채호(申采浩)등도 삼국시대의 지명(地名)과 일식(日蝕)의 관측, 자연현상의 발생지, 인물의 연속성이나, 이시대의 수도(首都)가 어디에 있었는지 등에 대한연구를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무책임한 역사왜곡은 혼란을 가져오게 했다. 
 
신채호(申采浩)의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에서는 상고시대(上古時代)부터 삼국시대(三國時代)도 우리가 중원(中原)을 지배한 것을 알고도 백제가 언제 대륙에서 언제 잃었는지 패망한 사실을 말하지 않고 백제가 충청도에서 망하였다고 만 기록하고 있다.
 
그는 '삼국사(三國史)'는 김부식(金富軾)이 11명의 편찬한 것을 이를 모화사상(慕華思想)으로 쓰여 진 것으로 돌리면서 취사선택의 사료적 가치밖에 없는 것으로 보고 구체적인 분석과 비평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사대(事大)이고 모화(慕華)가 된 격이 되어 우리역사를 막연히 매도한 결과 후학들이 이를 따랐다.  
 
그는 김부식(金富軾)의 '삼국사(三國史)'는 사대(事大)라 하면서 우리선조인 고신(高辛) 고양(高陽) 또는 소호(少昊) 김천씨(金天氏)를 인용하면 사대(事大)라는 이론은 성립할 수 없는 것을 제대로 말하지 않고 김부식의 '삼국사(三國史)'를 모화(慕華)로 몰았다.
 
'삼국사(三國史)'는 반도만을 우리 강역으로 보지도 않았고, 환국(桓國), 배달국(倍達國), 고조선(古朝鮮)의 영역을 부인한 적이 없다. 그런데 샤크오(釋尾春芿)는 1908년 김부식 찬(金富軾撰) 50권을 한권으로 발행하면서 표지제(表紙題)를 ‘삼국사기(三國史記)’로 바꾸며 무리한 왜곡을 하고 있는데도 유의하고 역사를 제대로 정립해야 한다. 
 
현재 우리역사의 지명(地名)이 지나(支那;中國)에는 삼국시대(三國時代)의 역사지명이 있는데 한반도에서 지나(支那;中國)로 진출하여 본토(本土)라고 주장하는 기록은 한반도에 없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인가. 반도역사가 아님을 말해준다. 
 
우리선조들이 묻혀 있는 지나(支那;中國)에는 치우능(蚩尤陵)과 헌원(軒猿陵), 기자능(箕子陵), 김수로왕능(金首露王陵), 김유신능(金庾信陵)등 우리역사의 왕릉(王陵)이 지나(支那;中國)에는 버젓이 있는데 반도에는 능(陵)없고, 삼국의 왕궁(王宮)도 없다. 
 
지금 지나(支那;中國)의 산서성, 하북성(河北省) 산동성(山東省), 하남성(河南省), 강소성(江蘇省), 안휘성(安徽省), 절강성(折江省)등에 우리 왕릉(王陵)들이 있는데 반도에는 단군릉, 김수로능(金首露陵)왕 김유신(金庾信陵)등 조성한 능(陵)만 있을 뿐이다. 
 
분명한 사실은 고구려, 백제패망시대에 관한 기록이 '삼국사(三國史)',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가 동일하게 나와서 지나(支那;中國) 25사 동이(東夷)의 위치를 벗어 날 수 없다. 송(宋)나라 고지도도 동이(東夷)지명이 황해서쪽에만 있고 반도에는 없다. 
 
글을 맺으며
 
지나(支那;中國)와 일본은 말도 되지 않은 역사왜곡(歷史歪曲)을 하는데 많은 공을 들여왔으나 그 허구(虛構)가 다 밝혀졌다. 위에서 삼국시대(三國時代) 지도, 지명이 말해주듯 상고시대는 물론 고대(古代) 삼국시대도 우리는 대륙에 있었다.  
 
지나(支那;中國)는 ‘동북공정’을 하다가 더 이상 자기들 역사가 아님을 일식관측(日蝕觀測), 천제현상, 홍수(洪水), 삼국의 자연현상, 당시 기마병(騎馬兵)의 숫자와 호구(戶口) 및 인구(人口) 황충(蝗蟲)의 출현도 반도(半島)의 것이 아님이 다 드러났다. 
 
하물며 고구려가 지방정권이었나? 고구려민족의 고대 한족인가? 고구려(高句麗)가 수(隨)와 당(唐)과의 전쟁(戰爭)이 지나(支那;中國)의 국내전(國內戰)이었나? 모두가 아니다. 또한 일본의 왜곡한 단군조선을 2000년이나 자른 것이 옳고 바른 역사란 말인가?  
 
그들의 진무왕(神武王)은 1000년이나 늘린 가공의 역사가 옳은 것인가? 그릇된 것은 바르게 하는 것은 빠를수록 좋은 것이다. 언제까지 우리역사를 이대로 둘 것인가? 필자도 기가 막힐 정도이다. 우리 역사는 반도(半島)의 역사가 아니고 대륙사(大陸史)인 것을 제대로 원전(原典)을 바로연구하고 바로알고 가르치기를 간절히 바라진다.
 
(以上은 최태영,‘단군을 찾아서’. 최인,‘한국학강의’, 김세환,‘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우리역사(東夷傳」.김부식 찬(撰)「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九犂系 加羅史. ‘斯盧新羅史’.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부여기마민족과 왜(倭)’.‘동북아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한국인 자부심 더 알씨랑’.‘日本國書刊行會,‘[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外 많은 書冊을 參照하고 本文을 引用하였음을 밝힙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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